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안동 봉정사는 예정에 없던 곳이라 책 한줄 읽지 않고 갔었다. 그렇다면 예습을 하고 간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싶어 다시 유홍준 교수의 <산사 순례>를 집어들어 부여 무량사편을 펼쳤다. 그러나 역시 예습보다는 복습을 위주로 살아온 삶이라 떠나기 전날 밤에 읽는 책은 그저 흰바탕에 쓰여져있는 검은색 활자에 불과했다.

 

 

 

 

 

 

 

 

 

 

 

 

 

 

대학 수능 이전에는 학력고사, 학력고사 이전에는 예비고사가 있었다. 예비고사 세대인 나는 그것 말고도 지원한 대학에 가서 본고사를 치러야했다. 과목은 대부분 국, 영, 수 였다. 시험 당일 택시를 타고 시험장으로 가면서 본고사용으로 편집된 얇은 수학책을 몇 쪽 읽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보고 있는 게 덜 떨릴 것 같아서였다. 운발이 있었는지 택시에서 대강 본 문제가 두어 개 시험에 나왔다. 국어와 영어시험을 치르면서 바닥으로 가라앉았던 기분이 수학 시험을 치르면서 성공 예감으로 급상승했다. 대학에 합격한 건 순전히 택시에서 살펴 본 그 수학문제 덕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어제, 아침밥도 거른 채 부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전날 읽다만 부여 무량사편을 펼쳐 읽었다. 역시 달리는 차 안에서 읽는 맛은 색다르다.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전날 미리 읽은 남편이 스포일러가 되려는 순간 급히 차단 시키느라 약간 집중력이 흐트러지긴 했지만.

 

 

 

만수산 무량사라고 쓰여진 일주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분명 생각없이 지나쳤을 것이다. 책에 나온 설명이다.

 

무량사는 일주문부터 색다르다. 원목을 생긴 그대로 세운 두 기둥이 아주 듬직해 보이면서 지금 우리가 검박한 절집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묵언으로 말해준다.  (199쪽)

 

 

저런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법. 얼마나 듬직한지 다시 보시라.

 

 

듬직한 남편보다 더 듬직하다. 남편이 저 나무만큼 듬직하다면... 세상을 구한다고 나섰겠지, 아마. 다행이다.

 

다리 건너 저쪽 편에 있는 천왕문에 다다른다. 다시 설명이 이어진다.

 

천왕문 돌계단에 다다르면 열린 공간으로 위풍도 당당하게 잘생긴 극락전 이층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왕문은 마치 극락전을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드는 액틀 같다. 적당한 거리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극락전의 넉넉한 자태에는 장중한 아름다움이 넘쳐흐르지만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미더움이 있다.

 

 

확인해보시라. 얼마나 적확한 표현인지 그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좀 더 가까이 올라가본다.

 

 

이런 풍광을 지닌 절집이 있었던가?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석탑, 오층석탑, 극락전이 절경을 이룬다. 이것만 보는 것으로도 오늘 할 일은 다한 것 같았다. 대만족이다.

 

 

 

 

더 자세한 설명은 직접 책을 보시기 바란다. 이 극락전 말고도 주변에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있고 각각 스토리가 있어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우화궁 건물 주련에는 진묵대사의 시 한 수가 걸려 있고 '그 시적 이미지가 모르긴 몰라도 세상에서 가장 스케일이' 클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직접 보고도 알아채지 못했다. 예습을 했는데도 놓쳤다. 예쁘다는 우화궁 현판은 그래도 사진으로 담았다.

 

 

 

 

극락전 뒤편 개울가에 있는 청한당이다. 저런 절집에서 하룻밤 보내고 싶다.

 

 

 

"1천 년의 연륜을 갖고 있는 고찰에는 반드시 그 절집의 간판스타가 있게 마련인데 무량사의 주인공은 단연코 매월당 김시습(1435~93)입니다. 저 앞쪽 우화궁 위로 보이는 건물이 김시습 영정을 모신 영산전입니다. 생육신의 한 분인 김시습은 방랑 끝에 말년을 여기서 보내고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습니다....:(204쪽)

 

<금오신화>의 저자인 김시습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의 일대기나 인간상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본 일이 없다. 그것이 우리 교육의 맹점이다.'라는 유홍준 교수의 안타까움에 공감하며 책에서 언급한 김시습 관련 책을 찾아본다.

 

 

 

 

 

 

 

 

 

 

 

 

 

 

 

 

 

 

 

 

 

 

 

 

 

 

 

 

 

우리가 모르는 게, 어설프게 배운 게, 어디 김시습 뿐이랴. 이 책 206쪽~208쪽에 쓰인 김시습의 짧은 일대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파란만장한 시대를 보냈는지 먹먹하게 다가온다.

 

김시습의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청한자, '세상에 쓸모없는 늙은이'라는 뜻의 췌세옹(贅世翁) 등이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늙은이'...옛사람들은 참으로 겸손도 하시지. '췌세옹'이란 말 듣기 싫어서 난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블로그질을 한다만.

 

 

 

 

 

드디어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불상(?)을 발견했다. 누가 쌓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름 절묘하다. 발견의 기쁨이라면 과할까? ㅎㅎㅎ

 

 

 

 

'부여 반교마을 옛담장'이라고 들어는보셨는가? 마치 제주도를 연상시키는 돌담이 있는 마을인데 바로 유홍준 교수의 세컨드하우스(?)가 있는 마을이다. 무량사에서 가까운 곳이라 들렀다. 허락없이 찾아간 곳이라 되도록 사진은 얌전하게 찍으려 했다.

 

 

 

 

 

 

 

전망이 확 트인 곳을 좋아하는 남편은 위치가 좀 그렇다는데, 내가 보기엔 산 속에 아니 동네 속에 숨은 절집 같아서 좋았다. '휴휴당'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집이다.

 

 

<산사 순례>를 괜히 샀나보다. 또 다녀야되니....

 

 

이런, 정작 중요한 한마디를 빠트렸다. 이 절집은 말 그대로 '절집' 의 모범 같았다. 우선 기념품 따위 파는 가게가 없어 어수선하지 않았다. 산을 둘러싼 분지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품도 넉넉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좋았다. 바로 이 맛이야, 할 때의 바로 이 맛을 내는 절집이다. 남편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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