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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경쟁 - 패자 부활의 나라 스위스 특파원 보고서
맹찬형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을 처음 듣는 순간 다소 어리둥절했다. ‘따뜻한 경쟁이라니, 도대체 그게 가능한가? ‘따뜻한 경쟁은 일종의 형용모순처럼 느껴진다. 경쟁의 사전적 정의는 같은 목적에 대하여 서로 이기거나 앞서려고 다툼, 생물의 여러 개체가 제한된 환경을 이용하기 위하여 벌이는 상호 작용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경쟁이란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싸움이고, 승자와 패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면 입시 경쟁이란 없을 것이며,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면 취업 경쟁이란 없을 것이다. 누구나 같은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경쟁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따뜻한 경쟁이란 그래, 멋진 시합이었어라며 서로 악수를 나누는, 승자의 겸손과 패자의 수긍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스포츠 경기의 한 장면처럼 들린다. 그리고 누구나 알다시피 그런 아름다운 게임 따윈 현실에 없다. 입시나 취업 스트레스, 사업 실패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 지상을 오르내린다.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학원을 전전하고,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전공 공부는 제쳐놓은 채 토익이나 토플 등 스펙을 쌓기 위한 공부에 빠져 있다. 취직을 했다고 해도 승진을 위해 상사의 눈치를 보거나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그렇게 평생 경쟁이라는 이름의 수레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과장된 묘사다. 하지만 늦은 시각 학원에서 참고서를 들여다보고 있는 학생들, 어학원을 꽉 채우고 있는 수강생들, 출퇴근 지하철에서 영어학습서나 자기계발서를 읽고 있는 직장인들, 그리고 뉴스가 전하는 자살자들의 사연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무한 경쟁의 수레바퀴라는 과장된 표현을 단순한 과장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어떤 비참한 기분이 느껴진다. 이러한 현실에서 따뜻함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유럽을 한번 둘러보라고 제안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문이나 TV의 다큐프로그램 혹은 여러 책들을 통해 한번쯤 익히 들어봤을 복지국가의 장밋빛 풍경을 스케치한다.

 

책은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공대에 재수를 해서 입학하고, 졸업 후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자리를 얻지 못해 특허국에 취직하게 된다. 특허국에서 5년 동안 근무하며 틈틈이 물리학 연구를 하고, 마침내 세계가 놀랄 물리학 이론을 발표하게 된다. 이 한 가지 사례에 저자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목표와 경로를 다양화하고 패자에게 여러 번의 부활의 기회를 주는 경쟁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까닭은 단순히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유럽의 앞선 나라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이 길이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경쟁의 경로가 다양해져야 개인의 장점이 최대한으로 발휘되고, 패자 부활이 원활해야 지능을 가진 이들이 두려움 없이 도전에 나설 수 있으며, 거기서 일궈낸 성과는 사회 전체에 확산될 수 있다.”(230)

 

저자가 통신사 특파원이라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가지게 된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목표가 다양화된 사회다. 의사가 되거나 사법고시를 통과해야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안정된 생활이 가능한 사회, 공공서비스를 통해 사회에 헌신하고자 하는 신념보다는 그것이 안정된 직장이기에 공무원 시험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사회를 생각해보자. 이처럼 몇몇 특수 직종으로 목표가 제한된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구성원이 행복할 수 없다. 그 몇몇 직종에서 구성원 모두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양한 경쟁이 다양한 행복을 낳는다고 강조한다.

 

경쟁이 다양해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패자부활전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 한 번의 실패가 평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한 번의 실패가 이후의 삶을 좌우하는 비중이 클수록 경쟁은 점점 어린 시기로 소급된다. 취업을 위해 대학을, 대학을 위해 고등학교를, 고등학교를 위해 중학교를 잘 가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이 어린 시기에 벌어질수록 부모의 경제력이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 ‘상위권 대학 학생들의 40% 가량이 소득 상위 10% 안에 드는 최고소득층의 자녀라는 최근의 보도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우리 현실과 패자부활전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패자부활전이 보장되어 구성원들의 목표가 다양화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저자는 단연코 보편적 복지제도가 정답이라고 제시한다. 보편적 공교육 제도와 보편적 의료복지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어린 시기부터 부모의 경제력으로 인해 경쟁의 기회가 박탈되지 않을 것이며, 더 나아가 이처럼 생존 안전망이 탄탄하게 보장된다면 사람들이 얼마든지 자신의 재능과 특성을 발휘하여 여러 다른 직업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제도를 통해 강자에 대한 견제와 약자에 대한 보호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무한 경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보편적 복지가 정착됨으로써 패자부활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무한 경쟁이 점차 완화된다면 자연스레 공존의 가치가 사회에 안착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복지의 제도화와 공존 가치의 확립을 위해 적극적 시민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기 주변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만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방지하고 소수를 위한 사회가 아닌 다수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계층의 진정한 이해에 눈을 뜨면 그것이 날줄이 되고,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 연대의 필요성을 각성하면 씨줄이 된다. 날줄과 씨줄이 촘촘하게 그물처럼 엮이면 빈곤선 이하로 추락하는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되고, 기득권을 가진 이들로부터 양보와 동의를 받아내는 압력 수단이 될 것이다.”(215)

 

이처럼 저자가 여러 나라들의 사례를 통해 대략적으로 그려내는 사회의 모습은 무척 매력적이다. 그리고 만일 그런 사회가 현실화된다면 그땐 이미 경쟁이란 단어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에서 경쟁은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그러므로 따뜻한 경쟁이라기보다는 따뜻한 공존이 더 적절한 제목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총론만 있고 각론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어떻게 사회의 방향을 바꿔낼 것인가 하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고 있지 않다. 물론 저자에게 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저자는 기자로서 대략적인 스케치를 제시할 뿐이고, 그가 보여주는 밑그림이 맘에 든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그림의 완성을 요구하면 될 것이다실제로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은 유럽 선진국의 사례를 연구하여 우리 사회의 실정에 맞게 변형하여 대안적 정책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선거를 한 달 앞둔 지금, 그러한 정당의 지지율은 얼마나 되고 시민단체의 참여율을 얼마나 되는가. ‘현실이 이미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자조적 냉소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끊임없이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나마 최근 벌어진 한 가지 사례는 한 줄기 희망을 보여준다. 311일 전주시 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18개의 SSM이 일제히 휴업을 했다. 이는 지난 27일 전주시의회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전주시의 조례안 통과 이후 SSM 규제안은 전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처럼 조례안이 전국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는 70%가 넘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규제안을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서 영업권 제한을 이유로 제기한 헌법 소원의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힐 수도 있다. 그러나 값싸고 편리하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지역 중소상인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이유로 SSM의 규제를 찬성하는 모습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경쟁보다는 공존의 가치를 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두 선거에서 이 갈망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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