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자백 - 사람은 왜 짓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는가
우치다 히로후미 외 엮음, 이즈미 다케오미 외 글, 김인회 외 옮김, 이즈미 다케오미 외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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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가정은 합리적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물건을 훔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둑으로 몰린다면, 자신이 훔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훔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말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엔 이러한 자백을 물리적인 고문으로 이끌어 냈습니다. 뜨거운 쇠로 몸을 지지고, 물을 마시게 하고, 날개 꺾기, 통닭 구이, 요도 볼펜심 고문 등이 없던 죄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길이 불법적인 물리적인 고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합법적이라고 인정받는 심문 과정에서도 충분히 거짓 자백은 만들어집니다.

저자는 유죄라고 확정되어 수년에서 수십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다가 뒤늦게 무죄임이 밝혀진 사건들, 이른바 원죄(寃罪)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아시카가 사건, 도야마히미 사건, 우쓰노미야 사건, 우와지마 사건에서 공통점은 피의자가 자백을 했다는 점이며,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무죄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자백만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 점입니다. 10명에게 물어보면 과반수 이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사실들, 범죄 현장의 발자국과 피의자의 신발 사이즈의 차이, 장갑을 끼지 않았음에도 현장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은 지문, 성의있게 수사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진실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법 권력은 그들에게 유죄를 내렸습니다.

검찰이 오랜 세월 동안 확실한 사건만을 기소한 결과 높은 유죄율을 기록하게 되어 검찰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지만, 동시에 검찰이 법정에 보낸 피의자는 유죄가 확실하다는 편견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재판관은 문자에 의한 기록인 조서를 바탕으로 재판하는데, 조서 또한 피의자가 혼자말을 하는 듯한 독백체로 작성되기 때문에 취조관이 어떠한 질문을 했는지, 그 질문에 피의자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취조 장면을 녹음 또는 영상녹화하지 않기 때문에, 취조 과정에서 어떤 상황으로 자백이 이루어졌는지 재판관이 판단할 수 없습니다. 죄의 판단에 있어서 현장의 취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경찰과 검찰, 판사 간의 높은 신뢰가 생기기도 하지만, 사법관료주의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무시한 수사는 일단 자백서만 만들어지면, 그것이 어떻게 작성되었건 간에 유죄 판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을 만들어냅니다.

일본의 수사에서 '취조'는 여러 외국의 수사에 비해 뚜렷한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취조관이 '전인격을 서로 부딪쳐야만 비로소 피의자가 진실을 모두 털어놓는다'는 신념을 기초로 피의자와 대치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내 품에 뛰어들라'며 양팔을 벌리는 것에 가까운 감각일까요? 이 유사 부자관계는 어떻게도 형언하기 어려운 기묘함이 있습니다. 이 '아버지'는 '아들'이 나쁜 짓을 했다고 호되게 꾸짖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무리 결백을 호소해도 거기에는 일절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 p.73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일상생활로부터의 격리, 타자에 의한 지배와 자기통제감의 상실, 증거 없는 확신에 의한 장기간의 정신적 굴욕, 사건과 관계없는 수사와 인격부정, 전혀 들어주지 않는 변명,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전망 상실, 부인의 불이익을 강조, 취조관과의 자백적 관계 등의 조건이 갖춰지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도 인정하게 됩니다. 미시건 대학교의 연구는 뇌에 스트레스를 주고 수면을 부족하게 하면 거짓 자백을 하기 좋은 조건이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서울시 간첩 조작사건, 일본의 엔자이 사건 등 허위 자백이 밝혀진 사건들의 수사과정에선 거짓 자백의 조건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최장 6개월 동안 구금 상태로 지냅니다. 외부인(가족, 변호사, 인권기구, 유엔기구 등)도 통화, 면회, 접견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외부와 차단해놓고 강도 높은 수사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고문,협박,모욕,반말,잠 안 재우기 등이 예사로 행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간첩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간첩의 탄생》pp.221~222


