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인으로서 데이빗 핀처 특유의 손길과 숨결이 땀땀이 새겨진 웰메이드 치정 '스릴러'인줄 알고 봤다가 뒷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기분이다. 정통 스릴러 장르로서 접근하자면 [나를 찾아줘]는 결코 높게만 평가할 수 없는 영화라고 여겨진다. 아무리 천의무봉의 연출장악력을 휘두르는 데이빗 핀처라 한들, 기상천외한 남편 징벌 '자작극'이 중심축을 이루는 길리언 플린의 원전 내용 자체에 너무 억지로 끼워 맞춘 작위적인 트릭들이 난무하니까. 허나 극 중반 이후 기묘한 블랙유머 기류마저 감지되는 '풍속극' 스타일로 넘어가면서 [나를 찾아줘]는 결혼과 미디어, 각종 제도 및 그 위에서 허위의 삶을 영위하는 인간군상에 대한 '잔혹우화'로서의 본래 정체를 드러낸다.
베스트셀러 작가 부모에 의해 어릴적부터 타인의 시선과 욕망, 상술에 노출되면서 '어메이징 에이미'로서 판타지로 점철된 유년을 보낸 여주인공의 병적인 심리상태를 일방적인 자기애, 나르시즘이라고만 얘기하기도 난감하다. 우선 자기가 있어야 자기애도 있는 법. 그녀는 마음이 텅 비워져 있다. 그녀의 내면 중심엔 '나', 건전한 에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그들의 관계로 이뤄진 세계까지 그녀에겐 온통 판타지 덩어리에 다름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판타지가 있겠지만 그녀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서, 속이 텅 빈 그녀의 진면목을 알아채고 그녀의 완벽한 판타지서사를 깨거나 그 전개를 망치는 타인이 생기면 가차 없다. 과거 사귀던 연인들도, 심지어 배우자도 그 살벌한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영화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역시 침대 위에서 성애를 나누던 중에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가 셔터칼로 콜린스(닐 패트릭 해리스)의 목을 따는 장면이다. 그 폭력 수위 때문에도 끔찍하지만 티비쇼에서 가장된 진정성으로 읍소하는 남편 닉(벤 애플렉)을 보며 그야말로 여전히 자기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무이 짝패임을 깨닫고서 모든 계획을 순식간에 뒤집어 버리는 차가운 광기, 그 매서운 극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 꼽자면 자신을 짝사랑하고 스토킹해온 갑부 콜린스의 납치극으로 모든 사건을 조작하고 귀가한 아내의 미친 이면을 속속들이 깨닫고도 그녀의 판타지에 굴복, 결탁하며 안주하게 되는 남편 닉의 선택과 향방, 이 시대 중산층 유부남의 지옥도라고 할 수 있다. 이토록 서로 증오하고 조종하며 아프게 하면서까지 같이 살아야 하느냐는 닉의 질문에 에이미는 '바로 그것이 결혼'이라고 일갈한다. 마치 '본래 그것이 현상적인 삶'이라는 얘기로도 들린다. 그들은 자본과 결혼이데올로기로 유지되는 체제를 더불어 살아가는 공범, 공생관계인 셈이다.
[나를 찾아줘]라는 국내 전용 개봉 제목을 배급사에서 단독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보기 전엔 'Gone Girl', '사라진 여인'이란 좋은 원제를 놔두고서 이 무슨 삘짓인가 싶었으나 다 보고 나니 참으로 잘 지은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제목에서 간곡히 찾아달라고 청하는 '나'는 과연 누구인지,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마다 다른 층위의 '나'를 염두에 두게 될 작품이다. 그 '나'가 오직 극중 한 인물만을 지칭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진정한 '나'를 잃고서 극악스럽도록 각자의 판타지를 쫓으며 살 수밖에 없는 지금 여기, 우리 모두에 해당하는 통렬한 우화일지도 모르겠다. 미혼이라서, 인문적 각성을 이뤄서, 기타등등... 그래서 누구만은 예외일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