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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수난사 -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한 유명한 위인들
베스 러브조이 지음, 장호연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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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호사유피 인사유명.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랑이처럼 죽어서 가죽을 남길 뿐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람의 시체는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고급 재료들이기에, 호랑이처럼 죽어서 가죽밖에 남기지 못했다고 해서 아쉬워할 것은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시체도 욕망의 대상이 됩니다. 보통 사람의 팔뚝이나 무릎은 부위별로 잘려 의대생들의 실습재료로 사용될 수 있고, 장기는 다른 사람의 장기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뼈는 곱게 간뒤 반죽해 치근수술에 사용되고, 피부는 성형수술을 통해 다른 미녀의 얼굴에 들어갑니다. 보통 사람들의 몸도 유용하지만, 유명한 사람들의 몸은 더 유용합니다. 그들의 몸은 때론 세계적 관심을 받는 과학연구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숭배의 대상이 됩니다.
6년 전에 연예인 故 최진실씨의 유골함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이 뭐라 말했건 간에, 확실한 것은 故 최진실씨는 죽어서도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에 대한 욕망의 역사는 길고도 많습니다. 성 니콜라우스, 아인슈타인, 베토벤, 링컨, 체 게바라, 오사마 빈라덴, 토머스 페인.. 수많은 유명인들의 시체는 살아있는 자들의 욕구에 의해 갈리고 파괴되고 장식되었습니다. 저자 베스 러브조이는《무덤의 수난사》에서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했던 유명인들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성유물 문화, 사이비 과학이었던 골상학의 영향인지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서양인들이지만, 동양에도 그런 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부처의 사리를 모셔둔 불교의 절이 존재하고, 많은 신도들이 그곳을 찾고 있습니다.
유명인의 신체를 소유하고싶다는 욕망은, 때로는 개인적이고 때로는 정치적이며, 때로는 경제적입니다. 로젠바움은 절친한 친구였던 음악가 하이든의 두개골을 원했고, 항구도시 미라와 바리는 도시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성 니콜라우스의 유물을 원합니다. 레닌과 김일성의 몸은 정치체제를 위해 반영구적 시체가 되었습니다. 시체를 욕망하는 부위도 유명인에 따라서 다릅니다. 세계적인 천재 아인슈타인의 신체에서 욕망의 대상이 된 것은 뇌였고, 베토벤의 신체에서 욕망의 대상은 귓속뼈였습니다. 죽은 자의 신체에 대한 모든 행동에서 공통점은, 죽은 자는 조용하지만 그것을 두고 살아있는 자들끼리 다툰다는 점입니다. 그 신체가 누구의 것인지부터, 어디에 안치되야 하는지의 문제는 논쟁적입니다.
1878년, 존 스콧 해리슨 의원이 오하이오에서 갑자기 죽었다. 그는 아주 부자였고 미국 전 대통령의 아들이었다. 외과의들은 앞 다투어 그의 뇌를 연구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그의 심장과 심실은 물론이고 뼈와 혈관까지도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시멘트 관을 주문했고 일주일 동안 한시간도 빼놓지 않고 경비를 세워 시신을 지키게 했다. 일주일 뒤 해리슨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오하이오 강가에 있는 그의 무덤에 모였다. 참석자 가운데 한 명이 옆에 있는 어린아이의 무덤에서 도굴의 흔적을 발견했다. 어린아이의 시체까지 훔쳐가는 만행에 사람들은 분노했고 해리슨의 아들과 일행은 경찰의 수색영장과 함께 오하이오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어린아이의 시체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몸집이 큰 시체를 하나 찾아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해리슨이었다. -《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pp.138~139
현대가 시작되면서 무덤의 수난사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사람의 두개골 모양으로 여러 특징들을 설명한다는 사이비 과학인 골상학이 사라지고, 개인이 집에 두개골과 같은 사람의 뼈를 장식하는 문화가 대접받지 못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유물을 소유하겠다는 욕망을 포기했습니다. 물론 故 최진실씨나 엘비스 프레슬리 등 현대의 스타들에 대한 욕망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역할은 박물관과 기념관이 대신했습니다. 시체 수요에 대한 매물도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대체되었습니다. 시신 연구를 위해 무덤을 파헤치던 과거와 달리, 장례식 비용만 대주면 몸을 마음대로 써도 좋다는 빈곤층은 세계 곳곳에 널려있습니다. 오기 페르나의 말처럼, 심장부터 피, 온갖 장기와 사람가죽을 구하는 일은 더 쉬워졌습니다. 자본주의의 힘은 새로운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소나 닭이 아닌, 사람을 경작하는 농장이라는 점만 다를 뿐입니다.
자신이 일하는 직장의 책상 위에 가장 친했던 친구의 두개골을 장식하고 싶다는 욕망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묘지에 대한 욕망은 여전합니다. 하상복은《죽은 자의 정치학》에서 시체의 새로운 욕망, 국립묘지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 바 있습니다. 죽은 자는 정치적 기호가 되어 살아있는 자들의 양식이 됩니다. 국립묘지는 어떤 의미를 가진 공간인가? 국민들에게 애국심과 조국을 위한 충성과 희생의 당위를 웅변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국립묘지에 누가 들어갈 수 있는가? 독재자와 소방수 중에 누구의 묘지가 더 커야 하는가? 시체가 무언가를 상징하는 한, 다양한 범위에서 시체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시체를 향한 욕망은, 그 시체가 영원히 떠돌며 우리 곁에 있는, 어찌보면 불멸과 같은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우리들, 산 자들의 욕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