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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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이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000을 좋아하세요?>란 제목의 소설, 영화, 책의 원조는 바로 이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사진, 글 등 다양한 것들에 <000을 좋아하세요?>란 제목을 붙이곤 했기에, 이 책은 언제고 꼭 한번은 읽어보고 싶었다.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39살, 폴이란 여주인공. 6년째 만나고 있는 동년배 남자친구 로제. 어느 날 폴이 남자친구 로제의 옛 애인이 살고 있는 집에 일 관계로 들렀다가, 그 집 아들 시몽을 만나게 되는데, 그만 시몽은 폴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그즈음 항상 자신을 기다리게 하고, 어린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로제에게 조금 많이 지쳐있던 폴은, 시몽의 적극적인 구애에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는데…….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p.43-44)

 

 

이 책의 제목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시몽이 폴을 브람스의 음악회에 초대하고자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브람스도 스승 슈만의 부인인 연상의 여인 클라라를 사랑했었다고 하니, 아마도 시몽은 그 사실을 알고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물어본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은 프랑스 사람들은 브람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그 이유가 궁금하여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왜 브람스를 싫어하는 걸까?) 그의 음악회에 가려면 미리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물어본다고 한다. -

 

 

시몽의 사랑은 너무나도 철없고, 맹목적이지만 그런 그의 말과 행동에서 순간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고, 마음이 따스해지기도 했다.

 

"그럼 난 6시까지 뭘 해야 되지?" 시몽이 고집스럽게 다시 말했다.

"나도 모르지……. 일하러 갈 거잖아."

"그럴 순 없어. 그러기엔 너무 행복한 걸." 그가 말했다.

"그렇다고 일을 못할 건 없잖아……!"

"난 그래. 게다가 이제 뭘 해야 할지 알겠어. 산책을 하면서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을 생각하면서 혼자 점심을 먹고, 그런 다음 6시가 되기를 기다릴 거야. 알다시피 난 패기에 찬 젊은이는 아니거든."

"당신 상사는 뭐라고 할까?"

"모르지. 어째서 당신은 내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망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내 현재뿐인데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

(p.106)

 

"사랑해"라고 말하며 시몽은 전화를 끊었다.

전화박스 밖으로 나오면서 그녀는 화장실의 거울 앞에서 기계적으로 머리에 빗질을 했다. 거울 속에는, 방금 누군가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들은 얼굴이 있었다.

(p.111)

 

 

"알다시피 나는 경솔한 사람이 아냐. 나는 스물다섯 살이야.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살진 않았지만, 앞으로 당신이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아. 당신은 내 인생의 여인이고, 무엇보다도 내게 필요한 사람이야. 나는 알아, 당신이 원한다면 내일이라도 당신과 결혼하겠어."

"난 서른아홉 살이야." 그녀가 말했다.

"삶은 여성지 같은 것도 아니고 낡은 경험 더미도 아니야. 당신은 나보다 열네 해를 더 살았지만, 나는 현재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뿐이야. 나는 당신이 자신을 천박한 수준, 이를테면 그 심술쟁이 할망구들의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로제뿐이야. 다른 건 문제되지 않아."

(p.133)

 

이 책을 쓸 당시 프랑수와즈 사강은 겨우 스물네살의 아가씨였다고 하는데, 어쩜 사랑에 대해 (시몽의 입술을 통해) 저런 표현들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나는 이 책을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읽었다. 처음에는 그저 연애소설로 치부되었을 이 책을, 현대사회에서는 문학전집의 한 권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100년, 200년 후 세계문학전집에는 과연 어떤 책들이 새로이 포함될까.

 

사강은 노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지금 유일하게 안타까운 것은 읽고 싶은 책들을 다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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