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에 찍은 사진과 비교하려면 → http://blog.aladin.co.kr/nama/10078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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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7 0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동 봉정사, 부여 무량사에 이어 이번에는 순천 선암사에 다녀왔다. 이게 모두 유홍준 교수의 책에서 비롯되었다. 얼마 전 생일을 맞은 내 친구(A)가 있었다. 친구의 생일 선물로 유홍준의 <산사 순례>를 선물했는데 이 친구가 이 책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했다. 그럴줄 알고 선물했지만 막상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물한 책을 나중에 빌려달라고 하는 건 도리가 아니어서 결국 내 것으로 한 권을 샀다. 그리고 며칠 후 포도밭집 딸인 친구(B)네 갔는데 시중에서 보기 힘든 귀하디 귀한 포도를 한 상자 안겨주기에 낑낑대며 집으로 들고왔다. 내년에 또 맛있는 포도를 얻어 먹을 욕심에 이 친구에게 두 권의 책을 보냈는데 그중 한 권이 <산사 순례>였다. 친구 C가 있다. 미혼인 C는 주중엔 직장에 다니느라 바쁘지만 주말엔 불러내주면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는 친구다. 그리고 나, D. 우리는 모두 같은 중학교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 우리 중에 불교 신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게 또 하나의 공통점이다. 심지어 A는 독실하다 못해 뿌리까지 깊은 4대를 잇는 천주교 신자이다. 이렇게 넷이 기차를 타고 순천 선암사로 향했다.

 

그런데 선암사가 어떤 절인가. 선암사에 관한 책을 보면 하나같이 칭찬에 칭찬을 보태고 거기에 주관적인 감정까지 더해져 이곳에 가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조장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각인되는 곳으로 되어버린다. 처음으로 불을 지핀 분은 건축가 승효상이시다.

 

 

 

 

 

 

 

 

 

 

 

 

 

'솔직히 말해 나는 한국의 수많은 절집들 중에서 이 선암사 가보기를 제일 좋아한다. 부석사의 사무치는 그리움도 감동적이지만 건축을 하는 나에게는 그런 애잔한 감정을 마냥 좇을 수만은 없다. 건축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선암사를 좋아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사찰의 원형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는 데 있다.(중략)그러나 이 선암사는 여전히 산사의 고졸한 원형을 보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월이 갈수록 위엄이 더해 가면 우리에게 경건과 침묵의 아름다움을 일깨우고 있다.'

 

선암사가 원형을 보전하게 된 연유가 유홍준의 책에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읽다보면 머리가 조금 복잡해지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같은 내용이지만 좀 간단하게 정리한 책을 찾자면 김봉렬의 다음 책인 것 같다.

 

 

 

 

 

 

 

 

 

 

 

 

 

'남한에 있는 사찰 가운데 19세기 이전에 조성된 사찰은 대략 1,000여 개로 추정하고 이들을 보통 고찰이라 부른다. 1,000개 가운데 99%는 모두 조계종 산하의 사찰이고, 제2종단인 태고종은 단 두 개소의 고찰만을 가지고 있다. 본산인 서울 신촌의 봉원사와 순천의 선암사. 그나마 선암사의 법적 주인은 조계종이기 때문에 봉원사만이 태고종의 유일한 고찰이다.'

 

현재의 재산관리는 순천시장이 맡고 있다고 하며 조계와 태고 두 종단의 소유권 소송이 아직도 법원에 계류중이라고 한다.

 

'조계종도 태고종도 순천 시장도 어느 누구도 섣불리 새로운 불사를 벌일 수 없었고, 마음대로 기존의 건물을 헐어버릴 수도 없었다. 선암사의 모든 건물과 토지에는 '가처분'이라는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다. 다른 고찰들은 기존의 질서를 허물고 새로운 건물들을 신축하는 열풍에 휩싸였지만, 선암사만은 어떤 건축적 변화도 일어날 수 없었다. (중략) 최후로 남은 고찰,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사찰이 될 수 있었다.'

