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여자 - 과학이 외면했던 섹스의 진실
대니얼 버그너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대학생들의 성 의식을 조사한 설문조사를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성관계를 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것도 남자가 여자보다 많았고, 사랑 없는 성관계가 가능하냐는 질문에도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자위행위를 한다는 질문에도 남자가 여자보다 높은 확률을 보였고, 결혼 전에 허용할 수 있는 성적 행위를 묻는 질문에도 남자가 여자보다 더 끝까지 원하는 걸로 조사되었습니다. 가장 성관계를 활발히 할 나이인 대학생들의 성 의식 조사는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성행위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조사는 성 관계에 있어서 남자는 적극적이지만 여자는 수동적이며, 남자는 동물적이고 여자는 문명적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인식은 남자의 사랑을 포르노로, 여자의 사랑을 로맨스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여자는 한 남자와의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반면, 남자는 무수한 여자와의 사랑 없는 성관계를 꿈꾼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식은 한발짝 더 나아가 남자의 성욕이 여자보다 더 높다는 가정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남자들의 성욕이 더 높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자들보다 성적으로 더 난잡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니얼 버그너는 이러한 인식은 단지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대니얼 버그너는 과학 실험을 통해 여자도 남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정숙하다는 것은 가부장제 질서의 남자들과,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한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대니얼 버그너는 여성의 욕망은 철저하게 동물적이라고 말합니다.

페니스 크기의 미세한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은 이 가설을 현대적 기술로 테스트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한 연구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동성애 혐오도를 파악하고 며칠 후에 그중 동성애에 매우 비판적인 남자들을 불러서 동성애 관계를 다룬 영화들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영화에 전혀 흥미가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그런 영화를 보면서 발기를 경험할 확률은 보통 남자들보다 훨씬 높았다. 비동성애혐오자는 34퍼센트만이 페니스가 커졌지만 동성애혐오자는 그 비율이 80퍼센트나 되었다.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p.14
대니얼 버그너는 혈류측정기를 이용해 사람들이 성적인 자극을 받을 때 어떤 변화를 보여주는지를 말합니다. 남자들은 자위하는 남자, 동성애, 이성애 장면에서 흥분했고, 그 결과는 남자들이 예측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의 실험 결과는 평범했지만, 여자들의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자위하는 여자, 동성애, 이성애 장면에서 흥분했지만, 여자들은 자신들이 흥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솔직하게 인정했지만, 여자들은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현상을 보여줬던 것입니다. 그러나 혈류측정기가 말해준 것은 여자들이 원하는 것도 남자들이 원하는 것과 같았다는 사실입니다.

20세기 말 까지만 해도 영장류 암컷의 행동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세라 블래퍼 허디는 자신의 책에서 "여성과 영장류 암컷이 성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동적인 동물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현재로서는 없다" 고 지적했다. 그녀는 영장류 암컷이 어떻게 그들 나름의 전략을 구사하는지, 그리고 영장류 암컷의 사회적 관계가 집단의 역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했다. -《센스 앤 넌센스》p.144
여자의 몸이 말해주는 사실은 여자들도 남자들만큼 에로스적 사랑, 포르노적인 사랑을 원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 성욕을 억제해야 합니다.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남성의 성적 본능은 위업을 달성하기 위한 성취욕으로 인정되었지만, 여성의 성욕은 억압되어 마땅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공공장소에서, 심지어는 공중파 방송에서마저 야동을 본다고 말할 수 있는 반면, 여자들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표현한 순간 밝히는 여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헤픈 여자가 되고, 질 나쁜 여자라는 꼬리표가 어김없이 따라붙게 됩니다. 사회적 시선과 질타는 여자로 하여금 자신의 성적 욕망을 감추고 부정하게 합니다. 때문에 여자들은 변형된 형태의 성적 욕구를 추구하게 되며, 비현실적인 로맨스소설, 야오이물, 남성에게 의존하는 소극적 형태의 성관계를 소비하게 됩니다.

