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길은

여기 있으매 두려워지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서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 미타찰에서 너를 만나볼 나는

도를 닦아 기다리련다

 

2004년을 보내면서 일부러 찾아 읽어 본 향가는 월명대사의 '제망매가'입니다.

그 중에서 마지막 두 연이 제 마음을 붙들어 평소에도 가끔 되뇌이는 구절이어서

심란할 때면 한숨대신 이 부분을 노래하곤 합니다.

 

'아 미타찰에서 너를 만나볼 나는

도를 닦아 기다리련다'

 

모든 알라디너들이 새해에 거는 소망들이 모두 성취하시기를

니르바나가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봅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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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2-3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플레져 2004-12-31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예요. 국어선생님께서 "한 가지에 나서" 라는 부분을 지적하시면 형제라고 말씀하셨을 때 부터...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詩,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혜덕화 2004-12-31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복은 비는게 아니고 짓는거라더군요.

좋은 일 많이 많이, 기쁨 함께 나누는 해 되기 바랍니다.

비연 2005-01-0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오랫만에 뵙는 듯.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nicare 2005-01-03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받을 그릇부터 빚어야겠네요. 마지막 말씀,새삼스럽게 마음을 울립니다.
 

  반야심경, 금강경읽기- 김윤수 (마고북스)

 

 

 

  예수 하버드에 오다- 하비 콕스, 오강남 옮김(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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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2-2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수 하버드에 오다> 보관함에 넣었어요.

멋진 리뷰도 하나 올라와 있더군요.

세속도시의 하비 콕스, 예수는 없다의 오강남.(존칭 생략;;)

새해 벽두에 꼭 리뷰 올려주세요. 니르바나니임.^^

stella.K 2004-12-29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경합니다. 저는 언감생심...ㅜ.ㅜ

니르바나 2004-12-29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는 로드무비님께 양보하렵니다.

리뷰는 안 쓰는 것이 아니고 못쓰는 것이 니르바나의 비애랍니다.

니르바나 2004-12-2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무슨 말씀을 이리 심하게 하시나요.

존경이라니요.

저야말로 스텔라님을 존경하고 있답니다.ㅎㅎ
 

 

 

'상계동 슈바이처' 청진기를 놓다
[조선일보 2004.12.28 04:57:46]
[조선일보 김봉기, 최규민 기자]김경희(金庚熙·84) 은명내과 원장은 서울 중계동 아파트 마루에 앉아 “말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겨우겨우 “내가 심장이 아파…크리스천인데 오늘(26일 일요일) 교회도 못갔어. 한달 반 전인가, 그때부터 아파서…” 하곤 말을 멈췄다. 인터뷰도 이것으로 끝났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을 바친 ‘상계동 슈바이처’가 기력을 잃고 60여년 동안 들었던 인술(仁術)의 청진기를 내려놓았다. 그가 운영하던 은명내과의원은 고행 길을 뒤따르겠다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24일 폐업 신고서를 내고 문을 닫았다. 병원 입구엔 ‘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휴진하오니 양해 바랍니다’란 안내문이 걸렸다. 개원 20년 만의 폐업이다.

3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됐지만 내색을 안 하고 얼마 전까지 독거노인 무료 진료를 다니던 김 원장이었다. 15년 동안 봉사활동을 함께 한 현대교회 진삼웅(50) 목사는 “목과 허리 디스크를 앓으셨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며 왕진을 계속하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원장은 평소 “팔 다리야 아픔을 껴안고 살지만 혈관이 안 좋으면 내일을 기약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근 심장병 악화로 마침내 기약 못할 그날을 맞은 것이다.

68년 전인 1936년 1월 어느날 서울 정동교회. 한말(韓末) 궁의(宮醫·한의사)의 손자 김경희(당시 배재고보 3학년·16세)는 “하나님,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나이다” 하고 기도로 약속했다. 식민 치하에서 가난 때문에 치료 한 번 못받고 결핵에 걸려 숨진 친구들, 스스로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중생(重生) 체험’이 그를 바꾼 것이다. 4년 후 세브란스의전(醫專·연세대 의대 전신)에 진학한 그는 평생 이날의 약속을 지켰다.

