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박완서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학교에 <현대소설입문>이란 수업이 있다. 나는 그 수업을 들어보지 않았지만, 그 수업을 듣는 친구 말이, 이 책과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란 책을 읽고 그 안에 수록된 모든 소설과 시에 대한 서평을 써서 내는게 레포트라고 했다. 과연, 그 정도의 과제를 내주시는 책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함에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선택해서 읽어 보았다.

이 책에는 총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각각의 작가들은 박완서, 윤대녕처럼 유명한 사람도 있었고, 구효서, 정이현, 김애란처럼 한번쯤 들어본 작가들도 있었지만, 조성기, 이혜경 처럼 한번도 못 들어본 작가도 고루 섞여있었고, 다양한 작가들 만큼이나 작품에서 풍기는 느낌이나 이미지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공통점은 현장비평가가 뽑았다고 하여 작품성만 뛰어나고 어려운 작품들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모든 작품이 다 참 재밌었고 술술 읽혔다는 점이다.

박완서의 <거저나 마찬가지>의 경우, 80년대 한창 학생운동에 빠져 노동자들을 위해 데모하고 주도하던 학생권들이 어느새 나이가 들어 교수가 되고 사회고위직이 되어, 다시금 그 노동자들의 고통은 잊은채 현실에 안주하고마는 모습을 꼬집고 있다. 요즘 80년대 운동권들에 대한 책은 대부분 그들을 마치 무슨 영웅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고, 무엇보다 박완서가 섬세한 여성의 필채로 여성의 시각에서 그려내어 무척 재밌었다.

조성기의 <작은 인간>은 중국의 전족 이야기를 빌어, 작중화자와 이십년 나이차이가 나는 대 선배작가와의 불륜(?)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으며,

 이혜경의 <피아간彼我間>은 화자인 경은의 아버지의 임종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안에 경은의 가짜임신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의 마지막까지도 경은이 가짜임신임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 어찌보면 굉장히 지루한 주제일 수 있는 이야기를 굉장히 흡인력있게 잘 구성하여 들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효서의 <소금가마니>는 화자가 어머니가 돌아가신뒤 외종형에게 어머니가 생전에 읽으셨다는 <키에르케고르>의 책을 받고 어머니에 대해 회상하는 내용이다. 늘 아버지에게 맞으면서도 신음소리한번 내지 않고 의연하셨던 어머니. 누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다들 죽었다고 했을때 누이를 없고 홍수로 다리가 끊긴 개천을 (톱으로 나무를 잘라 외나무 다리를 만들어서) 건너 병원까지 힘겹게 다녀와 살린 어머니. 그럼에도 90세넘게 장수하시고 누구보다 편안히 돌아가신 어머니. 그 어머니가 생계를 이으셨던 소금가마니 이야기다.

윤대녕의 <탱자>는 고모님이 어느날 배를 타고 화자가 사는 제주도에 내려오신다. 고모님은 삶이 참 평탄치를 않으셨고 제주도에 와서도 조카인 화자의 집에 머물지않고 따로 민박집에 기거하시는등 여러모로 조카를 힘들고 귀찮게 한다. 그후 고모님이 집으로 돌아가시고, 화자는 얼마뒤 고모님의 부고를 듣게 되는 내용이다.

하성란의 <웨하스로 만든 집>은 제목도 그렇지만 내용도 매우 독특했다. 화자는 마치 웨하스로 만들어진 집처럼 너무나도 약한 날립집에 살았다. 화자네 가족이 입주할 당시에만 해도 계획도시형태의 화자의 마을은 정말 모든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림같은 이층집이 쪼로록 늘어선 동네라니. 그런데 그 주택들은 건설시공자가 날림으로 지어놓고 철재며, 기자재 돈을 빼돌린채 달아난 사실이 들어나고, 그리하여 2층집은 서서히 무너진다. 사람들이 하나, 둘 집을 떠나가지만, 화자는 오히려 나이가 들어 다시 예전 집으로 찾아들게 되고 어느날 화자는 소리없이 웨하스에 파묻혀 생을 마친다.

이기호의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은 어찌나 흙의 맛이 실감나게 묘사가 되었는지, 읽는 내내 나도 흙을 직접 먹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이런 일이 "아니, 세상에 이런일이!"란 tv프로그램이 소개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어쩌면 해외토픽란에 이미 실린 일일지도 모르겠다.)

김중혁의 <무용지물 박물관>은 정말 매력적인 내용이었다. 기회만 된다면, 나도 메이비의 라디오 방송을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는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사물을 그려보는 습관을 가져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이현의 <그 남자의 리허설>은 읽으면서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해 참 씁쓸했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는 동명의 소설을 빌려놓고도 번번히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경험탓에 더 열심히 읽었다.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틀렸고, 왜 화자의 기억속 아버지는 번번히 달리고 있었는지를 알게되자 참 씁쓸했다.

 

<2005 현장비평가가 뽑은 좋은 소설>은 우선 감칠맛나게 읽히는 공통점 외에도 은연중에 사회속에 만연한 문제를 폭로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정말 꼭 읽어볼 만한 재미난 소설들이 담겨있어서 앞으로 해마다 찾아읽어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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