왜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갖고만 있을까요? 왜 여성의 성을 그 안에 담아두고만 있을까요? 어째서 우리는 여성의 성욕을 상대적으로 억압하고 있는 걸까요? 상자가 열리고 여자들의 족쇄가 풀리면 우리 남자들은 자신이 바람난 부인의 남편 꼴이 될까봐 두려운 겁니다. 상자 안에 있는 그것이 두려운 거죠. - p.95
여자의 성관계엔 유대감과 서로에 대한 이해, 충실함이 중요하다는 신화를 계속적으로 주입시키며 성욕구를 억제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술의 발달과 인식의 변화 속에서 여자의 당당한 성욕구를 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점점 더 많은 여자들을 포르노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으며, 낭만적 사랑과 사랑 없는 섹스, 정신적 관계와 육체적 관계라는 이분법 구도를 깨고 있습니다. 온라인 포르노 사이트 이용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 상품들은 꾸준히 출시되고 있습니다. 남성적 이데올로기를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포르노의 영역에서도, 여성이 추구하는 욕구를 바탕으로 한 포르노들이 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연인 관계에 있어서 성욕의 대상이 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서로 하나가 되면, 사랑하는 이의 욕망을 재어보고 가늠하고 건너가야 할 거리가 없어지며, 서로를 향한 욕망도 사라지고, 욕망의 충만한 힘이 도달할 결승점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욕망을 충족하려면 친밀함이 아니라 어느 정도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여성들이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선 남성 의존적인 포지션에서 벗어나 주도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포르노는 남자의 문화였을 뿐 아니라, 남자한테만 허용되는 문화였지만, 이제는 여자들도 포르노라는 에로티시즘을 즐기며 자신을 관능적이고 주체적인 몸으로 인지해가고 있습니다. 단체 스피드 데이트를 통한 실험은 이런 구도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이트 진행을 남자들이 하며 남자들이 파트너의 자리를 바꿔가는 규칙에서는 여자들의 성적 욕구는 분출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룰을 바꿔 여자들이 자리를 옮기며 남자들을 선택하게 하자 여자들의 흥분도는 하늘로 치솟았던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의 가난 (반양장) - 새로운 빈곤, 오래된 과제
김수현.손병돈.이현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한국이 70년대부터 고도 성장기를 거쳐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층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빈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사회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도 지적하듯이 새로운 빈곤의 정의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른바 절대적 빈곤선에서 상대적 빈곤선으로의 이동입니다. 지금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절대빈곤의 개념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은 계속 제기되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대안으로 상대적 빈곤을 중시하는 의견 또한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에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상대적 빈곤선의 개념에 반대하는 의견의 경우 기준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바라봐선 빈곤층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의견과,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기 때문에 사회가 돌봐줄 필요가 없으며 사회가 돌봐주더라도 최소한의 육체적인 생존만을 책임지면 된다는 의견입니다. 그에 반대 상대적 빈곤선의 개념을 찬성하는 의견의 경우 기준의 비교대상은 최상위 부자와 비교하는 개념이 아니며 단순히 육체적 보장만이 아닌 사회구성원 다수가 누리는 혜택의 경우 그 혜택까지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또한 상대적 빈곤선을 주장하는 의견의 경우 빈곤은 개인의 결함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결함의 경우가 더 크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대적 빈곤선의 개념의 대두에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빈곤개념의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외환위기 전의 경우 빈곤한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였고, 일자리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사회는 급변했고, 빈곤층의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일자리가 있고 일을 해도 빈곤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워킹푸어(working poor)의 비율이 급속하게 늘기 시작했고 일자리의 비정규직화, 빈부격차의 증가 등은 빈곤선의 개념과 빈곤의 책임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게 했습니다.

빈곤이 누구의 결함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개인의 결함이라 보는 의견은 전통적인 시각으로, 일을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들은 가난한 것이 당연하다는 고전 노동윤리에 그 기반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대 사회적 결함이라 보는 경우 시장이 글로벌화되었고 사회변화가 개인이 따라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기 때문에 개인적 결함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입니다. 예를들어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기를 책임졌던 주력 산업들의 경우 지금은 경쟁력을 잃고 외국제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주력 산업에 종사했던 근로자들은 공장의 해외이전, 산업경쟁력 약화로 무더기로 직장을 잃고 빈곤층이 되었는데 그 책임을 개인 근로자들에게 돌릴 수 있느냐는 의견입니다.

