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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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들,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119쪽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아일랜드의 배로강 인근 마을,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모두 모여 광장에 트리를 설치하고 가정에서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굽고 자녀들에게 나누어줄 선물을 ’산타에게 쓰는 편지‘라는 깜찍한 눈속임으로 미리 알아 준비하는 그야말로 모두가 ’메리 크리스마스‘일 것 같은 분위기다. 가난한 미혼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자비로운 중년 여성을 만나 그나마 굶지 않으며 성장한 펄롱은 맘에 드는 여성 아일린과 혼인하여 다섯명의 딸들과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주일을 제외한 모든 날을 일하며 보내면서도 빚이 없고 대척하는 사람없이 무탈한 것이 자부심이자 삶의 유일한 목적이기도 하다. 아일랜드는 잘 알려진 것처럼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이고 펄롱의 주요 거래처중에 수녀원도 포함되어 있다. 수녀원에서는 고아부터 미혼모에 이르기까지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을 돌봐주고 표면적으로는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세탁소의 평판은 더할나위 없이 좋았고 펄롱의 딸들도 직간접적으로 교단과 관련되어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거래량이 너무 많아 주일까지 배달을 나가야 했던 펄롱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감금과 폭력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전부 허구이지만 동명의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실제 벌어졌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국내 소설중에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 드라마 <블라인드>를 본 사람이라면 대략 어떤 분위기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내용인 줄 모르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일랜드(소설 속에서 삼종기도와 관련된 장면이 등장하는 데 몇년 전 여행중에 들려오던 종소리를 영상으로 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도 크리스마스가 배경이라길래 크리스마스에 읽으려고 구입했던 책이었다. 다만 이 역자의 말처럼 클레어 키건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고발하고 상기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펄롱이라는 기독교인을 통해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실천해야 할 태도를 알려준다. 지난 주 재의 수요일(올해 2024년도는 2월 14일)부터 기독교는 사순시기가 시작되었다. 이마에 재를 바르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단식과 기도 그리고 자선을 행하는 시기다.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사순시기에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느님은 성경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서 58, 6

종교를 무기로 학대와 폭력을 행하는 일들은 너무 잦고 커져가는 데 펄롱 처럼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다. 펄롱이 자신의 모자를 거두어 준 미시즈 윌슨의 삶을 보고 용기를 낸 것처럼, 내 아이가 보고 배울 대상이 나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새해가 되어 아이에게 ’동전‘의 쓰임과 ’저금‘이라는 말을 알려주며 저금통 두 개를 선물했다. 한 개는 이웃을 위한 저금통, 다른 하나는 아이가 사고 싶은(장난감^^;) 것을 살 수 있는 저금통. 아이가 어느 쪽에 넣는지는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똑같이 두 개의 저금통을 둔 나의 모습을 잘 따라와주길 바란다.

#이처럼사소한것들 #클레어키건 #다산책방 #소설 #책추천 #성경 #단식 #사순 #그리스도인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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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자체의 감각 - 의식의 본질에 관한 과학철학적 탐구 Philos 시리즈 26
크리스토프 코흐 지음, 박제윤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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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그자체의감각 #의식 #무의식 #크리스토프코흐 #인공지능 #AI #과학철학서 #북서퍼2기 #필로스시리즈 #책스타그램 #책추천

생명 그 자체의 감각📖

🖍️영혼의 분자라고도 알려진, 빠르고 단기적으로 작용하는 강력한 환각제, 디메틸트립타민을 흡입하면, 마치 수술대나 교통사고 현장에서 임사체험을 한 후 깨어나는 것과 비슷한 신비적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더욱 안전한 대안은 감각 차단 탱크(sensory deprivation tank)이다. 225쪽

