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운좋게 11기 신간평가단에도 선정이 되었다. 매달 올려야 하는 페이퍼와 리뷰가 마치 숙제처럼 느껴져 조금 부담스러운 면도 있지만, 페이퍼 작성을 위해 매번 새로 나온 책들의 목록을 훑어보는 일이나 리뷰를 위해 평소같으면 그냥 스치고 지나갔을 생각들을 꼼꼼하게 적어보는 일이 나름 재미있다.

 

지난 10기 활동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인문/사회/과학'이라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침묵의 봄>을 제외하곤 과학 관련 책이 거의 선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11기에서는 세 분야에 예술까지 추가되어 과학 관련 서적의 인기가 더 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5월 추천 페이퍼에서는 과학 분야 책들만을 중점적으로 골라보았다.

 

물론 나는 과학 전공자가 아니기에 전문서적을 읽어낼 능력은 없다. 그래서 더더욱 나처럼 전공자가 아니면서 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학 교양서나 입문서가 제격이다. 4월 출간 도서 중에 그런 책들이 눈에 띈다.

 

 

    

 

 

먼저 <1, 2, 3 그리고 무한>(조지 가모프, 김영사)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김영사의 '모던&클래식' 시리즈로 출간된 책이다. 이 시리즈는 그 정체가 다소 모호한데, 분야가 한정된 것도 아니고 전집처럼 번호가 매겨지지도 않으며 심지어 어떤 책은 다른 책들과 크기도 다르다. 그럼에도 양질의 책들을 계속 출간하고 있기에 새로 나오는 책들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1, 2, 3 그리고 무한>은 출판사 소개에 의하면 "물리학의 기초적인 전체지형도를 그릴 수 있게 하여, 현대물리학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기 전 기초필독서로서의 역할과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이 책과 더불어 현대물리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양자역학에 대한 입문서인 <양자역학의 역사와 철학>(김유신, 이학사)도 눈에 띈다. 양자역학을 소개하는 입문서 몇 권을 읽어보긴 했지만 여전히 매우 어렵다고 느끼고 있는데, 우리 저자의 글로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기를 기대해 본다.

 

 

            

 

 

물리학과 더불어 아니 그 이상으로 현대에 주목받고 있는 과학 분야는 생물학일 것이다. 생물학이 지금과 같은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유전자 구조의 발견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우월한 유전자'니 '생물학적 완성도'니 하는 말을 농담으로 던질 정도로 유전자 혹은 생물학에 대한 대중적 상식이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많은 대중적 상식이 그렇듯이 정확한 지식보다는 흥미거리로 취급되며 잘못 알려지는 것들도 많다.

 

 <상식 밖의 유전자>(마크 핸더슨, 을유문화사)는 소개글처럼 "우리가 몰랐거나 오해했던 유전자에 대한 진실과 거짓"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상식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마지막 두 권인 <문명이 낯선 인간>(마크 핸슨/피터 글루크먼, 공존), <인간은 야하다>(더글러스 T. 켄릭, 21세기북스)는 유전자와 진화론으로 통해 인간의 행태를 설명하는 책이다. <상식 밖의 유전자>를 통해 알게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함께 읽어보기에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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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글쓰기 - 우리 말로 끌어안는 영어
최종규 지음 / 호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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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문화방송 노조의 파업 탓에 <무한도전>이 예전에 방송되었던 내용으로 다시 방송되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보는 타인의 삶이라는 내용으로 여기서 박명수는 의사의 삶을 대신 살아본다. 박명수가 겪는 의사의 삶 가운데 의사들의 아침모임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모임에서 온갖 영어로 된 병이름이 쏟아져 나오자 박명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제작진은 이를 안드로메다에 온 그림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사정은 오후의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의사들이 보통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된 병이름을 사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공부하는 책들이 대부분 영어로 씌어 있어 영어 이름이 익숙하기 때문일까. 어쩌면 우리말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일 테다. 그러나 가끔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데도 영어를 섞어가며 말을 하는 이들을 볼 때면 볼썽사납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이처럼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꼬치꼬치 따지고 있다. 왜 좋은 우리 말을 놔두고 굳이 영어나 한자어를 써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좋은 물음이고 되새겨보아야 할 물음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지은이의 물음을 내내 마음속에 두고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 영어나 한자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언어쓰임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말로 순화해 사용하는 일이 마치 또 다른 번역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한편으론 이렇게 어려운 일을 굳이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언어란 결국 소통의 도구이고 서로가 그 뜻을 잘 보내고 받을 수 있다면 영어건 한자어건 우리 말이건 편한 말을 쓰면 되는 게 아닌가. 지은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말을 올바르게 써야 생각이 올바르게 되고, 생각이 올바른 이만이 삶을 올바르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말을 올바르고 알맞춤하며 제대로 배우는 일이란, 스스로 내 생각을 올바르고 알맞춤하며 제대로 가눌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생각을 올바르고 알맞춤하며 제대로 가누도록 하는 일이란, 내 삶을 올바르고 알맞춤하면서 제대로 꾸리도록 다스리는 일입니다.”(150~151)

