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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은 유전자를 어떻게 조종할 수 있을까>

지난 신간평가단 도서였던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 2부에서 김동섭 교수가 설명하는 '후성 유전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 책 <인간은 유전자를 어떻게 조종할 수 있을>는 바로 그 '후성 유전학'에 대해 다룬다. 책소개는 이 책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후성유전학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삶의 방식이 미치는 영향이 우리 몸의 세포에 오롯이 새겨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후성유전물질이 특히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후성유전학의 메커니즘과 그러한 발견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이 궁금하기에 관심 도서로 꼽아본다.

 

 

 

 

2.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미래 사회의 인간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갈래의 논의가 존재한다. 하나는 위에서 추천한 책과 같이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인간 변형을 논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인간 신체와 기계의 결합이라는 포스트휴먼에 대한 논의이다. 두 주제 모두 과학기술을 통한 인공적 신체 변형이라는 점, 기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완전한 인간형에 대한 추구라는 점에서 유사하며, 또한 둘 모두 극렬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한 입장들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이런 식의 인간 변형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입장을 갖지 못하고 있기에 이 책을 읽으며 필요한 정보들을 얻고 싶다.

 

 

 

 

3. <식물은 똑똑하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연의 신비로움'과 같은 주제는 좀 식상하기도 하고, 동물이나 식물에 '똑똑하다'와 같이 의인화된 표현을 투영하는 것에도 별로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런 내용들을 다루고 있는 다큐나 책을 잡아 들면 나도 모르게 한없이 빠져들게 된다. 책소개에서처럼 "식물도 위험을 감지하고, 냄새를 맡고, 반응생태 경험을 축적하여 후대에 전할 줄 안다"와 같은 내용을 실제 관찰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4. <기술과 문명>

기술철학과 관련된 내용을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언급되던 루이스 멈퍼드의 책이다. 당시에는 번역된 책이 거의 없어서 입맛만 다시고 있었는데, 요 몇년 사이에 여러 권의 책이 번역되어 나와 개인적으로 기쁘다. 이 책 <기술과 문명>은 <기계의 신화>와 더불어 그의 저서 중 가장 중요하다고 지목되는 책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책소개로도 확인할 수 있다. "기술혁신과 과학의 발전, 사회의 조직화와 자본주의를 만난 기계의 변신을 주도면밀하게 따라간 멈퍼드는 삶의 질과는 무관한 이윤과 효율성으로 기계문명을 타락의 길로 이끈 권력의 실체를 폭로한다."

 

 

 

 

 

5. <시간 지도의 탄생>

시간이나 공간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책이라면 별 고민없이 눈에 띄는대로 구입하는 편이다. 이 책은 '시간 지도' 즉 연표의 역사를 다루는 책이라고 한다. 책소개는 다음과 같다. "연표를 역사를 기록하는 단순한 보조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세계관과 지식, 창의성과 기술이 축적된 하나의 분야로 여겨 그 형식과 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해 제대로 정리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연표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 방식이 흥미로워 관심 도서로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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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신간평가단 활동을 하게 된다. 그간 신간평가단 내에서 과학 분야가 홀대(?)받는 느낌이 있어, 이번 기수에는 과학 관련 서적을 적극 추천해보려고 마음 먹었다. 사실 과학 서적은 내용도 쉽지 않고, 읽고 나서도 서평을 적기 애매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마 과학과 인문에 살짝 다리를 걸치고 있는 책들이 관심 도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1.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제리 포더는 한때 그의 저서 <표상>을 찾아보려 한 적이 있어 이름이 낯익은 저자이다. 물론 절판된 지 오래되어 찾기 어려웠고, 그나마 찾은 책은 높은 중고가 때문에 포기했었다. 소장하지 않으면, 내 책이 아니면 읽지 못하는 몹쓸 버릇이 독서를 방해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번에 새로 책이 나왔다니 반갑다. 부제에서 보듯 스티븐 핑커에 대한 반론으로 구성된 책인듯 하다. 핑커의 책은 대충 훑어본 적만 있는데, 두 책을 같이 놓고 읽어보고 싶다.

