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에 가서 머뭇거리면 누군가 달려와서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간이 카페의 키오스크 앞에서 잠시 카드를 만지작거리면 누군가 냉큼 달려와서 대신 해주려고 하고, 매표소에선 어르신 우대에 해당되지 않냐고 물어보질 않나... 어르신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그런 친절을 바라지 않는데 세상은 자꾸 내게 친절을 베푼다. 아무래도 머리 염색을 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친절을 바란다면 빨리 늙어서 하얀머리 휘날리면 됩니다.^^

 

 

  

북플을 열면 거의 매일 이런 알림이 뜬다. 이런 알림이 뜨지 않는 날이 있었던가 싶게 거의 매일이다. 그냥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진 않았구나 생각하지만 가급적 지난 글을 다시 읽지는 않는다. 읽기가 싫다. 다만 무슨 책을 읽었나 싶어 슬쩍 열어보면 대부분 기억이 나지만 어떤 책은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이건 뭐지? 뭐가 되었든 그래도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견이나 독단일지라도.

 

 

 

 

 

 

 

 

 

 

 

 

 

 

 

 

글은 매끄럽지만 울림은 약한 책. 한 권의 책에서 두고두고 되새길 한 문장이라도 남으면 되지 뭐.

 

-58쪽

누군가의 슬픔을 알면, 정말 알면, 무엇도 쉬이 질투하게 되지 않는 법이니까. 어려운 형편은 모르고, '좋아 보이는' 면만 어설프게 알 때 질투가 생긴다.

 

-62

오늘 아침 소파에서 남편의 신간 시집을 읽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세월이 가면 우정은 사소해진다." 별일 없이 마음을 다치게 하네. 시는 이게 문제다.

 

 -280

멀어진 친구를 생각하면 한밤중에 갑자기 가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을 탈탈 털린 기분. 

 

 

 

 

 

 

 

 

 

 

 

 

 

 

 

 

 

 

 

단순 여행자의 단편적인 경험 이상을 누리는 사람의 책. 질투하며 읽은 책.

 

-118

작은 언어가 모어인 사람은 시인이 될 확률이 높다. 시의 독자도 마찬가지다. 독일 시인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가 언젠가 신문에 썼다. 지금 시대에 시집은 크로아티아어로 출판되든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되든 2천 부도 안 팔리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미국 인구는 크로아티아 인구의 60배쯤 된다. 그렇다면 비율로 따져 크로아티아에서 시집이 엄청 잘 팔린다는 말이다. 

 

-120

유럽은 프라하나 빈처럼 아름답고 오래된 수도가 많다. 하지만 현대식 생활을 해치지 않고 관광객을 만족시키려는 나머지, 너무 정리된 완성작 같다. 그에 비하면 소피아는 관광객도 거의 없고 생활도 그다지 쾌적하지 않다. 하지만 로마 유적, 비잔틴 교회, 터키 식민지 시대의 이슬람 사원,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교회, 빈에서 공부한 건축가들이 세운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 소련식 건물 등 볼 것이 많다. 역사의 흔적이 거인의 발자국처럼 성큼성큼 남아 있는 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아, 피곤하긴 하지만 흥분을 느낀다. 조그마한 과거를 만지작거려 기념품처럼 만든 소규모 '관광지'가 아니다. 역사라는 거대한 공사 현장에 던져진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소피아: 불가리아 수도

 

-172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일본은 택시 운전사가 몸도 마음도 프로인데, 독일은 원래 교사였거나 생활고에 시달린 시인 또는 예술가였던 사람이 택시 운전사일 때가 많다. 이 손님들, 자신들은 잘난 듯 문학을 하면서 나는 하찮은 운전사라고 생각하나 보네, 하고 확 액셀을 밟은 것이리라. 도시는 곧 운전사의 언어고 골목길은 운전사만 알고 있는 문법이다.

 

-207~208

일본에서 독일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독일어로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문법이나 철자에서 틀리는 부분이 많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선 무시하고 쓰고 싶은 말을 즐겁게 쓰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모어로는 부끄러워서 쓰지 못했던 것을 아무렇지 않게 외국어로 쓸 때가 있다는 점이다. 매일 글쓰기를 하면 글이 이어져서 천을 짠 것처럼 또 다른 자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외국어 공부는 새로운 자기를 만드는 일, 미지의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다. 나를 비롯해 일본어가 모어인 사람들은 일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생각해선 안 되는 일, 입에 내서는 안 되는 말이 금기로 머릿속에 일본어로 설정됐다. 다시 말해 일본어로 글을 쓰면 자동적으로 금기를 건들지 않게 된다. 대신에 외국어로 글을 쓰면 이 금기를 배척하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평소에 생각지도 못한 것을 과감하게 쓰기도 하고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나기도 한다.

