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간 도서관에서 맨 먼저 손에 잡히는 책은 여행기였다. 며칠동안 체질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감당하지도 못할 싸움을 치르느라고 적잖이 피곤했었다. 싸우는 일을 무엇보다도 싫어하고 잘하지도 못하는데, 못 볼 것을 본 것마냥 흥분해서 끝장을 볼 때까지 싸웠더니, 오히려 세상이 저만치 나에게서 멀어져버린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싸움이 아니었는데도...

 

어지러운 마음에는 그래도 여행기가  위로가 되지.

 

 

 

 

일단 인도여행기라서 눈길을 끈다. 허나 고작 한 달 동안의 요가수행 경험을 책으로 내다니 ....과감하게 읽었다. 한 문단에서 첫 줄의 한 문장만 읽는 것이다. 필요하다 싶으면 끝 문장도 읽어주고. 흠, 그간 인도에 관한 책을 너무 많이 읽었다.

 

 

 

 

 

 

 

 

 

 

 

소설가 서영은의 돈키호테를 찾아가는 스페인 여행기. 역시 작가라서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곱씹어가며 음미하듯 읽어야 할 문장의 향연. 그러나 출판사 직원인 여행동반자에 대한 태도가 처음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 출판사 직원이 노작가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인물이라도 되는 건가, 이건 여행동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싶다. 여행동반자에 대한 불평불만이 궁금해서 끝까지 이 책을 읽고 싶었으나...더 눈 길을 끄는 책이 있어 과감히 손에서 내려놓았다.

 

 

 

 

 

 

 

여행으로 치자면 이 책만큼 발품이 많이 들어간 책도 흔치 않을 터이다. 이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다. 그래서인지 엄살도 과장도 없고 함부로 자랑하지도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지 여행도 하고, 다큐멘터리 작업도 하는 직업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 정해진 대본이 없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자연다큐멘터리가 다른 장르에 비해 힘든 이유이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자연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는 저자의 말처럼 세상의 오지가 남아 있지 않은 시대에 그래도 모험다운 모험을 할 수 있는 '오지 다큐멘터리 전문PD'야말로 이상적인 직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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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 내내 눈물이 나와서 혼났다.

분노인지 감동인지 모를 눈물.

 

극장을 나오면서 남편이 한마디 던진다.

"더러운 놈들"

나도 던진다.

"더러운 새끼들"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꼭 보여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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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동창 중에 '동문'이라는 남자 아이가 있었다.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

 

그 친구의 아버지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건, 예전 6.25 때 거제도 수용소에 있었다는 것과 그 후 정신이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중이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그래도 자주 뵐 수 있었는데 그 당시 내 주위에서는 흔하지 않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배움이 짧았던 우리 부모보다 더 많이 배우고 게다가 어엿한 선생님을 어머니로 둔 친구는 그야말로 흔치 않은 일이어서 한때는 그 친구를 경외의 눈길로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어머니가 우리 집에 자주 찾아왔던 건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어엿한 직장인이었지만 월급만으로는 남편 병수발과 자식들 부양하기가 퍽으나 힘들어서 늘 궁핍한 생활을 면하지 못했다.

 

이 동창녀석은 나보다 한 살 많은 우리 오빠와 자주 어울렸기에 이따금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게중에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도 있었다. 이를테면 유부녀와 동거했었다는 따위는 막 2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어쩌다가 녀석이 우리집에 와서 밥 한 끼를 청했을 때 나는 모질게 거절했었다.

 

그러고 세월이 흘러 30대에 접어들 무렵인가, 그 후인가. 이 동창녀석의 비보를 들었다. 철로에 뛰어들어 숨졌다는.

 

그렇게 생명을 포기하기까지 녀석이 겪었을 고통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밥 한 끼 해주지 못하고 모질게 거절했던 일, 따뜻한 위로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일...'나'라는 인간은...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욕 먹고 적당히 무시하고 적당히 생각해주는 척하며 끝까지 악착같이 살아 남아야지, 친구야!

 

   그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이른바 '인간'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단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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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행 - 체 게바라로 난 길, 시사만화가 손문상과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의 좌충우돌 70여 일 남미 여행기
박세열.손문상 지음 / 텍스트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먼저 보고 읽는 게 순서일 듯. 체 게바라를 따라가는 지난하고도 뜨거운 여행을 톡톡 튀는 문체로 가득 담아냄. 뜨거운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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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공단
마영신 지음 / 새만화책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천의 남동공단에 위치한 한 병역특례업체에서 3년 간 대체복무했던 분이 그린 만화책이다. '이 만화가 공장 노동자의 이야기라고 해서 어떤 목적을 위해서 만든 만화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두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그저 공장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작품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지 싶다.

 

남동공단은 내게 아주 익숙한 지역이다. 우리 앞집 아저씨도 이곳에서 일하고, 눈 인사를 주고 받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도 이곳으로 일 다니고, 또한 학부모 중에도 여럿 있으니 나와는 아주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늙수그레한 아저씨들을 보고 있자니 주변의 여러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도 분명히 이곳에서 일하게 될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작년 가을에 이 책을 신청해서 학교도서관에 들여놓았는데...아무도, 그 어느 학생도, 이 책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가보면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만화책 삼매경에 빠져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절대로 손 한번 대보지 않는다. 노동자로 살아갈 아이들이고, 노동자를 부모로 둔 아이들인데도 말이다.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으면 누군가는 보겠지 싶었는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게 도서관에 갈 때마다 확인되어 좀 씁쓸하다.

 

아이들만 탓할 것도 아니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우리 삶과는 동떨어진 개구리왕자 같은 동화를 그것도 영어책으로 소개하고 있으니 아이들에게 무슨 현실감각이 생기겠나.

 

책을 제대로 읽히는 게 참으로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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