 

 

 

 

 

 

 

2. 몸의 인지과학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새 책이다. 이미 출간된 바렐라의 <앎의 나무>와 <윤리적 노하우>를 읽으면서 그의 독창적 주장에 흥미를 가졌던 적이 있다. 물론 '재미있는 주장이다' 정도의 느낌이었지, '의미있는 주장이다'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당시 그의 중요 저서라고 하는 이 책도 구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인지과학의 철학적 이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었다) 깜박하고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제목을 달고 나오게 되었다. 이번엔 꼭 구입하여 읽어보고 싶다.

 

 

 

 

 

 

 

3.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진화생물학의 대가인 로버트 트리버스의 책이다. 출판사 소개를 잠시 빌리자면, "‘살아 있는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로 평가받는 로버트 트리버스는 대단히 독창적인 학자다. 그는 지금까지 호혜적 이타주의, 양육 투자, 성비 결정 등에 관한 뛰어난 진화적 분석과 이론을 내놓았다." 아마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봤을 테고, 거기서 트리버스라는 학자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알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추천.

 

 

 

 

 

 

 

 

4. 뇌과학이 보여주는 마음의 풍경

미드 <하우스>의 한 에피소드에 뇌의 신경신호를 통해 한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는 내용이 나온 적이 있다. 물론 이는 아직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마음 혹은 생각이란 것이 뇌신경의 신호들의 조합에 불과하다면 곧 가능해질 기술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심리철학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한 '타자의 마음의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될 것이다. 출판사 소개를 잠시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제는 fMRI와 PET 스캔 기술을 사용하여 인간의 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신경과학자들이 그렇게 해서 발견한 것은 뇌가 깜짝 놀랄 만큼 유연하고 회복력이 좋으며 잘 변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신경과학자들이 무엇을 알아내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당신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것이다."

 

 

 

 

5. 깃털

아름다운 표지에 이끌려 이 책도 꼽아본다. 출판사 소개만 인용해도 매우 흥미로운 책임을 알 수 있다. "생물 진화상 가장 경이로운 걸작으로 꼽히는 깃털의 자연사와 문화사를 흥미롭게 녹여냈다. 깃털은 인간의 첨단 테크놀로지로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공기 역학, 보온과 보호 등의 측면에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의 외피 중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경이로운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깃털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생물 진화라는 과학적 내용은 물론 역사, 패션, 신화, 산업, 예술, 낚시, 문학 등 깃털과 관련된 문화와 역사를 광범위하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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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 DNA에서 양자 컴퓨터까지 미래 정보학의 최전선 카이스트 명강 1
정하웅.김동섭.이해웅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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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카이스트에 재직 중인 세 명의 교수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과학의 최신 성과를 소개한 강연을 모은 것이다. 세 교수의 전공은 복잡계 네트워크, 생명 공학, 양자 역학으로 각각 다르지만 이들이 소개하고 있는 내용은 정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묶인다. 이는 아마도 강연을 기획한 측에서 강연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주제를 한정해 준 것이리라. 이러한 기획 의도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동일한 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분야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음과 동시에, 또한 폭넓게 분화되어 가는 과학의 각 분야들이 어떻게 서로 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가장 한 주제를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들이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가질만한, 가져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1부는 정하웅 교수가 복잡계 네트워크를 소개한다. 복잡계 네트워크란 쉽게 말해 다양한 점들이(복잡계) 서로 연결되어(네트워크)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뇌(뉴런들의 연결), 사회(인간들의 연결), 인터넷(컴퓨터들의 연결)과 같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이러한 구조로 이루어진 대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또한 그 각각의 대상이 개체()들의 총합 이상의 어떤 결과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정하웅 교수는 이러한 복잡계 네트워크가 왜 중요한지, 복잡계 네크워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쉽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전에 바라바시의 <링크><버스트>를 읽은 적이 있기에 더욱 쉽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뉴런 네트워크로서의 와 그 결과로서의 마음에 대해 관심이 있는데, 다음 카이스트 명강 주제가 라고 하니 더욱 기대된다.

