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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맨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그 위에 적힌 restaurant란 글자는 보지 못하고 그저 달(moon)과 관련된 스토리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자못 뭔가 달콤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달과 궁전이라니, 왠지 뭔가 로맨틱한 내용이 연상되지 않나? 암튼 나는 그랬다.
그러나 그저 책 제목인 달의 궁전은 주인공이 살게되는 집 근처의 중국레스토랑 이름에 불과했고, 그리하여 결국 내용은 책 제목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나로서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암튼, 이 책은 폴오스터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을 앞세워,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들려준다. 폴오스터의 소설의 특징상 챕터는 아주 크게크게 나눠지고 소제목도 전혀 없어서 중간중간 끊어읽기는 조금 많이 불편하지만, 그만큼 한번 손을 잡으면 꽤 많은 분량을 읽게 된다는 장점도 있다. (어떻게든 한 챕터는 다 읽으려고 하다보면 생각보다 많이씩 읽게되곤 한다.)
<스포일러 있음>
이 책의 줄거리는 우선 마르코 스탠리 포그란 사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나, 엄마를 일찍 여의고 외삼촌의 손에서 자랐다. 외삼촌은 클라리넷 연주자였는데, 돌아가시면서 천권가량의 많은 책과 클라리넷과 대학교를 졸업할수 있을 만큼의 돈을 남긴다. 주인공 포그는 콜롬비아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하지만, 점점 빈곤하게 되어 결국에는 외삼촌이 남긴 책도 다 팔아버리고, 클라리넷만 들고 거리의 부랑아가 되어 노숙을 하면서 떠돌게 된다. 절친한 친구 짐머가 있었지만 그는 자존심때문에 어느누구에게도 자신의 현실을 말하지 않았고 취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알게된 중국계 키티란 아가씨와 짐머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몸과 마음을 회복하게 되고, 그후 그는 에핑이란 노인의 집에 취직을 하게 된다. 두발을 못써서 늘 휠채어를 타야하는 노인의 발이 되어 휠체어를 끌어 주고 그의 말상대가 되어주는 대신 숙식을 제공받는 일자리였다. 그는 그곳에서 에핑이란 노인과 많은 책을 읽고, 앞도 못보는 그 노인에게 사물을 설명해주면서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고 묘사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 노인의 부고기사작성을 도와주면서 그의 인생사를 듣게 되는데, 이 대목이 자못 흥미롭다.- 에핑은 원래 줄리언 바버라는 이름의 풍경화가였고, 어느날 유타사막으로 친구와 그림여행을 떠났다가 친구를 잃고 자신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처리가 되어있었고, 그는 사막에서 불량배 3명을 죽였기 때문에 경찰의 추적을 피해 오히려 전혀 다른사람인 척 하며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 그리고 에핑은 결국 죽으면서 자신의 많은 재산을 그의 자식 솔로몬 바버와 포그에게 남겨준다. 그리하여 포그는 에핑의 부탁때문에 평생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에핑의 아들 솔로몬에게 연락을 하게되고 만나게 된다. 이때, 솔로몬은 자신이 과거 지방대학 강사시절 만난 에밀리란 여인을 떠올리게 되고, 포그가 그 에밀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아들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에핑은 마르코 스탠리 포그의 친할아버지였던 셈이다. 어쩜 이런 스토리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에핑은 키티가 자신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기를 낙태했다는 이유로 키티와 결별하고, 솔로몬과 함께 에핑이 과거 숨어지냈던 유타사막 동굴을 찾아 나섰다가 공연히 솔로몬만 사고로 잃고, 그 동굴이 있던 지역은 댐이 생기면서 호수속에 묻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야기의 3분의 1 이상은 에핑의 과거이야기와 솔로몬의 과거이야기로 채워져 있으며, 에핑의 과거는 흥미로웠으나 솔로몬의 이야기는 솔직히 좀 지루했다. <열린책들>출판사의 특성상 책 크기는 작고 덕분에 책 두께는 두껍고 한 페이지에 글씨가 너무 많아서 가독성이 많이 떨어졌고, 게다가 전체 분량또한 만만치 않았지만, 오히려 다른 폴오스터의 책들에 비해 줄거리는 훨씬 흡인력 있고 재미났다. 다른 폴 오스터의 책은 초반이 지루하고 뒤로 갈수록 재미났던 반면 이 책은 중반까지 무척 재미나다가 후반부가 조금 지루한 인상을 받았다.
여하튼 전체적으로 굉장히 짜임새 있는 줄거리란 인상을 받았고, 흥미진진한 모험담에서는 역시 폴오스터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역시 한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라서인지 전체적인 스토리나 큰 틀은 다 비슷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초반부 그가 책으로 가구를 만들고 생활하고 천여권의 책을 읽고 헌책방에 팔고 하던 대목만은 정말 맘에 들어서, 그 부분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본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왠지 영화로 만들면 굉장히 재미날 거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