2023년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열렸던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 전시에서 김희천 작가의 <탱크>라는 작품이 있었다. 잠수부들을 포함, 운동선수들의 훈련을 위해 빛을 포함한 여러 감각이 차단된 ‘탱크’에 들어가는데 그때의 경험을 작품의 소재로 다루었다. 빛도 없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 어느 순간 의식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실제 훈련 중 일시적 기억장애를 겪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어둡고 외부가 노출되지 않은 공간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영상은 관람과 체험을 혼동하게 만드는 기이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또 탱크 안에 실제로 들어갔던 다른 사람들은 그때의 경험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 상태는 ‘의식’적인 행위에 속하는가? 아니면 무의식에 속할까. 이런 궁금증에 답을 해주는 듯한 책을 만났다. 필로스 시리즈 26번, <생명 그 자체의 감각>의 부제가 다름 아닌, ‘의식의 본질에 관한 과학철학적 탐구’다.

🖍️의식은 경험이다. 이것이 의색에 대한 정의이다. 의식이란, 가장 평범한 것에서부터 가장 고귀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험이다. 23쪽
IIT는 기초 이론으로서, 존재의 본질을 연구하는 존재론, 그리고 사물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연구하는 현상학을, 물리학 및 생물학의 영역과 연결시키려 한다. 이 이론은 어느 의식적 경험의 질과 양, 그리고 그것이 기초하는 메커니즘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정확히 정의한다. 154쪽

우선 저자 크리스토프 코흐 교수가 정의하는 ‘의식’은 경험에 준한다. 이를 통합정보이론(IIT)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경험에 의한 의식만이 참인데 의외였던 것은 사실 경험하지 않은 신비적인 상황, 종교적 체험을 부정할 거라 생각했다는 점이다. 실제 감각 차단 탱크를 종종 방문한다는 저자는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는 그 상황이 기억상실을 야기할 정도 할 만큼 혼란스럽다기보다는 ‘순수한 존재의 상태로 돌아간 것(226쪽)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신비한 체험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행한다고 말할 때, 반드시 뇌에 어떤 정보가 전달되고, 그 명령에 의해 판단한다고 생각해왔던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흥미로운 내용은 아직 더 남아있다. 흔히 뇌와 뇌를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꽤 먼 미래에나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할 순 없지만 쥐가 그 대상이 된다면 보다 더 가까운 미래에 가능할 수 있고, 무엇보다 두 개 이상의 뇌가 아닌 수 백 개의 뇌를 연결할 수도(218쪽)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의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능‘과는 다른 개념이다. 컴퓨터는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내용을 토대로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확장하여 지능적인 측면으로는 월등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의 뇌의 활동, 경험으로 얻어지는 의식으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은 의식이 있는 걸까?

🖍️경험은 크고 작은 모든 동물들, 어쩌면 무생물 자체도 포함하여, 예상치 못한 곳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의식은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디지털컴퓨터에는 없으며, 심지어 그것이 방언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점점 더 강력해지는 기계는 가짜 의식을 거래할 것이고, 아마도 사람들 대부분을 속일 것이다. 323쪽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든 생각은 그동안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 만나왔던 AI들의 인간적인 모습들이었다. 특히 어릴 적 보았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속 비를 맞으며 인간과 기계의 본질적 차이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던 애처로운 눈빛의 사이보그는 지금까지 각인되어 있다. 뇌와 의식 그리고 관련 이론에 대한 설명과 이론이 풍부하게 실려있지만 개인적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만 남겨두었다. 전체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일부를 보기보단 꼭 전체를 직접 확인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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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걸음
원유경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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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예배 #여섯걸음 #포드처치 #예배자 #목회 #원유경목사 #규장 #기독교 #기독교서적 #다윗

여섯 걸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인간의 최선인 다윗의 여섯 걸음(여섯 걸음마다 한 번씩 멈춰 서서 살진 소를 잡아 예배하던 다윗의 행렬)뒤에 하느님의 완성을 상징하는 7(완전수)이 온다는 뜻으로 우리의 ‘여섯 걸음’이후 ‘하느님의 완성’을 기대하는 마음‘ -본문 258쪽
포드 처치 담임목회자 원유경 목사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출간 전부터 하루 빨리 읽어야지 마음만 먹다가 어쩌다보니 해를 넘기고 사순을 앞둔 시기에 읽게 되었다. 머리로는 좀 처럼 여유가 없으니 나중으로 미루자고 생각하면서도 손은 어느새 책을 잡고 읽고 있었다. 지난 설 연휴 내내 이 책을 읽고 묵상하고 울고 웃으며 아무리 바쁘더라도 이 책은 더 미루지 말고 감상을 남기고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었다.