거짓 자백은 어린아이 등 약자에게서 더 잘 나타날 수 있지만, 강한 정신력을 가진 성인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강한 훈련을 받은 경찰관조차도 물리적 고문이 아닌 심리적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없는 죄를 인정합니다. 거짓 자백의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미국에서 진범이 아니라고 밝혀져 면죄를 받은 303명 중 27%가 거짓으로 범죄를 자백했다는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35%가 유죄판결을 선고받았고, 80%가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죄를 인정해 사형을 당한 사람도 9명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일본의 형사사법에 존재하는 원죄 발생의 구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지속된 역사라고 말합니다. 전후 혼란기의 치안 유지라는 단기적인 필요성에서 부여되었던 검사의 독점 기소권은 강력한 권력을 지니면서 동시에 다른 견제를 전혀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체제를 만들었고, 그 폐해가 원죄 사건들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높은 유죄율, 검사가 기소권을 독점하는 사법시스템 등은 일본과 우리나라 비슷합니다. 일본에서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라고 수없이 외친 무고한 시민들이 발생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할 수 있고,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있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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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리 배지트 지음, 김현경.한빛나 옮김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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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동안 결혼이라는 제도는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어 왔습니다.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정략결혼, 데릴사위제 등 많은 사회에서 결혼은 그 사회의 문화, 시스템을 반영합니다. 오늘날 사회 문화는 과거와 다르며, 결혼 역시 이러한 변화에 맞춰나가고 있습니다. 결혼의 변화 중 가장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는 동성결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성결혼 찬반에 관한 논쟁은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뜨겁습니다. 찬성쪽에 동성애자만 있는 것도 아니며, 반대쪽에 종교인이나 보수주의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동성결혼 허용이 평등으로의 길이라는 의견도 있으며, 결혼이라는 시스템, 더 나아가 국가 기반을 흔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변화는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1989년 덴마크, 1993년 노르웨이, 1994년 스웨덴, 1996년 아이슬란드, 2001년의 네덜란드 같은 국가에서 동성결혼의 문을 열기 시작했으며, 가장 최근에 있었던 상징적인 사건은 2015년 6월에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되며 무지개빛 조명으로 장식된 백악관의 사진일 것입니다. 저자 리 배지트는 동성결혼이 왜 허용되어야 하는지, 혹은 왜 허용되서는 안 되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과연 어떻게 사회를 바꿨는지를 묻습니다. 리 배지트가 책을 쓸 당시엔 미국 몇몇개 주가 허용과 반대를 둘러싼 변화가 시작되는 중이였습니다. 미국보다 일찍 변화가 시작된 서유럽의 사회를 연구하며, 동성결혼이 만들어낸 변화를 추적합니다.

동성결혼의 허용이 기존의 결혼제도를 파괴했거나 약화시켰는지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NO" 입니다. 동성결혼 허용 이전에 이미 기존의 결혼제도는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순결에 관한 인식, 남녀 지위에 관한 문제, 자식 선택권 등 결혼의 많은 부분에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혼전순결하는 사람은 오히려 소수가 되었고,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안일하는 구도는 구시대적이다못해 없애야 할 문화로 인지되어가고 있습니다. 결혼이 꼭 자녀출산과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결혼 요소는 낡은 제도이고 구식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변화가 서구사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지만, 동성 파트너를 인정하는 국가일수록 결혼이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는 사회적 의무에서 개인의 선택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자녀를 가지는 것도 선택이며, 부부가 어떤 일을 할지도 선택입니다. 결혼은 파트너에 대한 헌신이라는 중요한 핵심은 남아 있습니다. 남편의 역할, 혹은 부인의 역할이라는 전통적 결혼관은 동성커플뿐만 아니라 이성커플에게도 버림받고 있습니다. 동성결혼의 허용은 이러한 변화가 이미 시작된 뒤에 나타난 결과의 하나입니다. 레즈비언 커플에게 누가 남편인지 물어볼 필요도, 자녀는 어떻게 할건지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동성결혼은 이미 사회적 결혼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분히 만족시킵니다.

동성 결혼을 둘러싼 문화 전쟁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논쟁 자체가 결혼의 중대성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점점 더 많은 독신자들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동성결혼은 오히려 결혼제도를 수호하는 면모를 보입니다. 통계적으로 레즈비언 커플의 3분의 1, 게이 커플의 6분의 1이 자녀 양육에 참여합니다. 연구결과는 동성애 부모의 양육은 이성애 부모의 양육과 차이점이 없다고 말합니다. 동성결혼은 그 자체로 특별하며, 결혼의 가치를 더 부가시켜줍니다. 이성커플의 결혼은 대다수의 결혼방식이기 때문에 결혼의 가치에 있어서 아무런 특별함을 주기 힘들지만, 선택함으로서 맺어지는 동성결혼은 결혼의 가치, 사회가 요구하는 파트너와의 헌신, 결혼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되살려줍니다.

