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의 재발견 - 당신에게 맞는 커플의 형태를 찾아라
필리프 브르노 지음, 이수련 옮김 / 에코리브르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사랑하며 평생 행복하게 살아가겠냐는 주례의 질문에 언제나 그럴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답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날로 늘어가는 이혼율과 부부상담은 현행 결혼 제도에서 성공할 확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인 저자 필리프 브르노는 결혼한 커플 세 명 중 한 명은 이혼하고, 한 명은 불만족 속에서 살아가고, 한 명만이 만족하고 있다고 말하며 현재의 결혼 제도를 재검토해 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조, 상호의존성, 일부일처제라는 사회의 미덕에 대한 도전입니다.

형태에서 진화가 요구하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인간은 다혼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일처제로 살아가는 동물들은 암수의 구별이 어려운 단형태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혼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은 암수의 구별이 확연합니다. 남녀 구분이 확연히 드러나는 인간의 경우 의심의 여지 없이 다혼하며 살아온 동물입니다. 그러나 일정 조건의 환경에서는 일부일처의 동물이 다혼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다혼의 동물이 일부일처를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결혼 방식은 진화의 가능한 한 단계로서 종족과 주변 환경의 필연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남자와 여자가 점점 비슷해지는 유니섹스 경향은 인간이 다혼에서 일부일처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구조적으로 하렘과 다혼은 일부일처제보다 안정된 사회형태지만, 일부일처제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습니다. 일부일처는 수컷에게는 생식의 기회와 영토의 지배가 좀더 제한되고, 암컷에게는 자신의 후손을 다양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므로 불리해 보일 수 있지만, 자손을 보살피고 교육시키고 보호하는 관점에서는 강점을 가집니다. 일부일처는 가계 발달을 보장하고 부권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에 초기의 결혼문화는 단 하나의 파트너와의 결합이라는 엄격한 제도로 발현됩니다.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파트너에 대한 영원한 정절을 보여주는 회색거위에게서 이상적인 일부일처제를 발견하고 이를 기독교 문화에 적용합니다. 인간이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여겨지는 근친상간도 어떤 사회는 사촌간에는 허용하거나, 어떤 사회는 부모와의 결합만 금지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터부는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중요한 것은 전통이며, 사회적인 질서입니다.

영장류처럼 인류에게도 일부일처제가 그다지 널리 퍼져있는 것은 아니다. 1957년 머독이 시행한 관찰 작업은 그때 연구된 일부 종족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관찰된 종족의 경우 일부다처제가 약 74.3퍼센트, 일처다부제는 0.7퍼센트, 일부일처제는 25퍼센트였다. 이 비율은 현재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법적인 일부일처는 인류 사회의 3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 p.74

수천 년간 인간의 사회를 지배한 전통적인 일부일처제는 반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제도였습니다. 전통적인 결혼은 평등한 수단이 아니며 남자보다는 여자를 더 구속했습니다. 일부일처제 하에서 여성은 남성들 사이에서 물질적인 재화와 똑같은 취급을 당하며 사회구조의 교환가치로밖에 여겨지지 않았고, 여성의 자유로운 성욕은 항상 위험하고 반사회적이기 때문에 통제되어야만 한다는 보편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문화에서 결혼한 커플에게 다른 이성과의 관계는 금지되었으며, 성행위는 오직 자식을 낳는 용도로만 허용되었습니다. 부부간의 금욕을 지향하는 결합은 사랑과 결혼을 분리시켰고, 결혼한 커플에게 더이상 사랑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탈은 자주 일어났으며, 주로 남성에게만 허용되었습니다. 서양 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성적인 순결에 대한 도덕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극소수 개인에게서 시작되어 억압과 승화라는 공동 가치를 중심으로 지금도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이어지고 있으며, 여전히 여성의 복종을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랑의 다른 형태를 요구하는 궁정 연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통적인 결혼과 현대적인 결합 사이의 단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부일처를 단 하나의 파트너와의 결합이라고 엄격히 정의한다면, 다혼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서구는 물론 많은 나라들이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를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두 가지 형태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혼과 재혼을 통해 연속적으로, 다른 하나는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을 통해 동시적으로 이뤄집니다. 이혼이 합법화되고 사회도덕이 자유로워지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매춘의 감소입니다. 매춘은 엄격한 일부일처제 하에서 번성하기 때문입니다. 영구적인 일부일처제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힌 것은 효과적인 피임법 덕분이었습니다. 피임 덕분에 성행위와 출산이 분리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결합 형태를 찾아나섭니다.

피임약 덕분에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성욕과 출산이 분리되어 여성과 가족의 삶이 변화하였다. 피임약의 출현으로 사회적인 차원에서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는 피임을 하는 그 순간부터 남자들은 구속에서 벗어난 여자들의 성행위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커플이 욕망과 쾌락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것은, 가족으로부터 독립된 자율적인 커플의 발명에 이르게 될 부활을 예고한다. 전통적인 결혼에서는 결혼의 결과물에 불과하던 성행위가 커플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 p.132

그러나 아직도 영구적인 일부일처제 이데올로기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 이데올로기는 커플들에게 기독교적 가치가 요구하는 서로간의 공조와 의존, 정조, 두 사람이 하나를 이룬다는 환상을 심어주는데, 이타성을 지워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려는 융화적 커플은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부인하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가족이라는 개념을 통해 배출하고자 합니다. 이런 가치관은 의존적인 사람들끼리 만난 커플의 경우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커플 중 한 사람이 자아가 뚜렷한 경우 서로 요구하는 것에서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저자는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해서 부부간의 합일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각자의 독창성이 커플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차이와 대립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한다고 말합니다. 합일이라는 기독교적 이상이 찬미하는 융화적 사랑에서 분열적 사랑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패러다임의 전환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전통적인 결혼이 현대 남녀의 사고체계에 적합하지 않다면, 이혼의 절차 역시 더 쉽게 변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실패한 결혼생활을 계속 끙끙 앓으며 살아가는 것보단 이혼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게 해주는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 과정이 이혼 과정보다 쉽다는 것은, 사회가 이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의존하고, 자신의 충동은 내재화하고 억압하게 만드는 신화들이 항상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비롯해 백마 탄 왕자님 이야기들은 초월적 사랑, 평생 행복하게 잘 살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신발을 구입해본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신발을 구입하는 것이 힘든 것처럼, 아무리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선택하더라도 한번에 평생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사람들에겐 연애의 자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20세기에 미국에서 있었던 공동체 실험은 그에 대한 영감을 말해줍니다. 가장 오래 지속된 공동체는 자유연애를 실행한 집단으로, 성행위가 그룹의 구성원에 의해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곳이었습니다. 반면에 가장 짧게 지속된 공동체는 남편의 힘과 사유가 지배하는, 파기불가능하고 폐쇄적인 결혼체제를 가지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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