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맨 프로젝트 - 신자유주의를 농락하는 유쾌한 전략
앤디 비클바움.마이크 버나노.밥 스펀크마이어 지음, 정인환 옮김 / 빨간머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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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유머로 풍자하는 것은 인류가 역사를 기록했을 당시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다 보니, 블랙 코미디를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됩니다. KBS의 코미디 프로그램『개그 콘서트』에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사마귀 유치원' 코너는 시궁창같은 대한민국 현실을 풍자한 블랙 코미디로 당시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선거 유세 때 평소에 잘 안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았던 국밥을 한번에 먹으면 돼요." 라고 국회의원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당시 국회의원인 강용석씨는 개그맨 최효종씨를 형사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프랑스에서 있었던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권위가 충돌하며 국제적인 이슈를 불러왔습니다. 여전히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권력가일수록, 권위적일수록 자신에 대한 풍자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권력자들을 풍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지네브 엘 라주아가 말한 것처럼, 엄청난 자금과 권력, 내부적인 독선을 가질 수 있는 종교를 공격하지 못한다면, 토론과 풍자 잡지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는《불평등의 창조》에서 공동체 사회에 있어서 권력가를 견제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풍자, 유머라는 것을 말한 바 있습니다.

권력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풍자는 계속됩니다. 저자 앤디 비클바움, 마이크 버나노, 밥 스펀크마이어는 탁월한 유머꾼들입니다. 이들은 노동절 공식 휴일 켐페인과 저작권법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선거에 조지 부시 후보가 출마한 것을 보고, 권력에 대한 풍자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 부시 공화당 후보의 공식 웹사이트 주소는 GeorgeWBush.com 였는데, 부시 후보의 공식 사이트와 헷갈릴만한 GWBush.com 를 만들어 부시 후보의 공약을 풍자했습니다. 자신을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생태 주지사이자 교육에 관심이 많은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는 부시 후보의 주장에 대해 환경을 어찌나 소중히 하시는지 부시 후보가 주지사로 재임한 기간 동안 텍사스 주가 미국에서 가장 오염된 지역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부시 후보가 공개석상에서 불평을 토로할 정도로 이들의 활약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들은 부시 후보의 풍자를 계기로 더 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다음 목표는 세계무역기구 WTO였습니다. 이들의 활약을 본 사람이 GATT.org를 건네줬는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ATT와 GATT를 관리, 집행하기 위한 기구로 출범한 WTO를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을거라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들은 사이트를 이용해 세계무역기구가 다국적 기업의 사업만을 중시하고 힘이 약한 나라의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 원하는 작물을 재배할 권리, 사회적 서비스를 유지할 권리, 환경을 보호할 권리, 특정 식품을 먹을 또는 먹지 않을 권리, 충분한 양의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며 반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WTO.org를 흉내낸 GATT.org는 보통 사람이 조금만 읽어본다면 실제 WTO가 썼을리 없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의 거대 기업들, 높으신 분들, 학자들이 GATT.org에 WTO에 관한 질문들과 안부 메시지, 회의에 참석해달라는 메일들을 보냈습니다. 이 초청을 계기로 저자들은 학술회의, TV 생방송 토론, 국제무역회의, 대학교 강의에서 WTO 파견 인사로 행세하며 WTO가 하는 행동들을 노골적으로 풍자합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유권자의 투표권을 기업에게 파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노예제를 찬성했으며, 기계로 노동자들을 통제하자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폐해를 연상케하는 강의를 한다면 지독한 비판을 받거나 가짜라고 의심받고 감옥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끼리 하는 얘깁니다만, 세계은행이 공해산업을 저개발국가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독성 폐기물을 임금 수준이 열악한 국가로 보내는 것의 경제적 논리는 사실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인구가 많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오염도도 대단히 낮습니다. - p.172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폐해에 대한 이들의 가짜 강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 와서야 반발에 직면하게 됩니다. 다국적 기업의 임원들, 학자들, 관료들에게 반 민주주의적이고 반 도덕적인 주장들을 했지만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호응해준 덕분에 오히려 충격을 받은 저자들이 점점 강도높은 비판을 한 덕분에 직면하게 된 반발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 시민들이 햄버거를 먹은뒤 나온 똥을 맥도널드의 최신 기술을 이용해 재활용해서 다시 햄버거를 만들어 후진국 사람들에게 먹인다는 주장을 하고 나서야 저자들은 겨우 예상했던 반응을 볼 수 있었습니다. "KO the WTO"

GATT.org의 활약은 매우 뛰어나서, 전세계 언론과 사람들이 이 '예스맨 프로젝트'의 풍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WTO의 공식적인 반응은 오히려 GATT.org의 지명도를 높여줬습니다. 싸구려 양복을 입은 평범한 시민이 세계기구 WTO의 대표로 위장해 세계 유수의 기업가들과 학자들을 속이는 과정은 한편의 코미디지만, 이것을 단순한 코미디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의 열띤 반응이었습니다. 유권자의 투표권을 기업에 파는 것, 노예제를 하는 것, 기계로 노동자를 통제한다는 반민주적, 반윤리적, 반도덕적 주장들은 자본주의와 경제학의 이름하에 설득력있는 주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 가능성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강연이 끝나자마자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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