❄️눈송이가 하나하나 쌓일 때, 그 하얗고 솜털 같은 것들에서는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수북하게 쌓여 임계점을 넘는 순간, 그 무게를 지탱하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곤 한다. 간절히 기도해도 현실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 의심과 회의감이 밀려들지만, 그럼에도 기도 쌓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기도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마치 수북이 쌓인 눈이 견고한 무언가를 한순간 무너뜨리듯이 기도도 불가능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85쪽

무려 16년이라는 긴 시간, 청년 사목을 하신 분이라 그런지 책 내용 전체가 마치 자기계발서처럼 동기를 유발하고 행동으로 옮기도록 이끌었다. 특히 위의 눈송이와 기도의 비유는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로 지친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물론 하느님의 뜻이 아닌 개인의 욕심이나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기도는 응답을 기대해선 안되지만 절절한 기도마저 외면당한 듯한 서러움이 몰려올 때가 있다. 또 내가 바친 기도가 전혀 의외의 방식으로 응답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눈송이처럼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하느님의 세 가지 훈련
고독의 훈련, 무명의 훈련, 단조로움의 훈련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골리앗을 상대로 싸워야했고, 사울의 핍박속에 살아남아야 했으며 무엇보다 기름부음을 받고 바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긴 시간 다시 목자의 생활을 견디며 살아가야했다. 이 시기를 저자는 하느님께서 그를 ’훈련‘시킨 과정이라고 보았다. 고독의 훈련, 무명의 훈련 그리고 단조로움의 훈련이다.

❄️다윗을 광야로 보내신 건 하느님이셨다. 그러나 사울을 광야로 보낸 건 사울 자신이었다. 다윗은 왕에 합당한 자로 훈련되기 위해 광야로 갔지만, 사울은 사사로운 욕망 때문에 자신을 광야로 내몰았다. 다 같은 광야가 아니다. (...) 왜 광야에 있는지, 누가 보냈는지를 잘 분별해야한다. 200쪽

만약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았으니 당연히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 자신하며 교만에 빠져 행동했다면 어떠했을까. 목자로 살아야했던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고, 사울을 피해 도망쳐야했을 때 자신의 처지를 저주하고 신을 원망했을 것이다. 시련이 올 때마다 기도를 멈추고, 왜 하필 이 때,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원망했던 적도 많았다. 광야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치 불평불만을 쏟아내면 과거 종살이 하던 이집트를 그리워하던 사람들과 다를바가 없었다.

❄️아들아, 네가 인생을 살며 어떤 벽에 부딪힐 때 그 벽은 너를 막기 위한 게 아니야. 그 벽은 그것을 간절히 원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막아주기 위한 것이란다. 너를 그곳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지. 272쪽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성경‘을 누구라도 한 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다윗의 경우도 사실 왕위의 오르기 까지의 과정은 생략하고 나중에 부하의 아내를 탐하고 그 부하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내용만 보게 되면 도무지 배울점이 없어보인다. 아니, 왜 저런 나약한 사람을 주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는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다윗이 그 이후 절절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한다. 마치 기름부음을 받기 전부터 부모의 무시속에서도 눈빛이 밝게 빛나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을 돌려보내던, 주님의 뜻에 온전히 합당하게 살던 그 모습으로 돌아온다. 여섯 걸음. 마지막 한 걸음마저 내뜻대로 걸어가던 나를 돌아본다. 덕분에 이제라도 마지막 걸음은 주님께서 완성하실 수 있도록 골방에서 기도하고, 예배가 얼마나 큰 기쁨이자 특권인지를 되새기며 사순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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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과 해방 사이
이다희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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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과해방사이 #이다희 #꿈공장플러스 #육아 #에세이 #우울 #독서 #엄마 #서평 #독서모임 #여성