 

 

승효상은 선암사를 '수도자의 도시'라고 부른다. 설명을 읽어본다.

 

'선암사 경내의 모든 건물군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고유한 공간을 만들며 뚜렷한 성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선암사는 일개 사찰이 아니라 수도자들을 거주민으로 가진 도시였다. 그래서 다른 절과는 달리 건물들이 중심 시설인 대웅전의 축을 따르지 않고 죄다 다른 축을 가지고 다른 중심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 건물군이 없어져도 선암사는 그대로이며 한 부분이 덧대어져도 그 역시 선암사인 것이다. 부분이 전체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 도시이다. 그렇다면 이는 그야말로 다원적 민주주의의 도시 모습이 아닌가.(중략) 선암사는 건축이 아니라 작은 도시이다. 몸을 닦고 영혼을 닦는 수도자의 도시인 것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심검당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중략) 이 각기의 건축들이 죄다 보물 같은 건축 공간을 만들고 있다. 예컨대 대웅전의 서편에 있는 설선당이나 그 앞의 심검당 혹은 창파당 같은 요사채는 대개 2층 혹은 3층의 단면구조를 가진다. 이 단면의 비례는 외부와 충분히 격리된 느낌을 가질 정도라, 가운데 있는 마당만이 유일하게 하늘과 통하여 외부와 연결되는 장소이다. 수도자로서는 더없이 용맹정진할 수 있는 공간인 이 마당을 중심으로 아래층에 승방이 배치되고 위층에 곡식을 저장하거나 휴게의 용도로 쓰이는 공간을 두고 있는데, 때로는 벽으로 막히고 더러는 뚫려 있는 공간의 전개 수법이 탁월하다.'

 

 

바로 이 공간이다.

 

 

이렇게 길게 인용하고 되새기는 건 나를 위한 것일 수 있다. 보고도, 읽고도, 제대로 보는 안목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가 갈아신었던 흰고무신. 아둔한 내 눈에는 오히려 신발장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심검당 입구. 밤 8시 20분 경에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니 일찍 잠자리에 들라던 담당 보살님(?)의 말을 들었지만 왠지 밤새 경내를 서성이고 싶었다.

 

 

 

 

다음 날 새벽 3시 40분 아침예불에 참여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대나무 걸대에 옷과 수건을 널고.

 

 

 

 

저녁 예불 시간

 

 

 

 

절에서 묵어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경내 저 구석에 숨어 있는 공간, 산신각이다. 산신각은 민간신앙이 흡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맞는 말이겠지. 딱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좁디 좁은 공간이다. 저 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간절히 기도하면 무슨 소원이든 이루어질 것 같다.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뒷자태가 고운 이 건물은 무엇일까요?

 

선암사하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기로 유명한 뒷간의 뒷모습이 되겠다.

앞모습과 내부는 이미 올린 바가 있으니 보시거나 말거나....

 

 http://blog.aladin.co.kr/nama/8176471

 

 

 

선암사하면 또 유명한 게 홍매화인데 '선암매'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상상력이 필요한 사진이다. 저 마른 가지에 홍매화가 피었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언젠가는 내 저 홍매화를 보러 가리라.

 

 

 

 

구멍 숭숭 뚫린 마음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은목서'라는 나무의 꽃.  버터에 향수를 버무린 듯한 묘한 꽃 향기를 낸다.

 

유홍준 교수의 글이다.

 

'선암사는 1년 365일 꽃이 없는 날이 없다.(중략) 학교 선생이라는 직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의 하나가 학생들 이름을 외우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름 외우기가 힘들어지는데, 그래도 애써 외우고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는 까닭은 학생들 이름을 알고 가르치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은 교육의 내용과 효과가 매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나무마다 이름을 말해주지만, 나의 학생들은 그것을 별로 귀담아듣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장담한다. 두고 봐라, 너희도 나이가 들면 반드시 나무를 좋아하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니, 그때 가서는 반드시 나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유홍준 교수의 선암사편 글 중에서 제일 이해하기 쉬운 부분이다. ㅎㅎㅎ

 

 

 

절집이 아무리 의미가 깊어도,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가슴을 울리고 눈물나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아침 산책을 이끌었던 등명 스님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내 말을 제일 안 듣는 사람이 바로 나예요."

