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흰 고양이들은, 이 세상 것이 아닌 느낌을 준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동화적 차원으로 만들어 버린다. -18쪽
왜 고양이는 언제나 깊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일까. 개는 대체로 아무 생각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26쪽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로다." <사의 찬미> 2절 중-88쪽
...그러나 저 젊은 여배우의 죽음에 모두가 무죄하는 결론은 이상하게 부당해보인다...바로 그 무책임의 전력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양심 안에서, 유죄다. 고인의 다음 생이 행복하길 빈다.-90쪽
담배여, 그동안 너와 함께 즐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다하였다. 나는 너 없는 인생을 살아볼 작정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의 관계는 최근들어 조금은 불평등하였다. 너는 나를 지배하고 내 위에 군림하지만 나는 저항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것이 너의 본성임을 알고 그래서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헤어져야 하겠다. 내 사랑하는 폭군이여, 안녕!-116쪽
결별과 함께 금단증상이 시작됐다. 담배는 누구보다도 지능적인 스토커였고 매혹적 팜프파탈이었다. 담배는 그를 떠나보내려는 사람과 똑같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학자에게는 학자의 언어로, 의사에게는 의사의 언어로, 작가에게는 작가의 언어로 유혹한다.-116쪽
평화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의 세계에는 그런 평화가 없다. 칼의 세계야 실수를 용납하지 않지만 예술이야 어디 그런가. '액면'을 보여주기도 어렵고, 봐도 수긍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현대 예술은 더욱 그렇다.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 '네가 나보다 잘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니 날마다 전쟁이다. 전쟁의 무기로는 이룬바 '작가적 거짓말'이 동원된다. '작가적 거짓말'의 특징은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141쪽
...질문자가 상황을 통제하게 된다...세상은 질문하는 자의 것이고 답변만 하다가는 질문하는 사람의 뜻대도 살게 된다는 말씀.-159쪽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출판사와 저작권 에이전시들 위주의 상업적, 국제적 도서전이라면 라이프치히 도서전은 작가와 독자들이 주인인 정서적 도서전이었다.-201쪽
"과거의 독일 문학이 위대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만약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로만 팀을 짜서 일종의 문학적 축구경기를 벌인다면, 우리가 꼭 진다고는 말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했다. 이런 공언이 만용으로 치부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203쪽
특히 우리나라의 소설에는 직업은 있으되 직장은 없다. 직업에 대한 묘사도 인물이 등장할 때 잠깐 나타날 뿐, 소설의 플롯과 주제를 건드릴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소설의 인물들은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직장을 나선다. 회사 앞에서 누군가를 만나며 카페나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가끔 어디론가 훌쩍 떠나며 그곳에서 '직장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만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것은 어쩌면 작가들의 착시현상은 아닐까. 로라는 말한다...그들에게 글쓰기는 휘황한 아우라에 둘러싸인 것처럼 느껴지는 반면 직장은 그저 단순한 업무만 반복하는 지옥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들의 꿈은 글만으로 먹고사는 전업작가가 되는 것이다. -205쪽
독자들은 직장을 사랑할 뿐 아니라 그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역학관계에 많은 관심이 있다. 그곳은 작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시멘트 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작가들은 그곳을 잘 모른다. 그러니 우리의 주인공들은 소설을 시작하자마자 직장을 나오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주인공들을 직장에 머무르게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대신 작가들이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하겠지만.-206쪽
눈 내리는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뜨거운 정종을 마시노라면 눈송이 녹는 소리가 들린다.-228쪽
열렬한 독자로, 무던히도 읽다가 이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끄적거리다가 남들이 읽을 만하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작가가 되는 거지요. 세상의 거의 모든 작가는 바로 이 길로 걸어왔을 겁니다.-262쪽
독서에도 일정한 훈련과 의식적인 노력이 분명히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분명한 대가를 받는다. 소설은 춤과 같아서 처음에도 즐겁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더 큰 즐거움을 준다. 아는 작가가 많아지고 출판사나 번역자에 따라 책을 고르는 요령들을 터득해감에 따라 취향은 분명해지고 만족감도 커진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책을 사야 할지 알 수 없던 대형서점이 자기 방 서재처럼 친숙해지는 순간이 온다. 동시에 소설을 읽는 목적도 달라진다. 감정이입을 통한 즉자적 수준의 감동보다는 텍스트 자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형태로 바뀐다... 불안한 존재가 읽는 완벽한 소설. 이것만한 즐거움을 나는 아직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208쪽
우리는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인생의 버스는 항상 엉뚱한 곳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1905년의 그들처럼.-187쪽
오류의 주목효과, 심통의 경제학, 애도의 금연법, 외래어의 반응지연 효과, 소설의 엔진, 낭독의 발견, <101가지 철학체험> 2006.09.0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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