 

 

 

 

 

 

 

 

 

 

 

 

 

 

 

 

 

 

'초기 자본주의와 르네상스의 확산' 시장이 인간과 미술을 움직이다.

 

대하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이 거의 없는데 이 책은 나오는대로 읽고 있다. 이 시리즈를 반복해서 한번 더 읽으면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흐름으로 읽는 거라서 인상적인 부분을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6편에서는 '제대화'에 대한 안목을 기를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을 말해둔다.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종교화라고 싸잡아서 도외시했던 그림들을 조금은 볼 수 있게 되었다.

 

 

 

 

 

 

 

 

 

 

 

 

 

 

 

 

 

 

 

범우문고 시리즈를 아시는가?

1. 수필(피천득)

2. 무소유(법정).....288번 까지 출간되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범우문고 출신이다. 유명했다. 삼중당문고, 서문문고, 범우문고와 친하게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부담없이 구입, 지적 허기를 채워주었던 책들이다. 옛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99

 

슬갑 도둑

 

남의 시문의 글귀를 따다가 제것인 양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슬갑(膝匣)이란 겨울에 추위를 막기 위하여 바지 위로 무릎에 껴입는 옷이다. 그런데, 어느 도둑은 남의 슬갑을 훔쳐서는 이것을 어디가 쓰는지를 몰라 이마에다 붙이고 나왔다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옛날에도 표절은 욕먹을 짓이었나보다. 도둑놈이니까.

 

 

 

 

 

 

 

 

 

 

 

 

 

 

 

 

 

스페인어를 독학해보겠다고 이런저런 책을 사보았지만 모두 작심삼일. 기초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 이 책만큼은 끝까지 읽고, 기초 단어 정도는 착실하게 노트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왕초보가 읽기에 딱 어울리는 책이다.

 

 

 

 

 

 

 

 

 

 

 

 

 

 

 

 

 

 

멍멍이 머리맡에서 발견한 책.(우리집 개 소파는 책장 앞에 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사준 책이다. 오우, 나도 제법 훌륭한 엄마였음을 입증하는 책.^^

중세에도 앞선 여성들이 많았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 그런 걸 가르치지 않을 뿐.

한 꼭지씩 읽어가며 연신 감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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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aum )

 

 

영화 <모리의 정원>을 보았다. 인천에서는 상영관이 없어서 덕분에 안산에도 가봤다. 극장안의 관객은 단 3명. 아무리 사회적 거리두기라지만 이 정도면 거의 폐업 상황이지 않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30년 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일본의 유명화가 쿠마가이 모리카즈 이야기이다. 그가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영화 <타샤의 정원>을 기억하는지라 이 영화에서도 멋진 정원을 감상하리라 기대했으나 이건 정원 얘기가 아니었다. 원제는 '모리의 장소'. 여기서 장소는 영어의 place이니 '공간, 곳, 장소'로 정원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니 '모리의 정원'이라기 보다는 모리가 30년 간 머문 공간, '그 만의 공간' 쯤의 뜻이 된다. 영화 제목을 깔끔하게 뽑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줄거리는 검색만 하면 주르르 뜨니 생략. 인상 깊은 장면 두 개를 애기하련다.

 

하나.

어떤 남자가 모리카즈의 평을 기대하면서 어린 아들이 그린 그림을 보여준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라도 자녀에 대한 희망을 품기 마련. 대강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남자: 보십시오. 우리 아들이 천재가 맞지요? 잘 그렸습니까?

화가: 음..... 못 그렸네.

남자: (실망한다)......네?

화가: 잘 못 그려서 좋은 거야.

남자: (당혹해한다.)......네?

화가: 잘 그린 그림은 끝이 보여.

        잘 못 그린 그림은 작품이야.

 

절망과 희망을 왔다갔다 하는 남자의 표정도 볼 만하지만 늙은 화가의 한마디 한마디가 절묘하게 마음을 울린다.

 

둘.

모리카즈와 그의 아내의 대화.

 

화가: 다시 태어나고 싶어, 당신은?

아내: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화가: 왜? 살아있는 게 좋지 않은가?

아내: 피곤해서 싫어.

 

화가는 허구헌날 집 앞 마당에 있는 작은 정원에서 벌레를 관찰하거나 오솔길에 누워있거나 연못 속의 물고기를 바라보면서 생을 만끽한다. 밤에는 '학교'에 간다며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밥은 누가 해주나? 그의 아내다. 아내는 허구헌날 빨래와 밥을 하며, 수시로 들이닥치는 손님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역할을 맞바꾼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다, 는 대사로 이어지면 영화가 진부해지려나.....

