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토마토농장 근처를 산책하다가 당도가 매우 높다는 끝물 토마토를 얼떨결에 구매했었다. 주인 말대로 토마토는 그간 내가 먹어본 중에 최고의 맛이었다. 그후 대저토마토(짭짤이)의 맛에 잠시 넋이 나가긴 했으나 그 끝물 토마토에 미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도.

 

문제는 사들고 온 토마토의 양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나. 아니다. 잉여농산물에서 요리가 나온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우선은 음식을 만들기 전에 재료가 풍부해야 한다. 풍부한 재료를 앞에 두고 있으면 저절로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하여튼 토마토가 상하기 전에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했다. 그때 어떤 동료가 고기를 볶을 때 토마토를 넣으면 맛있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고기는 잘 안 먹으니 그건 아니었고 마침 집에 감자가 상자째 모셔져 있었다.

 

감자조림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으나 고추장을 넣은 감자조림이나 간장 감자조림 등을 딱히 맛있게 먹은 적도 없던 터였다. 그래도 감자가 있고 토마토가 있으니 뭔가를 만들어야 했다. 냉장고에 있는 빈약한 재료를 모두 활용해보기로 했다.

 

감자, 토마토, 청양고추, 마늘, 매실 추출액, 들기름, 월계수잎. 고추장.

 

이 재료들을 순서 관계없이 생각나는대로 꺼내어 한꺼번에 넣고 조려보았다. 맛은? 의외의 맛이 나왔다. 매콤 달콤한 스파게티 소스 맛이 물씬 풍기는 감자조림이 탄생했다. 이 토마조감자조림으로 비로소 음식 만드는 엄마의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해 여름 내리 감자 두 상자를 토마토감자조림 해먹는데 소비했다. 물론 먹을 때마다 식구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올 여름에도 여전히 토마토감자조림을 먹고 있다. 매년 먹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릇 바닥에 고인 국물까지 싹싹 비워내고 있다. 밥 비벼서 먹으면 그대로 꿀맛이다. 물론 늘 소박한 밥상이다보니 먹을 게 별로 없어서일 수도 있다. 허나 반찬이 없다고 해서 맛없는 반찬을 맛있게 먹을 수는 없으니 인정해줄 것은 인정해주는 게 좋겠다.

 

이 조리법을 동료에게 전파했더니 토마토감자조림 덮밥과 토마토감자조림 스파게티로 응용되기도 했다.

 

살다보니 어쩌다가 이런 음식을 만들기도 했으나 나는 요리따위는 아무래도 좋기에 요리다운 요리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소박하게 끼니를 때울 뿐이다. 마트에도 자주 가지 않는다. 그러니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를 애초부터 차단시킨다. 요리보다 책 읽기가 훨씬 재밌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국내산 살구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시큼하고 텁텁하면서 도대체 과일즙다운 촉촉함은 어디에 숨었는지. 그러니 내 돈 주고 사먹기 보다는 대부분 그냥 어디선가 얻어먹은 기억뿐이다. 어쩌다 사먹어도 끝까지 알뜰하게 먹지도 않았다. 살구는 내게 제일 맛없는 과일일 뿐이다.

 

농산물도매시장에 갔더니 살구 한 바구니를 2,000원에 팔고 있었다. 아무리 맛없는 과일이지만 너무나도 저렴한 가격이라 일단 구매의욕이 당겼다.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살구는 집에 도착하니 이놈저놈이 물러터져서 비닐봉지 안에 진물같은 즙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쩌나.

 

잠시 고민 끝에 잼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대강 세척 후 씨를 발라냈다. 씨는 깔끔하게 떨어졌다. 살구에게도 예쁜 구석이 있었다. 씨를 발라낸 과육을 과도로 대충 자른 후 냄비에 넣고 설탕을 퍼부었다. 비율? 마음 내키는대로.

 

한참을 저었더니 되직해졌다. 잠시 식힌 후, 미리 열탕 처리로 살균한 빈 유리병에 담아냈다. 끝.

 

그렇다면 맛은? 감히 말하건대 모든 과일잼 중에서 살구잼이 으뜸이다. 새콤하면서 달콤한 맛이 입맛을 돋구어준다. 살구잼 발라서 토스트 먹을 생각을 하면 아침 식사가 기다려진다. 상큼한 살구잼 덕분에 하루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다. 과일잼에서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리.

 

 

위의 사진은 세 번째 만든 살구잼이다. 요즘은 살구가 끝물이라서 눈에 띄기만 하면 일단 사고본다. 아파트 단지내에서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살구라도 줍고 싶은 심정이다.

 

 

국내산 살구는 맛이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외국산은? 외국산이라야 내가 먹어본 것은 북인도의 히말라야 일대에서 먹어본 게 유일한데 그곳의 살구는 확실히 맛이 좋았다. 살구가 맛있는 과일이라는 것을 그곳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살구가 유명한 동네여서 살구로 만든 화장품, 살구잼 등도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히말라야산 살구잼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기억이 없다. 날로 먹는 살구보다 맛이 덜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살구잼이라면 단연 맛이 없는 국내산으로 만든 살구잼이 최고다. 그렇다면 과일잼은 맛이 없는 과일로 만들어야 더 맛있는 건가? 모를 일이다. 히말라야에 가게 된다면 살구잼을 만들어서 비교해보리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07-16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6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8-07-16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두나 천도복숭아는 좋아하는데, 살구는 맛있게 먹은 기억이 저도 없어요. 하지만 가끔 살구쨈을 먹으면 제가 먹던 과일이 맛을까?하는 생각을 하곤했는데 이렇게 nama님이 직접 만드신 살구쨈을 보니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nama 2018-07-17 07:09   좋아요 0 | URL
그냥 살구와 살구잼은 확실히 달라요. 제가 한번 빠지면 그것만 하게 되는데 올해는 살구잼에 젖어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직접 만든 게 훨씬 맛있어요.
 