 

2부는 김동섭 교수가 생물학에서의 정보 개념을 다룬다. 이는 가장 신비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을 정보 전달과 발현의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즉 분자 생물학의 중심 학설(Central dogma)‘DNA RNA 단백질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각각 단계에 담긴 정보가 어떻게 보존되고 전달되고 발현되는지에 대한 연구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는 오늘날 대단히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되는데, ‘본성과 환경이라는 오래된 논쟁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 조작이나 인간 복제, 새로운 생명의 창조와 같은 윤리적 논란을 안겨줄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3강에서 언급한 후성 유전체에 대한 설명, 즉 후천적 환경에 따라 유전 정보가 변형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런 논쟁과 논란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줄 연구라 더욱 관심이 간다.

 

3부는 이해웅 교수가 들려주는 양자 정보학에 대한 이야기다.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양자 역학과 관련된 주제이기에 세 강연 중 가장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전적 암호 체계에서 양자 암호 체계로 넘어가는 과정은 그나마 쉽게 이해될 수 있으나, 3강에서 다루고 있는 양자 얽힘과 이를 활용한 양자 공간 이동 및 양자 정보 전송, 그리고 양자 컴퓨터에 이르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양자 역학과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읽을 때마다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고 애매하게 남아있는 부분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해웅 교수의 말처럼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이론인 것이 사실이고, 또 양자 역학을 이해한다고 해서 생활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그렇기에 더욱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기필코 이해해보리라 하는 투쟁심이 솟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런 강연 혹은 이런 책들이 얼마나 필요했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과학에 관심 있는 인문학 전공자로서 평소 가지고 있던 불만 중 하나는 과학 분야에 대한 초보적인 수준에서부터 점차 심화되는 수준에 이르는 체계적 커리큘럼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아마 대학이 이런 과정을 제공해줄 터이지만, 다시 대학에 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고 수능을 다시 보지 않는 이상 문과계열 학생은 이과계열로 편입할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결국 대중 강연이나 사설 아카데미와 같은 곳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데, 인문학과 관련된 강연은 수두룩하지만 과학을 다루는 강연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설혹 과학이 주제로 등장한다고 해도 세부 분야나 이론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인문학적 시선으로 바라본 과학일 뿐이다. 결국 대학에서 이과계열의 교육을 받지 않은 이상 현대 과학 이론을 뒤쫓아 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과학자들의 역할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간혹 트위터나 블로그 등을 돌아다니다 보면 인문학자들이 과학을 제멋대로 재단한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과학에 대한 피상적 이해를 바탕으로 과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따져대는 것을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따져본다면 우리나라의 과학 전공자들이 자신이 연구하는 내용을 대중들에게 알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인문학보다 어렵다. 이는 두 분야의 논문을 함께 펼쳐놓고 비교해본다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과학은 일반 대중과 전공 연구자 사이의 중간 다리 역할이 더욱 필요한 분야이기도 하다. 다양한 수준의 교양 과학 서적이나 대중 과학 강연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 이런 기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없기에, 나와 같은 사람들은 이것저것 뒤적이며 미로 속을 헤매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출간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카이스트 명강>이 지속되고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과학 대중화라는 새로운 장이 열리길 기대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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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 (반양장)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진중권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혹은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꼽는데 주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가 요즘 열중하고 있는 트위터의 단평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으며, 각종 언론에서도 그의 트윗을 단골처럼 인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말하자면 황우석과 디워 논란, 그리고 촛불시위와 같은 굵직한 상징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진중권은 그의 책 제목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네임드가 그러하듯 여기에도 호오의 평가가 극명하게 교차한다. 아니 어쩌면 그 어떤 네임드보다도 극단적으로 평가가 갈리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그가 자주 사용하는 단정적 어조가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주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여 사태를 재단한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아마도 그가 사태를 단순화하여 바라보려 하기 때문이다. 트위터 상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던 곽노현 사건이나 공지영의 의자놀이사건이 대표적 경우다.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이러이러한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봐야 한다. 혹은 이렇게 보는 것이 맞다.’ 물론 그의 단정은 그가 자주 언급하는 상식이라는 기준에서 나오지만, 각자의 상식은 다르기 마련이므로 찬반이 분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발언마다 입장마다 다양한 찬반과 논란을 불러오는 그이지만 단 한 가지 분야, 즉 그의 전공인 미학과 관련해서는 (물론 내 눈에 띄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논란들이 별로 없다. 진중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변희재조차도 대학 시절 <미학 오디세이>로 공부했고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건 좀 재미있는 건데, 매번 진중권에게 전문가도 아니면서이러쿵저러쿵 떠든다고 비난하는 변희재가 자신의 전공이기도 한 미학과 관련해서 왜 아무런 말을 안 하는지 궁금하다. 서로가 전문가이기에 오히려 할 말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나름 추측해 본다면, 그의 미학 책들에는 전공자의 조심스러움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 <미학 오디세이> 삼부작이나 <서양미술사> 삼부작과 같은 책들의 경우 특유의 단정적 어투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정 입장을 강하게 옹호하기보다는 경합하는 다양한 입장들을 세심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자신이 선호하는 해석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타인, 즉 권위 있는 작가나 이론가의 입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마도 그 책들이 자신의 특정한 미학적 입장을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개하기 위해서 쓰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개론서 혹은 입문서의 저자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고, 그 역할에 충실하게 임하는 저자의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이 책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에서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현대미술을 읽는방법을 소개한다. 보는이 아니고 읽는인가? 저자가 제시하는 현대미술의 키워드는 비평이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미술을 비평의 시대로 특징짓는다. 오늘날 비평은 작품 자체를 성립시키는 계기가 된다. 현대미술은 예술의 정의자체를 주제화하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언제 예술인가?”로 바뀌었다.”(5)