 

많은 말씀 중에 이 한마디가 가슴에 절절하게 와닿았다.

 

마무리 시간. 스님께서 노래 한 곡을 불러주셨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라는 찬송가였다. 노랫말이 또 가슴을 친다.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도 감사....거절도 감사. 슬픔도 감사...어느새 눈물이 핑 돌았다. 스님의 노래가 이번 선암사 템플 스테이의 하이라이트이자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벅차 올랐다. 순간 누군가 '앵콜'을 외친다. 그동안 우리를 지도했던 담당보살님의 외침이었는데 스님이 슬쩍 눈짓을 하신다. '그만 두시게'라는. 나중에 담당보살님이 살짝 귀뜀을 해준다. 스님께서 조영남의 '모란동백'을 좋아하신다고.

 

어제는 하루종일 조영남의 '모란동백'을 듣고 또 들었다. 자면서도 들었다. 스님께서 이 노래를 들려주신다면 언제든 달려가련다. 스님, 기회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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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6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bina 2018-10-16 2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새벽예불 정경이 인상적 이네요.
불밝힌 경내의 경건함속으로 들어가 서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경건하게 정진하는 모든 수도자들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nama 2018-10-17 06:46   좋아요 1 | URL
새벽예불과 비슷하긴 하지만 두 사진 모두 저녁예불입니다.
저는 새벽예불이 좋았어요.
경건하고 신성한 기운이 느껴졌어요.
한편으론 수도자의 삶이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spo 2018-10-17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들의 설명을 담은 A,B,C,D의 등장은 눈 앞에 살아 움직이는 듯,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게하는 집중력을 줍니다..
저녁예불이나 새벽예불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상적이며,
경건함이 마음을 씻어주는 듯 합니다.
넓이에 깊이를 더해 더욱 잊지 못할 선암사를 가슴에 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nama 2018-10-17 16:34   좋아요 0 | URL
함께 갔던 친구들 A, B, C 모두 즐거운 체험이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친구 혹은 부부, 가족, 아니면 혼자서도 경험해볼 만합니다.
넓이와 깊이가 많이 부족함에도 너그럽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po 2018-10-17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계종, 태고종, 순천시장의 법정다툼은 빨리 끝나길 바라지만
선암사의 보존은 영원했으면 합니다.

nama 2018-10-17 16:36   좋아요 0 | URL
선암사가 그대로만 보존된다면 법정 다툼이 계속 미해결로 남아도 되지 않을까요.
무소유를 가르치는 불교에서 뭐 그런 다툼을 벌이는지요. 원래는 하나였을 텐데요.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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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서 놓고 그만 읽으려고 마음 먹어도 끝까지 읽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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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 놀랐다. Sam Smith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는 것. 알았다한들 공연장에는 가지 않았겠지만 내한 사실도 몰랐다는 게 좀....

 

지난 여름 실크로드 갈 때 기내에서 내내 들었던 Sam Smith의 노래들. 그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그의 노래를 잘 안다고도 할 수 없지만,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그의 당당함 때문이다.

 

 

 

 

 

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그가 한 다음의 말이 참 인상적이다.

 

"이 노래를 통해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요. 나는 '게이'인 것이 자랑스러워요. 사랑은 사랑일 뿐이에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한 노래. Him 을 음미해본다.

 

[Verse 1]
Holy Father, we need to talk
I have a secret that I can’t keep
I’m not the boy that you thought you wanted
Please don’t get angry, have faith in me

[Chorus]
Say I shouldn’t be here but I can’t give up his touch
It is him I love, it is him
Don’t you try and tell me that God doesn’t care for us
It is him I love, it is him I love

[Verse 2]
I walk the streets of Mississippi
I hold my lover by the hand
I feel you staring when he is with me
How can I make you understand?

