내 핸드폰 단축다이얼 2번에 있던 '아빠핸폰'을 얼마 전에 '엄마핸폰'으로 바꾸었다.
아직도 2번을 누르면 아빠가 나오시려나 싶고, 친정집 대문을 들어서면 쇼파 위에 앉아서 우리 애들을 향해 두 손을 벌리는 아빠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 1년 4개월,,,,,아빠랑 함께한 39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벌써 맛난 음식 먹을 때도 좋은 곳에 가서도 아빠 생각을 많이 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 몇 달은 아빠가 못견디게 그리웠는데......
돌아가시기 4개월전의 여름휴가,,,아빠는 1남 5녀 자식 모두에게 한 통씩의 편지를 써주셨다. 크게 효도하는 자식은 없었어도 큰 불효는 없었는데 더구나 나는 아빠에게 자주 편지도 드리고 했었는데...이상하게 그 편지에 자식 누구도 답장을 드리지 못했다. 아빠의 마지막 편지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오늘은 아빠가 못견디게 보고싶다. 직원이 흘려한 친정아빠 이야기가 맘에 걸려서일까. 저녁을 먹고 아빠 편지를 읽는다.
사랑하는 네째딸 **에게
**야! 애비가 **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이자 마지막이 될 이 편지를 애비가 왜 쓰고 있나 한번 음미해보렴.
애비가 내 자식들 교육도 변변히 잘 시키지 못하면서 남의 자식들은 43년을 가르쳤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삶에 쫓겨 자식들을 돌보지 못했다면 양심의 가책을 면치 못할 것이 아니드랴.
그러나 내겐 항상 든든한 후원자인 너의 어머니가 있었기에 14번씩이나 이사를 다니고 18번의 전근에도 이삿짐 챙기랴 6남매 데리고 다니랴 그 와중에도 불평 한번 없었던 상상을 초월한 내조의 덕이었다고 너의 6남매 앞에서 떳떳이 자랑하고 싶다.
물론 애비노릇을 못한 죄가 원인이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더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이냐? 꼭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은 너희들 6남매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태산같은 걱정이다. 이것을 누가 예견하고 장담한단 말이냐,,,,,참으로 걱정이다.
내 자식들이 모여 앉아 좋은 얘기나 나누면 그 얼마나 좋으련만......
가끔 TV에서 나쁜 것을 볼 때마다.......그러나 그것이 숙명이라면 어쩌겠니? 서글픈 말이구나. 내 어찌 이런 일이......
다행히도 너희 6남매가 그런대로 사는 모습을 보는 애비 마음 그저 흐뭇할 뿐 더 이상 무슨 바람이 있겠느냐?
하나보다는 둘이 낫고 너희 6남매가 뭉치면 무슨 일인들 이룰 수 없겠느냐......
너도 유진이, 유경이 키워봐라, 때로는 애비, 에미를 생각하면서......
황서방 너그러운 사람아니냐. 나는 그 뚝심을 믿는다.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 어려움이나 참을 수 없을 땐 서로 좋은 방법을 찾아보아라. 서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두 딸을 잘 키워라. 애비의 소원이다.
**야 네 이년. 애비의 마지막 욕일지 모른다.
맞벌이 부부 쉬운게 아닐 줄 안다. 그만큼 황서방의 심리적 고충 알아서 처리해 주었으면 하고 당부하고 싶고 그런 처지를 40년 보아온 애비가 어찌 힘든 것을 모르겠느냐. 남편 출근 육아, 살림 내 딸이기에 충분히 하면서 행복 할 줄 믿는다.
애비가 사랑하는 넷째 딸 **에게
**야 사랑한다, 아빠가 생전 처음 해보는 소리다.
추신 애비가 글을 못쓴다는 소리는 안들었는데 늙어서 문장문맥이 안통하면 이해해라
아빠 산소 앞에 비로서 답장을 드린 못난 딸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항상 이렇게 후회만 하는 것이 자식의 길인가봅니다.
마치 병이 나신 것을 아시기라도 한 것처럼 유언을 하시듯 쓰신 아빠의 편지 속에서 아빠의 평생의 후회를 읽고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저에 대한 사랑을 읽고 또 저에 대한 믿음을 읽습니다.
아빠, 오늘은 정말 아빠가 보고 싶어요..저희가 모두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아시죠???
휴가 가기 전에 아빠 뵈러 갈께요..그렇게 드시지말라고 하던 소주랑 건강을 해친다면 억지로 끓게했던 담배를 가지고 말에요...
아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