🍓내게 글쓰기는 즐거움이자 해방이었지. 꽉 막힌 마음에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 같았어. 글을 쓰고 나면 속이 시원해졌거든. 55쪽

살면서 부모님과 선생님께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배려‘일 것이다. 내 감정보다는 타인의 감정을 살피며 조금 불편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를 배려하는 것, 흔히 말하는 ’좋은 게 좋은 것‘. 하지만 어른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 배려하는 나를 우습게 보거나 오히려 무시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런 가르침을 주신 ’어른‘들이 미워지고 그들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순종과 해방 사이>의 이다희 저자는 그렇게 공부를 잘하고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에서 ’좋은 선생님‘으로 성장하고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며느리가 되고서야 깨달았다. 순종했을 뿐인 자신이 어느새 자신의 감정조차 맘대로 결정하고 표현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우울과 답답함이 찾아왔을 때 그녀가 선택한 것은 독서와 글쓰기였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시련이 찾아오고 그때마다 세상이 말해주는 해답 중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운동이나 노동이라는 극한으로 자신을 내몰기도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기도 하고 저자처럼 독서를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어떤 방법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다가온 시련을 견디고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뿐이다.

🍓
가만히 존재하기만 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상상해본 적도 없어.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어. 하준이가 나를 향해 내보이는 신뢰와 사랑 덕분에 말이야. 무엇이 되지 않아도, 애써 바꾸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 존재하기만 해도 얻을 수 있는 깊은 사랑이 있다는 사실. 81쪽

나는 요즘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올 때,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되는 건가?‘라고 검열하는 대신 ’이 감정을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바꾸어 질문하곤 해. 이렇게 조금씩 나를 데리고 잘 살아가는 방법들을 익혀나가고 있나 봐. 105쪽

그런데 엄마, 착한 여자는 스스로에게는 절대 착해질 수는 없다는 사실 알아? 착한 여자로 사느라 미처 쏟아내지 못한 말과 감정이 곳곳에 남아 스스로를 괴롭히기 때문이야.(...)
그걸 참고 있었던 나에 대한 미움도, 착한 여자로 사는 것은 자기를 방치하는 일이었어. 119쪽

지금까지는 세상이 아이 엄마인 나에게 허락한 것까지만을 꿈꾸며 행동했다면, 지금부터는 허락 너머의 세상을 꿈꿀 꺼야. 147쪽🍓

’독서와 글쓰기‘라는 좋은 방법을 찾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고맙게도 이렇게 책으로 내주었다. 책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나의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내보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만약 저자가 이전처럼 그저 타인의 평가에 순응하며 자기만족으로만 그쳤다면 어땠을까. 독자들이 나처럼 이 책을 읽고 살뜰한 위로를 받지 못했을테고 누군가는 저자처럼 날선 걱정에 창작과 관련된 또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절대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던 나만의 고요한 새벽 시간을 ’독서 모임‘으로 바꾸었더니 더 넓은 세상이 내게 펼쳐져 ’소명‘을 떠올리게 해준 것처럼, 하루하루 마음을 담아 실천해가는 크고 작은 일들은 우리 모두에게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과정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 270쪽

저자처럼 책을 출간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엄마들은 포기 ’당하는 것‘들이 정말 많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고 사랑해주는 아이들마저 커가면서 응원이 아닌 부담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 순간들이 다가올 때마다 이 책이 응원과 위로가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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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키
요헨 구치.막심 레오 지음, 전은경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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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키 #우울증 #인간과동물 #인플루엔셜 #반려동물 #추천 #독서 #책 #소설 #요헨구치 #막심레오 @influential_book