 

지은이는 말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삶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말을 써야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욕이나 비속어를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바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 자연스레 좋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말을 사용하는 모습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좋은 지표일 수 있다. 그러나 겉 다르고 속 다르다라는 속담도 있듯, 말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일 뿐이지 전부는 아니다. 지은이는 말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지만 거꾸로 삶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말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가 그 사람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자연스레 언어사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말과 생각, 그리고 삶은 서로 되먹임을 주고받는 사이이지 한쪽으로만 영향을 주는 사이는 아니다. 그래서 말을 올바르게 써야만 좋은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지은이의 아래와 같은 결론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저마다 제 삶을 올바르게 다스린다면, 알맞춤하게 꾸린다면, 제대로 북돋운다면 어찌 될까 생각해 봅시다. 아마, 삶터와 마을과 나라가 한껏 거듭날 테지요. 달라질 테지요. 온갖 검은 셈속이 사라지고 갖가지 더러운 짓이 쫓겨나며 돈벌레 짓거리는 자리잡을 수 없을 테고요. 거짓말 일삼는 정치꾼은 뿌리내릴 수 없고, 뒷돈 챙기는 쇠밥그릇 공무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151)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들이 단지 말을 바로 쓰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은 아닐 테다. 올바른 말의 사용은 좋은 사회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또한 우리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나는 존댓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말에 있는 존댓말과 같은 표현은 서로 존중하기 위해 쓰이기보다는 나이 많은 이가 적은 이를 짓누르는데 쓰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주의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러한 태도는 사람들 사이의 친밀한 대화를 가로막는 큰 담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이란 세월에 따라 변해간다. 사람이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변화를 무조건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울림도 좋고 뜻도 좋은 우리 말이 있는데 나라밖 말을 쓸 까닭은 없을 테다. 그러나 쉽게 사용하기 어렵고 뜻도 잘 전달되지 않은데 굳이 우리 말만을 고집하는 일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적절한 말을 쓰는 일이란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느껴진다. 이 글을 쓰면서도 지은이의 꾸짖음을 계속 떠올렸다. 역시 어렵다.

 

삶을 가꾸는 사람만이 말을 가꿉니다. 삶을 고치는 사람만이 말을 고칩니다. 삶을 올바르게 가다듬는 사람만이 말을 올바르게 가다듬습니다. 삶과 말이 동떨어진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으며, 어느 한 사람도 두 가지가 나란한금으로 나아간 적 또한 없습니다.”(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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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의 탐구 - DNA 이중나선에 얽힌 생명의 비밀 김영사 모던&클래식
프랜시스 크릭 지음, 권태익.조태주 옮김 / 김영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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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 디옥시리보핵산(DNA) 염의 구조를 제창하고자 한다. 이 구조는 생물학적으로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특징을 지니고 있다.”

 

1953425, 과학학술지 <네이쳐>에 위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한 페이지짜리 논문이 게재된다. 900여 단어로 이루어진 이 짧은 논문은 자신의 예언처럼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생물학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이 논문으로 인해 유전정보의 복제, 전달 과정이 해명될 수 있었고 베일에 가려있던 생명의 신비에 한층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과학에 무지한 혹은 무관심한 일반인들이라 하더라도 우월한 유전자‘DNA에 각인된과 같은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된 데에는 이들의 발견과 그로 인한 분자생물학의 급격한 발전이 큰 역할을 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과 더불어 20세기 과학의 결정적 장면으로 꼽히는 DNA 구조의 해명은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논문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이들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초기 연구에 많은 공헌을 했던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안타깝게도 또 한 명의 결정적 기여자인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1958년 암으로 사망하여 상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과정, 즉 연구의 시작부터 노벨상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는 책이 바로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최돈찬 옮김, 궁리, 2006)이다. 이 책에서 왓슨은 과학적 탐구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실험실에서의 갈등, 노벨상을 향한 경쟁심 등 과학자들의 인간적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물론 <이중나선>DNA 구조의 발견 과정에 대한 생생한 보고이자 크릭의 표현처럼 추리소설 같이 읽혀지도록쓰여져 있어 매우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재미에 비중을 둔 탓인지 과학적 설명보다는 과학자들의 일상이나 태도를 묘사하는데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고, 과학적 내용을 다루고 있는 부분에서도 친절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어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게 쓰여져 있다. 이런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는 책이 바로 프랜시스 크릭의 <열광의 탐구>이다.