동성 커플에게 결혼 접근권을 부여하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파레토 개선 정책이라고 부르는 것의 고전적 예시다. 즉 동성 커플에게 결혼을 개방함으로써, 누군가는 경제적으로 혜택을 볼지언정 아무도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는다. - p.325


동성결혼은 결혼시스템의 적이 아닙니다. 동성 커플이 결혼 개념을 변화시키거나 뒤엎으려면 반드시 먼저 결혼한 동성 커플들이 결혼 개념에 중대한 차이를 드러내거나 표현해야 하지만, 오히려 결혼제도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동성커플이나 이성 커플이나 결혼의 선택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결혼은 헌신과 자녀, 경제적 파트너십, 가족과의 유대에 관한 일이며, 결혼을 하는 이유는 관계에 대한 헌신과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 그 헌신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표현, 현재 혹은 장래 자녀들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공동의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성결혼이 허용된 나라들도 손쉽게 변화가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 사회적 변화, 동성애 커뮤니티의 수많은 논쟁, 정치적 변화 등을 거쳐 왔습니다. 여자는 순결해야 하며, 남편은 돈벌고 여자는 집안일하는 결혼제도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동성결혼은 하나의 변화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막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혼은 이미 변화했고, 변화하고 있으며, 동성결혼 허용은 그러한 결혼이 무너진다는 징조를 보여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 네델란드 동성커플의 부모가 보여주는 변화는 결혼의 최우선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자신의 딸이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사실이 걱정되었던 부모는, 주변 사람들이 축하해준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녀의 결혼을 축복해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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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유포죄 - 법학자 박경신,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 현주소를 말하다
박경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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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현대는 인터넷과 블로그, SNS 등으로 인해 역사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말하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인터넷엔 수많은 개인 경험, 각종 이슈에 대한 의견, 다양한 표현이 가득합니다. 직위나 나이, 성별 등에 상관없이 수많은 의견과 표현을 존중해주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주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계속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그 속성상 필연적으로 정부와 갈등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사람들의 입을 막고자 하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습니다.

"언론 없는 정부보다는 차라리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는 제퍼슨의 말처럼, 언론 없는 정부가 만들어내는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얼마나 보장되고 있느냐고 자문한다면, 안타깝게도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 것 같습니다. 법학자 박경신은 대한민국에 법적, 제도적인 문제가 많이 있다고 말합니다. 태국에서 국왕이 기르는 애견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한 남성이 불경죄, 선동죄, 왕실모독죄로 징역 37년 형을 받게 생겼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태국 군사법정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국왕 모독죄와 본질적으로 같은 형벌이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어떠한 의견을 표현했을 때, 대한민국의 법률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의견으로 불법행위를 권유할 경우 업무방해죄 형법 제314조로, 단순한 의견 표명일 경우 업무방해죄 형법 제314조와 모욕죄 제311조로, 사실적 주장이지만 허위일 경우 형법 제307조 제2항으로, 사실적 주장이지만 피해특정이 불가한 경우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으로, 사실적 주장이면서 진실일 경우 진실명예훼손죄 형법 제307조 1항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 모든 표현의 범주에서 법적으로 처벌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셈입니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은 죄가 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허위를 사실인것처럼 말해 명백한 피해 추정이 가능한 경우에만 민사로 책임을 묻고, 나머지는 형법으로 처벌하지 않고 있습니다. 행정기관이 인터넷 심의를 하는 국가는 대한민국, 터키, 호주 뿐인데, 호주는 음란물 및 아동 유해물만을 심의하며, 터키는 사법부가 불법이라고 정한 것만을 행정기관이 삭제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 7에 의해 인터넷에 게시된 표현물을 단순한 사유로도 광범위하게 삭제할 수 있습니다. 한 정치인이 한 발언을 그대로 게재하더라도 그것이 명예훼손이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면, 그 글은 삭제됩니다. 블로그 서비스나 포털에서 30일간 제재되고 복구할 기회는 남겨놓고 있지만, 사실상 그 글의 생명력은 사라져버립니다.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타인이 듣기 좋은 말을 할 자유가 아니라 듣기 싫어하는 말도 할 수 있는 자유에 있습니다. 모든 표현에 법적 제재를 열어놓은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통계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명예훼손죄는 명백이 사회적 강자들, 기업과 정부, 부자들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저자는 진실이 누군가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그 사실의 공개를 금지하는 법이 보호하는 가치는 위선이며, 타인의 입을 막아서 얻어낸 좋은 평판은 허명(虛名)이라고 말합니다. 허명을 보호하기 위해 형사적인 제재를 태국처럼 강하게 가하진 않지만, 존재하는것만으로도 폐해는 나타납니다. 어떠한 국민도 국가권력이나 그 일원을 상대로 법적분쟁을 치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분쟁에서 이긴다고 할지라도 발생할 엄청난 비용과 보복의 가능성 때문입니다. 소송의 위협은 국민과 언론이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평가와 관련해 평가 시스템이 소비자들을 계속 실망시키면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개선이 되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이다. 가짜 평가 글을 통제하지 못하면 평가 사이트는 신뢰를 잃게 된다. - 《절대 가치》p.85


