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여자 - 과학이 외면했던 섹스의 진실
대니얼 버그너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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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의 성 의식을 조사한 설문조사를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성관계를 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것도 남자가 여자보다 많았고, 사랑 없는 성관계가 가능하냐는 질문에도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자위행위를 한다는 질문에도 남자가 여자보다 높은 확률을 보였고, 결혼 전에 허용할 수 있는 성적 행위를 묻는 질문에도 남자가 여자보다 더 끝까지 원하는 걸로 조사되었습니다. 가장 성관계를 활발히 할 나이인 대학생들의 성 의식 조사는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성행위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조사는 성 관계에 있어서 남자는 적극적이지만 여자는 수동적이며, 남자는 동물적이고 여자는 문명적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인식은 남자의 사랑을 포르노로, 여자의 사랑을 로맨스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여자는 한 남자와의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반면, 남자는 무수한 여자와의 사랑 없는 성관계를 꿈꾼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식은 한발짝 더 나아가 남자의 성욕이 여자보다 더 높다는 가정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남자들의 성욕이 더 높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자들보다 성적으로 더 난잡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니얼 버그너는 이러한 인식은 단지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대니얼 버그너는 과학 실험을 통해 여자도 남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정숙하다는 것은 가부장제 질서의 남자들과,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한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대니얼 버그너는 여성의 욕망은 철저하게 동물적이라고 말합니다.

페니스 크기의 미세한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은 이 가설을 현대적 기술로 테스트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한 연구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동성애 혐오도를 파악하고 며칠 후에 그중 동성애에 매우 비판적인 남자들을 불러서 동성애 관계를 다룬 영화들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영화에 전혀 흥미가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그런 영화를 보면서 발기를 경험할 확률은 보통 남자들보다 훨씬 높았다. 비동성애혐오자는 34퍼센트만이 페니스가 커졌지만 동성애혐오자는 그 비율이 80퍼센트나 되었다.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p.14
대니얼 버그너는 혈류측정기를 이용해 사람들이 성적인 자극을 받을 때 어떤 변화를 보여주는지를 말합니다. 남자들은 자위하는 남자, 동성애, 이성애 장면에서 흥분했고, 그 결과는 남자들이 예측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의 실험 결과는 평범했지만, 여자들의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자위하는 여자, 동성애, 이성애 장면에서 흥분했지만, 여자들은 자신들이 흥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솔직하게 인정했지만, 여자들은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현상을 보여줬던 것입니다. 그러나 혈류측정기가 말해준 것은 여자들이 원하는 것도 남자들이 원하는 것과 같았다는 사실입니다.

20세기 말 까지만 해도 영장류 암컷의 행동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세라 블래퍼 허디는 자신의 책에서 "여성과 영장류 암컷이 성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동적인 동물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현재로서는 없다" 고 지적했다. 그녀는 영장류 암컷이 어떻게 그들 나름의 전략을 구사하는지, 그리고 영장류 암컷의 사회적 관계가 집단의 역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했다. -《센스 앤 넌센스》p.144
여자의 몸이 말해주는 사실은 여자들도 남자들만큼 에로스적 사랑, 포르노적인 사랑을 원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 성욕을 억제해야 합니다.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남성의 성적 본능은 위업을 달성하기 위한 성취욕으로 인정되었지만, 여성의 성욕은 억압되어 마땅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공공장소에서, 심지어는 공중파 방송에서마저 야동을 본다고 말할 수 있는 반면, 여자들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표현한 순간 밝히는 여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헤픈 여자가 되고, 질 나쁜 여자라는 꼬리표가 어김없이 따라붙게 됩니다. 사회적 시선과 질타는 여자로 하여금 자신의 성적 욕망을 감추고 부정하게 합니다. 때문에 여자들은 변형된 형태의 성적 욕구를 추구하게 되며, 비현실적인 로맨스소설, 야오이물, 남성에게 의존하는 소극적 형태의 성관계를 소비하게 됩니다.

왜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갖고만 있을까요? 왜 여성의 성을 그 안에 담아두고만 있을까요? 어째서 우리는 여성의 성욕을 상대적으로 억압하고 있는 걸까요? 상자가 열리고 여자들의 족쇄가 풀리면 우리 남자들은 자신이 바람난 부인의 남편 꼴이 될까봐 두려운 겁니다. 상자 안에 있는 그것이 두려운 거죠. - p.95
여자의 성관계엔 유대감과 서로에 대한 이해, 충실함이 중요하다는 신화를 계속적으로 주입시키며 성욕구를 억제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술의 발달과 인식의 변화 속에서 여자의 당당한 성욕구를 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점점 더 많은 여자들을 포르노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으며, 낭만적 사랑과 사랑 없는 섹스, 정신적 관계와 육체적 관계라는 이분법 구도를 깨고 있습니다. 온라인 포르노 사이트 이용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 상품들은 꾸준히 출시되고 있습니다. 남성적 이데올로기를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포르노의 영역에서도, 여성이 추구하는 욕구를 바탕으로 한 포르노들이 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연인 관계에 있어서 성욕의 대상이 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서로 하나가 되면, 사랑하는 이의 욕망을 재어보고 가늠하고 건너가야 할 거리가 없어지며, 서로를 향한 욕망도 사라지고, 욕망의 충만한 힘이 도달할 결승점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욕망을 충족하려면 친밀함이 아니라 어느 정도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여성들이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선 남성 의존적인 포지션에서 벗어나 주도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포르노는 남자의 문화였을 뿐 아니라, 남자한테만 허용되는 문화였지만, 이제는 여자들도 포르노라는 에로티시즘을 즐기며 자신을 관능적이고 주체적인 몸으로 인지해가고 있습니다. 단체 스피드 데이트를 통한 실험은 이런 구도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이트 진행을 남자들이 하며 남자들이 파트너의 자리를 바꿔가는 규칙에서는 여자들의 성적 욕구는 분출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룰을 바꿔 여자들이 자리를 옮기며 남자들을 선택하게 하자 여자들의 흥분도는 하늘로 치솟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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