 

언제 예술인가?” 이 물음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일반적으로 비평이란 말 그대로 어떤 작품을 평가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좋은 작품 나쁜 작품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등을 묻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물음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물음의 대상, 즉 작품이 먼저 존재해야만 한다. 비평이란 언제나 사후적인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제 예술인가?”라는 물음은 이 관계를 뒤집어 놓는다. 이제 어떤 것이 작품인지 아닌지를 비평이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현실에 대한 이론의 우위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이 점이 궁금했다.

 

먼저 상황을 유추해 보자.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의 개념은 폭발적으로 확장된다. 이는 뒤샹이 변기를 미술관에 전시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기존의 미술 이론들로 포괄할 수 없는 각양각색의 예술 작업들이 전개되었고, 이제 비평가들은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평가하기 이전에 도대체 그것이 작품인지 아닌지를 물어야 했다. 여전히 분명한 미적 기준을 고수하려 했던 평론가 그린버그는 형식주의 비평을 확립함으로써 이 상황을 통제하려 하였다.그린버그가 <모더니즘 회화>(1960)를 쓴 것도 실은 당시의 미술이 자신이 설정한 테두리를 벗어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모더니즘의 원리를 다시 한 번 명확히 천명해둠으로써 미술이 더 이상 자신이 설정한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막으려는 제스처였다.”(26) 그러나 이 시도는 결국 실패하고 그린버그는 비평 활동을 멈추게 된다.

 

미술의 개념이 폭발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은 잭슨 폴록이었다. 캔버스 위에 단지 물감을 흩뿌려 놓은 것 같은 그의 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새로운 미국 회화의 본질은 추상인가, 아니면 표현인가? 거기서 중요한 것은 작품(work)’인가, 아니면 과정(process)’인가?”(48) 이 책의 목차에 열거되고 있는 여러 다양한 미술 사조들, 즉 추상표현주의부터 앵포르멜, 색면추상, 탈회화적 추상,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팝아트,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해프닝, 플럭서스, 리히터의 작품, 신표현주의 등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자, 이 갈래길에 대한 선택이 된다.