 

왓슨은 <이중나선>에서 크릭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하며 그에 대한 첫인상을 거침없는 태도를 가진 말 많은 수다쟁이로 묘사했다. 그러나 <열광의 탐구>에서 만나게 되는 크릭은 신중한 태도로 조곤조곤 친절하게 설명하는 노학자를 연상케 한다. 책이 처음 출간된 1988년에 이미 70세를 넘긴 나이였으니 젊었을 때의 혈기가 다소 누그러들었을 수도 있겠다. 어쨌건 그는 이 책에서 자신과 왓슨의 연구가 어떠한 배경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나는 이 책을 나의 동료 과학자와 일반 독자를 위해 썼는데 문외한이라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내가 적은 것이 비교적 전문적인 내용이 될지도 모르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취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21)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이 중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당연히 자신과 왓슨이 성취한 이론적 성과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는 진화론의 기본 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연구가 시작될 당시의 성과와 과제들, 그리고 논문 발표 이후의 다양한 발전 양상까지 분자생물학의 전개 과정을 차근차근 짚어준다. 물론 책 전반에 걸쳐 전문적인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책의 머리말에서 공언한 것처럼 비전공자들을 배려해 가능한 한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영예를 차지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끊임없는 의욕, 그리고 어떤 아이디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 때 과감히 버릴 수 있는 마음가짐 때문일 것이다. ()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 그들의 두뇌가 뛰어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너무 빨리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144)

 

다른 하나는 과학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를 역설하는 부분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과감한 도전정신과 합리적 태도를 강조한다. 크릭과 왓슨, 둘 다 DNA 연구가 자신들의 중심 과제가 아니었음에도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과감히 자신들의 시간을 쪼개어 DNA 연구에 투자하였다. 또한 끊임없이 이론을 세우고 토론하고 동료의 비판을 통해 실수를 수정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뿐만 아니라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뇌과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새롭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과학자가 연구에 있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이론가들은 종종 자신의 이론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진정으로 멋지게 들어맞는 이론이 완전히 그릇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자연이란 것은 너무나 복잡해서, 하나의 현상을 서로 상이한 여러 가지의 이론들로 설명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274)

 

또한 생물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이 쓰여지던 20세기 후반은 진화론의 성과와 분자생물학의 성과가 결합하여 생물학이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크릭은 이러한 분위기에 도취되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며 조언한다. 깔끔하게 들어맞는 단순하고 명료해 보이는 이론이라고 할지라도 자연의 복잡함을 생각한다면 보다 신중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여러 가설들을 고려해야 하고, 자신이 선택한 가설에 대한 실험적 증거를 확보해야 하며, 실험 결과에 대해서도 그것이 오해를 야기하거나 그릇된 것일 수 있기에 성급한 결론을 내려선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이처럼 이미 세계적인 대학자로 존경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연구에 있어 항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크릭의 모습을 통해 명성이나 권위에 휘둘리지 않고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해나가는 과학자의 한 전형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과학자가 드러내보여준 진리는 무척 아름답다.

 

