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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평점 :
9월 중순이었던가. 초였던가. 쉬는 날이라 모처럼 친구랑 데이트 약속을 해두고 뒹굴거리면서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아프다고 하신다. 배가 아파 구부릴수도 필 수도 없다고 하면서 울상인 우리 엄마. 위치도 딱 맹장 자리라 혹시나 하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갔다. 우리 집이 있는 소도시에 있는 제법 크고 유명한 종합병원 응급실은 주말 오전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고 우리는 우선 입구쪽 작은 침대에 배치를 받았다. 이런 저런 검사를 받고 CT촬영 순서를 기다리는 사이, 옆 침대에 누워있던 할아버지 얼굴에 하얀 보자기가 씌워졌다. 그렇다. 여긴 삶과 죽음의 경계, 응급실이었던 것이다. 장례식에는 몇번 가보았지만 실제로 사람의 얼굴에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하얀 보자기가 씌워지는 건 처음이라 생판 처음보는 사람인데도 왠지 맘이 먹먹해졌다. 아아-
그리고는 거의 온종일 응급실에서 엄마 옆을 지키려니 팔다리가 배배 꼬이고 어찌나 지루하던지. 병원 매점에 가서 눈요기할 책을 찾다가 이 책을 손에 들었다. 그건, 사랑이었네. 이 책을 손에 들고 링거를 맞으며 한숨 붙이는 엄마 곁에서 뭔가 마음이 뭉클거리고 몽글거리고 불꽃이 팍 하고 점화되는 것을 느꼈다. 중학교 때 처음 읽은 한비야에 비해 지금의 그녀의 글은 훨씬 감성적이 되었고 훨씬 따뜻해졌다. 확실히 나이를 들면 사람은 유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기 얼마전 TV에서 본 그녀는 어쩜 그리고 말을 빨리하고 또 유쾌하고 또 매력적이던지!
그녀의 나이 이제 오십대. 그렇지만 아직도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된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용기와 희망을 보았다. 나도 내 나이 오십에 그렇게 미래를 기대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 마음 한복판에는 사랑을 가득 품고서.
아, 우리 엄마는 그날 수술 없이 무사히 퇴원하셨다. 의사는 맹장이랄 수도, 아니랄 수도 말할 수 없는 굉장히 알쏭달쏭한 상태의 정점에 엄마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CT까지 찍어보았음에도 명확한 판단이 어려우니 집에 일단 가보고 계속 아프면 다시 오라고.
당장 죽을 것처럼 아프다고 하던 우리 엄마는, 다음날 일어나니 괜찮은 것 같다고 병원에 가시지 않았고 그 이후로 한달째 잘 살고 계시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