 

이처럼 기존의 이론으로 포괄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처음 반응은 기존 이론을 보다 확장하여 이 이론에 최대한 포섭한 후, 포섭되지 않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는 것이 되지 않을까. 그린버그의 노력이 바로 이러한 시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포섭되지 않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기존 이론을 버리고 새로운 이론을 택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새로운 이론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이론들 간의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 예술인가?”라는 물음은 바로 이러한 이론들의 경쟁, 비평의 경쟁, 그리하여 미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비평 역할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정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언제 예술인가?”라는 질문에서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의 아이디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정상 과학과 이상 현상, 그리고 경쟁 이론의 경합과 과학 혁명의 완성까지 이르는 과정이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사와 유사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만일 이 비유가 허용된다면 현대 미술은 어디쯤에 와 있는가. 아마도 경쟁 이론의 경합쯤이 아닐까. 저자는 나가는 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는 세 이론을 소개한다. “‘확장된 장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로잘린드 크라우스), ‘연극성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더글러스 크림프), ‘알레고리 충동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크레이그 오웬스)이 그것이다.”(309) 물론 저자는 이 각각의 특성들이 서로 교차하는 공통성을 이룬다고 지적하지만 그 공통성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지는 않는다. 항상 분명하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저자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결국 미술을 이해하는 상식적 입장의 부재. 이것이 현대 미술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일 테고, 현대 미술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애매함 때문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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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리처드 세넷의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동시에 괴로운 경험이다. 무엇보다도 세넷은 저명하고 권위 있는 사회학자이면서도 일반 독자들이 읽기 쉬운 글을 쓴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어려운 개념이나 이론들을 무턱대고 들이대지 않으며, 필요한 경우에도 충분한 부연 설명과 사례를 덧붙여 독자를 배려한다. 저명한 학자들의 책을 읽어본 이들은 쉬운 말로 자신의 논지를 펼쳐나가는 저자가 얼마나 고마운지 동감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세넷은 다양한 분야와 사례, 이론들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저자이기도 하다. 그가 현란하게 풀어내는 다양한 생각거리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는 것은 무척 힘겨운 일이며, 그가 보여주는 지적 폭넓음에 기가 죽기도 한다. <투게더> 역시 세넷의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세넷은 오늘날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 협력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모색한다. 이 질문은 다시 세 가지 세부 질문으로 분화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어떠한 사회인가?’, ‘이런 사회에서 협력은 왜 약화되는가?’, ‘그렇다면 협력을 복원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 우리가 현재 처한 조건은 무엇인지 파헤친 후, 이러한 조건이 야기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식을 따라가고 있다. 이 질문들을 하나하나 따라가 보자.

 

먼저 현대 사회는 어떠한 사회인가? 그가 진단하는 현실은 개개인들의 개별화와 고립화를 뜻하는 사일로 효과silo effect’라는 표현으로 압축될 수 있다. 사일로 효과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지나친 의존, 단기적이거나 임시적인 노동 조건의 증가, 그리고 소비 중심의 문화적 획일화가 가속화되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테크놀로지는 저자 자신이 구글웨이브의 경험을 통해 설명한 것처럼 정보의 공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정보의 공유와 소통과 분명 다르다. 정보 공유는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는 훈련인 반면, 소통은 말로 표현된 것 못지않게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에도 관련된다. 소통은 제안과 함의의 영역을 파헤친다.”(61) 즉 더 많은 정보가 심층적 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현대적 관계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에서 사회적 관계 맺기는, 특별한 요구사항도 없고, 직접 만남보다 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친구들이 어디 있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를 보고, 그에 대해 한두 마디 코멘트를 보내기는 하겠지만, 무슨 일이 있는지 깊이 개입할 필요는 없다.”(233)

 

이러한 피상적 인간관계는 노동 조건의 변화와도 그 궤를 같이 한다. 노동 유연화라는 말로 대표되는 임시적이고 단기적인 일자리의 증가는 전통적인 협력의 장소인 작업장에서의 협력을 약화시킨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직장을 자주 바꿀 수밖에 없고, 사람들이 어떤 조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면 그 조직에 대한 지식이나 헌신 모두 약해진다.”(30) 한 직장에 오래 머문다고 해도 단기적인 프로젝트 팀 제도를 권장하는 현대적 경영 현실은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애착이나 관심을 가질 기회를 주지 않는다. 팀워크를 강조한다고 하지만 팀워크란 그저 팀원들이 어디서든 누구하고든 실행할 수 있어야 하는 휴대용 사회적 행동”(270)을 의미할 뿐이다.