1941년(의전 2학년) 서울 답십리 조선보육원 아이들 치료에서 시작, 광복 후 일본과 만주에서 귀국한 무의탁 동포 무료 진료, 6·25전쟁이 끝난 뒤 일본 교토대 의학부 대학원 유학, 박사학위 취득. 귀국한 의학박사 김경희는 1973년 다시 왕진 가방을 들고 영세민과 피란민이 엉켜 살던 서울 답십리·청계천·망원동·한강 뚝방 판자촌에 뛰어들었다. 10년 동안 전국을 돌며 무료 진료…. 그는 1984년 ‘은명내과’ 간판을 내걸고 처음 정착했다. 그곳은 당시 판잣집이 즐비하던 서울의 대표적 빈민촌, 상계동이었다.

처음엔 영세민들에게 돈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주민들은 정작 “누굴 거지로 아느냐”며 정색을 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심까지 살려줄 진료방법은 없을까?’ 궁리하던 김 원장이 반짝 아이디어를 낸 것이 바로 ‘1000원 진료’였다. 어떤 치료를 받든 진료비는 1000원. 그가 ‘상계동 슈바이처’란 별명을 얻은 것은 이웃의 마음까지 돌보는 세심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헌신은 의술에서 끝나지 않았다. 1985년 은명장학회를 설립해 200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고, 심장수술후원회를 결성해 선천성 심장병 환자들을 치료했다. 1996년에는 모든 재산(부동산)을 학교와 종교 단체에 기증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2000년에는 영세민촌인 중계본동 104번지와 상계1동 노원마을의 가난한 100가구를 ‘은명마을’이란 이름으로 한데 모으고, 이들의 건강과 살림살이, 경조사를 챙겼다. 그가 병원, 장학회, 공동체에 붙인 ‘은명(殷明)’이란 이름은 부친(김은식 장로)과 모친(서명신 권사) 함자에서 따온 것이다.

주민들은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 원장 진료를 받아온 중계본동 박진심(여·78)씨는 “그렇게 좋은 분이 또 어디 있나, 빨리 건강을 찾으셔야 할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독거노인 조광균(여·80)씨는 “몸으로 봉사해준 양반이었는데, 빨리 나으시라고 우리가 기도할 차례”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지난 1994년 발간한 자서전에서 “이제 내 나이 75세, 기력은 날로 쇠해 가는데, 절대 빈곤의 판자촌은 아직도 이렇게 남아 있고, 더구나 이 안에는 병까지 가진 혼자노인들이 너무나도 많은데…”라며 탄식했었다. 그후 10년, 그는 결국 후계자를 구하지 못했다. 지난 3월 보령의료봉사상 수상 직후 가진 보령제약 사보(社報)와의 인터뷰에서 김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내 손이 안 가면 (은명의 봉사활동이) 멈추겠지요. 그러면 그동안 도움을 받던 (가난한) 사람들이 영향을 받겠지요. 하나, 그것(훗날)은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김봉기기자 ,최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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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2-28 13:41   좋아요 0 | URL
아, 저도 봤어요. 작년인가 재작년에도 TV에 소개되기도 했었는데...원장님 건강하신지 모르겠어요. 참 훌륭하신 분이예요.^^

니르바나 2004-12-28 13:48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저도 김원장님의 유머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생애를 꾸려가시는 분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저는 유머와 해학정신이 살아있음을 들고 싶어요. 거의 예외없이 마음의 넉넉함이 살아 있어 우리에게 농담을 건네시던 분들이었답니다.

