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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리처드 세넷의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동시에 괴로운 경험이다. 무엇보다도 세넷은 저명하고 권위 있는 사회학자이면서도 일반 독자들이 읽기 쉬운 글을 쓴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어려운 개념이나 이론들을 무턱대고 들이대지 않으며, 필요한 경우에도 충분한 부연 설명과 사례를 덧붙여 독자를 배려한다. 저명한 학자들의 책을 읽어본 이들은 쉬운 말로 자신의 논지를 펼쳐나가는 저자가 얼마나 고마운지 동감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세넷은 다양한 분야와 사례, 이론들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저자이기도 하다. 그가 현란하게 풀어내는 다양한 생각거리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는 것은 무척 힘겨운 일이며, 그가 보여주는 지적 폭넓음에 기가 죽기도 한다. <투게더> 역시 세넷의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세넷은 ‘오늘날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 협력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모색한다. 이 질문은 다시 세 가지 세부 질문으로 분화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어떠한 사회인가?’, ‘이런 사회에서 협력은 왜 약화되는가?’, ‘그렇다면 협력을 복원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즉, 우리가 현재 처한 조건은 무엇인지 파헤친 후, 이러한 조건이 야기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식을 따라가고 있다. 이 질문들을 하나하나 따라가 보자.
먼저 현대 사회는 어떠한 사회인가? 그가 진단하는 현실은 개개인들의 개별화와 고립화를 뜻하는 ‘사일로 효과silo effect’라는 표현으로 압축될 수 있다. 사일로 효과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지나친 의존, 단기적이거나 임시적인 노동 조건의 증가, 그리고 소비 중심의 문화적 획일화가 가속화되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테크놀로지는 저자 자신이 구글웨이브의 경험을 통해 설명한 것처럼 정보의 공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정보의 공유와 소통과 분명 다르다. “정보 공유는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는 훈련인 반면, 소통은 말로 표현된 것 못지않게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에도 관련된다. 소통은 제안과 함의의 영역을 파헤친다.”(61) 즉 더 많은 정보가 심층적 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현대적 관계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에서 사회적 관계 맺기는, 특별한 요구사항도 없고, 직접 만남보다 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친구들이 어디 있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를 보고, 그에 대해 한두 마디 코멘트를 보내기는 하겠지만, 무슨 일이 있는지 깊이 개입할 필요는 없다.”(233)
이러한 피상적 인간관계는 노동 조건의 변화와도 그 궤를 같이 한다. 노동 유연화라는 말로 대표되는 임시적이고 단기적인 일자리의 증가는 전통적인 협력의 장소인 작업장에서의 협력을 약화시킨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직장을 자주 바꿀 수밖에 없고, “사람들이 어떤 조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면 그 조직에 대한 지식이나 헌신 모두 약해진다.”(30) 한 직장에 오래 머문다고 해도 단기적인 프로젝트 팀 제도를 권장하는 현대적 경영 현실은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애착이나 관심을 가질 기회를 주지 않는다. 팀워크를 강조한다고 하지만 팀워크란 그저 “팀원들이 어디서든 누구하고든 실행할 수 있어야 하는 휴대용 사회적 행동”(270)을 의미할 뿐이다.
이와 같은 피상적 인간관계는 결국 고립되고 개인주의적인 인간들로 귀결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특별한 성격 유형, 즉 요구가 많고 복잡한 사회적 참여 형태를 감당하지 못하여 움츠러드는 성격을 가진 인물이 출현하고 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려는 욕구를 잃고 ‘비협동적 자아’가 된다.”(288) 사회 속에서 서로 고립된 개인들은 결국 자신에 대한 애착과 타자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게 되고, 이는 결국 소비를 통한 자기만족의 추구와 타자에 대한 경계심 혹은 적대감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점은 특히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데, 명품에 대한 열광이나 점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왕따 현상이 바로 그가 지적하는 현실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질적 불평등이 서로를 고립시키고 단기적 노동이 서로의 사회적 접촉을 더욱 피상적으로 만들며 타자에 대한 불안감을 발동시키게 되자, 좁혀지기 힘든 ‘차이’를 다루는 ‘기술’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복잡한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필요한 협력의 기술을 잃어버리고 있다. (…) 인간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이런 자원이 현대 사회에서는 소진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32)
결국 세넷이 지적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는 위와 같은 말로 정리될 수 있다. 여기서 열거하는 현대 사회의 특징들은 후기자본주의를 특징짓는다고 익히 거론되던 것들로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특징들이 반자본주의 진영, 즉 소위 좌파라 불리는 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님을 지적한다. 오늘날 급진적 엘리트들과 노조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타인에 대한 피상적 인식에 기반하고 있으며, 피상적 인식은 상대적으로 목표와 이를 위한 규율을 중시하는 하향식 연대로 나타난다. 그리고 “개혁이 하향식으로 시행되면 평등성은 무시된다. 평등성은 약해지고, 연대는 추상명사가 된다.”(93) 이 말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침묵하는 우리의 정규직 노동조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이 해야 하는가? 여기서 세넷의 대답이 재미있다. 그는 공동체를 하나의 소명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1900년에 파리에서 자료 형태로 전시된 사회복지관, 공동체적 조합, 작업장이 그 대안이다. 이런 그룹의 조직가들에게 분명히 신념과 헌신이 모두 있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소명의 의미는 달랐다. 공동체 자체가 소명이 되었다. 그 속에서 협력은 목적 그 자체와 비슷한 것이 되어, 공동체에 살거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아를 충족시켜준다.”(415~416) 물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야기할 것인지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함께 모여 지지고 볶다보면 무언가가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최소한 서로 즐겁게 지낼 수는 있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서 느끼는 차이, 까다로움, 모순점 들이 (그런 것들을 내가 당신에게서 느끼는 것처럼) 우리를 함께 어울리게 해준다. 우리는 서로와도 다르고 자기 자신 속에서도 분열되어 있다. 그러니 이야기해보자.”(208)
이러한 결론은 그가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해 온 ‘대화적 대화’를 염두에 둔 해결책이다. 대화적 대화로 “합의를 공유하는 데까지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인식하게 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는 있다.”(48) 세넷은 이러한 대화적 대화의 복원, 사회적인 것의 복원, 공동체의 복원에 대해 말한다. 물론 스스로는 이러한 해결책이 낭만적 사고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지만 다소 낭만적으로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낭만적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지적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에 깊이 공감한다면 그의 대안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누가 알겠는가, 그가 약속하는 진지한 즐거움을 정말로 되찾게 될지.
“프로이트는 누군가 질 높은 삶을 사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묻자 “사랑하고 일하라”로 대답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조언에는 공동체가 빠져 있고, 사회적 팔다리는 절단되어 있다. 한나 아렌트는 공동체적 삶을 하나의 소명으로 끌어안았지만, 그녀가 말한 공동체는 대부분의 빈민들이 직접 경험하는 종류의 공동체는 아니었다. 그것은 이상화된 정치적 공동체, 참여자들이 모두 동등한 입지에 서있는 공동체였다. 우리는 그보다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공동체, 사람들이 일대일 관계의 가치와 그런 관계의 한계를 모두 실현해내는 과정으로서의 공동체를 생각하고 싶다. 빈민이나 주변적인 인간들에게 그 한계는 정치적 한계이고 경제적인 한계이다. 가치는 사회적 가치이다. 공동체가 비록 삶의 전부를 채워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의 진지한 즐거움을 약속해주기는 한다.”(432)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