책에서는 전통적인 빈곤계층인 노인문제, 노숙자문제, 결혼이주여성, 탈북자, 주거빈곤자들의 경우를 예로 들며 기존의 제도로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빈곤정책의 개선점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인빈곤층의 경우 기존의 제도는 구시대적 가정중심의 제도로 되어있어 가족이 일정수준의 소득이 있을 경우 부양 여부와 상관없이 지원해주지 않고 있으며 젊었을때의 빈곤이 노인이 돼서도 계속 유지되는 확률이 대단히 높은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지원액수도 부족하고 그마저도 받을 수 있는 노인이 적기 때문에 노인이 돼서도 일을 해야 하지만, 얻을수 있는 일자리의 경우 대단히 힘들고 보수도 적은 일이라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노숙자의 경우 현행제도는 단순히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에 한해 노숙자라 규정하고 임시숙소 등을 제공해주고 있지만, 노숙자의 정의를 더 넓힐 필요가 있음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최저가의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들, PC방이나 만화방에서 잠을 청하는 경우에도 노숙자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경우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이 전무한 실정입니다. 영국의 경우 마음편히 잠을 잘 여건이 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경우를 노숙자라 칭하고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외국사람으로서 한국인과 결혼한 결혼이주자의 경우 대부분은 한국남자와 결혼한 결혼이주여성입니다. 이런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빈곤층이 되는데, 결혼한 한국남자가 결혼정보를 위조하는 경우도 많을뿐더러 애초에 빈곤층인 상황에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빈곤층이 될 경우에 빈곤층지원을 받지도 못하는데, 현행법상 2년이 지나야 한국인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높은 확률로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부부강간이란 판결이 처음 적용되기도 했습니다. 탈북자의 경우에도 높은 확률로 빈곤층이 되고 있는데 사회적 인식과 사회적응이 부족한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의 사회적응 교육지원이 미비하다는 평이 많고 초기 정착지원금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주거빈곤의 경우 현행 주거시스템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이른바 월세 시스템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주거비용이 더 드는 시스템은 빈곤 대물림 현상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재개발 제도도 빈곤층의 경우 내쫓기는 일과 다름이 없으며 서울내에 빈곤층을 위한 공간이 계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습니다. 이는 빈곤층 밀집 지역의 해체로 이어지는데 이른바 달동네로 불리우는 빈곤층 밀집 지역은 빈곤층들의 정신적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해왔고 어려운 사람들끼리 돕고 사는 기능을 수행했지만 이러한 공간의 감소는 빈곤층을 서울에서 밀어내고 있습니다. 서울과 비서울의 경제적 격차는 더욱 심화되어 한번 서울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시는 들어오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워킹푸어는 21세기들어 빈곤층에서 가장 비중있는 부분입니다. 현재 일본의 경우 전체노동자의 33%가 워킹푸어에 포함되어 있고 한국의 경우 소득중위값의 50%미만으로 정의된 상대빈곤을 기준으로 전체 빈곤가구의 50%이상이 취업가구이며, 취업가구의 13%가 빈곤상태에 있습니다. 이러한 일하는 빈곤층의 경우 신자유주의 시장이 대두되며 비정규직의 비중이 급속히 늘기 시작했고, 사회안전망 부족, 노동의 규제완화, 노동자파견법 개정(일본의 예)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워킹푸어의 경우 빈곤의 진입과 탈출이 활발하여 취업가구의 20%이 지난 3년간 적어도 1회 이상 빈곤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의 전체 노동자의 최대 30%가 빈곤을 경험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4인가족의 경우 주 소득원 1명이 비정규직일 경우 현행법 기준으로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빈곤층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워킹푸어가 말해주는 것은 빈곤해결에 경제성장이 꼭 답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경기가 회복되고 기업들은 매출액을 매번 경신하고 있지만 그 이익은 사회에 제대로 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갈수록 주요 노동력은 비정규직이 되어가고 있지만 정규직 노동력을 줄여 비용을 절감하면서 국제 경쟁력을 강화했다는 것이 사회에 득인지 독인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빈곤가구의 교육비 지출은 일반가구의 50%수준이고, 이러한 교육투자의 차이는 빈곤의 세대간 재생산을 초래할 수 있음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빈곤율은 취업자수가 적거나 가구주의 학력이 낮을 때, 여성일 때, 생산직일 때, 임시 혹은 일용직일 때, 영세사업자일수록 높으며 이는 취업의 질도 빈곤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출 기준의 절대빈곤율은 주거비를 제외하면 포함한 경우보다 상당히 높으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최저생계비에 주거비가 적절하게 반영되어 있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국가 개입에 따른 빈곤율 감소효과는 비취업가구에서는 14.5%로 비교적 높지만 임금 및 비임금근로자 가구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므로 근로빈곤계층에 대한 조세 및 사회보험제도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재정정책의 소득분배 개선효과는 약 4.3%로 다른 OECD국가의 37.9%에 비해 매우 낮으며 현행 소득세 제도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매우 미흡하여 근로소득보전세제를 실시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살아가면서 갑작스레 찾아오는 병, 느닷없는 해고, 각종 재난과 재해 등과 같이 예측할 수 없는 일 등으로 누구나 빈곤층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 쓰나미사태의 교훈 중 하나도 개인의 안전망도 존재할 수 없으며 그러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보장해 주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 워킹푸어 노동자의 말을 빌어 우리 사회가 열심히 일하는 근로 빈곤층에게 지금 당장 더 나은 삶을 보장해줄 수 없다면 적어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니냐고 책은 묻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진왜란은 조선이 이긴 전쟁이었다 - 임진왜란의 상식을 되짚다
양재숙 지음 / 가람기획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으며, 말을 할 수 없었던 한 소녀가 열정적인 선생을 만나며 장애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헬렌 켈러 이야기'는 교육의 중요성과,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한 인간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사회화 과정의 감동적인 교훈을 전해줍니다. 그러나 헬렌 켈러 이야기는 그녀가 장애를 극복한 이후의 이야기는 말하지 않습니다. 동화가 전해주고자 하는 것은 헬렌 켈러의 소녀 시절 이야기이지, 그 이후의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장애를 이겨낸 기적의 여성으로서 여성 참정권을 위해 투쟁했고, 인종차별을 반대했으며, 노동자들과 장애인들을 위해 평생을 살았다는 사실은 헬렌 켈러 이야기의 교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헬렌 켈러의 삶을 그녀의 어린아이 시절로만 이해합니다.