한 음식 블로거는 식당의 음식에 대한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나 권력자를 비판한 사람들은 단순히 글의 삭제에서, 육체적 구속까지 당했습니다. 법의 칼이 머리 위에서 춤을 출때는 몸을 사리게 됩니다. 비판은 사라지고, 칭찬 일색만 남게 된 공간이 된다면, 그곳은 사실상 무가치한 곳이 됩니다. 로튼 토마토에 오직 신선한 토마토만 있어야 한다고 규제한다면, 아무도 토마토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칭찬만 존재하는 기업의 제품을 믿지 않습니다. 칭찬만 해야되는 정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많은 선진국에서는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제도가 폐지됐습니다.

타인이 듣기 싫어하는 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모든 말이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진국들은 국적, 인종,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민족이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명백한 모욕과 피해를 줄 경우 처벌하는 혐오죄를 제정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있었던 대학살을 부인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일본 역시 헤이트스피치를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만 존재할 뿐입니다. 공공의 안녕을 위해서 타인의 언사, 표현을 법적 방식으로 제어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강자를 견제하는 약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약자를 공격하는 강자의 목소리일 것입니다. 그것은 의견과 감정의 표명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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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 2016-11-3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표현의자유 번론의 자유는 당연히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xx 욕하는 입에 담기 민망한 말들은 아마도 표현의 자유라는 포자장으로 덮기에는 힘들지 않을까요?
법이라는거 우리 사회는 가장들을을 위해 존재 또는 소수가 아닌 다수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은 저 만의 생각일까 의심해 봅니다.
 
땅뺏기 - 새로운 식민주의 현장을 여행하다
스테파노 리베르티 지음, 유강은 옮김 / 레디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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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한국의 대기업이 세계적인 화제거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대우는 마다가스카르 정부와의 협약을 통해 99년 동안 마다가스카르 전체 농경지의 절반을 양도받아 옥수수와 팜유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진행했습니다. 한 세기 동안 국가의 농토 절반이 한 기업에게 양도된다는 거래를 파이낸셜 타임즈가 세상에 폭로했고, 큰 시위가 일어난 지 몇 주 뒤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무너졌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우의 거래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마다가스카르의 신 정부는 세계적인 흐름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마다가스카르와 대우의 사례는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거대한 토지 거래 자체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거래가 공개되고 큰 화제가 되는 것이 예외적이였습니다. 대부분의 거래는 정부와 기업, 혹은 거대 투자자금간에 밀실에서 조용하게 거래됩니다. 저자 스테파노 리베르티는 에디오피아, 브라질, 탄자니아, 사우디아라비아, 제네바, 시카고의 상품거래소를 돌아다니며 세계 투기자본의 새로운 투자처인 토지 거래를 목격합니다. 그리고 그 본질이 과거 정복자와 식민지 사이에서 진행됬던 거래와 무엇이 다른지를 자문합니다. 스테파노 리베르티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현상은 신식민주의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합니다.

