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환자들로 붐비는 단골의원은 대기 시간이 평균 1시간이나 된다. 어쩌다 날씨가 궂을 경우 그나마 환자가 적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단축되지만 그것도 예상할 수 없다. 이 의원의 의사는 친절하고 상냥한 성품이고 늘 성실한 모습이어서 절로 신뢰감이 드는 분인지라, 내가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단골로 삼고 있다. 심지어 멀리 다른 곳으로 이사간 후에도 병원만은 이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나도 20년 넘게 이 의원을 친정 출입하듯 드나들었다. 나중에는 남편까지 이끌고.

 

익숙한 병원 풍경 하나. 1시간이나 순번이 오기를 기다리다보면 대기실엔 늘 말끔한 양복차림의 젊은 남성이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때는 두 명씩이나 눈에 띄는데 한눈에 보아도 환자는 아니다. 아니나다를까. 칙칙하고 지루한 낯빛의 환자들을 제치고 이들은 다음 진료차례를 나타내는 모니터에 이름도 오르지 않은 채 어느 순간 진료실로 들어가는 특혜를 누린다. 틀림없이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다.

 

10년도 훨씬 이전, 얼떨결에 고혈압 환자가 되었다. 혈압이 높으니 몸무게를 5kg정도 줄여서 혈압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당장은 괜찮아도 나중엔 합병증으로 고생하게 된다기에, 몸무게를 줄여볼 생각은 해보지도 않은 채 덜컥 약을 먹기 시작했다. 고도비만도 아니고 약간 표준 체중을 넘은 정도에서 몸무게를 그 정도 줄인다면 혹여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몇 년 후엔 중성지방이 높다하여 그 약까지 복용하게 되었다. 약만 처방하는 친절하고 상냥한 단골의사만 믿고.

 

친절함. 언젠가는 남편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남편이 혈액검사를 받기 위해 옆 방으로 가게 되었다. 진료실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나는 남편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채 첫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대기실로 가시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날은 내가 환자로 온 게 아니어서 나를 상대할 의무가 없음을 상기시키는 행동이었다. 순간 20여 년 간의 신뢰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환자는 그저 의약 소비자에 불과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러면 당신은 그저 약만 처방하는 전문가? 제약회사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우리 몸에 불편한 증상이 생겨 병원에 가면 현대 의학은 약을 주거나 수술을 권합니다. 저 역시 처음 진료를 하면서 선배들에게 배운 노하우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을 많이 만들어내야 병원 운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중보건의를 하던 시절에 공중보건의협회에서 주관하는 고혈압 유병률 조사에도 참여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소리 없는 살인자, 고혈압'이라는 조금 무서운 표현을 써가면서 마을 회관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혈압을 재준 뒤 조금 높게 나온 주민들은 다시 보건지소로 불러 재검한 다음 계속 혈압이 높으면 약을 처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고혈압이 사람을 죽이는 질병이라고 교육한 뒤 보건지소에 오게 해서 혈압을 잴 때는 누구도 편안한 상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즉 상당한 불안감을 안고 왔을 때에는 당연히 혈압이 올라가 있을 터이고, 그것이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그런데도 이제부터 당신은 고혈압 환자라고 이야기해주고 앞으로 평생 약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습니다.

 

현대 의학의 대증 치료를 하는 병원은 환자가 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이유로 환자를 만들어낼 궁리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건강교육을 할 때 우리나라 병원은 전 국민이 약을 먹는 그날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모든 국민이 건강해지면 망하는 것은 병원이고 제약 회사일 것입니다.

 

 

두 달 전. 대체의학, 통합의약으로 불리는 자연치유에 기대를 품고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로 장 해독과 영양보충을 핵심으로 하는데 물론 전반적인 식습관을 새롭게 바꾸어야 했다. 그 맛있는 남이 해주는 직장의 급식도 끊었다. 급식 뿐 아니라 그간 오랫동안 복용했던 혈압약도 고지혈증약도 다 끊었다. 약을 끊은 후, 혈압은 그럭저럭 정상 범위에 머무는데 직장에서 혈압을 재면 조금 올라가는 수준. 딱히 걱정할 정도는 아니란다. 빨간색으로 표기되었던 염증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아직도 빨간 수치가 몇 개 더 있다. 혈압약 끊은 것만 해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내 마음도 내가 모르는지라. 이러다가 어느 순간 옛시절로 돌아가 이 약 저 약 먹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양심적인' 의사들이 써내려간 이와 같은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죽을 때 죽더라도 돈에 휘둘리는 한낱 의약품 소비자로 남아 저들의 배를 채워주고 싶지 않다.