1924년에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 소설《운수 좋은 날》을 이해함에 있어서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된 건 당시 설렁탕의 가격에 대한 정보였습니다. 학창시절에《운수 좋은 날》을 처음 배웠을 때는 설렁탕을 현재의 설렁탕, 즉 대중적이지만 어느정도 가격은 있는 음식으로 생각하고 이해했지만, 설렁탕의 가격이 생각 이상으로 싼 음식이었다는 새로운 정보를 인지하게 되면서《운수 좋은 날》이 조금 다르게 보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지식은 무언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다른 관점을 제공하며, 임진왜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교과서를 통해 배울수밖에 없었던 임진왜란의 상식을 바꾸고자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임진왜란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전쟁입니다. 삼국지가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진 덕분에 여전히 사랑받는 것처럼, 임진왜란도 한국, 일본, 중국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관계와 전투, 극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침략야욕을 가지고 있었느냐에 대한 논쟁부터 시작해서 십만양병설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고, 일본의 부산진, 동래성 전투를 시작으로 이름난 맹장 신립의 패배, 수도의 함락과 선조의 피난, 원균의 이야기로 바닥까지 추락한 자존심은 의병과 승병의 등장, 권율의 행주대첩에 이어 이순신의 이야기는 카타르시스로 연결되며 임진왜란은 마무리됩니다. 마치 삼국지 중에 제갈공명이 오장원에서 지는 것으로 끝나는 작품이 있는 것처럼, 임진왜란도 극적인 사건관계만이 연결되는 소설적 형태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임진왜란을 큰 사건 위주로 언급되는 교과서 지식으로 인지하게 되면서 몇가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게 있는데, 조선은 무능했지만 특출난 몇몇 위인들의 활약 덕에 적을 물리칠 수 있었고, 백성들이 스스로 싸워야 했으며, 국토가 피폐해졌다는 인식 등입니다. 무엇보다 임진왜란은 조선만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패배했다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임진왜란은 조선이 이긴 전쟁이었으며, 그 이유는 조선이 일본보다 강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승리 요인도 이순신의 해군보다는 육군이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무력하게 당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조선 관군이 전쟁의 핵심이었다고 말합니다.

