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의 탐구 - DNA 이중나선에 얽힌 생명의 비밀 김영사 모던&클래식
프랜시스 크릭 지음, 권태익.조태주 옮김 / 김영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여기에 디옥시리보핵산(DNA) 염의 구조를 제창하고자 한다. 이 구조는 생물학적으로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특징을 지니고 있다.”

 

1953425, 과학학술지 <네이쳐>에 위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한 페이지짜리 논문이 게재된다. 900여 단어로 이루어진 이 짧은 논문은 자신의 예언처럼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생물학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이 논문으로 인해 유전정보의 복제, 전달 과정이 해명될 수 있었고 베일에 가려있던 생명의 신비에 한층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과학에 무지한 혹은 무관심한 일반인들이라 하더라도 우월한 유전자‘DNA에 각인된과 같은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된 데에는 이들의 발견과 그로 인한 분자생물학의 급격한 발전이 큰 역할을 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과 더불어 20세기 과학의 결정적 장면으로 꼽히는 DNA 구조의 해명은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논문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이들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초기 연구에 많은 공헌을 했던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안타깝게도 또 한 명의 결정적 기여자인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1958년 암으로 사망하여 상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과정, 즉 연구의 시작부터 노벨상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는 책이 바로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최돈찬 옮김, 궁리, 2006)이다. 이 책에서 왓슨은 과학적 탐구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실험실에서의 갈등, 노벨상을 향한 경쟁심 등 과학자들의 인간적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물론 <이중나선>DNA 구조의 발견 과정에 대한 생생한 보고이자 크릭의 표현처럼 추리소설 같이 읽혀지도록쓰여져 있어 매우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재미에 비중을 둔 탓인지 과학적 설명보다는 과학자들의 일상이나 태도를 묘사하는데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고, 과학적 내용을 다루고 있는 부분에서도 친절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어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게 쓰여져 있다. 이런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는 책이 바로 프랜시스 크릭의 <열광의 탐구>이다.

 

왓슨은 <이중나선>에서 크릭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하며 그에 대한 첫인상을 거침없는 태도를 가진 말 많은 수다쟁이로 묘사했다. 그러나 <열광의 탐구>에서 만나게 되는 크릭은 신중한 태도로 조곤조곤 친절하게 설명하는 노학자를 연상케 한다. 책이 처음 출간된 1988년에 이미 70세를 넘긴 나이였으니 젊었을 때의 혈기가 다소 누그러들었을 수도 있겠다. 어쨌건 그는 이 책에서 자신과 왓슨의 연구가 어떠한 배경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나는 이 책을 나의 동료 과학자와 일반 독자를 위해 썼는데 문외한이라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내가 적은 것이 비교적 전문적인 내용이 될지도 모르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취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21)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이 중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당연히 자신과 왓슨이 성취한 이론적 성과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는 진화론의 기본 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연구가 시작될 당시의 성과와 과제들, 그리고 논문 발표 이후의 다양한 발전 양상까지 분자생물학의 전개 과정을 차근차근 짚어준다. 물론 책 전반에 걸쳐 전문적인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책의 머리말에서 공언한 것처럼 비전공자들을 배려해 가능한 한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영예를 차지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끊임없는 의욕, 그리고 어떤 아이디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 때 과감히 버릴 수 있는 마음가짐 때문일 것이다. ()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 그들의 두뇌가 뛰어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너무 빨리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144)

 

다른 하나는 과학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를 역설하는 부분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과감한 도전정신과 합리적 태도를 강조한다. 크릭과 왓슨, 둘 다 DNA 연구가 자신들의 중심 과제가 아니었음에도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과감히 자신들의 시간을 쪼개어 DNA 연구에 투자하였다. 또한 끊임없이 이론을 세우고 토론하고 동료의 비판을 통해 실수를 수정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뿐만 아니라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뇌과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새롭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과학자가 연구에 있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이론가들은 종종 자신의 이론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진정으로 멋지게 들어맞는 이론이 완전히 그릇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자연이란 것은 너무나 복잡해서, 하나의 현상을 서로 상이한 여러 가지의 이론들로 설명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274)

 

또한 생물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이 쓰여지던 20세기 후반은 진화론의 성과와 분자생물학의 성과가 결합하여 생물학이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크릭은 이러한 분위기에 도취되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며 조언한다. 깔끔하게 들어맞는 단순하고 명료해 보이는 이론이라고 할지라도 자연의 복잡함을 생각한다면 보다 신중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여러 가설들을 고려해야 하고, 자신이 선택한 가설에 대한 실험적 증거를 확보해야 하며, 실험 결과에 대해서도 그것이 오해를 야기하거나 그릇된 것일 수 있기에 성급한 결론을 내려선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이처럼 이미 세계적인 대학자로 존경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연구에 있어 항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크릭의 모습을 통해 명성이나 권위에 휘둘리지 않고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해나가는 과학자의 한 전형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과학자가 드러내보여준 진리는 무척 아름답다.

 

그는 DNA 모형을 흐릿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리고 간신히 한 말은 너무나 아름다운 구조인 겁니다. 알죠? 너무 아름답다고요였다. 정말 그것은 아름다웠다.”(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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