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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황금시대]는 '생사의 장'과 '후란강 이야기' 등의 대표작으로 1930년대 중화민국 시기 천재 여류 소설가로 알려진 샤오홍의 일생을 그린 일종의 전기 영화다. 허안화 감독은 봉건 가정에서 태어나 매정한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로부터 사랑과 온정을 느끼며 성장,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가출 후 국공합작과 중일전쟁 등 숱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 병약한 몸으로 세상 풍파에 떠밀려 떠도는 구름처럼 살다 쓸쓸하게 죽어간 샤오홍의 일대기를 일반 극영화와 재연 다큐멘터리 형식을 오가며 담아낸다.

표면적으로는 샤오홍(탕웨이 扮)과 그녀의 연인이던 샤오쥔(풍소붕 扮)의 애증을 다루는 데에 많은 러닝타임을 할애하지만 나는 세간에 알려진 바처럼 극중 샤오쥔이라는 인물이 샤오홍의 일대기에 접근하기 위한 결정적인 열쇠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출연 분량에 비해 그 비중과 존재감이 미비했을 뿐더러 내가 본 [황금시대] 속 샤오홍에게 샤오쥔은 실패한 첫사랑 루저쑨이나 그녀의 마지막 남자 두완무(주아문 扮) 혹은 한때 교류하며 시대정신을 나눴던 중국문단의 대가 루쉰(왕지문 扮)처럼 혹독한 운명을 일깨운 숱한 시련 중 하나였고 생성과 변화를 거쳐 필멸하는 자연 만물 이치의 일환이었다.

서글프게도 샤오홍에겐 범속을 향하는 욕망이 없었다. 오로지 글, 글을 쓰기 위한 생존과 자유, 글 앞의 실존만이 있었다. '이것이 나의 황금시대인가.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편안하며 조용하고 여유로운 이 순간이. 그래. 배를 곯진 않으니까. 이렇게 새장 속에서 보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나의 황금시대다.' 한 아이로서, 소녀로서, 여인으로서, 그리고 잠시나마 한 생명체의 어미로서도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같은 범인의 촉으로 가늠하기엔 너무도 가혹한 삶을 감내했다. 그러면서 31세의 나이로 홍콩의 성스테판 여학교 임시병동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백 편의 주옥같은 글을 남겼다. 그녀의 사후, 영화 속 후일담으로 그녀 지인 중 한 사람은 항전 소설과 전시 선전문학이 판치던 때 샤오홍이 역발상의 주제 선택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재발견되고 기억되었노라고 회고한다. 아니, 결단코. 그녀는 그저 썼다. 겉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안으로만 켜켜이 쌓여 깊이 침잠한 격정을 벼르고 벼려서 '원형질'의 글을 썼다. '내 이미 가난과 굶주림을 겪어 알지만 이렇게까지 몸서리쳐지도록 쓰여진 글은 처음 봤다.' 그녀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사무칠 수밖에 없던 이유일 것이다.

관객들이 여러 가지 각도에서 샤오홍이라는 인물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허안화 감독은 샤오홍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당대 문인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회술하는 다양한 얘기들을 가상 인터뷰 방식으로 영화 곳곳에 주석처럼 달아 놓았다. 어쩌면 그 속에서 나는 감독이 제시하고자 했던 '샤오홍'보다는 내가 보고픈 작가상과 인간상으로서의 '샤오홍'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 둘이 완벽히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어도 많은 부분 겹쳐져 공명했으리라 믿는다.
P.S. 영화 리뷰이나 해당 영화 타이틀이 알라딘에 존재하지 않아 책에 엮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