 

이와 같은 피상적 인간관계는 결국 고립되고 개인주의적인 인간들로 귀결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특별한 성격 유형, 즉 요구가 많고 복잡한 사회적 참여 형태를 감당하지 못하여 움츠러드는 성격을 가진 인물이 출현하고 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려는 욕구를 잃고 비협동적 자아가 된다.”(288) 사회 속에서 서로 고립된 개인들은 결국 자신에 대한 애착과 타자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게 되고, 이는 결국 소비를 통한 자기만족의 추구와 타자에 대한 경계심 혹은 적대감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점은 특히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데, 명품에 대한 열광이나 점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왕따 현상이 바로 그가 지적하는 현실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질적 불평등이 서로를 고립시키고 단기적 노동이 서로의 사회적 접촉을 더욱 피상적으로 만들며 타자에 대한 불안감을 발동시키게 되자, 좁혀지기 힘든 차이를 다루는 기술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복잡한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필요한 협력의 기술을 잃어버리고 있다. () 인간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이런 자원이 현대 사회에서는 소진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32)

 

결국 세넷이 지적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는 위와 같은 말로 정리될 수 있다. 여기서 열거하는 현대 사회의 특징들은 후기자본주의를 특징짓는다고 익히 거론되던 것들로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특징들이 반자본주의 진영, 즉 소위 좌파라 불리는 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님을 지적한다. 오늘날 급진적 엘리트들과 노조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타인에 대한 피상적 인식에 기반하고 있으며, 피상적 인식은 상대적으로 목표와 이를 위한 규율을 중시하는 하향식 연대로 나타난다. 그리고 개혁이 하향식으로 시행되면 평등성은 무시된다. 평등성은 약해지고, 연대는 추상명사가 된다.”(93) 이 말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침묵하는 우리의 정규직 노동조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이 해야 하는가? 여기서 세넷의 대답이 재미있다. 그는 공동체를 하나의 소명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1900년에 파리에서 자료 형태로 전시된 사회복지관, 공동체적 조합, 작업장이 그 대안이다. 이런 그룹의 조직가들에게 분명히 신념과 헌신이 모두 있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소명의 의미는 달랐다. 공동체 자체가 소명이 되었다. 그 속에서 협력은 목적 그 자체와 비슷한 것이 되어, 공동체에 살거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아를 충족시켜준다.”(415~416) 물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야기할 것인지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함께 모여 지지고 볶다보면 무언가가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최소한 서로 즐겁게 지낼 수는 있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서 느끼는 차이, 까다로움, 모순점 들이 (그런 것들을 내가 당신에게서 느끼는 것처럼) 우리를 함께 어울리게 해준다. 우리는 서로와도 다르고 자기 자신 속에서도 분열되어 있다. 그러니 이야기해보자.”(208)

 

이러한 결론은 그가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해 온 대화적 대화를 염두에 둔 해결책이다. 대화적 대화로 합의를 공유하는 데까지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인식하게 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는 있다.”(48) 세넷은 이러한 대화적 대화의 복원, 사회적인 것의 복원, 공동체의 복원에 대해 말한다. 물론 스스로는 이러한 해결책이 낭만적 사고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지만 다소 낭만적으로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낭만적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지적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에 깊이 공감한다면 그의 대안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누가 알겠는가, 그가 약속하는 진지한 즐거움을 정말로 되찾게 될지.

 

프로이트는 누군가 질 높은 삶을 사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묻자 사랑하고 일하라로 대답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조언에는 공동체가 빠져 있고, 사회적 팔다리는 절단되어 있다. 한나 아렌트는 공동체적 삶을 하나의 소명으로 끌어안았지만, 그녀가 말한 공동체는 대부분의 빈민들이 직접 경험하는 종류의 공동체는 아니었다. 그것은 이상화된 정치적 공동체, 참여자들이 모두 동등한 입지에 서있는 공동체였다. 우리는 그보다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공동체, 사람들이 일대일 관계의 가치와 그런 관계의 한계를 모두 실현해내는 과정으로서의 공동체를 생각하고 싶다. 빈민이나 주변적인 인간들에게 그 한계는 정치적 한계이고 경제적인 한계이다. 가치는 사회적 가치이다. 공동체가 비록 삶의 전부를 채워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의 진지한 즐거움을 약속해주기는 한다.”(432)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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