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버린 나라 -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평화 이야기
아다치 리키야 지음, 설배환 옮김 / 검둥소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부국강병의 기치를 바람직한 국가관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군대를 버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인구규모가 꽤 큰 코스타리카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움과 특별함으로 다가옵니다. 저자 아다치 리키야에게 코스타리카의 존재는 흥미 그 이상의 것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일본과 코스타리카는 국제적으로 군대가 없다고 공인된 나라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과정은 매우 달랐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자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코스타리카에서의 삶을 택했습니다. 일본의 헌법 9조(평화헌법)이 사실상 무력화된 지금, 저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군대가 없다면 어떤 일이 가장 우려된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물리적 힘을 가진 상대방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점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대응은 힘엔 힘으로, 군대엔 군대로 대응하는 억지이론입니다. 냉전, 핵무기, 대부분의 국가가 선택하는 억지이론을 코스타리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엔 흥미로운 근현대사가 있습니다. 파나마와 니카라과 사이에 있는 코스타리카의 근현대사에 내전이 있었습니다. 정통성은 있지만 물리적 힘이 없던 울라테와 군대를 가지고 국가를 지배할 수 있었지만 정통성이 없었던 피게레스의 내전은 군사력이 있었던 피게레스가 군대 폐지를 천명함으로써 종식됩니다. 군대 폐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함으로서 미국의 개입을 피하려는 의도였다는 해석이 있지만, 스스로 보유한 군사력을 폐기한다는 결정은 꽤 흥미롭습니다.

그 외에도 외부의 침략이 두 번, 이웃나라에서 발생한 내전의 불똥이 튄 것이 한 번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국가들의 역사 속에서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스스로 무기를 들거나, 강력한 독재자가 출현하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스타리카는 모두 국제기구에 호소함으로서 외적을 물러나게 합니다. 사실상 미국의 군사력을 이용하는 것이긴 하지만, 스스로 무기를 들지 않는 불안함을 극복해낸 역사는 여전히 인상적입니다. 이후 코스타리카는 중립을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중재자로서 나선다는 외교정책을 통해 다른 나라의 침략을 억제합니다. 중립선언은 스스로 군대를 버린 나라이기에 더 설득력이 높습니다. 인권과 평화, 환경에 관한 국제기관 본부와 사무국을 자국에 유치하기도 합니다.

사회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과도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심취해 역사를 날조하고 강력한 국가를 원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코스타리카의 문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군대를 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민문화에 있습니다. 군대를 보유하는 것은 민주주의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가진 민주주의, 인권, 성, 환경 등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는 적극적이고 통합적인 가치관입니다. 민주주의는 당연하면서 즐거운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사상적 기반은, 민주주의에 해가 된다고 판단하는 군대의 보유에 적극적 반대로 이어집니다.

코스타리카에서는 학내 선거를 통해 스스로 정당을 조직하고 선거를 치른 경험을 많은 아이들이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어린이회, 학생회 선거에서조차 입후보라는 것은 극히 일부 한정된 사람들의 '특권'인 것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제도적으로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우등생'이나 유명한 학생이 학생회장에 오르도록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서 멀어지고 만다.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데에는 '참여'가 요구되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위임시켜 버리는 것'이 문화로 정착되어 있다. 주종관계가 고정되어 있는 곳에 민주주의는 없다. - p.109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처럼, 코스타리카의 교육과 문화는 민주주의적 행위를 하는것 자체가 즐거움으로 이어집니다. 대표적으로 코스타리카의 선거는 우리가 생각하는 선거와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코스타리카의 선거는 축제입니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가수를 뽑는 행사가 열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최고의 자리에 뽑히기 위해 팬들끼리 홍보전을 펼친다면, 코스타리카의 선거 장면과 유사할 것 같습니다. 코스타리카에선 청소년도 선거의 중심에 있습니다. 부모와 다른 후보라도 소신있게 홍보할 뿐만 아니라, 선거장의 다양한 일을 수행하며, 청소년들의 모의 투표까지 합니다. 이 투표 결과는 대통령에게 전달되고, 국가 정책에 반영됩니다. 국회의원은 재선이 불가능하며, 입후보 비용은 무료라 국민 누구라도 정치인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자동차로 통근하던 교장이 아이들의 놀이터를 갑자기 자기 주차장으로 삼겠다고 고지하였다. 놀이터를 빼앗긴 아이들은 아동권리조약에 명시된 '놀이할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판단하고 교장을 제소하였다. 심리 결과 아이들의 승소가 확정되어 교장은 별도의 주차공간을 찾아야 했다. - p.127


국가제도 또한 이런 문화를 뒷받침해줍니다. 코스타리카의 제4법정은 어린이든 외국인이든 누구라도 제소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한 대학생이 혼자서 고소장을 작성해 변호사도 고용하지 않고 법원에서 대통령과 싸운 적도 있습니다. 법원은 전원 일치로 대학생의 손을 들어줬고, 대통령은 패했습니다. 권력의 유무에 상관없이 법원은 언제나 옳은 쪽에 손을 들어줄거라는 사회적 신뢰가 있지 않다면, 법원을 나서도 권력이 시민들에게 보복을 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없다면 대학생이 대통령과 법적 공방을 벌일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코스타리카는 민주주의의 광고탑이다."는 미국 관리의 평처럼, 코스타리카 시민들은 열정적으로 민주주의적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코스타리카가 민주주의적 가치가 완벽하게 구현된 지상낙원인 것은 아닙니다. 코스타리카에도 남녀차별, 외국인과 내국인 문제, 고령자 문제, 빈곤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적극적인 평화주의자를 추구하게 되고, 순수하고 소박한 생활이 좋다는 삶의 태도를 염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군대를 버렸다는 사실을 단순한 특이한 가십으로 바라보지 말고,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넓은 개념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계속 움직인다는 사회적 자부심을 가진 코스타리카의 가치관을 일본이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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