 

 

증상이 심해지면 다들 큰 병원으로 가서 좀 더 정확한 값비싼 검사를 받고 진단명을 받아 들게 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약물 투여가 시작됩니다. 진짜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말입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약이 있을까요? 저는 단 한 가지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우리 몸은 스스로 증상을 일으키고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따르는 것이 선행될 때, 단 한 알의 약이라도 체내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게 될 것이고 그래야 건강해집니다.(중략)

그러기 위해서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부터 없애야 합니다. 질병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므로 질병이 생겼을 때 병원에 반드시 가야 할 필요도 없고 약을 먹어야 할 일들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몸에 불편한 증상이 생겨 병원에 가면 이런저런 약을 처방해주면서 꼭 챙겨 먹어야 한다는 소리를 합니다. 더 나아가 약을 안 먹으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도 따라붙습니다. 결국 몸이 나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환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중략)

질병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내가 만든 질병을 누가 고쳐야 하겠습니까? 나 외에는 그 누구도 어떤 물질도 질병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불치병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불치의 습관이 있을 뿐입니다.

 

아프다니까 내 주위에서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용은 소위 명의를 찾아 유명 대학병원으로 가보라는 것이다. 이게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반응들이다.

 

두 번째 밑줄. 어느 병원의 의사가 꼭 저랬다. 약을 꼭 먹으라고. 약국의 약사는 신이나서 말했다. 평생 먹어야 한다고.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의심하면서 살아야겠다.

 

아직도 크론씨병을 검색하면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나옵니다. 제가 의과대학에서 배웠던 내용을 지금도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원인을 모를까요? 어쩌면 알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환자가 계속 약을 먹고 그러다 증상이 심해져서 수술까지 하게 되면 병원으로서는 나쁜 일이 아닐 테니까요.(중략) 원인을 모른다고 하면서 약물만 처방하는 병원을 다녀서는 절대 치유될 수 없습니다. 미 병은 본인이 만든 병이어서 본인만이 치유할 수 있는 것이므로 올바른 방법만 안다면 약을 먹거나 수술할 필요가 없는 질병입니다.

제가 이런 내용을 제 블로그에 써놓았더니 어떤 분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전파해서 환자들이 따라 하다가 잘못될까 두럽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마 제 글을 읽고 따라 했을 때 가장 두려운 쪽은 환자가 아니라 약과 수술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라고 했는데 먹는 것만 바꿔도 낫는 질병이니까요. 우리 몸에 생기는 질병은 분명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이제 의사를 판단하는 기준이 생겼다. '원인'을 분명히 말해줄 수 있는 의사가 좋은 의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블로그

http://dr.ottuk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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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수준에서 가르치는 영어의 무성음

 

p, t, k, f, s

 

설명하기 쉽게 '프트크프스'로 발음하면 아이들은 대강 이해한다. 물론 무성음/유성음을 지루하게 설명하는 건 쥐약. 기본적인 무성음만 구분해도 단어끝에 이어지는 -s, -es 발음을 잘 할 수 있으니까.

 

이 무성음을 가르치다가 좀 더 쉽게 외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함께 고민하다가...

 

p ..팬

t .. 티가

k..커서

f...프리

s..사이즈...가 돼버렸다. '팬티가 커서'까지는 내 입에서, '프리사이즈'는 어떤 아이 입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배우는 즐거운 수업이었다. 함께 웃어주는 아이들에게 무한감사.

 

그런데 한 녀석 왈,

 

"이거 배워서 뭐해요?"

 

"제대로 써먹기 위해서지."

 

언젠가는....이 말은 안했다. 학원에서는 이런 거 안 배운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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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4-22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업 분위기 좋고 죽이 잘 맞는 사제지간이군요.

nama 2017-04-23 09:15   좋아요 0 | URL
이런 수업은 절대로 흔치 않다는 게 좀 슬프달까요.
 

