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법
이강룡 지음 / 유유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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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는 공부하는 번역자가 되자는 것이다. 의사소통의 양편을 두루 살펴야 하는 고된 임무를 성실히 완수하려면 꾸준히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 출발어의 맥락을 잘 파악하려면 배경지식을 꾸준히 쌓아야 하고, 도착어인 한국어의 맥락을 잘 파악하려면 독자의 처지나 조건에 맞게 한국어 표현을 섬세하게 발굴하고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12)

번역서를 읽다 오역을 발견하면 대단한 업적이라도 이룬 양 사방에 떠벌리기보다 번역자나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내자. 그러면 다음 쇄에 수정사항이 반영되며 다른 독자는 더 좋은 번역을 접한다. 아무도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으며 공동체 구성원에게 두루 유익하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품격을 높이는 동업자 정신은 늘 유익하다. 건전한 비판이 깃든 동업자 정신이 없으면 공동체는 성숙하지 않는다. (23)

아는 만큼 자기 이야기를 반듯하게 펼쳐 놓으면 공동체라는 더 넓은 맥락 안에서 조화로운 연관이 드러날 것이다. 특수 없는 보편은 없고 보편 없는 특수도 드물기 때문이다. 나를 우리라고 확장하는 일은 늦출수록 좋다. (49)

공부하는 번역자는 지식과 지혜가 계속 성장하고 깊어지므로 최상급 표현을 써서 개념을 판단하면 나중에 자기 글에 발목 잡힐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일은 저자가 아니라 독자가 할 때 훨씬 근사하다. 저자는 최고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서도 독자가 최고 수준이라고 여길 만한 근거를 보여 주고자 애써야 한다. 최상급 옆에는 느낌표란 놈이 늘 졸졸 따라붙는데, 느낌표를 쓰지 않고서 독자에게 감탄을 전달할 표현법이 없는지 궁리해보면 문장 연습에 도움이 많이 된다…. 느낌표를 문장에 찍으려 하지 말고 독자 가슴 속에 찍자. (52)

표현 방식에는 글쓴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잡초나 잡목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면 그건 그 사람이 쓰임새로만 식물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층’이라는 표현이 좋지 않은 건 차별을 용인하기 때문이다. (78)

노련한 궁사들은 바람이 세게 불면 표적지에 조준을 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각자 터득한 대로 오조준을 한다. 엉뚱한 곳을 향해 쏘는 것 같지만 과녁에 명중시킨다. 번역자에게도 오조준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일부러 오역을 감수하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균형이 깨진 표현을 쓴다. 모두 의사소통을 잘하려는 한결 같은 목적 때문이다. (105)

어설픈 지식이 오만을 낳는다. 뭔가 좀 알 것 같고 자신감이 싹틀 무렵이 교양을 쌓는 이에게 무척 위험한 시기다. 이때 오만하게 설치면 필화에 휘말리게 된다. 기억과 추측에 의존하지 말고 기록에 의지하여 추론하라. (121)

문장의 격을 가지런히 맞추는 건 수사법의 거의 전부다. 격을 맞춘 문장은 단정하고 자연스러우며 일관성도 높다. 격 맞추기의 최종 단계는 아마도 글과 말과 행동의 일치일 것이다. 지행합일이라는 말은 글 쓰는 이에게 최종 목표와 같은 상태다. 이 책이 지향하는 바도 그와 같다.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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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6-30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구 중 마지막 칸, 특히 와닿네요.
가장 하기 좋고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는 중요한 덕목이지요.
좋은 책 같습니다.

밤바람 2015-07-01 23:25   좋아요 0 | URL
네! 읽는 데 들인 노력에 비해 정말 많이 배운 책이었어요.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지행합일을 실천하려는 저자의 노력도 돋보였구요.

푸르미원주 2015-07-0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무리해놓으신 내용을 읽어보니, 배울 점이 많네요. 글 쓰는 이로서의 자만을 경계하는 것, 언행일치, 확인 후 글쓰기 등이요. 기억에 의한 추정이 갖는 위험을 잘 알려주는 것 같아요. ^ ^

밤바람 2015-07-05 15:29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이밖에도 새롭게 배운 내용은 훨씬 더 많은데 여기에는 반도 못 옮겼어요. 얇지만 정말 알찬 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