닷컴버블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불러온 세계금융위기와 같은 격렬한 금융 변동이 발생하자 많은 양의 자본은 더 안전하고 확실한 상품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옥수수나 쌀과 같은 기초 식량 상품에 대한 투자가 선호되었지만, 기초 식량 상품 역시 세계 식료품 가격 위기와 같은 사태를 불러왔습니다. 대형 투자자들은 기초 식량 상품보다도 더 확실한 상품, 가장 기본적인 재화이자 동시에 수익성도 좋은 투자 대상인 토지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모든 토지가 투자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터무니없이 싸면서 정부가 보증하는 상품,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는 독재자들의 상품입니다.

스테파노 리베르티는 토지를 대규모로 임대하는 현상은 전형적인 시장 작동 원리가 낳은 결과라고 말합니다. 독재자들이 제공하는 평당 10원 이하의 값싸면서도 비옥한 토지, 저렴한 인건비, 그것을 비싸게 소비할 수 있는 선진국의 소비자들이 모두 땅뺏기 현상의 요소들입니다. 기본 식량의 가격이 폭등한 뒤, 식량을 제어할 수 있는 식량안보의 관점에서도 땅뺏기는 효율적 수단이 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투자자들은 개인적인 거래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관점에서 아프리카의 농토를 탐내고 있습니다. 사막에 곡식을 심는 것보다 에디오피아나 탄자니아의 땅을 구입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입니다.

스투키가 단상 위로 올라가서 미국 옥수수 수확 추정치를 발표한다. "친구와 동료 여러분, 올해 수확은 좋지 못할 겁니다." 그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하자 진심에서 우러난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이 투자자들은 세계를 먹여 살리고 싶다고 주장하면서도 식량 부족 사태에 기뻐한다. 식량 부족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 것이기 때문이다. - p.136


선진국의 발달된 농업기술이 가난한 나라의 농토에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빈곤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농토에서 생산되는 식량들은 전량 해외로 수출될 뿐만 아니라, 상당수는 바이오연료의 재료가 되어 사람을 먹이는 데 사용되지 않고 자동차를 굴리는 데 활용됩니다. 독재자들은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 기반 시설을 건설한다는 약속을 대가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혹은 무상으로 토지를 임대해주지만, 그 과실은 현지인들에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주민들은 굶고 있지만, 그 땅에서 생산된 식량은 주민들과 멀리 떨어진 선진국의 소비자들에게 보내지는 것이 스테파노 리베르티가 목격한 새로운 식민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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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버린 나라 -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평화 이야기
아다치 리키야 지음, 설배환 옮김 / 검둥소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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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국강병의 기치를 바람직한 국가관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군대를 버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인구규모가 꽤 큰 코스타리카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움과 특별함으로 다가옵니다. 저자 아다치 리키야에게 코스타리카의 존재는 흥미 그 이상의 것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일본과 코스타리카는 국제적으로 군대가 없다고 공인된 나라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과정은 매우 달랐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자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코스타리카에서의 삶을 택했습니다. 일본의 헌법 9조(평화헌법)이 사실상 무력화된 지금, 저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군대가 없다면 어떤 일이 가장 우려된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물리적 힘을 가진 상대방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점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대응은 힘엔 힘으로, 군대엔 군대로 대응하는 억지이론입니다. 냉전, 핵무기, 대부분의 국가가 선택하는 억지이론을 코스타리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엔 흥미로운 근현대사가 있습니다. 파나마와 니카라과 사이에 있는 코스타리카의 근현대사에 내전이 있었습니다. 정통성은 있지만 물리적 힘이 없던 울라테와 군대를 가지고 국가를 지배할 수 있었지만 정통성이 없었던 피게레스의 내전은 군사력이 있었던 피게레스가 군대 폐지를 천명함으로써 종식됩니다. 군대 폐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함으로서 미국의 개입을 피하려는 의도였다는 해석이 있지만, 스스로 보유한 군사력을 폐기한다는 결정은 꽤 흥미롭습니다.