 

인공 냄새 물씬 풍기는 인천송도의 센트럴파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공원. 이 공원 때문에 이사할 생각을 못한다.

 

 

 

레드클로버. 제이슨 윈터스 tea의 원료로 쓰인다.

 

 

 

 

해당화 열매.

 

 

 

 

 

 

 

 

 

 

 

 

나문재

 

 

 

퉁퉁마디. 함초라고도 한다.

 

 

 

 

 퉁퉁마디 - 소금처럼 짠맛이 난다.

 

 

 

 

나문재

 

 

 

 

 

 

 

 

 

 

위성류...나무 이름이 난해한 듯...

 

 

 

 위성류

 

 

 

 

나비에 대해선...모르지요.

 

 

 

 

 

 

 

 

 

 

 

 

 

 

 

 

 

모감주

 

 

 

모감주

 

 

 

 

박주가리. .... 이름은 저래도 향이 고급스럽고 우아하다.

 

 

 

 

좀작살나무 

 

 

 

여름 갈대밭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와같다면 2018-07-07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을 불러준다는거.. 좋네요

nama 2018-07-07 20:27   좋아요 0 | URL
이름을 불러주면 좀 더 가까워져요.^^

2018-07-08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8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이여, 걸어라 - 걷는다는 것 혹은 나를 만난다는 것
조은 지음 / 푸른숲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어떤 공간을 화두삼아 걷는 행위는 구도와 맞닿아 있을까? 구도가 거창하다면 혼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정도?

 

이 책은 경주 남산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쓴 조은의 산문집이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그냥 빌려보기 아까운 책이다. 시인의 책은 빌리는 게 아니라 구매해야 한다는 걸 기억하고자 한다.

 

촘촘하고 내밀한 글이다. 그저 몇 문장 옮겨쓰고 마음에 되새길 뿐이다.

 

   삼체불 앞에 앉아 언젠가 한 성직자로부터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은 어떤 경우든 불쌍해 보여야 한다"던 말. 불쌍해 보인다는 것은 힘의 피라미드에서 자신이 가장 아랬부분에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이다. 불쌍한 척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것은 그가 정말로 겸손하지 않기 때문이며, 남을 불쌍히 여기는 타인의 선한 마음을 이용하여 더 '큰 것'을 낚아채려는 계산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처음 그 말을 듣던 순간, 나는 한동안 멍해졌다.   -109쪽

 

어디선가 읽은 글이 떠오른다. 중국의 누구였더라. 유명한 학자인 이 분이 대학 총장으로 있을 때, 어느 날 대학 교정을 걷고 있었다. 마침 갓 입학한 신입생 한 녀석이 짐을 한 꾸러미 끌고 가다가 갑자기 어떤 볼 일이 생겨서 짐을 맡겨야 할 상황이 되었다. 마침 옆을 지나가는 허름한 할아버지에게 그 짐을 맡아달라고 하고는 몇 시간 후에야 나타났다고 한다. 짐을 맡아준 할아버지는 말없이 짐을 그 청년에게 주고는 유유히 사라졌다는데 나중에서야 그 할아버지가 그 대학의 총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이 분이 누군지 아시는 분은 말씀해주시길...)

 

 

..해야 할 공부와 밀려드는 일이 많아 멈춰야 할 시점을 놓치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고 젊은 그가 진지하게 걱정하자, 더 힘차게 활개를 펴라는 뜻으로 피디인 그가 말했다.

 

   "넓어져야 더 깊어질 수 있어."

 

   더 넓은 세계를 확보해야 더 깊이 내려갈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나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스스로 순수성을 지켜낼 수 있는 세계, 이를테면 한 우물만 파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좁은 세계에 갇혀버린 내게 그의 말은 아포리즘이 되어 메아리쳤다. 왜 그걸 몰랐을까. 우물을 파도 넓게 터를 잡고 파야 깊은 물을 끌어올릴 수 있고, 세계관이 넓을수록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넓은 세계관을 갖고 큰 우물을 팔 수도 있었는데, 이 나이가 되도록 그러지 못했다는 뒤늦은 후회로 가슴이 아팠다.  -202쪽

 

 

한 권의 책에서 가슴을 치는 한마디만 건져도 만족스럽고 책 읽은 보람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책을 매우 잘 읽었다. 고마운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8-07-06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어요.
제목이 마음이여 걸어라. 발이 걷는 동안 마음도 움직이니까, 마음이여 걸어라 그랬나봐요.

nama 2018-07-06 12:20   좋아요 0 | URL
실은 며칠 전 hnine님 글을 읽고 시인 조은의 시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저 책이 눈에 들어와 읽게 되었어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