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외교관의 여행법 바람구두 여행문고 1
박용민 지음 / 바람구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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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왜 '별난'이란 수식어를 붙였을까. '***교수의 **여행기'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나온 책처럼 어떤 껄끄러움 같은 게 느껴진다. 이름 하나만으로는 부족한가? 도대체 그 사람의 직함이나 직업 따위와 여행기와는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일단 눈을 끌어야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내용으로 사람을 끌어모을 일이다. 입소문으로 번성하는 맛좋은 식당처럼.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은 이와 같은 사소한 단점을 제외하고는 무척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된다.(여행기가 유익하다? 낮설지 않나?) 좀 거칠게 비유하자면, 햄버거 속같이 이것 저것 적당히 섞어 놓아서 때로는 느끼하고, 재료들이 제 맛 하나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채 한입에 베어 넘어가는 덩어리 같은 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것은 취향 문제일 수도 있겠다. 햄버거와 친한 경우라면, 영화 이야기라든가 여행지에 또 다른 여행지가 겹쳐진 부분 같은 거야 별미의 소스처럼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240) (투구호텔 이야기에 덧붙여)..벨기에를 여행할 때 브뤼헤에서, 방은 여남은 개뿐이지만 주인이 우리를 친척처럼 반갑게 맞아 주던 파트리시우스 호텔은 우리 외할머니의 식탁처럼 정갈했었다. 자동소총 소리 심난하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제일 오래된 호텔이라던 마르나 하우스는 옛 부호의 저택을 호텔로 개조한 곳이었다. 여행이란, 발자국을 객지에 남기는 일이 아니라 마음속에 남기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집약적인 표현에 독자로서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중에 한 곳쯤 다녀왔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잠시 미간에 주름이 인다. 부러움이나 시샘의 다른 표현인가?

이야기에 욕심 많은 저자 덕에 소소한 상식을 낚는 재미도 있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는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심심할 틈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별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는가보다. 

이 책은 크게 미국 여행과 인도네시아 여행으로 나뉘어지는 데, 아무래도 인도네시아편이 더 재미있게 읽힌다. 미국쪽엔 절대 여행 계획이 없는 처지라서 그럴 지도 모른다. 

(240쪽) 늘 느끼는 점이지만, 먼 여행을 떠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치 발사된 총알이 다시 총구를 찾아 돌아오는 것마냥 버겁다

이 부분에 밑줄을 그으며 나는 이 책의 사소한 단점들을 모두 날려보낼 수 있었다. 

(285) 여행의 기록이란, 그것을 읽는 다른 누구에게보다 기록자 자신에게 유익한 양식이 된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이 책은 독자보다 저자의 것이다. 다만 독자로서 욕심을 부리고 싶었을 뿐이다.  

이 저자의 다음 기행문에는 저자의 이름이 크게 박혀있으면 좋겠다. 그냥 박용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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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SE - 아웃케이스 없음
존 카니 감독, 글렌 한사드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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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토요일. 3,4교시는 적응활동 및 자치활동 시간이다. 옆 반에서는 부침개며 떡볶이며 뭘 해먹느냐고 야단들이다. 

"우리도 뭐 해먹어요." 

"흠, 너희들은 말야, 영양 결핍 상태가 아니거든. 영양 과잉 상태야. 그래서 먹는 건 좀 참아줘." 

한 마디로 제압(?)하고, 아이들의 마지못한 환희 속에 보여준 영화가 이 <once>였다. 

줄거리는 생략. 

평소 헐리우드 영화에 심하게 중독된 아이들에게 이런 류의 영화는 잘 먹히지 않는다. 초반의 흥미에서 서서히 멀어져가는, 아니 꺼져가는 아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끝까지 붙들고 있자니 여간 인내심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래도 끝까지 보게 했다. 

영화가 드디어 끝났다. 반응? 없었다. 어서 집에 가잔다. 

once의 의미를 아이들이 한번쯤 생각해볼까? 한 순간의 사랑. 그런 사랑 한 번 해봤어. 음, 한 때였지. 한 순간이었어. 옛날 얘기야. 한 때 그랬어....그래서 애절하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는 것을. 그 한 순간의 사랑의 의미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언젠가 기억해줄까? 

아이들에게 공부란, 콩나물에 물 주는 거라는 말에 늘 공감을 한다. 콩나물에 뿌려주는 물은 절대로 그대로 고여 있지 않는다. 물이 훑고 지나가면 콩나물이 자라듯이 아이들에게 공부라는 것도 결국은 아이들에게 물을 뿌려주는 것이다. 고이지는 않지만 그 물을 먹고 성장한다. (단 썩지 않게 주어야 한다. 옆에 있는 딸아이가 덧붙이는 말.)

영화 한 편으로 두 시간을 때우며 애써 자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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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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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절절이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이다. 비슷한 시기를 살아서인지도 모른다.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수많은 일들을, 한홍구의 글을 통해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꼭 집어서 그게 무엇이라고 설명하기는 힘들겠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것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또 다른 역사의 현장 속에서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살아온 부모 세대야말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거쳐온 분들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우리 세대 역시 만만찮은 시대의 중압감 속에서 한 시대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시대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지만 아픈 일이기도 하다. 