조병식원장이 운영하는 자연치유아카데미의 추천도서. 건강한 사람에게도 언젠가는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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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 일

 

앉은뱅이 책상 위 날달걀 두 개

한 개 입에 털어넣자

미끄덩

세상 밖으로 툭

나왔다나

내가

 

겁도 없이

 

혼자

탯줄 자르고

혼자

씻기고

 

미역국은 엄마 몫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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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맨즈 독 One Man's Dog
조지수 지음 / 지혜정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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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적잖은 책을 구입했는데 읽다가 한쪽으로 밀어놓은 책이 한두 권이 아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던, 책을 쓴 분들의 노고를 모르는 건 아니건만, 내 어수선한 마음을 붙잡아주지 못하는 책들이 너무나 많았다. 내 게으름도 물론 무시할 수 없지만.

 

조지수라는 필명의 작가가 쓴 이 책은 나의 게으름은 물론 피곤으로 찌든 정신을 무릅쓰고 단숨에 읽도록 하는 마력을 지녔다. 꼭지마다 그러니까 주제마다 색깔을 달리해서 웃길 때는 웃기고, 진지할 때는 진지하고, 엄숙할 땐 지극히 엄숙하면서도, 매우 지적이며, 삶의 깊이에서 우러나는 통찰력이 번득이고.....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버벅거리고 있는 건가, 지금. 짧게 말해서, 옥석이 있을 때 이 책은 단연 '옥'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것도 '진짜' 옥.

 

그러나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나는 책 소개에는 좀 야박한 편이다. 일단 완독으로 족하고, 길게 쓸 만큼 마음이 한가롭지도 않다. 해야 할 일에 늘 발목이 잡힌 상태이기도 하고. 이미 잠들 시간이 지나서 눈이 아파온다. 다행히 주말이지만, 오늘은 시험 출제에 전력을 기울이느라 수고가 많은 하루였다. 핑계를 용서하시길.. 성의 없는 글도 양해하시길...

 

갈피마다 의미있고 재밌는 부분이 많은데 유독 내 눈에 들어오자마자 호흡을 멈추게 한 문장이 있었으니,

 

나는 심지어 내 묘비명에 '직업을 잘못 택한 사람 여기 잠들다'라고 써주기를 요청했다. 내 기질은 탐험가, 모험가 등에 어울린다. 아니면 관광 가이드에 어울린다. 얌전하게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은 내 본령이 아니었다.                                                     <나의 차>에서

 

ㅎㅎㅎ 내 얘긴줄 알았다고나 할까.

 

삶의 의의 중 가장 커다란 하나는 자신의 행불행을 스스로의 손아귀 안에 쥐는 것이다. 운명이 주는 불운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자기 단련의 소홀로 생기는 불행은 막을 수 있다. 이것은 외재적 행복의 추구에 의해 획득되지 않는다. 내재적 만족에 의해 획득된다.

                                                                                                <지성의 이익>에서

 

 

효자 자식은 부모가 만든다. 마찬가지로 존경하는 젊은이는 우리가 만든다. 존재하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하려면 그 존재 자체가 의미 있고 행복해야 한다. 이것은 세상에 대해 더 힘을 지닌 기성세대가 할 일이다.(중략) 젊은이들은 기억조차 못할 아득한 시절부터 '노인을 공경하라'고 세뇌되고 교육된다. 기억도 못할 시기에 심어진 관념은 일생에 걸쳐 마비적 효과를 가진다. 그리고 자신이 늙으면, 존경받을 이유가 위에 제시된 어떤 것('노인네들이 더 지혜롭다거나, 더 오래 살았다거나, 더 신중하거나, 먼저 살았기 때문')에도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자신이 기득권자가 되는 것이니 그 속임수를 그대로 쓰기로 자신과 타협해버린다. 그러니 노인공경은 계속적으로 속고 속이는 협잡이다. 협잡질이 우리 효의 근원이다.                            <노인 공경의 이유>에서

 

 

 

이 책은 이런 소개가 무의미하다. 직접 읽어봐야 한다.

 

 

* 이 책은 중고서적이 아닌 새 책을 신청하고 구입했는데 배달된 책은 아무리봐도 새 책이 아니다. 책 밑면에 깨알같은 보라색 동그라미 도장이 두 개 찍혀 있고 무슨 액체가 살짝 묻은 흔적이 남아 있다. 책 겉장의 오른쪽 귀퉁이도 살짝 들려있다. 어디 책을 한두 번 구입해보나. 척 보면 새 책인지 헌 책인지 구분 못할까나. 이걸 '옥의 티'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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