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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링 ㅣ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몇년 전 우연히 오에 겐자부로의 <나의 나무 아래서>란 작품을 너무나도 재밌게 읽으면서 그를 만났다. 자세한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나무를 갖고 있다는 류의 스토리로 기억하는데, 그 내용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즈음 <아이들이 묻고, 노벨상 수상자들이 답한다>라는제목의 독특한 형식의 책이 발간되었다. 아이들이 던지는 '왜?'라는 질문에 대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답이었는데, 정말이지 무릎을 치게 만드는 답들이 꽤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가장 맘에 들었던 대답들 중에 오에겐자부로의 답도 있었다. 질문은 '아이들은 왜 학교에 가야할까?'였다. 사실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체인지링>속에 소설속 작가 '고기토'(오에겐자부로를 나타내는)가 쓴 책의 일부로 그 책이 소개가 되어서 새삼 기억이 되살아 났다.
이 책은 오에겐자부로가 자신의 아내의 오빠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이타미 주조'에게 바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타미 주조[伊丹十三 1933~1997]' 란 어떤 사람일까? 찾아 보았는데 네이버 지식검색에서 나오는 인물 설명중 마지막 구절이 '10편의 연출작 중 9편을 흥행에 성공시키면서 일본의 대표적 흥행감독으로 명성을 날린 이타미 주조는 1997년 한 잡지사가 자신의 여성스캔들을 폭로하려 하자 빌딩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여서 조금 놀랐다. 이 책에서도 내내 책 속 '고기토'로 묘사되는 오에겐자부로는 친구인 이타미(=고로)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는데, 단순히 여성스캔들 때문에 자살했다고 저렇게 쉽게 써버리다니 왠지 이타미도 오에겐자부로도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71살이라는 오에겐자부로는 이제 할아버지라 그런지 확실히 예전 글들에 비해 글이 많이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기는 했다. (사실 이 책은 일본에서는 2000년쯤에 쓰여졌다고 하는데, 그때라도 이미 그의 나이는 60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굉장히 읽기가 힘들었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책을 읽다가 깜빡 잠이 든적도 몇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분명 굉장히 힘들게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꽤 많은 페이지가 넘어가 있어서 놀라곤 했다. 게다가 나로서는 고로가 고기토를 위해 남긴 '물장군(육성 녹음테이프와 함께 남긴 휴대용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을 듣는 장면에서는 자꾸만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란 영화가 생각났다. 물론 그 영화는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이고, 이 소설은 우정을 그린 것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육성 녹음 테이프를 마치 대화하듯이 남겨놓은 설정은 왠지 비슷하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친구는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물장군을 통해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고기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오에겐자부로의 아들은 장애인이다. 그러나 음악에만은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아내는 그림에 재능을 갖고 있어서 언젠가는 가족이 연합하여 에세이집을 내기도 했었다. 삽화는 아내가 그리고 남편은 아들을 소재로 한 글을 쓴 것이다. 이 책은 거기에 아내의 남편 이야기까지 첨가되어서 좀더 가족 깊숙이 들어갔다.
극 중 제목인 <체인지링>은 설화에서 온 것으로, 예쁜 아이가 태어나면 도깨비가 나타나서 못생긴 아이와 바꿔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도깨비가 바꿔놓고 간 못생긴 아기를 '체인지링'이라고 한다고 한다. 고기토의 아내 치카시는 항상 자기 오빠에게 동경과 질투가 섞인 감정을 품고 자랐고, 그러던 어느날 문득 오빠가 예전과 달라졌다고 느끼면서 예전에 밝고 명랑하고 멋지던 오빠를 자신이 자신의 아이로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신은 장애아를 낳고 오빠는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그러나 소설은 새로운 아가의 탄생을 예고하고, 죽은 자들은 이제 그만 잊어주자고 하면서 끝을 맺는다.
소설속 이야기는 끊임없이 고기토와 고로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있고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만큼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수필인지 분간이 안되어 혼란스러웠지만 그 와중에도 이렇게 소설을 발표할 만큼 친구, 이타미에 대해 깊은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솔직히 나는 이타미주조란 감독에 대해 잘 모르고, 일본 잡지사의 취재 관행이라거나 오에겐자부로의 일상도 잘 몰라서 쉽게 이해가 안가는 구절들도 있기는 했지만, 만일 우리나라에도 어느 감독이나 소설가의 죽음에 대해 친구 소설가가 이와 같은 류의 소설을 펴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비록 자신은 자살을 택했지만 이와 같이 자신을 기억해주고 이야기로 남겨주는 친구를 둔 이타미는 죽으면서도 참 든든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