초기 전투에서는 대부분의 육상 전투에서 일본군이 공격하여 승리하였으나, 제2기 총 17회의 주요 육상 전투에서는 일본군의 공격이 4회인 반면, 조선군 및 의병의 공격이 13회로 공세의 주도권이 바뀌었다. 또한 전투 결과에서도 일본군 승리가 6회인 반면, 무승부 3회, 조선군 및 의병의 승리는 8회였다. 즉,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2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전투에서 조선군이 주도권을 쥐고 치렀고, 전투 결과도 조선군이 유리했다. -《교과서가 말하지 않은 임진왜란 이야기》p.236

임진왜란 전 과정을 살펴볼 때 임진왜란은 전투 면에서도 조선군이 일본군에 승리한 전쟁이며, 일본군으로서는 전쟁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 실패한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은 조선반도를 넘어 중국을 함락하고, 인도까지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도는 커녕 중국땅도 밟지 못했습니다. 조선이 초기에 일본에게 당했던 이유도 조선이 성리학 때문에 국방력이 약화되었다기보다는 현실적 이유에 의해 국방력을 조절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가장 큰 위협이였던 명나라와 외교관계를 통해 평화를 구축할 수 있었고, 여진족과 대마도를 평정한 이후 많은 군사를 유지할 필요성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백성의 여론을 중시했기 때문에 강력한 군대의 유지를 반대한 백성들의 뜻에 따라 일반 사병을 최소화하고 만약을 대비해 병농일치의 군사체계를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조선의 군체제는 국민개병제로 평시에 민간인이 전시엔 군인이 되는 체제였기 때문에, 조선 의병이 관군과 유기적 연결을 통해 임진왜란때 활약할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패배했다는 인식에는 조선땅만 전쟁의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기반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국토의 파괴와 전쟁의 패배가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스탈린그라드,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등은 국토가 파괴되어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스크바가 도시의 5분의 4가 잿더미로 변했고, 전쟁에서 모든 파괴는 러시아에서 발생했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프랑스였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군인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은 붕괴되지 않았고, 초기 기습에는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총력전 체제로 전환한 이후에는 일본군을 상대로 우위에 있었습니다.

파괴는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지 않는다. 어느 한쪽이 막대한 파괴의 피해를 입고도 승리할 수 있다. 적대세력의 경제적 자원과 특히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파괴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전쟁에서 파괴의 피해가 결정적이려면 얼마나 파괴해야만 할까? 일본은 68개 도시가 파괴되었지만 항복하지 않았다. 전쟁의 승패는 적의 군대가 패배했는가에 달려 있지, 주민과 거주지역, 국가와 경제시설이 얼마나 파괴되었는지에 달려 있지 않다.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p.120

저자는 임진왜란을 왜란, 즉 불법적인 무장 왜구들의 난동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정규 전쟁으로 인지한다면 승리와 패배가 있지만, 난동엔 평정만이 있기 때문에 승리를 승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란 중에 입은 국토의 상처만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역사교과서의 언급도 임진왜란 전의 평화보다는 붕당과 군역제도의 문란에 치중하고 있으며, 조선군에 대한 언급도 대다수는 이순신과 의병만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승리를 다룬 교과서는 거의 없으며, 피해현황을 다루는 언급이 다수입니다. 이런 구성은 당연히 학생들이 임진왜란을 받아들이는 기준이 되며, 이런 임진왜란의 인식은 조선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으로도 이어집니다. 만약 임진왜란 이야기를 통해 정부에 대한 불신이, 중국에 대한 사대적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 역사인식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저자는 묻고 있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병통치약 2015-03-17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책이네요. 패배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임진왜란을 ˝승리˝한 전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이한우의 선조와 비슷한 인식을 가지는 책이군요.
 
