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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뺏기 - 새로운 식민주의 현장을 여행하다
스테파노 리베르티 지음, 유강은 옮김 / 레디앙 / 2014년 8월
평점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한국의 대기업이 세계적인 화제거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대우는 마다가스카르 정부와의 협약을 통해 99년 동안 마다가스카르 전체 농경지의 절반을 양도받아 옥수수와 팜유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진행했습니다. 한 세기 동안 국가의 농토 절반이 한 기업에게 양도된다는 거래를 파이낸셜 타임즈가 세상에 폭로했고, 큰 시위가 일어난 지 몇 주 뒤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무너졌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우의 거래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마다가스카르의 신 정부는 세계적인 흐름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마다가스카르와 대우의 사례는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거대한 토지 거래 자체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거래가 공개되고 큰 화제가 되는 것이 예외적이였습니다. 대부분의 거래는 정부와 기업, 혹은 거대 투자자금간에 밀실에서 조용하게 거래됩니다. 저자 스테파노 리베르티는 에디오피아, 브라질, 탄자니아, 사우디아라비아, 제네바, 시카고의 상품거래소를 돌아다니며 세계 투기자본의 새로운 투자처인 토지 거래를 목격합니다. 그리고 그 본질이 과거 정복자와 식민지 사이에서 진행됬던 거래와 무엇이 다른지를 자문합니다. 스테파노 리베르티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현상은 신식민주의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합니다.
닷컴버블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불러온 세계금융위기와 같은 격렬한 금융 변동이 발생하자 많은 양의 자본은 더 안전하고 확실한 상품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옥수수나 쌀과 같은 기초 식량 상품에 대한 투자가 선호되었지만, 기초 식량 상품 역시 세계 식료품 가격 위기와 같은 사태를 불러왔습니다. 대형 투자자들은 기초 식량 상품보다도 더 확실한 상품, 가장 기본적인 재화이자 동시에 수익성도 좋은 투자 대상인 토지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모든 토지가 투자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터무니없이 싸면서 정부가 보증하는 상품,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는 독재자들의 상품입니다.
스테파노 리베르티는 토지를 대규모로 임대하는 현상은 전형적인 시장 작동 원리가 낳은 결과라고 말합니다. 독재자들이 제공하는 평당 10원 이하의 값싸면서도 비옥한 토지, 저렴한 인건비, 그것을 비싸게 소비할 수 있는 선진국의 소비자들이 모두 땅뺏기 현상의 요소들입니다. 기본 식량의 가격이 폭등한 뒤, 식량을 제어할 수 있는 식량안보의 관점에서도 땅뺏기는 효율적 수단이 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투자자들은 개인적인 거래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관점에서 아프리카의 농토를 탐내고 있습니다. 사막에 곡식을 심는 것보다 에디오피아나 탄자니아의 땅을 구입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입니다.
스투키가 단상 위로 올라가서 미국 옥수수 수확 추정치를 발표한다. "친구와 동료 여러분, 올해 수확은 좋지 못할 겁니다." 그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하자 진심에서 우러난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이 투자자들은 세계를 먹여 살리고 싶다고 주장하면서도 식량 부족 사태에 기뻐한다. 식량 부족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 것이기 때문이다. - p.136
선진국의 발달된 농업기술이 가난한 나라의 농토에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빈곤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농토에서 생산되는 식량들은 전량 해외로 수출될 뿐만 아니라, 상당수는 바이오연료의 재료가 되어 사람을 먹이는 데 사용되지 않고 자동차를 굴리는 데 활용됩니다. 독재자들은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 기반 시설을 건설한다는 약속을 대가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혹은 무상으로 토지를 임대해주지만, 그 과실은 현지인들에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주민들은 굶고 있지만, 그 땅에서 생산된 식량은 주민들과 멀리 떨어진 선진국의 소비자들에게 보내지는 것이 스테파노 리베르티가 목격한 새로운 식민주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