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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ㅣ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평점 :
나에게 체코 프라하의 이미지는 야경이 아름다운 나라. 관광지로 유명한 나라 정도였다. 나에게 '체코'는 그냥 '체코'였을뿐, 원래 '체코슬로바키아'란 나라였다가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뉘어졌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체코 또한 독일 나치군의 지배를 받았던 불우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가 이번에 알게 되었다.
마치 소설같이 재미나게 쓰여진 이 책은 작가 요네하라 마리의 자전적 에세이다. 그녀는 일본 공산당 간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1960~1964년까지 (10살~14살) 프라하에 있는 소비에트 학교에 다니면서 다양한 나라의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그리스인 리차, 루마니아인 아냐, 유고슬라비아인 야스나와 친하게 지냈고, 이에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1980년대 후반과 1995년에 저자는 그 때 친구들을 찾아나선다.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만을 전전하면서 살아왔기에 고국인 그리스에는 한번도 가본 일이 없지만 항상 고국의 파란 하늘을 그리워하던 리차. 또래보다 조숙하였고 이론지식도 빠삭하여서 '아이가 어떻게 태어나는지'등을 마리에게 처음 알려준 사람도 리차였다. ^^ 늘, 남자는 치아를 잘 봐야 한다고 말하던 리차. 공부하기가 너무너무 싫다고 하면서도 늘 모든 운동에 뛰어났던 리차와 그의 잘생긴 오빠 미체스. 나중에 만난 리차는 넉넉한 체격에 (뜻밖에도!) 의사가 되어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남자를 밝히더니만 서른살 넘어 처음 만난 신랑과 결혼한 순진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냐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친구였다. 그러나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함께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친구였다. 그 아이는 뛰는 폼이 정말 느긋하고 우스워서 '암소'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했다. 아버지는 루마니아 공산당 간부로 어머니는 과시욕이 강한 편이라 집은 궁궐같이 넓었다. 집에 가정부까지 두고 있었음에도 항상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루마니아 일반 시민들은 굉장히 가난하고 고생을 하던 시절이었기에 마리는 아냐네 집안의 그런 점 만큼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친구의 일이라 대놓고 비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마리를 만나보니 영국인과 결혼하여 영국에 살고 있다. 그 사이 아냐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야스나와 마리가 친해진 당시에 유고슬라비아와 일본은 사이가 굉장히 안좋았다. 나라 간의 사이가 어떻든, 우리 둘은 정답게 지내자고 약속했던 야스나와 마리.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나중에 꼭 화가가 될거라고 믿었던 야스나. 늘 모든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던 야스나. 그 아이는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야스나의 나라 유고슬라비아는 여전히 내전이 심각하다. 과연 야스나의 가족들은 무사할까?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동유럽'에 대해 거기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의 역사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했는지 느꼈고 스스로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여전히 우리에게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의 산실로 안좋은 이미지로 남아있지만, 무엇이든 직접 보고 듣지 않은 것에 대해 편견을 갖는 것이란 나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리와 그녀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유럽의 역사에 대해 보다 자세히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여름 러시아에 배낭여행을 갈 때 일이다. 사람들은 다들 그 곳은 여자아이들끼리만 배낭여행가기는 너무 위험하다. 납치범이며, 러시아 군인들을 이야기하면서 위험하다고 말렸다. 나도 자꾸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겁이나서 가지 말까? 란 생각도 했었지만 직접 가본 러시아는 그냥 우리사는 곳과 똑같았다. 사람사는 곳! 게다가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았지만, 대신 회화책으로 더듬거리면서 '즈뜨라스트 부이째'하고 러시아어로 인사하면 반갑게 인사해주곤 했다. 확실히 다른 나라에 비해 공산주의 영향이 남아있어서 사람들이 잘 웃지는 않고 뭔가 딱딱한 분위기였지만 모든 러시아인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러시아인 특유의 넉넉한 식사는 얼마나 좋았는지... 매 끼니 한상 가득 밥상을 차려주던 러시아 민박집 아주머니의 인심이 기억난다. 나중에 러시아어 배워서 꼭 다시 오라고 하셨던 민박집 아주머니!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따뜻한 마음은 가득 느끼고 받아왔다.
내가 러시아를 직접 다녀와서 예전보다 러시아를 훨씬 친근하게 느끼게 된 것처럼 이 책을 통해 루마니아,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친구들을 만나서 이제는 그 나라들이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이 책을 통해 동유럽국가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으면 좋겠고, 많은 사람들이 프라하의 소녀들 이야기를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이 책의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가 올 5월에 돌아가셨다니 너무 아쉽다.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나라에 그녀의 책들이 소개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