 

 

일본 이름을 발음하려면 혀가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지만 화가역의 야마자키 츠토무, 아내역의 키키 키린을 기억해야겠다. 영화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 같다는 평이 있을만큼 연기가 탁월하다. 볼 만하다.

 

 

코로나19로 자가격리, 가택연금...의 시절에 30년 동안이나 집 안에 콕 박혀있던 화가의 생애를 엿보는 맛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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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강아지 꼬마야 꼬마야 18
프랭크 애시 지음, 김서정 옮김 / 마루벌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글만 옮겨본다.

 

나는 아홉 형제 중 꼴찌였어요.

엄마 젖도 꼴찌로 먹고, 눈도 꼴찌로 떴어요.

우유를 핥아 먹는 법도 꼴찌로 배웠고요,

밤에 집으로 들어갈 때도 꼴찌였지요.

나는 언제나 꼴찌 강아지엿어요.

그러던 어느 날 팻말이 보였어요.

'예쁜 강아지 데려가세요'

다음 날 한 여자아이가 와서

우리 중 하나를 데리고 갔어요.

그날 밤 나는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왔어요.

내 차례는 언제일까?

이번에도 꼴찌일까?

그 다음 날에는 한 남자아이가 왔어요.

"여기야, 여기!" 나는 소리쳤어요.

"이 강아지는 너무 시끄러워."

아이는 다른 강아지를 데리고 갔어요.

그날 오후에는 멋쟁이 아줌마가 왔어요.

아줌마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내가 아줌마에게 달려드는 바람에

철퍼덕! 우유 그릇에 엉덩방아를 찧었답니다.

이번에는 한 농부 가족이 나타났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나를 안아 올리는 거예요!

나는 너무 좋아서 아저씨 코를 아, 물어줬어요.

결국, 농부 가족은 다른 강아지 둘을 데려갔지요.

우리는 셋이 됐어요.

그러다 둘이 됐고요.

또 나 혼자 남았어요. 꼴찌 강아지만요.

어느 날 드디어 내 차례가 왔어요.

커다란 손이 나를 들어 올려서는

한 작은 남자아이에게 데려다 줬어요.

우리는 차에 올라탔어요.

남자아이는 나를 자기 무릎에 앉혔어요.

그리고 나와 얼굴을 마주 댔어요.

나는 아이의 코를 핥아 주었어요.

아이가 까르륵 웃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너 이거 아냐? 넌 내 첫째 강아지야!"

 

 

우리 강아지가 생각나서 사온 동화책이다. 7~8년 동안 유기견으로 살다가 우리 가족이 된 지 1년 4개월 되었다. 얼굴이 어떻게 변했는지 눈여겨보시길 바란다.

 

 

왼쪽은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 표정인데 뭔가 억울하고 불안한 표정이다. 사람에게 가까이 오지도 않고 만지는 것도 싫어했다. 지금은 밥상머리에 가까이 와서 음식 냄새를 맡기도 하고 소파 위에도 올라와 같이 앉아있기도 한다. 아주 잠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장난감을 물어뜯기라도 하면 우리는 환호성을 지른다. "드디어 개가 되었어!" 하고. 도무지 개다운 행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눈치만 살피는 모습만 보다가 조금이라도 변화를 보이면 식구들은 기쁨의 눈빛을 주고받는다. 개가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작지 않은 즐거움이다.

 

개와 함께 사는 건 새로운 경험이다. 하루에 꼬박 두 번씩 산책시키는 건 개를 위한 것이지만 사람에게도 활력을 준다. 가수분해 사료를 먹이니 늘 젖어있던 눈도 뽀송뽀송해져서 한결 깨끗해졌다. 이런 사료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경험치를 확대시킨다. 많이 배운다.

 

'개가 똑같지 뭐.' '개에게 쏟는 정성을 사람에게나 쏟지.'....이런 말들이 더 이상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개가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개에게 쏟는 정성을 통해서 사람도 정성스러운 모습으로 성장한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된다. 개의 변화는 사람의 변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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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3-26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a님 잘 지내셨나요.
강아지 입양 소식 들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사이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났네요.
강아지 표정은 잘 모르지만,
왼쪽보다는 오른쪽이 더 편안해보여요.
앞의 페이퍼도 잘 읽었습니다.
기분좋은 하루 되세요.^^

nama 2020-03-28 04:25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서니데이님 글도 늘 잘 읽고 있어요.
오른쪽 표정이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개의 표정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답니다.
늘 좋은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경기도 시흥에 소재한 독립서점 <책방내심>에 다녀왔다. 집에서 약 13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접근하기 쉬운 곳은 아니다. 