[Chorus]
Say I shouldn’t be here but I can’t give up his touch
It is him I love, it is him
Don’t you try and tell me that God doesn’t care for us
It is him I love, it is him I love

[Bridge]
Ohh, ohh  Oh, I love
Ohh, ohh  No, no, I love
Ohh, ohh  I love
Ohh, ohh Ohh, ohh
Him I love Ohh, ohh
Him I love Ohh, ohh
Him I love Ohh, ohh
Him I love 


 [Outro]
Holy Father, judge my sins
I’m not afraid of what they will bring
I’m not the boy that you thought you wanted
I love him

(가사출처: daum)

 

 

그래도 끝내 sins 라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 애절하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라면서.

 

 

여담: I hold my lover by the hand...성문종합영어식으로 말하면, 신체의 일부분을 만지거나 건드릴 때는 신체부위 앞에 전치사+the...를 쓴다. by the hand...이런 예를 들려주며 아이들에게 슬쩍 이 노래를 가르쳐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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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10-1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누가 막겠어요.
꼭 관련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에 본 설치 미술이 생각나서, 생각난김에 제 서재에 올려봐야겠어요.

nama 2018-10-11 18:51   좋아요 0 | URL
동성을 사랑한다고 해서 남한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지요. 나와 다르다고 해서 욕할 것도 아니고요. 사랑은 사랑일 뿐이지요.
 

 

지난번 안동 봉정사는 예정에 없던 곳이라 책 한줄 읽지 않고 갔었다. 그렇다면 예습을 하고 간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싶어 다시 유홍준 교수의 <산사 순례>를 집어들어 부여 무량사편을 펼쳤다. 그러나 역시 예습보다는 복습을 위주로 살아온 삶이라 떠나기 전날 밤에 읽는 책은 그저 흰바탕에 쓰여져있는 검은색 활자에 불과했다.

 

 

 

 

 

 

 

 

 

 

 

 

 

 

대학 수능 이전에는 학력고사, 학력고사 이전에는 예비고사가 있었다. 예비고사 세대인 나는 그것 말고도 지원한 대학에 가서 본고사를 치러야했다. 과목은 대부분 국, 영, 수 였다. 시험 당일 택시를 타고 시험장으로 가면서 본고사용으로 편집된 얇은 수학책을 몇 쪽 읽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보고 있는 게 덜 떨릴 것 같아서였다. 운발이 있었는지 택시에서 대강 본 문제가 두어 개 시험에 나왔다. 국어와 영어시험을 치르면서 바닥으로 가라앉았던 기분이 수학 시험을 치르면서 성공 예감으로 급상승했다. 대학에 합격한 건 순전히 택시에서 살펴 본 그 수학문제 덕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어제, 아침밥도 거른 채 부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전날 읽다만 부여 무량사편을 펼쳐 읽었다. 역시 달리는 차 안에서 읽는 맛은 색다르다.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전날 미리 읽은 남편이 스포일러가 되려는 순간 급히 차단 시키느라 약간 집중력이 흐트러지긴 했지만.

 

 

 

만수산 무량사라고 쓰여진 일주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분명 생각없이 지나쳤을 것이다. 책에 나온 설명이다.

 

무량사는 일주문부터 색다르다. 원목을 생긴 그대로 세운 두 기둥이 아주 듬직해 보이면서 지금 우리가 검박한 절집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묵언으로 말해준다.  (199쪽)

 

 

저런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법. 얼마나 듬직한지 다시 보시라.

 

 

듬직한 남편보다 더 듬직하다. 남편이 저 나무만큼 듬직하다면... 세상을 구한다고 나섰겠지, 아마. 다행이다.

 

다리 건너 저쪽 편에 있는 천왕문에 다다른다. 다시 설명이 이어진다.