커플의 재발견 - 당신에게 맞는 커플의 형태를 찾아라
필리프 브르노 지음, 이수련 옮김 / 에코리브르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사랑하며 평생 행복하게 살아가겠냐는 주례의 질문에 언제나 그럴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답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날로 늘어가는 이혼율과 부부상담은 현행 결혼 제도에서 성공할 확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인 저자 필리프 브르노는 결혼한 커플 세 명 중 한 명은 이혼하고, 한 명은 불만족 속에서 살아가고, 한 명만이 만족하고 있다고 말하며 현재의 결혼 제도를 재검토해 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조, 상호의존성, 일부일처제라는 사회의 미덕에 대한 도전입니다.

형태에서 진화가 요구하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인간은 다혼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일처제로 살아가는 동물들은 암수의 구별이 어려운 단형태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혼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은 암수의 구별이 확연합니다. 남녀 구분이 확연히 드러나는 인간의 경우 의심의 여지 없이 다혼하며 살아온 동물입니다. 그러나 일정 조건의 환경에서는 일부일처의 동물이 다혼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다혼의 동물이 일부일처를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결혼 방식은 진화의 가능한 한 단계로서 종족과 주변 환경의 필연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남자와 여자가 점점 비슷해지는 유니섹스 경향은 인간이 다혼에서 일부일처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구조적으로 하렘과 다혼은 일부일처제보다 안정된 사회형태지만, 일부일처제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습니다. 일부일처는 수컷에게는 생식의 기회와 영토의 지배가 좀더 제한되고, 암컷에게는 자신의 후손을 다양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므로 불리해 보일 수 있지만, 자손을 보살피고 교육시키고 보호하는 관점에서는 강점을 가집니다. 일부일처는 가계 발달을 보장하고 부권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에 초기의 결혼문화는 단 하나의 파트너와의 결합이라는 엄격한 제도로 발현됩니다.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파트너에 대한 영원한 정절을 보여주는 회색거위에게서 이상적인 일부일처제를 발견하고 이를 기독교 문화에 적용합니다. 인간이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여겨지는 근친상간도 어떤 사회는 사촌간에는 허용하거나, 어떤 사회는 부모와의 결합만 금지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터부는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중요한 것은 전통이며, 사회적인 질서입니다.

영장류처럼 인류에게도 일부일처제가 그다지 널리 퍼져있는 것은 아니다. 1957년 머독이 시행한 관찰 작업은 그때 연구된 일부 종족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관찰된 종족의 경우 일부다처제가 약 74.3퍼센트, 일처다부제는 0.7퍼센트, 일부일처제는 25퍼센트였다. 이 비율은 현재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법적인 일부일처는 인류 사회의 3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 p.74

수천 년간 인간의 사회를 지배한 전통적인 일부일처제는 반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제도였습니다. 전통적인 결혼은 평등한 수단이 아니며 남자보다는 여자를 더 구속했습니다. 일부일처제 하에서 여성은 남성들 사이에서 물질적인 재화와 똑같은 취급을 당하며 사회구조의 교환가치로밖에 여겨지지 않았고, 여성의 자유로운 성욕은 항상 위험하고 반사회적이기 때문에 통제되어야만 한다는 보편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문화에서 결혼한 커플에게 다른 이성과의 관계는 금지되었으며, 성행위는 오직 자식을 낳는 용도로만 허용되었습니다. 부부간의 금욕을 지향하는 결합은 사랑과 결혼을 분리시켰고, 결혼한 커플에게 더이상 사랑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탈은 자주 일어났으며, 주로 남성에게만 허용되었습니다. 서양 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성적인 순결에 대한 도덕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극소수 개인에게서 시작되어 억압과 승화라는 공동 가치를 중심으로 지금도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이어지고 있으며, 여전히 여성의 복종을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랑의 다른 형태를 요구하는 궁정 연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통적인 결혼과 현대적인 결합 사이의 단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부일처를 단 하나의 파트너와의 결합이라고 엄격히 정의한다면, 다혼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서구는 물론 많은 나라들이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를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두 가지 형태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혼과 재혼을 통해 연속적으로, 다른 하나는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을 통해 동시적으로 이뤄집니다. 이혼이 합법화되고 사회도덕이 자유로워지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매춘의 감소입니다. 매춘은 엄격한 일부일처제 하에서 번성하기 때문입니다. 영구적인 일부일처제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힌 것은 효과적인 피임법 덕분이었습니다. 피임 덕분에 성행위와 출산이 분리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결합 형태를 찾아나섭니다.

