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시를 쓰기 위해 고뇌하던 키츠가 이끌어낸 개념이 ‘수동적 능력‘이다. 키츠는 이를 공감적 혹은 객관적 상상력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상력은 마치 ‘에테르 같은 화학물질‘처럼 연금술적인 변용과 순화를 이끌어내어 개별성을 없애준다. 키츠는 이 ‘굴복의 능력(capability of submission)‘으로 개별성을 없애야만 시인이 대상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P37

‘무감각의 감각(the feel of not feel)‘이나 ‘수동적 능력‘ 같은 개념이 결국...‘소극적 수용력‘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키츠는 ‘진정한 재능에는 개성도, 정해진 성격도 없다‘라고 말했지만, 이후 진정한 재능이란 개성이 없는 상태로 존재하며, 어떤 결론에 성급히 도달하려 하지 않고, 불확실하고 회의적인 상태로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능력이야말로 셰익스피어가 그랬듯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상상하는 힘과 직결된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 P38

뭐든지 알고자 하는 뇌가 알 수 없는 대상을 마주하고 괴로워하는 대표적인 예가 음악과 회화다...원래 음악은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답이 없는 세상의 여러 문제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이해를 거부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굴곡까지 소리를 전달해 영혼을 흔든다. - P92

"하지만 새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수께끼나 질문에는 쉽게 답을 내리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 의문을 마음에 품고 이를 사람의 체온으로 성장시켜 더욱 심오한 질문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어떨까? 때로는 한층 더 심오해진 수수께끼가 얄팍한 답변보다 마음에 더 소중하게 남는 듯하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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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 책이 있는 만남, 책이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는 만남, 이런 만남의 힘이 무르지 않다는 것을, 단단하다는 것을 머리 아닌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이 기록의 한계는 한계대로 남겨둔다. 빈 곳은 억지로 메우지 않고 구멍으로 비워둔다. 한계와 빈틈을 비집고 나오는 물음표에 의미를 두고 싶다. - P14

시간에는 농도가 있다. 어떤 시간은 묽은 채로 주르르 흘러 지나고 나면 아무 흔적도 없다. 어떤 시간은 기운이 깃들어 찐득하다. 짙고 끈끈하다. 그런 시간은 삶에 굵고 뜨거운 자국을, 원래의 모습과 달라진 흔적을 남긴다. 좀처럼 잊지 못하게 마련이다. 오늘을 통과한 아이들의 흔적에는 어떤 자국이, 흔적이 그려졌으려나. - P36

환대로 사람을 맞이하는 경험, 자신이 주체로 활동하는 경험은 나도 타인도 소외시키지 않는 연습이다.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연습이다. 이런 연습이 쌓이면 삶에서 적어도 ‘나‘를 소외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막 살지 않을 것 같다. 길 밖으로 떨어지더라도 자신을 돌보며 다시 삶의 길 위로 올라서게 되지 않을까.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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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 독서 모임 - 오늘의 철학 탐구 민음사 탐구 시리즈 1
박동수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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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가벼운 판형에 책장이 생각보다 빠르게 넘어가서 출퇴근 시간에 읽기 좋았다. 타자와 구체적인 관계를 맺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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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시대에 자연 내지 자연에 실재하는 것들을 부르는 이름은 ‘퓌시스(physis)‘였다...그것은 세상에 실재하는 사물들이 스스로를 우리에게 드러내는 방식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호메로스적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실재적인 것은 갑자기 분출하여 잠시 우리를 사로잡다가 마침내 우리를 놔주는 어떤 것이다. 호메로스의 단어 ‘퓌시스‘를 번역한다면 ‘반짝임‘이라는 단어가 가장 가까울 것이다. 호메로스에게 실재로 존재하는 것은 반짝이는 것이다...무엇인가 휙 하고 빛을 터뜨릴 때 그 빛은 모든 것을 자기 주위로 모으고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게 한다...그러면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이해하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위대한 사건에 대해 자신이 즉각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이해한다. 호메로스의 세계에서 반짝임은 실제로 빛을 가지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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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은 <탐구>에서 "데카르트에게 ‘의심하는’ 것이란 바로 ‘생각하는’ 것이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의심하는 주체는 공동체 ‘외부’로 나가려고 하는 의지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 P13

편집자란 그저 저자의 메시지를 순수하고 투명하게 재현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저자의 메시지와 편집자 자신의 생각을 조합해 하나의 입장에 서서 세상에 영향을 끼치려는 사람, 요컨대 사상으로서의 편집을 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부제를 그대로 써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투명한 정보 전달이 최선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원문 그대로의 수용과 전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리에서 어떻게 그것을 번역할지를 사유하는 것이다. 편집자든 독자든 우리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중간 매체가 아니라 고유한 생각을 가진 매개자이기 때문이다. - P51

순결한 역사도 없고, 순결한 학문도 없다. 심지어 온전히 순결한 윤리도 있을 수 없다. 해러웨이는 순결한 학자나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몸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감수하며 배워가는 사람들"의 관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아마도 그러할 때 개인 단지 우리의 관용에 기대지 않는 진실한 반려종이자 소중한 타자일 수 있지 않을까.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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