 

천왕문 돌계단에 다다르면 열린 공간으로 위풍도 당당하게 잘생긴 극락전 이층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왕문은 마치 극락전을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드는 액틀 같다. 적당한 거리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극락전의 넉넉한 자태에는 장중한 아름다움이 넘쳐흐르지만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미더움이 있다.

 

 

확인해보시라. 얼마나 적확한 표현인지 그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좀 더 가까이 올라가본다.

 

 

이런 풍광을 지닌 절집이 있었던가?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석탑, 오층석탑, 극락전이 절경을 이룬다. 이것만 보는 것으로도 오늘 할 일은 다한 것 같았다. 대만족이다.

 

 

 

 

더 자세한 설명은 직접 책을 보시기 바란다. 이 극락전 말고도 주변에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있고 각각 스토리가 있어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우화궁 건물 주련에는 진묵대사의 시 한 수가 걸려 있고 '그 시적 이미지가 모르긴 몰라도 세상에서 가장 스케일이' 클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직접 보고도 알아채지 못했다. 예습을 했는데도 놓쳤다. 예쁘다는 우화궁 현판은 그래도 사진으로 담았다.

 

 

 

 

극락전 뒤편 개울가에 있는 청한당이다. 저런 절집에서 하룻밤 보내고 싶다.

 

 

 

"1천 년의 연륜을 갖고 있는 고찰에는 반드시 그 절집의 간판스타가 있게 마련인데 무량사의 주인공은 단연코 매월당 김시습(1435~93)입니다. 저 앞쪽 우화궁 위로 보이는 건물이 김시습 영정을 모신 영산전입니다. 생육신의 한 분인 김시습은 방랑 끝에 말년을 여기서 보내고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습니다....:(204쪽)

 

<금오신화>의 저자인 김시습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의 일대기나 인간상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본 일이 없다. 그것이 우리 교육의 맹점이다.'라는 유홍준 교수의 안타까움에 공감하며 책에서 언급한 김시습 관련 책을 찾아본다.

 

 

 

 

 

 

 

 

 

 

 

 

 

 

 

 

 

 

 

 

 

 

 

 

 

 

 

 

 

우리가 모르는 게, 어설프게 배운 게, 어디 김시습 뿐이랴. 이 책 206쪽~208쪽에 쓰인 김시습의 짧은 일대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파란만장한 시대를 보냈는지 먹먹하게 다가온다.

 

김시습의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청한자, '세상에 쓸모없는 늙은이'라는 뜻의 췌세옹(贅世翁) 등이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늙은이'...옛사람들은 참으로 겸손도 하시지. '췌세옹'이란 말 듣기 싫어서 난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블로그질을 한다만.

 

 

 

 

 

드디어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불상(?)을 발견했다. 누가 쌓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름 절묘하다. 발견의 기쁨이라면 과할까? ㅎㅎㅎ

 

 

 

 

'부여 반교마을 옛담장'이라고 들어는보셨는가? 마치 제주도를 연상시키는 돌담이 있는 마을인데 바로 유홍준 교수의 세컨드하우스(?)가 있는 마을이다. 무량사에서 가까운 곳이라 들렀다. 허락없이 찾아간 곳이라 되도록 사진은 얌전하게 찍으려 했다.

 

 

 

 

 

 

 

전망이 확 트인 곳을 좋아하는 남편은 위치가 좀 그렇다는데, 내가 보기엔 산 속에 아니 동네 속에 숨은 절집 같아서 좋았다. '휴휴당'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집이다.

 

 

<산사 순례>를 괜히 샀나보다. 또 다녀야되니....

 

 

이런, 정작 중요한 한마디를 빠트렸다. 이 절집은 말 그대로 '절집' 의 모범 같았다. 우선 기념품 따위 파는 가게가 없어 어수선하지 않았다. 산을 둘러싼 분지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품도 넉넉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좋았다. 바로 이 맛이야, 할 때의 바로 이 맛을 내는 절집이다. 남편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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