˝나랑은 안 맞는 거 같아.˝
˝뭐가?˝
˝아, 그런 삶의 의미 말이야. 처음에는 찾아야 하잖아. 그 후에는 잃어버리지 않게 계속 조심해야 하고. 그리고 지금 당신처럼 잃어버렸다면 그게 어디 있는지 내내 고민하고 말야. 내 생각엔 그런 삶의 의미라면 짜증만 날 뿐이야. 결국 다른 일을 할 시간이 남지 않잖아.˝ 114쪽

✏️항상 비어있던 집에 한 남자가 두꺼운 끈을 목에 걸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고양이 프랭키. 유명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에서 따온 이름을 가진 수고양이 ’프랭키‘. 두꺼운 끈을 가지고 놀던 남자, 골드는 사고로 아내를 잃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골드를 포함 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한다. 학업이나 일과 관련된 성취가 이유가 되기도 하고 골드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반면 고양이 프랭키는 그런 의미가 오히려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프랭키가 엄청나게 시니컬한 고양이는 아니다. 또 인간을 무시하는 잘난 척 하는 고양이도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만나는 길 고양이, 너구리에게 한 쪽 귀를 잃은 장애가 있는 고양이, 그리고 사랑하는 고양이 앞에서 입이 얼어붙는 귀여운 고양이일 뿐이다. 프랭키는 고양이 말 뿐 아니라 부엉이, 개, 청솔모 그리고 ’인간의 언어‘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모든 동물이 인간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지만 그들의 우월감을 존중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그들을 군림하며 편안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멍청한 척‘을 할 뿐이란다. 부모님 댁에 있는 리트리버가 꼬리를 흔들며 남편 곁을 맴도는 모습을 본 아이가, ”ㅇㅇ아, 꼬리 흔들지 마!“라고 말한 적이 있는 데 이 말을 알아들었을거라 생각하니 그 이후로도 여전히 남편에게 안기고 손을 내미는 리트리버의 행동이 궁금해졌다. 동시에 동물들 앞에서 함부로 떠들지 말아야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더불어 사료로 쓰이는 소고기에 대해서도 조금 놀란 부분이 있다.

물론 나도 고양이 사료를 먹어보았다. 그것도 많이. 하지만 내용물이 뭔지는 알지 못했다. (...)
왜 소고기일까? 나는 소를 잡아먹는 고양이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현실 세계에서 말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슴도 잡아먹지 않는다. 고양이는 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보리새우나 거대한 참치를 낚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고양이 사료에 그런 것이 불쑥 들어 있다니. 인간은 인간과 비슷한 고양이를 갖고 싶은 걸까? 91쪽

✏️고양이 프랭키의 시선으로 본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느라고 방황하고 그 의미 때문에 우울에 빠져 급기야 자살까지 시도하면서도 사랑하는 애완동물을 ’인간‘처럼 대우하는 것이 최상의 애정이라고 착각한다. 프랭키를 읽기 전에는 ’인간의 말‘을 하는 고양이와 얼마나 많은 교감이 일어날까? 싶었는데 ’말‘을 나눌 수 있어서 교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분과 감정을 존중하고 살피기 때문에 교감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살면서 ’말‘이 통하지 못해 생기는 ’불편‘보다 ’말‘같지 않은 말로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프랭키와 같은 반려동물이 더 애틋함이 느껴지는 부분에서 큰 공감을 얻을 것 같다.

”소스 때문에 내가 죽는 게 싫다는 거야?“

✏️프랭키 표지의 띠지에는 ”죽는다고? 그럼 소스는 누가 뿌려줘?“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 문장만 보면 마치 소스를 뿌려주기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모든 삶에는 ’소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생이 매울 때 달큰한 소스가, 마음이 서글플 땐, 한 입만 먹어도 입안 가득 넘쳐흐르는 소스가 필요하다. 드라마나 영화 속 연인들이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는 소소한 일들이 삶을 이어가는 데 꼭 필요한 ’소스‘라서 그렇지 않을까. ’삶의 의미‘라는 철학적 질문에서 동물의 권리를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우울증의 심각성을 고양이의 시선으로 이토록 잘 담아낸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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