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인 여행기 1,2편을 워낙 재밌게 읽어서 손꼽아 기다리던 3권이었는데…. 기쁜 맘에 출퇴근길에 전철에서 읽다가, 그만 눈물을 뚝뚝 떨구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 의아하게 쳐다보는데도 눈물이 멈추지를 않아 혼났을 정도.
(스포일러 주의!)
"역대 최악의 도난 사고"란 소제목이 붙은 파트를 읽던 중이다. 여행의 막바지에 배낭을 통째로 도둑맞은 아찔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 저자가 잠시 주문을 하러 간 사이에 그의 배낭을 누군가 통째로 들고 사라진 거다. 맞은편 의자에는 어머니가 계셨지만 눈치조차 채지 못할 정도로 지능적이었던 범인. 만약, 나라면 엄마를 원망하고 무척 화를 냈을 거다. '엄마는 도대체 뭐한 거예요? 배낭 하나 제대로 못 보고….'라고 말했을 확률이 99.99%. 그런 나에게 저자의 반응은 매우 뜻밖이었다.
"엄마가 정신을 좀 제대로 차릴걸! 조금만 조심했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어? 엄마 잘못 아닌데……. 도둑놈들의 동작이 워낙 귀신처럼 빨라 엄마는 물론 누구라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엄마, 나였어도 몰랐을 거야. 워낙 번개같이 사라지던데 뭐."
"아니야. 엄마가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가방 하나도 제대로 못 챙긴다. 아우, 정말 엄마는 여행에 도움이 하나도 안 돼. 그치?"
어? 이게 아닌데! 초점이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엄마가 여행에 도움이 안 된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도난 사실을 깨달았을 때보다 더 당황스럽다. 나는 당장 엄마를 끌고 맥도날드를 벗어난다.
"엄마, 소매치기도 여행의 일부야. 여행을 하다 보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다친 것도 아닌데 뭘. 너무 걱정하지 마!"
(중략)
"엄마, 우리 쇼핑하러 가자."
"이 상황에 무슨 쇼핑이야?"
"엄마 기분 푸셔야지. 다행히 카드는 안 잃어버렸잖아. 여기서 잃어버린 거 다 살 수 있어. 가격도 얼마 안 되니까(이건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다 다시 사자. 밥도 더 맛있는 거 먹고."
(중략)
"너는 지금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사는데 웃음이 나니?"
"아니, 왜? 울상이었던 엄마 얼굴이 활짝 개어서 좋은데 뭘? 아까 엄마 표정 장난 아니었어!"
"어이구! 이제 쇼핑 그만하고 빨리 밥 먹으러 가자. 아들 배고팠는데 그 난리 통에 햄버거도 못 먹었잖아."
"이제야 아들 배고픈 게 생각나셨나 봐? 밥 먹자고 하시는 거 보니 기분 다 풀리셨네."엄마가 피식 웃는다. 이 모습을 봤으니 오늘의 과소비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나는 엄마가 웃는 게 참 좋다.
(p.322~325)
나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말과 행동. 엄마에게도 이 책을 읽어보시라 권했는데, 이 부분을 읽을 때 엄마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얼마나 더 철이 들어야 저자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엄마가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엄마를 여행했다. 풍경을 여행 하는 것도, 시간을 여행하는 것도 모두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지만 엄마를 여행하는 것이 내겐 최고의 여행이었다. 여행을 함께하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엄마의 삶을 탐험했다. (중략) 때로는 여행하는 것보다 엄마와 교감하는 시간이 더 재미있고 흥분되었다. 멋진 풍경을 보는 것보다 활짝 웃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 게 더 좋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보다 엄마의 박수 소리를 듣는 게 더 좋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미처 몰랐던 엄마를 차근차근 여행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p.358)
저자와 어머니의 긴긴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고 감사했다. 그리고 감히 꿈꿔본다. 엄마와 나의 여행. 우리가 함께 길 위에 서면, 과연 어떤 풍경들이 펼쳐질까.
몇 년 전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갔던 엄마는 함께 하는 2박 3일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내 평생 본 엄마의 웃음보다 그 3일간 본 엄마의 웃음이 더 크고 많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엄마의 웃는 얼굴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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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최고로 가고픈 곳. 우유니 소금사막. 그곳에 대한 저자와 어머니의 감상을 듣고 나자, 정말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1년 안에 꼭 우유니 소금사막에 가봐야지!!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