피임약 덕분에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성욕과 출산이 분리되어 여성과 가족의 삶이 변화하였다. 피임약의 출현으로 사회적인 차원에서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는 피임을 하는 그 순간부터 남자들은 구속에서 벗어난 여자들의 성행위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커플이 욕망과 쾌락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것은, 가족으로부터 독립된 자율적인 커플의 발명에 이르게 될 부활을 예고한다. 전통적인 결혼에서는 결혼의 결과물에 불과하던 성행위가 커플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 p.132

그러나 아직도 영구적인 일부일처제 이데올로기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 이데올로기는 커플들에게 기독교적 가치가 요구하는 서로간의 공조와 의존, 정조, 두 사람이 하나를 이룬다는 환상을 심어주는데, 이타성을 지워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려는 융화적 커플은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부인하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가족이라는 개념을 통해 배출하고자 합니다. 이런 가치관은 의존적인 사람들끼리 만난 커플의 경우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커플 중 한 사람이 자아가 뚜렷한 경우 서로 요구하는 것에서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저자는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해서 부부간의 합일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각자의 독창성이 커플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차이와 대립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한다고 말합니다. 합일이라는 기독교적 이상이 찬미하는 융화적 사랑에서 분열적 사랑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패러다임의 전환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전통적인 결혼이 현대 남녀의 사고체계에 적합하지 않다면, 이혼의 절차 역시 더 쉽게 변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실패한 결혼생활을 계속 끙끙 앓으며 살아가는 것보단 이혼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게 해주는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 과정이 이혼 과정보다 쉽다는 것은, 사회가 이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의존하고, 자신의 충동은 내재화하고 억압하게 만드는 신화들이 항상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비롯해 백마 탄 왕자님 이야기들은 초월적 사랑, 평생 행복하게 잘 살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신발을 구입해본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신발을 구입하는 것이 힘든 것처럼, 아무리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선택하더라도 한번에 평생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사람들에겐 연애의 자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20세기에 미국에서 있었던 공동체 실험은 그에 대한 영감을 말해줍니다. 가장 오래 지속된 공동체는 자유연애를 실행한 집단으로, 성행위가 그룹의 구성원에 의해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곳이었습니다. 반면에 가장 짧게 지속된 공동체는 남편의 힘과 사유가 지배하는, 파기불가능하고 폐쇄적인 결혼체제를 가지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스맨 프로젝트 - 신자유주의를 농락하는 유쾌한 전략
앤디 비클바움.마이크 버나노.밥 스펀크마이어 지음, 정인환 옮김 / 빨간머리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실을 유머로 풍자하는 것은 인류가 역사를 기록했을 당시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다 보니, 블랙 코미디를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됩니다. KBS의 코미디 프로그램『개그 콘서트』에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사마귀 유치원' 코너는 시궁창같은 대한민국 현실을 풍자한 블랙 코미디로 당시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선거 유세 때 평소에 잘 안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았던 국밥을 한번에 먹으면 돼요." 라고 국회의원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당시 국회의원인 강용석씨는 개그맨 최효종씨를 형사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프랑스에서 있었던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권위가 충돌하며 국제적인 이슈를 불러왔습니다. 여전히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권력가일수록, 권위적일수록 자신에 대한 풍자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권력자들을 풍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지네브 엘 라주아가 말한 것처럼, 엄청난 자금과 권력, 내부적인 독선을 가질 수 있는 종교를 공격하지 못한다면, 토론과 풍자 잡지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는《불평등의 창조》에서 공동체 사회에 있어서 권력가를 견제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풍자, 유머라는 것을 말한 바 있습니다.

