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유포죄 - 법학자 박경신,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 현주소를 말하다
박경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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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현대는 인터넷과 블로그, SNS 등으로 인해 역사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말하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인터넷엔 수많은 개인 경험, 각종 이슈에 대한 의견, 다양한 표현이 가득합니다. 직위나 나이, 성별 등에 상관없이 수많은 의견과 표현을 존중해주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주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계속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그 속성상 필연적으로 정부와 갈등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사람들의 입을 막고자 하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습니다.

"언론 없는 정부보다는 차라리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는 제퍼슨의 말처럼, 언론 없는 정부가 만들어내는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얼마나 보장되고 있느냐고 자문한다면, 안타깝게도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 것 같습니다. 법학자 박경신은 대한민국에 법적, 제도적인 문제가 많이 있다고 말합니다. 태국에서 국왕이 기르는 애견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한 남성이 불경죄, 선동죄, 왕실모독죄로 징역 37년 형을 받게 생겼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태국 군사법정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국왕 모독죄와 본질적으로 같은 형벌이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어떠한 의견을 표현했을 때, 대한민국의 법률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의견으로 불법행위를 권유할 경우 업무방해죄 형법 제314조로, 단순한 의견 표명일 경우 업무방해죄 형법 제314조와 모욕죄 제311조로, 사실적 주장이지만 허위일 경우 형법 제307조 제2항으로, 사실적 주장이지만 피해특정이 불가한 경우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으로, 사실적 주장이면서 진실일 경우 진실명예훼손죄 형법 제307조 1항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 모든 표현의 범주에서 법적으로 처벌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셈입니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은 죄가 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허위를 사실인것처럼 말해 명백한 피해 추정이 가능한 경우에만 민사로 책임을 묻고, 나머지는 형법으로 처벌하지 않고 있습니다. 행정기관이 인터넷 심의를 하는 국가는 대한민국, 터키, 호주 뿐인데, 호주는 음란물 및 아동 유해물만을 심의하며, 터키는 사법부가 불법이라고 정한 것만을 행정기관이 삭제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 7에 의해 인터넷에 게시된 표현물을 단순한 사유로도 광범위하게 삭제할 수 있습니다. 한 정치인이 한 발언을 그대로 게재하더라도 그것이 명예훼손이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면, 그 글은 삭제됩니다. 블로그 서비스나 포털에서 30일간 제재되고 복구할 기회는 남겨놓고 있지만, 사실상 그 글의 생명력은 사라져버립니다.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타인이 듣기 좋은 말을 할 자유가 아니라 듣기 싫어하는 말도 할 수 있는 자유에 있습니다. 모든 표현에 법적 제재를 열어놓은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통계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명예훼손죄는 명백이 사회적 강자들, 기업과 정부, 부자들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저자는 진실이 누군가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그 사실의 공개를 금지하는 법이 보호하는 가치는 위선이며, 타인의 입을 막아서 얻어낸 좋은 평판은 허명(虛名)이라고 말합니다. 허명을 보호하기 위해 형사적인 제재를 태국처럼 강하게 가하진 않지만, 존재하는것만으로도 폐해는 나타납니다. 어떠한 국민도 국가권력이나 그 일원을 상대로 법적분쟁을 치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분쟁에서 이긴다고 할지라도 발생할 엄청난 비용과 보복의 가능성 때문입니다. 소송의 위협은 국민과 언론이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평가와 관련해 평가 시스템이 소비자들을 계속 실망시키면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개선이 되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이다. 가짜 평가 글을 통제하지 못하면 평가 사이트는 신뢰를 잃게 된다. - 《절대 가치》p.85


한 음식 블로거는 식당의 음식에 대한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나 권력자를 비판한 사람들은 단순히 글의 삭제에서, 육체적 구속까지 당했습니다. 법의 칼이 머리 위에서 춤을 출때는 몸을 사리게 됩니다. 비판은 사라지고, 칭찬 일색만 남게 된 공간이 된다면, 그곳은 사실상 무가치한 곳이 됩니다. 로튼 토마토에 오직 신선한 토마토만 있어야 한다고 규제한다면, 아무도 토마토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칭찬만 존재하는 기업의 제품을 믿지 않습니다. 칭찬만 해야되는 정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많은 선진국에서는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제도가 폐지됐습니다.

타인이 듣기 싫어하는 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모든 말이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진국들은 국적, 인종,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민족이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명백한 모욕과 피해를 줄 경우 처벌하는 혐오죄를 제정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있었던 대학살을 부인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일본 역시 헤이트스피치를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만 존재할 뿐입니다. 공공의 안녕을 위해서 타인의 언사, 표현을 법적 방식으로 제어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강자를 견제하는 약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약자를 공격하는 강자의 목소리일 것입니다. 그것은 의견과 감정의 표명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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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 2016-11-3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표현의자유 번론의 자유는 당연히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xx 욕하는 입에 담기 민망한 말들은 아마도 표현의 자유라는 포자장으로 덮기에는 힘들지 않을까요?
법이라는거 우리 사회는 가장들을을 위해 존재 또는 소수가 아닌 다수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은 저 만의 생각일까 의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