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구같은 간결성과 형식적 구조를 갖춘 소네트는 몸이 작다고 해서 곧 마음도 작은 것은 아니라고 선포하며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소네트는 자그마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사랑,전쟁,죽음,그리고 O.J.심슨을 수용할 만큼 컸다. 잘만 밀어 넣으면 온 세상을 집어넣을 수도 있었다. ...수녀는 좁은 방에서도 비좁다고 느끼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방이라도 하느님을 받아들일 만큼은 널찍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인도 소네트의 자그마한 영토에 의해 자신의 상상력이 해방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진정코 우리가 찾아서 들어가는 감옥은/감옥이 아니다. 그래서 나도/착잡한 기분일 때는 소네트의 비좁은 땅 안에/묶여 있는 것이 즐거움이었다."-58쪽
"전자제품에 비유하자면, 책갈피를 끼우고 책을 덮는 것은 '멈춤' 단추를 누르는 것이고, 책을 펼친 채로 엎어 놓는 것은 '일시중지' 단추를 누르는 것이지"-66쪽
나 자신이 받아본 최고의 헌사, 비록 그 스코틀랜드인의 헌사만큼 눈부시지는 않지만 그것하고 절대 바꾸지 않을 헌사는 조지 하우 콜트의 <자살의 수수께끼> 속표지에 적힌 것이다. 나는 그 책하고 같이 잔 적은 없지만, 그 저자하고는 여러 번 같이 잤다. 그 헌사는 이렇다(조지, 진정한 새 친구 관계 이후로 우리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93쪽
나도 젊었을 때는 내 책들도 젊기 바랐다. 순결한 페이퍼백들은 자기 도취에 젖은 채 마음껏 낙서를 할 수 있는 텅빈 여백을 갖추고 있었는데, 글을 써 넣어도 최소한의 죄책감으로 끝날 수 있을 만큼 쌌고 또 나의 훼손을 불평없이 받아들일 만큼 순했다. 그 시절 나는 세월이 다른 사람들의 몸은 공격하지만 내 몸은 그대로 놓아둔다고 믿었듯이, 내 페이퍼백들도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두 가지 점 모두에서 내가 틀렸다. -202쪽
나는 또 길에 사슬을 이루며 늘어선 책 소유자들 가운데 하나의 작은 고리를 이루는 느낌도 즐기게 되었다. 이제 나는 희귀본 수집가들이 애장하는 흠 하나 없는 초판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나는 책의 여백을 모두가 함께 와서 먹을 수 있는 문학적 공동 식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사람이 많을수록 즐거움도 커졌다.-203쪽
"나는 집이 없는 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어... 역사가인 존 클라이브가 1990년에 돌아가신 뒤에 책을 우리가게로 옮기기 위해 그의 집에 가 보았을 때 그 점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지...그의 서가를 보았을 때에야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우리는 그 책들을 가게로 가져가 주제에 따라 분류했어. 그랬는데 갑자기 그 책들이 이제는 존 클라이브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더라고. 장서를 흩어놓은 것이 꼭 시신을 화장해 바람에 뿌리는 것과 같았다고나 할까. 무척 서글펐지. 그래서 나는 책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소유한 다른 책들과 공존할 때에만 가치를 얻게 된다는 것, 그 맥락을 잃어버리면 의미도 잃어버린다는 것을 깨달았지."-208쪽
밀턴 <나의 실명에 대해서>, 2004.06.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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