아프다는 건, 종결을 지은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피부로 느끼는 문제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사교육 문제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표현은 딱 한 마디. 속수무책.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도 많다는 나라에서 엉킨 실타래 같은 이 문제를 아무도 풀지 못한다. 기막히지 않은가. 차라리 웃긴다고나 할까. 이 기막히고 웃기는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라고 한다니 우리 모두는 갇혀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은 갇혀있는 섬나라이다. 

p.328 '죄수의 딜레마'라고 게임이론에서 쓰는 말이 있다. 두 사람이 잡혀왔다. 똑같이 부인하면 두 사람 다 3개월만 형을 살면 된다. 나만 자백하고 상대방은 자백하지 않으면 나는 풀려나고 상대방은 6개월을 산다. 둘 다 자백하면 같이 6개월을 산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상대방을 믿고 둘 다 부인하는 게 가장 공평하고 좋다. 하지만 신뢰할 수가 없는 거다. 저 혼자 잘살겠다고 자백하면 나는 부인하든 말든 6개월을 산다. 결국 두 사람 다 자백하는 경우가 많다. 둘 다 징역 6개월 사는 거다. 이 논리가 사교육 시장에도 적용된다...모두 과외를 하면 모두 안 했을 때와 똑같아지는 거다. 

속수무책. 

수수방관. 

지독한 세월을 살고 있다. 우울하다, 지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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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8시 20분 부터 시작된 중학교 3학년 시학력평가는 오후 4시 30분에 5교시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시험과목은 국, 수, 영, 사, 과. 예종이 울리면 교사들은10분간 답안지와 시험지를 배부하고, 학생들이 치르는 실제 시험 시간은 70분씩이다. 가히 수능에 버금가는 중학생용 버전이라고나 할까. 워낙 이런 시험은 돌발적이고 연중행사용이라 한번 심하게 눈 흘기고 지나가면 되는 일이긴하다. 늘 그랬으니까. 그런데 오늘 시험은 너무나도 돌발적이라서 시험을 끝내고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방학을 앞두고 방학 계획을 세우지 않는가. 그때는 말 한마디 없었다.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개학이 되어 학교에 출근하고 교직원 조회에 들어가보니 바로 다음 날이 시험날이었다. 그것도 진짜 성취도 평가가 아니라 진짜 전국실시 성취도 평가를 대비한 모의 학력평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시험의 실제 수준은 어떤가. 이런 시험을 대비하여 시험 때만 되면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영어 시험에서는 늘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고 생각해라. 너희들이 그 많은 단어를 다 알겠느냐. 때에 따라 이 말은 교내 시험을 치를 때,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단어가 들어간 문제를 출제할 경우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오늘과 같은 시험에서는 평소에 내가 하는 이런 말들 가지고서는 약발이 서지 않는다. 차라리 솔직해지는 편이 낫다. 교과서는 별로 시험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너희가 알아서 사교육으로 실력을 끌어 올려라, 라고.  

전교 1~2등을 다투는 녀석에게 물어본다. 시험 볼 만하니? 네, 그저...괜히 물어봤다. 뻔한 대답인데.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대답은 커녕 반응도 없기에 한번 예의상 물어봤을 뿐이다. 선두 그룹에 있는 몇 명에게는 실력을 테스트해 볼 기회가 되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별 의미도 없는 그저 시키는대로 치러야 하는 귀찮고 성가신 시험일 뿐이다. 교육도 1%만을 위한 교육이 되어 가는가.  

마지막 5교시, 교실을 나서려는데  비몽사몽을 오가며 시험을 치르던 앞자리의 한 남학생이 옆 자리의 친구에게 한 마디 툭 던진다. " 시간과의 싸움이다, 오늘 시험은."

몸서리 친 하루였다.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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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여행자 2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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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5. 도쿄의 상점들은 많고 다양하지만 그 모든 상점에 다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코의 상점들은 사람에 따라 접근 가능한 층위가 나뉘어 있다....명쾌하게 그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는 어떤 단계가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그러니까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외국인도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는 가게들이 원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해 있다....일본어를 좀 하는 외국인이 들어갈 수 있는 가게들이 첫 번째 범주 안쪽에 있다....일본어를 유창하게 잘하고 일본의 문화에 정통한 사람만이, 아니 그런 사람조차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가게들이 있는 것 같다.....그렇게 상점 문화의 심장부까지 들어갈 수 없다 해도 어쨌든 도쿄에서의 쇼핑은 상당히 유쾌한 경험이다....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취향과 고집을 가진 인간들이 친절하기까지를 기대하는 것은 본래 무리한 일이다. 오직 도쿄만이 그 예외이다.  
   

롤라이35 라는  카메라 얘기를 길게 할 때는 좀 짜증 나기도 했다. 별로 새로울 게 없다는 생각때문이었고 '책 한 번 쉽게 쓰는군.'이라는 불만도 생겼다. 이 작가가 찍은 사진도 좋지만 그래도 이 작가를 작가이게 하는 것은 결국 글이 아니던가.  

감칠맛 나는 글을 야금야금 읽으며 끝내 손에서 놓기가 아쉬웠다. 짧은 여행이 아쉽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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