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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여고. 이 얼마나 풋풋한 단어일까? 내가 여고를 나와서인지 몰라도, 공학과는 또 다른 풋풋한 느낌이 묻어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여고.
여고에 가면 여고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남고에 남고만의 분위기가 있듯~! 뭔가 재잘거리고 뭔가 통통거리는 그 무언가! 왜 여고생들은 지나가는 개똥만 봐도 웃는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나도 그랬다. 내 나이 열일곱. 열여덟 그 무렵의 나는 온종일 웃고도 모자라 하루종일 웃어댔고, 친구들과 하루종일 붙어있으면서도 뭐 그리 할말이 많았던지.....
그러나 그 당시 우리들도 똑같은 교복속에 감춰진 각자의 생각. 감정. 느낌 등을 얼만큼이나 서로 이해해 주고 있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 소설은 내가 보기에 바로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같은반에 30~40명의 친구들과 생활하면서도 1년동안 말 한마디 안 나눠보는 친구도 생기고, 저런 아이가 있었나? 싶은 친구도 생기는 교실속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총 6개의 챕터로 구분되고, 각각 다른 여자아이를 내세워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번째 이야기에는 단짝친구 다케이, 유즈, 마미코, 기쿠코가 나온다. 기쿠코가 중심 인물로, 전근을 가서 주말부부가 된 엄마 아빠 이야기, 지하철에서 만난 이상야릇한 아줌마에 대한 기쿠코의 심정을 나열하고 있다.
두번째 이야기는 에미와 모에코라는 역시나 단짝 친구 이야기. 위의 아이들과 같은 반이지만, 이야기 중간에 잠깐 슬칠 뿐 서로 별로 친하지는 않아 보인다. 이 아이들은 조금은 꾸미기를 좋아하는 아이들로 늘 방과후에 친구들이 별로 없는 별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양말을 고쳐 신고 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에미가 현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병에 걸리면서 점차 서먹해지게 된다. 이야기 속에서 에미가 왜 정신병에 걸리는 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못내 아쉬웠다.
세번째 이야기는 첫번째 이야기에 나왔던 '유즈'란 아이의 이야기다. 유즈는 엄마와 각별히 사이가 좋아서 엄마와 쇼핑을 가기 위해 학교를 조퇴하기도 하고, 늘 엄마와 친구처럼 지낸다. 그러나 이렇게 엄마와 사이가 좋은 대신 엄마와 아빠는 별로 사이가 안 좋다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날, 유즈에게 다케이의 남자친구가 소개해준 남자친구가 생긴다. 유즈는 처음에는 그냥 그런 느낌이었으나 점차 가까워지게 된다. 고등학생들의 순수한 만남이 예쁘게 소개되는 이야기다.
네번째 이야기는 카나란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카나는 너무 뚱뚱해서 콤플렉스이지만 먹는 것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녹화시켜두었다가 방과후 밤새도록 보는 걸 즐긴다. 매일 새벽 3시경까지 비디오를 보면서 과자등 군것질을 헤대니 살은 계속 찌고 그럴 수록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이러한 카나는 초등학교 5학년 경부터 매일 사탕일기를 쓴다.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매일 독이 든 사탕을 먹이는 것이다. 오늘은 1개. 또 오늘은 10개 이런 식으로...
다섯번째 이야기는 '유코'란 아이의 이야기다. 유코는 어른들이 가령 '언제 놀이동산 갈까?'라고 말하고는 그냥 잊어버리는 것을 굉장히 속상해한다. 당연히 그렇게 말한 뒤에는 정확한 날짜를 정해서 진짜로 가야하는데 어른들은 항상 말만 하고 잊어버린다.
마지막 이야기는 미요란 또래에 비해 조숙한 아이의 이야기다. 미요는 일본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위 원조교제를 하는 아이다. 미요는 오히려 성적인 것에 조숙하여 능숙하나, 미요에게 빠진 스물일곱 청년은 미요에게 중족되어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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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마지막 이야기는 우리 현실과 조금은 동 떨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했고, 이런 이야기를 우리 청소년들이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싶어 걱정부터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현재 우리 고등학교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무조건 아이들은 착하고 순수하다고 믿고 싶어하고 (아이들의 마음만은 그렇다고 믿지만!)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때 한반에 미요처럼 성장이 빠른 아이가 있었다. 어느날 그 아이가 자신의 일기를 야자시간에 자기 자리에 두고 일찍 집에 간 적이 있다. 사춘기 소녀들의 호기심이 그 일기장을 읽게 만들었고, 그 일기장에는 그 아이와 남자친구간의 일들과 그 아이의 솔직한 심정이 적혀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호들갑을 떨면서 놀라워했고, 그 후 그 아이를 멀리 했다. 그때는 부정했지만 거의 왕따를 시켰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러나 어쩌면 그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친구나 어른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