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은 조선이 이긴 전쟁이었다 - 임진왜란의 상식을 되짚다
양재숙 지음 / 가람기획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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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으며, 말을 할 수 없었던 한 소녀가 열정적인 선생을 만나며 장애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헬렌 켈러 이야기'는 교육의 중요성과,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한 인간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사회화 과정의 감동적인 교훈을 전해줍니다. 그러나 헬렌 켈러 이야기는 그녀가 장애를 극복한 이후의 이야기는 말하지 않습니다. 동화가 전해주고자 하는 것은 헬렌 켈러의 소녀 시절 이야기이지, 그 이후의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장애를 이겨낸 기적의 여성으로서 여성 참정권을 위해 투쟁했고, 인종차별을 반대했으며, 노동자들과 장애인들을 위해 평생을 살았다는 사실은 헬렌 켈러 이야기의 교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헬렌 켈러의 삶을 그녀의 어린아이 시절로만 이해합니다.

1924년에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 소설《운수 좋은 날》을 이해함에 있어서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된 건 당시 설렁탕의 가격에 대한 정보였습니다. 학창시절에《운수 좋은 날》을 처음 배웠을 때는 설렁탕을 현재의 설렁탕, 즉 대중적이지만 어느정도 가격은 있는 음식으로 생각하고 이해했지만, 설렁탕의 가격이 생각 이상으로 싼 음식이었다는 새로운 정보를 인지하게 되면서《운수 좋은 날》이 조금 다르게 보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지식은 무언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다른 관점을 제공하며, 임진왜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교과서를 통해 배울수밖에 없었던 임진왜란의 상식을 바꾸고자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임진왜란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전쟁입니다. 삼국지가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진 덕분에 여전히 사랑받는 것처럼, 임진왜란도 한국, 일본, 중국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관계와 전투, 극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침략야욕을 가지고 있었느냐에 대한 논쟁부터 시작해서 십만양병설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고, 일본의 부산진, 동래성 전투를 시작으로 이름난 맹장 신립의 패배, 수도의 함락과 선조의 피난, 원균의 이야기로 바닥까지 추락한 자존심은 의병과 승병의 등장, 권율의 행주대첩에 이어 이순신의 이야기는 카타르시스로 연결되며 임진왜란은 마무리됩니다. 마치 삼국지 중에 제갈공명이 오장원에서 지는 것으로 끝나는 작품이 있는 것처럼, 임진왜란도 극적인 사건관계만이 연결되는 소설적 형태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임진왜란을 큰 사건 위주로 언급되는 교과서 지식으로 인지하게 되면서 몇가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게 있는데, 조선은 무능했지만 특출난 몇몇 위인들의 활약 덕에 적을 물리칠 수 있었고, 백성들이 스스로 싸워야 했으며, 국토가 피폐해졌다는 인식 등입니다. 무엇보다 임진왜란은 조선만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패배했다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임진왜란은 조선이 이긴 전쟁이었으며, 그 이유는 조선이 일본보다 강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승리 요인도 이순신의 해군보다는 육군이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무력하게 당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조선 관군이 전쟁의 핵심이었다고 말합니다.

초기 전투에서는 대부분의 육상 전투에서 일본군이 공격하여 승리하였으나, 제2기 총 17회의 주요 육상 전투에서는 일본군의 공격이 4회인 반면, 조선군 및 의병의 공격이 13회로 공세의 주도권이 바뀌었다. 또한 전투 결과에서도 일본군 승리가 6회인 반면, 무승부 3회, 조선군 및 의병의 승리는 8회였다. 즉,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2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전투에서 조선군이 주도권을 쥐고 치렀고, 전투 결과도 조선군이 유리했다. -《교과서가 말하지 않은 임진왜란 이야기》p.236

임진왜란 전 과정을 살펴볼 때 임진왜란은 전투 면에서도 조선군이 일본군에 승리한 전쟁이며, 일본군으로서는 전쟁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 실패한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은 조선반도를 넘어 중국을 함락하고, 인도까지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도는 커녕 중국땅도 밟지 못했습니다. 조선이 초기에 일본에게 당했던 이유도 조선이 성리학 때문에 국방력이 약화되었다기보다는 현실적 이유에 의해 국방력을 조절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가장 큰 위협이였던 명나라와 외교관계를 통해 평화를 구축할 수 있었고, 여진족과 대마도를 평정한 이후 많은 군사를 유지할 필요성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백성의 여론을 중시했기 때문에 강력한 군대의 유지를 반대한 백성들의 뜻에 따라 일반 사병을 최소화하고 만약을 대비해 병농일치의 군사체계를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조선의 군체제는 국민개병제로 평시에 민간인이 전시엔 군인이 되는 체제였기 때문에, 조선 의병이 관군과 유기적 연결을 통해 임진왜란때 활약할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패배했다는 인식에는 조선땅만 전쟁의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기반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국토의 파괴와 전쟁의 패배가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스탈린그라드,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등은 국토가 파괴되어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스크바가 도시의 5분의 4가 잿더미로 변했고, 전쟁에서 모든 파괴는 러시아에서 발생했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프랑스였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군인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은 붕괴되지 않았고, 초기 기습에는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총력전 체제로 전환한 이후에는 일본군을 상대로 우위에 있었습니다.

파괴는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지 않는다. 어느 한쪽이 막대한 파괴의 피해를 입고도 승리할 수 있다. 적대세력의 경제적 자원과 특히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파괴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전쟁에서 파괴의 피해가 결정적이려면 얼마나 파괴해야만 할까? 일본은 68개 도시가 파괴되었지만 항복하지 않았다. 전쟁의 승패는 적의 군대가 패배했는가에 달려 있지, 주민과 거주지역, 국가와 경제시설이 얼마나 파괴되었는지에 달려 있지 않다.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p.120

저자는 임진왜란을 왜란, 즉 불법적인 무장 왜구들의 난동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정규 전쟁으로 인지한다면 승리와 패배가 있지만, 난동엔 평정만이 있기 때문에 승리를 승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란 중에 입은 국토의 상처만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역사교과서의 언급도 임진왜란 전의 평화보다는 붕당과 군역제도의 문란에 치중하고 있으며, 조선군에 대한 언급도 대다수는 이순신과 의병만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승리를 다룬 교과서는 거의 없으며, 피해현황을 다루는 언급이 다수입니다. 이런 구성은 당연히 학생들이 임진왜란을 받아들이는 기준이 되며, 이런 임진왜란의 인식은 조선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으로도 이어집니다. 만약 임진왜란 이야기를 통해 정부에 대한 불신이, 중국에 대한 사대적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 역사인식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저자는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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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3-17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책이네요. 패배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임진왜란을 ˝승리˝한 전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이한우의 선조와 비슷한 인식을 가지는 책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