권력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풍자는 계속됩니다. 저자 앤디 비클바움, 마이크 버나노, 밥 스펀크마이어는 탁월한 유머꾼들입니다. 이들은 노동절 공식 휴일 켐페인과 저작권법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선거에 조지 부시 후보가 출마한 것을 보고, 권력에 대한 풍자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 부시 공화당 후보의 공식 웹사이트 주소는 GeorgeWBush.com 였는데, 부시 후보의 공식 사이트와 헷갈릴만한 GWBush.com 를 만들어 부시 후보의 공약을 풍자했습니다. 자신을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생태 주지사이자 교육에 관심이 많은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는 부시 후보의 주장에 대해 환경을 어찌나 소중히 하시는지 부시 후보가 주지사로 재임한 기간 동안 텍사스 주가 미국에서 가장 오염된 지역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부시 후보가 공개석상에서 불평을 토로할 정도로 이들의 활약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들은 부시 후보의 풍자를 계기로 더 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다음 목표는 세계무역기구 WTO였습니다. 이들의 활약을 본 사람이 GATT.org를 건네줬는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ATT와 GATT를 관리, 집행하기 위한 기구로 출범한 WTO를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을거라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들은 사이트를 이용해 세계무역기구가 다국적 기업의 사업만을 중시하고 힘이 약한 나라의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 원하는 작물을 재배할 권리, 사회적 서비스를 유지할 권리, 환경을 보호할 권리, 특정 식품을 먹을 또는 먹지 않을 권리, 충분한 양의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며 반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WTO.org를 흉내낸 GATT.org는 보통 사람이 조금만 읽어본다면 실제 WTO가 썼을리 없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의 거대 기업들, 높으신 분들, 학자들이 GATT.org에 WTO에 관한 질문들과 안부 메시지, 회의에 참석해달라는 메일들을 보냈습니다. 이 초청을 계기로 저자들은 학술회의, TV 생방송 토론, 국제무역회의, 대학교 강의에서 WTO 파견 인사로 행세하며 WTO가 하는 행동들을 노골적으로 풍자합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유권자의 투표권을 기업에게 파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노예제를 찬성했으며, 기계로 노동자들을 통제하자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폐해를 연상케하는 강의를 한다면 지독한 비판을 받거나 가짜라고 의심받고 감옥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끼리 하는 얘깁니다만, 세계은행이 공해산업을 저개발국가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독성 폐기물을 임금 수준이 열악한 국가로 보내는 것의 경제적 논리는 사실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인구가 많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오염도도 대단히 낮습니다. - p.172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폐해에 대한 이들의 가짜 강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 와서야 반발에 직면하게 됩니다. 다국적 기업의 임원들, 학자들, 관료들에게 반 민주주의적이고 반 도덕적인 주장들을 했지만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호응해준 덕분에 오히려 충격을 받은 저자들이 점점 강도높은 비판을 한 덕분에 직면하게 된 반발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 시민들이 햄버거를 먹은뒤 나온 똥을 맥도널드의 최신 기술을 이용해 재활용해서 다시 햄버거를 만들어 후진국 사람들에게 먹인다는 주장을 하고 나서야 저자들은 겨우 예상했던 반응을 볼 수 있었습니다. "KO the WTO"

GATT.org의 활약은 매우 뛰어나서, 전세계 언론과 사람들이 이 '예스맨 프로젝트'의 풍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WTO의 공식적인 반응은 오히려 GATT.org의 지명도를 높여줬습니다. 싸구려 양복을 입은 평범한 시민이 세계기구 WTO의 대표로 위장해 세계 유수의 기업가들과 학자들을 속이는 과정은 한편의 코미디지만, 이것을 단순한 코미디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의 열띤 반응이었습니다. 유권자의 투표권을 기업에 파는 것, 노예제를 하는 것, 기계로 노동자를 통제한다는 반민주적, 반윤리적, 반도덕적 주장들은 자본주의와 경제학의 이름하에 설득력있는 주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 가능성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강연이 끝나자마자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