그는 DNA 모형을 흐릿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리고 간신히 한 말은 너무나 아름다운 구조인 겁니다. 알죠? 너무 아름답다고요였다. 정말 그것은 아름다웠다.”(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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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경쟁 - 패자 부활의 나라 스위스 특파원 보고서
맹찬형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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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처음 듣는 순간 다소 어리둥절했다. ‘따뜻한 경쟁이라니, 도대체 그게 가능한가? ‘따뜻한 경쟁은 일종의 형용모순처럼 느껴진다. 경쟁의 사전적 정의는 같은 목적에 대하여 서로 이기거나 앞서려고 다툼, 생물의 여러 개체가 제한된 환경을 이용하기 위하여 벌이는 상호 작용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경쟁이란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싸움이고, 승자와 패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면 입시 경쟁이란 없을 것이며,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면 취업 경쟁이란 없을 것이다. 누구나 같은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경쟁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따뜻한 경쟁이란 그래, 멋진 시합이었어라며 서로 악수를 나누는, 승자의 겸손과 패자의 수긍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스포츠 경기의 한 장면처럼 들린다. 그리고 누구나 알다시피 그런 아름다운 게임 따윈 현실에 없다. 입시나 취업 스트레스, 사업 실패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 지상을 오르내린다.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학원을 전전하고,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전공 공부는 제쳐놓은 채 토익이나 토플 등 스펙을 쌓기 위한 공부에 빠져 있다. 취직을 했다고 해도 승진을 위해 상사의 눈치를 보거나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그렇게 평생 경쟁이라는 이름의 수레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과장된 묘사다. 하지만 늦은 시각 학원에서 참고서를 들여다보고 있는 학생들, 어학원을 꽉 채우고 있는 수강생들, 출퇴근 지하철에서 영어학습서나 자기계발서를 읽고 있는 직장인들, 그리고 뉴스가 전하는 자살자들의 사연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무한 경쟁의 수레바퀴라는 과장된 표현을 단순한 과장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어떤 비참한 기분이 느껴진다. 이러한 현실에서 따뜻함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유럽을 한번 둘러보라고 제안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문이나 TV의 다큐프로그램 혹은 여러 책들을 통해 한번쯤 익히 들어봤을 복지국가의 장밋빛 풍경을 스케치한다.

 

책은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공대에 재수를 해서 입학하고, 졸업 후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자리를 얻지 못해 특허국에 취직하게 된다. 특허국에서 5년 동안 근무하며 틈틈이 물리학 연구를 하고, 마침내 세계가 놀랄 물리학 이론을 발표하게 된다. 이 한 가지 사례에 저자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목표와 경로를 다양화하고 패자에게 여러 번의 부활의 기회를 주는 경쟁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까닭은 단순히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유럽의 앞선 나라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이 길이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경쟁의 경로가 다양해져야 개인의 장점이 최대한으로 발휘되고, 패자 부활이 원활해야 지능을 가진 이들이 두려움 없이 도전에 나설 수 있으며, 거기서 일궈낸 성과는 사회 전체에 확산될 수 있다.”(230)

 

저자가 통신사 특파원이라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가지게 된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목표가 다양화된 사회다. 의사가 되거나 사법고시를 통과해야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안정된 생활이 가능한 사회, 공공서비스를 통해 사회에 헌신하고자 하는 신념보다는 그것이 안정된 직장이기에 공무원 시험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사회를 생각해보자. 이처럼 몇몇 특수 직종으로 목표가 제한된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구성원이 행복할 수 없다. 그 몇몇 직종에서 구성원 모두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양한 경쟁이 다양한 행복을 낳는다고 강조한다.

 

경쟁이 다양해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패자부활전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 한 번의 실패가 평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한 번의 실패가 이후의 삶을 좌우하는 비중이 클수록 경쟁은 점점 어린 시기로 소급된다. 취업을 위해 대학을, 대학을 위해 고등학교를, 고등학교를 위해 중학교를 잘 가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이 어린 시기에 벌어질수록 부모의 경제력이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 ‘상위권 대학 학생들의 40% 가량이 소득 상위 10% 안에 드는 최고소득층의 자녀라는 최근의 보도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우리 현실과 패자부활전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패자부활전이 보장되어 구성원들의 목표가 다양화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저자는 단연코 보편적 복지제도가 정답이라고 제시한다. 보편적 공교육 제도와 보편적 의료복지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어린 시기부터 부모의 경제력으로 인해 경쟁의 기회가 박탈되지 않을 것이며, 더 나아가 이처럼 생존 안전망이 탄탄하게 보장된다면 사람들이 얼마든지 자신의 재능과 특성을 발휘하여 여러 다른 직업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제도를 통해 강자에 대한 견제와 약자에 대한 보호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무한 경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보편적 복지가 정착됨으로써 패자부활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무한 경쟁이 점차 완화된다면 자연스레 공존의 가치가 사회에 안착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복지의 제도화와 공존 가치의 확립을 위해 적극적 시민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기 주변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만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방지하고 소수를 위한 사회가 아닌 다수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계층의 진정한 이해에 눈을 뜨면 그것이 날줄이 되고,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 연대의 필요성을 각성하면 씨줄이 된다. 날줄과 씨줄이 촘촘하게 그물처럼 엮이면 빈곤선 이하로 추락하는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되고, 기득권을 가진 이들로부터 양보와 동의를 받아내는 압력 수단이 될 것이다.”(215)