水巖 2004-12-28 14:58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이분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건강해 지셔서 다시 활동하신다면 얼마나 행복해 하실가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2004-12-28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YLA 2004-12-28 22:38   좋아요 0 | URL
흑_ 저도 어제 이 기사 보고 눈물이 찔끔했어요. 쉴 나이가 훨씬 지나셨는데...더 슬펐던건 저 슈바이처님의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단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그 수많은 의사중 '뜻'을 지닌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니. 저도 제살기에 바쁜 욕심덩어리라 남에게 뭐라할 처지는 아니지만 . 그런 현실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단 한사람도 없다니_라는 생각에요.

니르바나 2004-12-28 23:14   좋아요 0 | URL
수암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대로 김경희 원장님께서 건강해지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우리들 영혼을 밝히시는 등불이신 분이시지요.


니르바나 2004-12-28 23:26   좋아요 0 | URL
라일라님, 김경희 원장님의 은명마을 공동체의 현실이 참으로 아쉽지요.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우리 사회에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봉사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어제는 정말 오랫만에 미술전을 구경하러 예술의 전당에 갔다.

미술감상을 좋아하는 아내이지만 게으른 남편을 만나서 오랫동안 가고싶다 타령만 하며 살았다.

아내는 우리부부 냉전중에도 혼자 그림구경 하러 직장에 휴가내고 서울 원정길에 나선 적이 있다고

과거의 일을 말하였다.

 

인터넷을 상용하고 나서 가장 뜸한 일이 미술관, 영화관 순례가 되었다.

전에도 한 번 말한 적이 있지만 영화는 비디오로 대여하여 보다가 요즘은 온라인 상영관이나 DVD를

구입하여 감상하고 있으니 영화평 리뷰를 올리시는 알라디너들이 보시면 기겁을 할 일이지만

나는 대박났다는 영화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영화를 이런 식으로 보고 있다.

그마저도 못 본 게 많아 영화 관련 페이퍼에는 아무런 댓글도 못달고 살고 있는 셈이다.

미술작품 그 중에 회화의 경우 도록이 없어도 부지런히 올려주시는 명화로 대충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쉬는 날, 늘어선 긴 줄에 진력을 낼 일을 생각하며 유명전시회 관람은 점점 멀리하고 있었다.

 

어제도 성탄절 연휴를 맞이한  아내가 반 협박조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하루종일 컴퓨터와 텔레비젼 앞에 착 달라붙어 앉아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같이 안 가면 나 혼자 갔다 올께"

혼자 갔다 멋진 남자라도 만나 바람이라도 나면 어떻하나 걱정이 되어 끌려서 갔던 미술전시회,

 

'서양미술 400년展 푸생에서 마티스까지'

 

4백년이란 긴 시간을 채우기 위해 많은  작품들을 전시해 놓고, 이름이 많이 알려진 작가들을 말 그대로

구색맞추기 식으로 소품을 끼워 넣어 적지 않게 실망을 했다.

피카소니 르누와르니 앙리 마티스와 폴 고갱까지 화려한 면면을

전시회 광고문을 읽고 오신 분들은 적잖게 실망할 정도였다.

나는 초,중, 고등학교 방학에 때 맞추어 시작하는 이런 식의 전시회가 가지는 노림수를 대충 짐작했기

때문에 실망은 크게 하지 않았다.

왜?

나는 딱 두 점의 그림만 보고 나오리라 미리 작정했기 때문이다.

그 첫째는 서경식씨의 그림기행문으로 감상한 적이 있는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다.

이 그림 앞에서 가장 오래 서 있었다.

둘째는 니콜라 푸생의 '두 발을 적시고 있는 여인과 풍경'이었다.

그 가운데  숲속에서 두 여인을 몰래 훔쳐 보는 인물을 재미있게 보았다.

무식한 미술감상자의 단순한 관람기는 여기까지이다.

 

어제의 나들이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 속에서

나긋나긋한 아내의 손을  잡고 조용히 대화하며

전시장 입구를 향하여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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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4-12-2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의 큰 소득인 마지막 글에 비췬 그 모습 아주 멋있게 보이는군요.

이 전시회는 아이들 방학이나 끝난뒤 보아야겠군요.

