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 위로 사전 - 나를 들여다보는 100가지 단어
박성우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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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위로 #마흔살위로사전 #박성우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 마다 그 나이대에 맞는 응원과 조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헌데 마흔을 앞두고는 응원보다는 위로가 필요했다. 나이의 앞자리에 3자가 있을 때만해도 이렇게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가장 큰 결실이자 그 무엇보다 절대적인 의무를 동반하는 출산과 함께 마흔을 맞이했다. 그렇다보니 안그래도 필요한 위로에 위로를 더해 내게는 ‘마흔살 위로 사전‘이라는 책의 타이틀에 크게 동요하며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급기야는 측은히 여겨지는 마음에 이르고 만다.
말은 나를 크게도 하고 작게도 만드는데, 특히나 변명은 나를 작게 한다. 57쪽

구차하다. 라는 표현을 이전에도 그리고 현재도 잘 쓰진 않지만 마음속에서는 여러번 품었던 단어였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핑계대지 말자‘라고 다짐했다. 또 여러 매체나 대화속에 오가는 ‘무슨 아이가 종합병원이야. 맨날 아프대.‘라는 비난들에도 살짝 공감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어린 아이들은 매일 아프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영아기 때는 미열에도 엄마들은 가슴을 졸인다. 말을 할 수 있는 유아기에는 맘이 아플 때도 열이 나는 시기라 마찬가지로 맘을 졸인다. 코로나가 심각해졌을 때는 아이를 원에 맡길 수 없어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아이가 아프다는 변명, 아이를 핑계대지 말자‘라는 나의 다짐을 지킬 수 없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는 아이는 ‘함께 키우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무겁다
벽에 있어야 할 벽돌이 머리에,
바닥에 있어야 할 바위가 가슴에 있다 97쪽

몸이 무겁다는 경험을 처음 한 것이 언제였을까. 아마 30대 중반 이후일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회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도 머리는 이미 무거워진지 오래였으므로 몸이 무겁다고 느낀 것은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 나이가 되어봐라‘라고 협박도 아닌 당연한 수순을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마흔이란 나이는 누군가의 경험이나 감정을 간접적이 아닌 직접적으로 깨닫는 나이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몇 가지 감정을 꺼내어 놓긴 했지만 이 책의 타이틀에 ‘사전‘이란 단어가 들어간 이유를 몇 페이지 넘기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생각해왔던, 사용했던 단어들의 의미를 마흔이란 나이에서는 이렇게 받아들여지는구나 하는 공감과 위로가 실제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어쩌면 마음에는 여유가 생긴지도 모르겠다. 절대적으로 궁핍해진 상황에서는 누군가의 위로도 전해지지 않는다. 당연히 위로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문제가 해결 되길, 어줍짢은 위로보다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이토록 친절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만큼의 여유는 남아있는 것 같아 읽는 내내 참 감사하고 행복했다.

힘차다
힘차다는 것은, 내가 그렇게 못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는 것. 208쪽

마흔이 아닌 누구에게라도 ‘힘차다‘는 느낌을 공유하고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열매는 커녕 꽃도 피우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마흔이라고 다 열매맺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스스로 힘차게 나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마흔살은 책임을 지는 나이‘다. 그렇다보니 우리에게는 때때로 처방약도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한데 시인의 말처럼 이 책이 그런 마음의 처방약이 되어주어 고맙고 추천하고 싶다.

#창비 #추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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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뜻대로 안 될 때 - 낙심, 피로, 분노, 불안을 끊는 온전한 연결
카일 아이들먼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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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뜻대로안될때 #카일아이들먼 #낙심 #피로 #분노 #불안 #두포터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우리의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포도나무와 연결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기본 전제다. 우리의 방법이 통하지 않아 낙심이나 피로, 분노, 불안이 밀려오거든 다시 그분의 가지가 되라. 접붙이기는 언제라도 다시 연결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249쪽