 

이처럼 저자가 여러 나라들의 사례를 통해 대략적으로 그려내는 사회의 모습은 무척 매력적이다. 그리고 만일 그런 사회가 현실화된다면 그땐 이미 경쟁이란 단어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에서 경쟁은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그러므로 따뜻한 경쟁이라기보다는 따뜻한 공존이 더 적절한 제목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총론만 있고 각론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어떻게 사회의 방향을 바꿔낼 것인가 하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고 있지 않다. 물론 저자에게 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저자는 기자로서 대략적인 스케치를 제시할 뿐이고, 그가 보여주는 밑그림이 맘에 든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그림의 완성을 요구하면 될 것이다실제로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은 유럽 선진국의 사례를 연구하여 우리 사회의 실정에 맞게 변형하여 대안적 정책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선거를 한 달 앞둔 지금, 그러한 정당의 지지율은 얼마나 되고 시민단체의 참여율을 얼마나 되는가. ‘현실이 이미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자조적 냉소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끊임없이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나마 최근 벌어진 한 가지 사례는 한 줄기 희망을 보여준다. 311일 전주시 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18개의 SSM이 일제히 휴업을 했다. 이는 지난 27일 전주시의회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전주시의 조례안 통과 이후 SSM 규제안은 전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처럼 조례안이 전국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는 70%가 넘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규제안을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서 영업권 제한을 이유로 제기한 헌법 소원의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힐 수도 있다. 그러나 값싸고 편리하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지역 중소상인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이유로 SSM의 규제를 찬성하는 모습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경쟁보다는 공존의 가치를 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두 선거에서 이 갈망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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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탓인지 날씨가 쌀쌀하다. 이번이 10기 신간평가단의 마지막 추천 페이퍼라고 한다. 사실 내가 추천한 책이 평가도서로 선정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마 내 취향에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만, 큰 불만은 없다. 어떤 책이건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게 더 나은 일일테니까. 때론 읽어야할 책이 지루하기도 했고 때론 반드시 서평을 써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책장에 신간평가단 선정도서들을 주르륵 늘어놓고 보니 그럭저럭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특히 의미있었던 점은, 평소 책을 읽어도 그저 혼자 생각하고 마는 편이었는데, 신간평가단을 하며 자연스레 다른 분들의 서평을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책에 대한 다른 생각들. 

 

 

              

 

 

정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몇 시간 전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구럼비 바위 발파 허가가 승인되었다고 한다. 총선을 앞두고 반MB니 정권 심판이니 같은 정서가 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팽배해 있지만, 단지 대통령이나 국회위원 몇 명만 바꾸면 모든게 좋아질까. 오늘의 강정은, 2006년 대추리였고, 2003년 부안이었다. 공권력은 언제나 공공의 이익이란 이름으로 집행된다. 그러나 그 공공의 이익이란 누구의 이익인가. 단지 정치인 몇 명에 열광 혹은 분노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체제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2월 신간 중,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간 두 책이 눈에 띈다. <가차없는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그 이후>이다. 앞의 책은 출판사 소개에 의하면 500년 자본주의의 역사를 일별하며 자본주의의 필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즉 "너무 익숙해진 한 체제에 의문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현실에 대한 의문은 항상 미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게 한다. 뒤의 책은 자본주의 체제 이후를 고민하며 "‘상생’과 ‘인본주의’라는 두 핵심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려는 책이라고 소개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리얼 유토피아>도 눈에 띈다. 책소개에 의하면 이 책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 존재해온 권력·특권·불평등 구조가 낳은 문제점을 파헤치고, 그 대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책이라고 한다.

 

 

     

 

 

체제의 강화는 가시적 형태의 물리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이나 명예훼손, 허위사실유포 등 다양한 법적 제재를 통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완성된다. 사람들의 입을 막음으로써 생각조차 막아버리는 것이다. 검열과 같은 비가시적인 제재가 위험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검열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검열에 관한 검은 책>과 '판옵티콘'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기 검열의 위험성을 폭로한 푸코의 전기인 <미셸 푸코, 1926~1984>를 이 달의 관심 도서로 추가한다.

 

   

10기 신간평가단,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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