2004-12-26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리 2004-12-26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이거 꼭 보려고 하는데... 푸생의 사계는 혹시 없던가요? 전 그거만 있으면 대만족인데.. 사실 모든 그림을 다 보는 것보다, 아는 그림을 한두개 오래도록 감상하는 게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님의 전시회 기행은 성공적이라고 할만하네요^^

니르바나 2004-12-27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 선생님, 2005년 4월 3일까지 전시한다고 하니 천천히 감상하세요.

수암님 페이퍼처럼 많은 정보를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니르바나 2004-12-27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죄송합니다. 푸생의 사계가 전시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시회 주최 측이 판매하는 공식도록을 구입하지 못했거든요.

미녀 친구분이랑 같이 다녀오세요.

손을 꼭 잡고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따뜻한 온기로 더 많은 정감이 살아나니까요.
 

 

"연극배우들 춥고 너무 배고프다"
연극배우協 허현호 회장 "이혼율 60~70%…막일에 식당 주방일 등"


[조선일보 경창환 기자]
연극배우는 ‘춥고 배고픈 직업’이라고 한다. ‘자존심’으로 산다고 한다. 23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연극배우협회 허현호(58) 회장은 “탈출구 없이 어두운 터널에 갖혀 수십년을 그렇게 버텨왔는데 이제는 버겁다”고 말했다. 연극배우협회는 지난 18일 “사회의 무관심 속에 버려진 연극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내년 4월 한달간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며 ‘연극 없는 달’을 선언해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허 회장은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어렵지만 연극배우가 가장 열악하다”며 “하루 세끼를 걱정해야 하는 경제적 문제가 오랜기간 누적돼 이제는 연극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고 탄식했다. 용의 눈물(98년), 제국의 아침(2002년), 명성황후(2002년), 왕의 여자(2004년) 등 TV 드라마에서 감칠맛 나는 연기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허 회장 자신도 1980년대 초반 가난한 연극배우 시절 온 가족이 이틀을 굶고 집단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당시와 지금은 물론 다르다”고 전제하면서도 허 회장은 “예전엔 모두가 가난했기에 밀가루만 먹다가 빵을 먹으면 행복했지만 지금은 빵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현재는 상대적 박탈감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순수예술과 돈. 어쩌면 이 두가지를 상극(相剋)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배우들이 생각하는 돈은 ‘떼돈’이 아니였다. 허 회장은 한달에 80만원 정도면 이들은 1년 365일 동안 행복하게 ‘연극’이라는 순수예술에 미쳐서 살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순수연극 배우들은 직업은 있지만 직장이 없는 실업자들입니다. 연봉으로 수입을 측정할 수도 없어요. 왜냐하면 2~3년간 수입이 한 푼 없는 경우도 많아 5년, 10년 단위로 계산을 해야 그나마 한 200만~300만원 정도 나옵니다. 흥행이 안돼 적자가 나면 아무 것도 못받죠. 순수연극 공연의 98%가 적자를 보고 있는 형편입니다. 제작자나 극작가도 한솥밥을 먹는 처지라 비슷하죠.”
허 회장은 “연극무대 생활로 생계가 해결되는 배우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며 “남자 배우들의 이혼율이 60~70%에 달할 것”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연구생이 아니라 정식단원인 배우협회 회원 800여명 중 TV 출연 등으로 그나마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불과 20~30여명뿐입니다. 일반인들이 얼굴을 보면 아는 배우들이죠.”
그래서 공연이 없을 때 대부분은 막노동이나 아르바이트를 한다. 여자 배우들은 주로 노점상 아르바이트, 애 봐주기, 식당 주방일을 하고 남자 배우들은 건설현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같은 불황에는 건설경기마저 추락해 이마저도 힘들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니 연극 질(質) 저하가 큰 문제다. 허 회장은 “연극은 하루라도 단련을 안하면 연기도 녹슬고 몸이 굳는다”며 “국가대표 축구팀이 소집돼 며칠 훈련하고 경기에 나서면 성적을 잘 내겠느냐”고 반문했다.
“연극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때문에 연습을 1~2년 못하고 막노동이나 아르바이트하다고 오면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으니 무대를 떠나 돈을 벌어야 하고 돌아오면 제대로 연기하기가 힘들고, 그러면 관객을 줄고…. 이게 악순환이죠.”
그는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국민의 관심과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순수예술을 살리기 위해, 배우들이 최소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연극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우 훈련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지원액은 1인당 월 80만원 정도.
“연극배우들과 일부 극작가ㆍ연출가를 포함해 500~600명 정도가 몇개 그룹으로 나뉘어 경제적 걱정없이 연극 훈련을 하고, 그 완성도가 일정 수준에 오르면 정식 공연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이 시스템이 정부에게 ‘가난을 구제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훌륭한 연극배우를 양성해야 연극이 살고 순수예술이 살고, 나아가 우리나라 문화산업이 더 발전한다”는 차원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최근 ‘한류(韓流)’ 붐에서 보듯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있죠. ‘모든 연기의 어머니는 연극’이라는 것입니다.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연극배우들이 영화와 TV로 공급이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연극배우들의 환경이 개선돼야 하죠.”
허 회장은 내년 4월 ‘연극 없는 달’ 선포가 단순히 사회적 관심을 끌려는 차원만은 아니라고 했다. 국민들이 ‘연극배우는 춥고 배고프다’고 생각만 하지 말고 직접 배우들의 생활을 들여다 봐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배우들 스스로도 그 기간동안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자체적으로 자성의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교 3학년때부터 5년간 라디오 성우로 활동하기도 했던 허 회장은 1968년 배우로 정식 데뷔해 무대생활이 34년째다. 지금까지 70여편에 출연했고 극단 운영도 해봤다. 현재 극단 ‘춘추’ 소속 배우이다. 허 회장은 인터뷰 내내 ‘예술은 산소’라고 말했다. 없어서는 안되지만 그 중요성을 모른다는 것.
“잘 훈련된 배우들이 무대위에서 싱그러운 꽃처럼 향기를 내뿜고 관객들은 그 향기를 맡고 만족하면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 연극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관심을 갖고 연극을 아끼고 사랑해줬으면 하는 바람니다.”
(경창환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ch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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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2-26 10:41   좋아요 0 | URL
내년 4월이 연극 없는 달이라니......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착안을 다 했을까에 생각이 미치니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니르바나님, 성탄 연휴 잘 보내셨죠?^^)