참포도나무는 단 한 분, 주님 뿐이시다. 그런데 실제 우리는 참포도나무가 아닌 ‘가짜 포도나무‘를 찾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가짜 ‘포도나무‘에는 정보 포도나무, 정치 포도나무, 로맨스 포도나무 그리고 ‘나‘포도나무가 있다. 결혼 전 연애를 할 때 모든 것을 연인에게 기대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의 정책도, SNS를 포함한 여러 매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 마찬가지다. 일시적인 해결, 단기간의 쾌락은 얻을지 몰라도 영원을 약속하진 못한다. 그렇게 다른 가짜 포도나무 여럿을 전전하다 결국 우리가 만나는 것이 ‘나 포도나무‘다. 이부분이 정말 뜨끔했다. 주님께 의탁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기다리는 것‘을 하지 못해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겠다며 자기개발에 심취해 결국 가짜 포도나무에 기대며 그것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착각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주님께 의탁하는 것은 결코 이 세상에서 말하는 ‘평온한 상태, 환난이 없으며 충만한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물론 고통이나 시련을 예고없이 주시진 않는다. 저자는 요한복음을 인용하며 수난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충분히 고난이 닥칠 것을 알려주시고 그런 때가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도 알려주셨다고 말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다. 실제 떨궈진 나뭇가지, 막대기 등을 다시 살릴 때 살아있는 나무의 일부를 베어내어 그곳에 접붙인다고 한다. 용어 자체가 ‘피 흘리기(bleeding)이다. ‘예수님의 보혈‘의 거룩한 의미를 목회자들을 통해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더불어 <삶이 뜻대로 안 될 때>를 읽으며 깊게 새길 수 있었던 내용은 ‘너희는 가지요‘라는 부분이었다. 그동안 나 혼자 어떻게든 예수님께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개인주의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라고도 하셨는데 그 뜻이 단순히 내가 상대방의 짐을 대신 지는 것이 아니라 내 짐도, 내 허물과 힘겨움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런 깨우침이 중요했던 이유는 이전까지는 ‘나만 참아야 하는‘억울함, 분노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의 짐‘을 상대방도 함께 지고 가고 있음을 헤아리다보니 그 또한 주님께서 나와 함께 동행하고 계심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으로 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주님의 사랑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성경말씀과 저자의 의도가 그대로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 무엇도 그 사랑을 바꿀 수 없다. 우리의 시간 낭비도, 우리의 냉담과 무관심도, 우리의 은근한 불순종도, 이혼이나 중독, 불륜도, 우리의 게으름이나 나쁜 습관도, 우리의 참을성 없는 성미나 가혹한 말도, 우리 삶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도, 금색 스티커가 하나도 붙어 있지 않은 표라 할지라도, 그 무엇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다. 168쪽

무언가 열심히 하였는데도 원하는 성과에 이르지 못하고, 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의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방식을 내려놓고, 또 내가 옳다고 믿었던 신념이 아닌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말씀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해야만 한다. 저자가 공개한 ‘가지치기‘기도문의 일부만 보더라도 ‘삶이 뜻대로 안 될 때‘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찰싹 붙어서 아프더라도 ‘가지치기 당함‘을 구해야 할 이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용서해야 할 사람, 은혜를 베풀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눈감아 줘야 할 잘못이 있습니까? 제가 가라앉혀야 할 분노가 있습니까? 하나님, 제 삶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을 가지치기해야 합니까? 제가 그만 귀 기울여야 하는 목소리들을 밝혀 주옵소서. (191쪽, 가지치기를 요청하는 기도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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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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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의 <고통에 관하여>는 살아있는 존재가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신체적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진통제를 개발했어도 마찬가지였다. 제약회사는 신체적 고통은 해결했지만 고통만이 삶의 의미라고 충동하며 ‘의미’를 어떻게든 찾으려하는 추종자들로 인해 자꾸만 되살아나는 교단의 이야기가 작품의 중심이다. 중독이라는 부작용마저 제거한 진통제을 개발한 경의 부모를 폭탄테러로 살해 한 태와 태가 부모를 살해하지 않았다면 스스로를 살해할 수 밖에 없었던 경, 그런 경을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 지켜주고픈 현의 이야기다. 자해나 폭력으로 신체적 고통을 지속시키려는 교단의 모습이 악마처럼 느껴질테지만 가정폭력을 피해 두 아들과 거리로 나와야만 했던 엄마나 실험과 변태적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어린 아들과 딸을 학대하는 부모의 모습은 책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주변에 알게 모르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작품 속 아이들의 고통이 더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신약개발, 사이비 종교, 이단까지 어찌보면 자극적인 소재들을 한데 모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고통’이라는 필연적인 감각 혹은 감정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교인이 아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오만이자 교만이 아닐까 싶다. 또 앞서 언급한 학대나 폭력의 정도와 종류만 다를 뿐 저자가 말하는 ‘미래를 위해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누군가에게는 악마라는 생각에 공감했다. 소설이지만 마치 산문처럼 결말이나 클라이막스가 따로 있지 않고 전체를 그리고 부분 부분을 곱씹고 나누고픈 작품이었다. 전작<저주토끼>도 그랬지만 잠 안오는 밤 망설임 없이 읽길 잘했다.

과학의 발달도 지식의 진보도 제아무리 충실한 의료 지원체계도 인간이란, 생물이란 결국 죽는 존재라는 사실 자체를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죽음 앞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이 사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인간은 그런 사실을 이해하는 채로, 죽음을 언제나 똑바로 바라보는 채로 하루하루 아무렇지않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몸을 가진 존재는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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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 평전
유리 빈터베르크.소냐 빈터베르크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풍월당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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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계속 새로운 폭력을 유발하고,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제 폭력이 테러를 계기로 제대로 시작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케테의 작업은 외부에서 "자연주의적" 세계상을 통해 결정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사회주의자 화가는 동료 예술가 중에서 유일하게 그당시에 "삶을 변형시키는 것이 예술의 임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녀의 정신적이고 기술적인 능력은 추상적인 시간 개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현실에서부터 발전해 나온 것이다.

