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번은 꼭 쓰고 싶었다. 파이란을 보면서 얼마나 슬프고 또 얼마나 좋았었는지를 말이다.
사진속의 두 남녀는 부부이다. 하지만 그들은 딱 한번 만났을 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의 아내인 여자는 죽는다. 그녀의 이름은 파이란 이었다.
우리의 주인공 강재씨. 할줄 아는것도 없으면서 졸라 맘까지 약한 3류 깡패. 친구는 보스가 되었지만 맘도 약하고 쌈도 잘 못하는 강재는 그의 똘마니가 되어서 산다. 미성년자에게 불법 비디오를 대여해 주고 구류를 살다가 나와서도 친구인 보스에게 '씨발 강재야 제발 정신좀 차리고 살자'란 소리를 들을 위인밖에 못 되는 인간이다. 한마디로 누구의 남편이 되기는 커녕 누군가의 아는 사람이 되기에도 쪽팔리는 인물이다. 이런 그가 저렇게 고운 여자와 결혼 할 수 있었던 것은 위장 결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자 파이란. 엄마가 죽으면서 남겨준. 한국에 있다는 이모집 주소한장 달랑 들고 왔지만 이미 이모는 한국을 떠나고 없다. 어차피 모국인 중국으로 돌아가도 살길이 막막한 파이란은 위장결혼을 해서 한국에 남기로 한다. 위장 결혼을 하고나서 술집에 팔릴뻔한 위기를 용케 넘긴 파이란은 세탁소에서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병에 걸린다. 치료만 하면 나을 수 있었던 병이었지만 그녀는 끝내 죽었다. 그녀에게 돈을 받는 브로커가 아프다고 좀 봐 달라고 말한 그녀에게 '니가 돈을 안내면 나도 아파'하면서 발가락 무좀에 약이나 처 바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죽고. 강재는 그녀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가 살았던 세탁소로 간다. 10기통짜리 엔진달린 배한척을 약속받고 친구 대신 살인죄를 덮어쓰겠다고 하고서 말이다.
결혼식 서류를 주고 받을때 딱 한번 만났을 뿐인 이들. 이들은 서로 말을 걸어 본 적도 없고 손을 한번 잡아보지도 못한. 그냥 필요에 의한 위장 결혼을 한 사이일 뿐이다. 한사람은 이 땅에 남을 수 있는 결혼 증서가 필요했고 한 사람은 돈이 필요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 계약을 했고 별 이변이 없는 한 사는동안 한번도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파이란이 결핵으로 죽어버리자 이들은 서로 만나야 했다. 실제로 마주하고 앉을수는 없어도 강재는 그녀의 과거를 쫒아서 그녀를 만나야 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었다. 누군들 이 영화를 보고 울지 않겠냐 만은 나는 파이란이 죽었다는 사실 보다 그녀가 혼자 세탁소 방에 있을 때 부터 울기 시작했다. 틀면 녹물만 나오는 수도꼭지를 보고 울때 나도 울었고 한번도 보지 못할 남자를 위해 칫솔 하나를 더 사면서 설레어 하는 그녀를 보면서 울었다. 그녀의 사랑이 너무 불쌍했기 때문이었다.
강재씨도 참 불쌍한 인생이었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운 이유는 순전히 파이란 때문이었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엄한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혼자 살면서 파이란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믿는다. 아무것도 의지할 곳 없이 혼자 자신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 버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사랑이라도 있어야 살 수 있었다. 매일 보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좋아져 버린, 돈을 받고 자신과 결혼해준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남자라도 사랑해야만 살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나도 한때는 그랬었던것 같다. 사는게 힘들어서 뭐라도 좋아하고 아끼고 하는 기쁨이라도 있어야 이 시간을 견딜 수 있겠구나 싶었던 시간. 나는 물론 사람이 아닌 다른걸 선택했지만(뭔지는 쪽팔려 말을 못하겠다.) 그걸 붙잡고 말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었다.
파이란은 참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주인공들은 시간속에서 서로 엇갈리지만 감독은 그 엇갈림을 교묘하게 연결 해 놓아서 마치 관객들은 그들이 서로 한 공간에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얼굴도 한번 못 보고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파이란은 사진 한장으로 또 강재는 그녀의 편지 한통으로 서로를 좋아하고 또 끝내는 바닷가에서 오열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