니르바나 2004-12-26 11:39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알라디너 중에도 연극에 관여하고 계신 분이 있잖아요.
제 일처럼 걱정이 되는군요.

세상을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미냐고 하신 전우익 선생님의 말씀은,

생각할수록 명언입니다.

네. 저는 성탄 연휴를 잘 보내고 있습니다.

로드무비님도 보람있는 시간 보내셨겠지요.


파란여우 2004-12-26 13:31   좋아요 0 | URL
이런 글을 읽을때마다 돈 때문에 사람이 거시기해진다고 생각하면 많이 속상합니다. 현실의 냉정함은 우리들의 꿈도 얼마든지 앗아가지 않습니까.

sweetrain 2004-12-27 03:04   좋아요 0 | URL
참...누구든 돈 때문에 꿈을 접는 사람이 없기를,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저도 한때 배우가 되고 싶었습니다. 내년에는 학교에 복학해 시간을 쪼개서 연극을 한번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은데, 기회가 있겠지요. 이러다 또 언제고 안 이쁘고 덩치 크고 머리가 곱슬곱슬한 여배우가 될지도 모르구요.^^)

니르바나 2004-12-27 10:32   좋아요 0 | URL
파란여우님, 연극이 현실인 분들에게 힘이 되는 페이퍼를 부탁드릴께요.

냉탕에서 온탕으로요.

니르바나 2004-12-27 11:04   좋아요 0 | URL
단비님, 한 위대한 배우의 탄생을 기대하겠습니다.

책을 사랑하시는 님의 내면이 연기로 표현되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