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산다는 것은 일종의 '곶감 빼먹는 삶'인 것 같다. 말하자면 자신이 글쓰는 삶을 살지 않은 시절의 경험들을 곶감 빼먹듯 글에다 빼먹는 삶 말이다. 이전의 삶을 소모한다는 느낌 없이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가질 수 있는 '글쓰기 하는 삶'을 살 수는 없을까. 그래서 생각해낸 게 스스로 정한 안식년제다. 내가 정한 안식년은 글을 쓰느라 소모될 대로 된 경험과 사유의 창고들을 채워넣기 위해 '삶의 현장'으로 가서 글 쓴 기간만큼 일하는 것이다. 물론 생활방편으로서의 일이다. 스코트 니어링 부부나, 리 호이나키 같은 사람들은 그래서 내게는 인생의 좋은 지침을 주는 스승들이다.-15쪽
영화의 구체적인 순간 앞에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시청각적 체험을 기꺼이 삶 속의 세계에 복종시키고서야 비로소 내가 알고 있던 영화의 개념들과 삶의 기호들을 함께 껴안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아니 그보다 영화를 한다는 문제가 세상을 살아가는 문제와 완전하게 동일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이제 나에게 영화에서 그 장면을 찍는가, 마는가라는 문제는 그 세상이 거기 있는가, 없는가의 질문이 되었다. -36쪽
번역자는 번역하는 책을 국내에서 맨 먼저, 그리고 가장 정밀하게 읽는 사람이다. 번역자는 때로 저자보다도 더 그 책을 내밀하게 읽는다. 저자가 무심코 쓴 대목까지도 번역자는 일일이 신경을 써가며 우리말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의 내용에 관해서는 저자의 권위가 우선하겠지만 책의 '함량'에 관해서는 번역자의 판단이 한몫한다.-104쪽
무릇 책이라면 둘 중 하나는 되어야 한다. 좋은 책이라는 평을 듣거나 아니면 잘 팔리거나. 거꾸로 말하면 양서도, 베스트셀러도 되지 못하는 책은 출간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104쪽
지식을 생산하고 검토하는 작업이 아카데미즘이라면 생산된 지식을 대중에게 보급하는 작업은 저널리즘이다...연구자는 지식을 생산할 뿐 보급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구자가 생산한 지식이 궁극적으로 소비되는 곳은 바로 대중의 영역이며, 소비되는 과정은 대개 트리클다운과 같은 '흘러넘침'의 형태를 취한다...출판사는 예나 지금이나 '대중적 글쓰기가 가능한 연구자' 혹은 '전문적 내용을 다룰 능력을 가진 대중적 필자'를 원한다. 둘 다 책이라는 매체를 통한 소통을 중심으로 한다는 면에서 같다. 발원지는 달라도 목적지가 같은 만큼 양자는 서로 만나야 하고 또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은 소통하고 교호하며, 서로에게 자극을 줄 수 있다. -107쪽
예전과 달리 지금은 정보가 중요해서 출판물을 인쇄하지는 않는다...바꿔 말하면 프레스(인쇄술)를 이용한다는 것은 곧 상업적 목적을 가지는 대량생산이라는 이야기다. 현대의 출판은 모두 상업 출판이다. -108쪽
"선생님께서 단어 하나 고칠 때마다 전 세계의 독자 백만 명이 늘어난다고 생각하십시오."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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