그 외에도 외부의 침략이 두 번, 이웃나라에서 발생한 내전의 불똥이 튄 것이 한 번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국가들의 역사 속에서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스스로 무기를 들거나, 강력한 독재자가 출현하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스타리카는 모두 국제기구에 호소함으로서 외적을 물러나게 합니다. 사실상 미국의 군사력을 이용하는 것이긴 하지만, 스스로 무기를 들지 않는 불안함을 극복해낸 역사는 여전히 인상적입니다. 이후 코스타리카는 중립을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중재자로서 나선다는 외교정책을 통해 다른 나라의 침략을 억제합니다. 중립선언은 스스로 군대를 버린 나라이기에 더 설득력이 높습니다. 인권과 평화, 환경에 관한 국제기관 본부와 사무국을 자국에 유치하기도 합니다.

사회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과도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심취해 역사를 날조하고 강력한 국가를 원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코스타리카의 문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군대를 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민문화에 있습니다. 군대를 보유하는 것은 민주주의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가진 민주주의, 인권, 성, 환경 등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는 적극적이고 통합적인 가치관입니다. 민주주의는 당연하면서 즐거운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사상적 기반은, 민주주의에 해가 된다고 판단하는 군대의 보유에 적극적 반대로 이어집니다.

코스타리카에서는 학내 선거를 통해 스스로 정당을 조직하고 선거를 치른 경험을 많은 아이들이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어린이회, 학생회 선거에서조차 입후보라는 것은 극히 일부 한정된 사람들의 '특권'인 것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제도적으로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우등생'이나 유명한 학생이 학생회장에 오르도록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서 멀어지고 만다.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데에는 '참여'가 요구되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위임시켜 버리는 것'이 문화로 정착되어 있다. 주종관계가 고정되어 있는 곳에 민주주의는 없다. - p.109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처럼, 코스타리카의 교육과 문화는 민주주의적 행위를 하는것 자체가 즐거움으로 이어집니다. 대표적으로 코스타리카의 선거는 우리가 생각하는 선거와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코스타리카의 선거는 축제입니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가수를 뽑는 행사가 열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최고의 자리에 뽑히기 위해 팬들끼리 홍보전을 펼친다면, 코스타리카의 선거 장면과 유사할 것 같습니다. 코스타리카에선 청소년도 선거의 중심에 있습니다. 부모와 다른 후보라도 소신있게 홍보할 뿐만 아니라, 선거장의 다양한 일을 수행하며, 청소년들의 모의 투표까지 합니다. 이 투표 결과는 대통령에게 전달되고, 국가 정책에 반영됩니다. 국회의원은 재선이 불가능하며, 입후보 비용은 무료라 국민 누구라도 정치인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자동차로 통근하던 교장이 아이들의 놀이터를 갑자기 자기 주차장으로 삼겠다고 고지하였다. 놀이터를 빼앗긴 아이들은 아동권리조약에 명시된 '놀이할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판단하고 교장을 제소하였다. 심리 결과 아이들의 승소가 확정되어 교장은 별도의 주차공간을 찾아야 했다. - p.127


국가제도 또한 이런 문화를 뒷받침해줍니다. 코스타리카의 제4법정은 어린이든 외국인이든 누구라도 제소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한 대학생이 혼자서 고소장을 작성해 변호사도 고용하지 않고 법원에서 대통령과 싸운 적도 있습니다. 법원은 전원 일치로 대학생의 손을 들어줬고, 대통령은 패했습니다. 권력의 유무에 상관없이 법원은 언제나 옳은 쪽에 손을 들어줄거라는 사회적 신뢰가 있지 않다면, 법원을 나서도 권력이 시민들에게 보복을 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없다면 대학생이 대통령과 법적 공방을 벌일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코스타리카는 민주주의의 광고탑이다."는 미국 관리의 평처럼, 코스타리카 시민들은 열정적으로 민주주의적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코스타리카가 민주주의적 가치가 완벽하게 구현된 지상낙원인 것은 아닙니다. 코스타리카에도 남녀차별, 외국인과 내국인 문제, 고령자 문제, 빈곤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적극적인 평화주의자를 추구하게 되고, 순수하고 소박한 생활이 좋다는 삶의 태도를 염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군대를 버렸다는 사실을 단순한 특이한 가십으로 바라보지 말고,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넓은 개념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계속 움직인다는 사회적 자부심을 가진 코스타리카의 가치관을 일본이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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