이제 나는 슬픔과 괴로움으로 천을 짜는 장인이 되었다네.
나는 밤낮으로 무거운 상복을 짜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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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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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조금씩자란다 #김달님 #미디어창비 #창비 #에세이 #추천 #성장 #글쓰는직업 #글쓰는사람



˝뭐 그리 대단한 걸 쓰겠다고 이러고 있나!˝ 이러헥 말하며 웃고 말지만 다시 책상 앞에 돌아와 글을 마주하면 농담했던 기분은 어느새 날아가 버린다. 나의 등 뒤로. 노트북 너머 창문 밖으로. 사실은 대단한 걸 쓰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쓰고 싶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 언젠가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싶다. 지금은 이게 나의 몫이다. 122쪽



대단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쓰고 싶은 사람, 김달님 작가의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글쓰기와 관련된 에세이나 인문서적만 보더라도 ‘정성을 들이는 작업‘이야말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직업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이해인 수녀님도, 정혜윤 PD도 추천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돌아가신 조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이야기, 자신이 인터뷰했던 이들의 글과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저자의 할아버지가 저자를 ‘계절이라는 가을이고, 살아있는 것을 조용히 끌어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신 마음도 짐작된다. 누군가의 이야기들을 잔뜩 풀어놓은 글을 읽으면서 소개해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정도는 들었지만 이처럼 그 이야기 하나하나에 마음을 들이면서도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은 조금도 넣지 않은 작가는 처음이었다.



˝너는 피아노를 배울 때 어렵지 않았어?˝

˝처음엔 저도 어려워서 많이 틀렸어요.˝

˝틀리면 부끄럽지 않았어?˝

˝부끄럽지 않았어요.˝

˝왜?˝

˝왜냐하면 저는 배우는 중이니까요. 원래 배울 때는요, 어려운 거예요.˝ 97쪽



서른 넘어 피아노를 배우면서 자꾸 실수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다는 저자에게 아홉살이지만 피아노는 선배인 지인의 아이와 나누는 대화를 보며 울컥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말,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라는 말이 너무 핑계처럼 느껴져 자괴감이 들곤 했는데 저 대화를 보면서 더이상 그 말이 ‘우리끼리의 위로‘나 ‘변명‘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물며 취미로 배우는 피아노도 어려운 데, 한 생명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 성장 뿐 아니라 사회에서의 안정된 삶을 위한 토대를 구축시키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을까. 또, ‘글을 쓰는 일은 무언가 ‘되다 말다‘의 연속이다. 어느날에는 1시간 만에 초고 한 편을 쓰고, 어느 때에는 글 하나를 완성하는 데 며칠이 걸린다.‘ (118쪽)는 말도 인상 깊었다. 이렇게 책을 읽고 서평을 적는 입장에서도 가슴이 벅찰 만큼 감동을 받은 책이 많이 읽히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열심히 써봐도 그다지 읽고 싶은 책처럼 다가오지 않을 때에는 서평인데도 며칠 씩 붙들어가며 서평을 적을 때가 있다.



그렇게 무너진 마음을 애써 추스르고 나면 얼마 안 가 같은 이유로 다시 무너지고. 회복하고. 또다시 무너지고. 그러길 수없이 반복했던 것 같아. 괴로운 날들이었지만 나에겐 꼭 필요한 시간이었어. 무어진 마음을 애써 일으키고 나면 또다시 무너지더라도 그 전과 똑같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그렇게 조금씩 나아진다는 걸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달았거든. 240쪽



‘나를 사랑하는 것‘. 내게는 이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저자의 지인이었던 G언니의 사연이 내 이야기처럼 들렸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 더이상 무언가를 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혼자 남게 될 거라는 불안. 사실 혼자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는 없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아닌 그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G 언니가 절에서 머물며 무너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회복할 수 있었다면 내게는 무엇이 그런 깨달음을 얻게 해주었을까. 신앙이었을까. 아니면 이렇게 읽고 서평을 쓰는 습관이었을까. 아마도 언급했던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있을것이다. 그러니 이런 글을 쓰는 저자를 만나게 되면 욕심만큼 맘에드는 서평이 적을 수 없다고 해도 마냥 기쁘다. 누군가를 잃은 상실에도, 나아가려는 길이 막힌 듯 답답함을 느낀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믹스커피 한 잔을 타서 창가에 앉아 바람을 맞는 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는 생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음을 알게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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