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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이 있던 자리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9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평점 :
우울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우울하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소설 속 분위기. 글투. 정말이지 너무나도 우울하다 못해 암울하기까지 해서 몇번이나 중도에 그만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연이어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총 9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다음 작품은 조금 밝아질까? 싶어서 읽어보면 점점더 우울해지곤 했다.
대체로 여태까지 읽어본 신경숙의 소설은 다 그다지 밝지는 않았지만, 이번 경우는 좀 심했다. 정말이지 지독히도 우울했다. 읽는 내 기분이 이럴진데, 이 글을 쓸 당시 작가는 얼마나 우울해졌을까? 싶으니, 정말이지 신경숙이란 작가가 조금은 안쓰럽게 생각되었다. 어찌하여 그녀는 이토록 우울한 내용만을 써대는 걸까? 나같으면 쓰는 중간에 우울증이 와도 몇번은 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소설집의 첫 작품이 <풍금이 있던 자리>가 아니라, 나머지 8편중 하나였다면, 그 8편 중 어떤 작품이었더라도, 난 아마 첫 소설을 끝으로 이 책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9편의 작품 중 유독 <풍금이 있던 자리>만은 내 맘에 들었고, <풍금이 있던 자리>를 통해 얻은 그 느낌탓에 그나마 끝까지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었다.
<풍금이 있던 자리>는 유부남을 사랑하게된 여인이 고향집에 돌아가, 옛 회상을 하면서 현재의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쓰는 형식이다. 과거, 자신의 아버지에겐 새로운 여인이 생겼었고, 덕분에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그 젊고 고운 여인이 와서 일주일여간 머물면서 4남매를 돌보고, 어머니와는 사뭇 다른 태도로 집안일을 하고 빛깔마저 고운 도시락을 싸주곤 했었다. 그러나 조숙한 큰오빠의 "동생들 군기잡아 엄마 되찾기"작전으로 인해 그 젊고 고운 언니는 결국 집을 나가고, 다시 어머니가 돌아온다. 그 기억을 통해 작가는 과거 그 언니와 같은 처지에 놓인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유부남과의 도피를 포기한다. 쉼표를 활용한 독특한 말줄임표형식과 편지글을 통한 친근한 글투가 맘에 들어 첫작품은 꽤나 인상깊었다.
그러나 <직녀들>은 물론, 의미있는 기호들이었겠지만, 4명이나 되는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이 기호로 처리되어 가독성이 떨어졌고, 한 문장도 너무 길어서 읽기가 참 버거웠다. 게다가 그 내용의 중압감이라니..!
<멀어지는 산>과 <그 여자의 이미지>는 다른 신경숙의 소설과는 달리 화자가 '남성'이라 매우 독특했고, 덕분에 다른 신경숙의 소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나서 신선했다. 그러나 그만큼 작중 화자로의 몰입은 어려웠다.
<배트민턴 치는 여자>와 <새야 새야>는 정말 너무나도 우울한 내용이었고, 그 우울함은 <해변의 여자>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멀리, 끝없는 길 위에>는 <외딴방>과 같은 류의 신경숙의 작품처럼, 과연 모두 픽션인지, 사실이 가미된 소설인지 헷갈렸다. 특히나 <직녀들>에서도 나온 '이숙'이란 이름. 왜 그이름은 가진 주인공은 모두 죽은 사람으로 나오는 건지... 그리고, 만일 이 소설이 사실이 가미된 소설이라면, 신경숙이란 작가 주변에서는 참 많은 이들이 죽었구나 싶었고, 어쩌면 그런 일들이 그녀의 소설을 우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당분간 그녀의 소설은 손도 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만큼,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매우 우울해졌고,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