 

도착시간은 오전 11시 55분. 개점시간은 12시. 문이 닫혀 있다. 과연 12시에 문을 열기는 할까? 길가에 서있다가 12시 5분에 갔더니, 오호, 문을 열었다. 정확하게 시간을 지킨다.

 

 

다른 건 몰라도 저 간판만은 눈에 잘 띈다.

 

 

 

입구

 

 

 

 

 

 

 

 

 

 

 

 

방명록 비슷한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곳.

 

 

 

 

 

담배갑 크기와 모양의 책들.

 

 

 

시흥에 살고 있는 시인의 시집. 망설이다 패스.

 

 

 

서점주인의 품격 같은 걸 느낄 수 있는 의자.

 

 

 

우리집 거실도 저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오래오래 살아남는 책방이 되길 기원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나: 나도 저런 책방 해보고 싶다.

남편: 저런 거 하려면 스카프 같은 것도 멋지게 두르고 품위도 있어야 하는데...

나: 당신 말처럼 만화방에서 라면 끓여야겠네.

남편: 처음엔 그렇게 봤는데 이젠 알지,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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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일상이 '잠시멈춤'한 이 시국에 맛집 이야기를 꺼낸다면,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당당하게 활보하는 것과 같은 눈총 받을 짓을 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먹지 말라면 먹고 싶고, 하지 말라면 하고 싶고, 가지 말라면 가고 싶은 마음이 가슴 저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인스타그램에 가끔씩 사진을 올리고 마음에 드는 사진에는 기꺼이 '좋아요'를 눌러주기도 하지만, 맛집 사진에는 절대로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는 나만의 원칙을 갖고 있는 내가 새삼 맛집 소개라니..

 

퇴직 3년 차. 운동화 한 켤레로 사계절을 버티고, 머리 염색과 파마를 하지 않으며, 옷도 최소한으로 구매하고, 책마저도 도서관 대출로 해결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으니 맛집 탐방 같은 건 내가 즐겨하는 일이 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여행· 모임 · 실내체육 · 유흥가 출입 등을 자제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독려하는 유례없는 이 시국에, 아니 그런 시국이기에 슬쩍 먹는 얘기 하나쯤 하고 싶어지는 건 뭘까.

 

 

 

 

 

 

 

 내가 이 식당에 처음으로 간 건 대학4학년 교생실습 때 지도교사를 비롯한 몇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였다. 1982년 봄이었다.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지? 이 식당은 원래 오산미군기지 앞 송탄 재래시장 내 깊숙한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숱하게 돌아다닌 동네였는데도 이런 식당이 있고 이런 음식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다. 그 시절엔 외식이라야 학교 졸업식날 짜장면 정도 먹는 게 전부였으니까. 부대찌개 속에 넣는 햄이나 소시지도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재료가 아니었다. 미군부대와 끈이 있거나 돈이 있는 집이나 접할 수 있는 외래 음식이었다. 물론 이와 비슷한 음식이 있었다. 꿀꿀이죽이라고 미군부대 식당에서 잔반처리한 음식을 한꺼번에 넣고 끓인 음식인데 모양새는 카레 비슷하고 특유의 이국적인 향이 있었다. 어쩌다가 담배꽁초를 집어내면서도 모른 척하고 먹는 구황음식이라고나 할까. 이따금 꿀꿀이죽을 파는 손수레가 들어오면 바가지를 들고가서 사왔던 기억이 난다. 이것에 비하면 부대찌개는 고급 음식이었고 미군부대 근처에 산다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고향을 둔 나로서는 '고향'하면 이 음식부터 떠오른다. 이북 출신이었던 부모님의 고향 음식은 맛있기는 했지만 내 고향 음식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 부대찌개를 집에서 해먹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한번도 우리 집에서 부대찌개 냄새를 풍긴 적이 없다. 그럼에도 고향 음식이라고 말하는 건 송탄이라는 지방 소도시에 있던 나의 본가가 팔려서 이제는 남의 손에 들어가 돌아갈 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50여 년 간 우리집이었던 공간이 사라지는 경험은 어딘지 서글프고도 쓸쓸한 눈물 맛이난다. '50주년 기념'이라고 써붙인 저 플래카드를 보고 '50'이라는 숫자에 자꾸 눈이 가는 것도 사라진 옛집에 대한 추억 때문이리라. 돌아갈 고향집 대신에 돌아갈 음식점 하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다. '다음 50년' 동안 돌아갈 곳이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렸을 적 먹던 꿀꿀이죽이 그립다. 허기를 달래주면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던 꿀꿀이죽. 다시는 먹어볼 수 없는 꿀꿀이죽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집. 그 쓸쓸한 추억을 저 부대찌개로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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