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모를 부탁해
곤도 후미에 지음, 신유희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절판


원래부터 없던 것과 있던 게 사라지는 것은 전혀 다르다. 완전히 다르다. 정반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르다. -77쪽

"우리도 이젠 스스로 어른이고 웬만한 일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런데 말야. 아빠랑 엄마는 20년도 더 전부터 우리 뒤치다꺼리를 해오신 거잖아. 처음엔 엄마아빠 소리도 제대로 못했는데 할 수 있게 되고,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되고, 배변도 스스로 가릴 수 있게 되고,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단계를 거쳐 봐오신 거잖아. 그러니까 그런 두분에게는 우리가 어떤 일을 척척 잘 해내지 못한다고 해도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다른 사람들은 잘 해내는 걸 잘 못하고 뱅뱅 돌고만 있어도, 어쩔 수 없지 하면서 기다려 주시고 있는 거 아닐까."
그리고 그건 특별한 일도, 그렇게 부끄러운 일도 아닐 것이다. 엄마 아빠는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무려 20년 넘게 기다려주고 있으니까. 한두해쯤 더 기다리는 것 정도야 그분들에겐 그리 큰 일도 아닐 것이다.-143쪽

그녀의 표현에는 젊은 여자애들 특유의 무심한 악의가 깔려 있어서 구리코는 조금 웃었다.
젊고 예쁜 여자애들은 가끔 지독하게 오만하다. 젊거나 예쁘지 않은 것들을 간단히 짓밟아버린다. 딱히 예쁜 건 아니지만 그 마음은 구리코도 조금은 안다. 열일곱 살때는 구리코도 지금보다는 훨씬 오만했었다.-199쪽

발밑이 둥둥 떠있는 느낌이 들면서 무언가에 걸려 넘어질 것만 같았다.
너 참 쉽구나, 하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사귀게 된 것도 고백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둘이서 영화를 보았을 뿐인데.-225쪽

"물론 세상에는 수많은 규칙이 있고 그것들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은 규칙을 하나 어긴 정도로 중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 또한 중요한 규칙 가운데 하나이지 않겠니"-252쪽

"신기했어, 필경 '이제 아드님일 따윈 잊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런 마음은 들지 않았을 꺼야. 하지만 그가 나 대신 아들의 원한을 짊어져준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겁기 그지없던 몸이 갑자기 가벼워졌지.... 그 남자와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집에서 마치 묘비처럼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겠지. 그 남자가 무거운 짐을 떠맡아준 덕분에, 나는 내가 언제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 아직은 어떤 인생이든 걸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야."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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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절판


활짝 핀 꽃봉오리를 숙이고 그 비를 다 맞으며 용서를 구하듯 끄덕끄덕 흔들리는 수국을 바라보며 기타무라는 멍하니 서서 릴리를 기다렸다.
돌계단을 핥을 정도로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수국은 소담스럽게 핀 꽃잎 하나도 땅바닥에 끌지 않았다.-45쪽

아무렇게나 앉아 맥주를 마시는 릴리의 모습을 보며 기타무라는 그녀가 좋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표정이며 몸짓 하나하나에 잘 다듬어진 조각품 같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목소리며 말투며 그런 아름다움에 어울리는 음악 같았다.
릴리는 아무것도 잊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온 불행이 하나하나 쌓이고 쌓여, 마치 나무의 진액이 벌레며 티끌을 돌돌 말아 반짝이는 호박이 되듯 릴리는 기억의 보석이 된 것이다. -49쪽

릴리는 쏟아지는 빗줄기에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떨군 채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내내 꽃을 피우며 살아왔을 것이다.-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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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구판절판


은행이라는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대들면 곧 지는 거다.
입사한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선배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아무리 열 받아도 화내지 마라. 그리고 그걸 발판으로 삼아라. -10쪽

은행은 맑은 날엔 우산을 씌워주지만 비가 오면 빼앗아가는 곳이라고들 하지. -58쪽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조직에 대해 아무런 반감 없이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해 일하자고 결심했다면 그거야말로 큰 착각이다. 은행이라는 직장에서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감정’과 ‘현실’의 갈등을 이겨내 항상 일에 적극적인 태도를 유지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153쪽

아버지는 패배자였다. 패배자는 처음부터 패배자였던 게 아니라 스스로를 패배자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293쪽

은행이란 곳은 출세를 못하면 끝장이다. 이 조직은 밑에서 올려다보는 풍경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전혀 다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위에선 인간뿐이다.-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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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1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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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게에서는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면 그날 들어온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만들어서 대접한다는 것이 내 영업방침이다. (1권)

- 냉국이란 말린 잔멸치나 전갱이로 맛을 내어 우린 국물에 오이와 차조기, 참깨 등의 건더기를 넣은, 된장국을 차갑게 하여 밥을 말아먹는 큐슈의 향토요리이다. 여름에는 시원해서 아주 좋다. (2권)

- 여자에게 인생에서 소중한 것은 아이, 남자, 콜라겐 순이야
- 가을 가지는 며느리에게 먹이지 마라?!
- 양념장은 어니언슬라이스와 가다랑어포를 얹어서 간장과 참기름을 뿌려주세요.
- 동지에는 호박을 찐다. 유래는 따로 있겠지만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시시콜콜 따지는 게 너무 싫거든. (4권)

- 올리브오일에 절인 정어리 통조림...얇게 썬 양파를 얹은 정어리통조림을 캔째로 석쇠에 올려 굽는다. 뽀글뽀글 거품이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간장을 뿌린다. (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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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흩날리는 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품절


밤에 하는 드라이브가 좋아. 왠지 스스로에게 묻는 기분이 들어. 넌 누구냐,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느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운전하다 보면 어둠 속을 달리는 것이 마치 시간을 뚫고 행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왠지 기운이 나. -95쪽

중요한 건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성과 왜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상상력이야. -243쪽

"둘이서 시간을 들여 바꿔 가는 게 당연하잖아. 남편이 당신의 변화를 견뎌내지 못한 건 당신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멋대로, 순식간에 변모했기 때문이야. 그런 변화가 그에게 적용될 수 있을 리 없었겠지. 결국 당신은 두 사람의 역사를 만드는 걸 포기한 거야. 당신에게는 그와 결혼할 자격이 없었던 셈이지." -274쪽

우리는 어쩌면 닮았는지도 모른다. 남에게 기대하지도 않고 남을 믿지도 않는 주제에 뭔가 바란다. 그리고 어느덧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머나먼 곳으로 가 버린다.
"참 고독하지"
내가 농담처럼 말했다.-275쪽

그 말을 듣자 나 자신이 공기 빠진 풍선처럼 느껴졌다.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사람이 죽는 건 결코 끝이 아니라 늘 무엇인가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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