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친구들아.

올해는 매일 너희들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사실 즐거움 보다는 괴로운 일이 더 많았단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잘 알거야. 점심시간의 급식판 사건,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수업 방해를 받는 일, 온갖 장난과 다툼으로 병원 신세진 친구들, 남을 괴롭히거나 때려서 잠시 가정에서 교육을 받고 온 친구들, 선생님들께 무례하게 대들거나 말대꾸를 해서 수업 진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 친구들, 교실이 털렸던 일, 억지 행동이나 흉내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친구들, 점심시간에 남의 식판에 툭하면 젓가락을 들이대는 욕심 사나운 친구들, 교실 바닥에 종이를 마구 버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친구들, 자신에게는 단지 장난에 불과하나 다른 사람에게는 폭력이 되는 행동을 하는 친구들, 야한 농담으로 친구들을 웃기려는 행동을 하는 친구들,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나 뿐인’ 친구들, 입과 행동이 야수같은 친구들... 참으로 힘든 날들이었다.

그런 중에 처음부터 너희들을 괴롭히던 어떤 친구를, 참다못해 너희들 중 누군가가 그 친구에 대해 학교에 투서를 하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 너희도 다 알거야.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지. 덕분에 그 친구에게는 개과천선하는 기회가 되어 요즘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거야. 학년 초의 그 철없고 건방지고 폭력적인 태도가 많이 수그러들었고 수업 태도도 좋아졌다는 것도 알거야. 그 과정을 겪으면서 그 폭력적인 친구도 몇 번의 눈물을 흘렸어야했어. 말하자면 마음 속 깊이 반성할 기회를 준거야, 그 편지들이. 누가 그 편지를 썼는지는 미스터리지만 하여튼 그 친구를 변화시키는 데는 큰 역할을 한 셈이지.

그런데 아직도 그 친구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친구가 있다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단다. 그 친구의 버릇을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은 너희들이 피해를 입는 거야. 만약에 아직도 그 친구(혹은 다른 친구들도 포함)가 때리거나 금품 갈취를 하고 있어서 더 이상 같은 학급에서 공부한다는 자체가 힘들게 느껴진다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글로 써주기 바래. 담임인 내가 악동 같은 여러 친구들 때문에 나날이 괴롭고 피곤한데 너희들이라고 편할 날이 있겠냐 싶어. 너희들이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게 되겠지. 물론 학교 교칙에 의거해서.

담임선생으로서 너희들이 고통을 당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조처를 취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고 미안하다.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단다. “한 그릇의 밥을 푸면서 한 알도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교사”라고. 너희들 모두 모두가 정말 소중한 한 알이라서 한 알도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을 오늘도 생각한다.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써주렴. 
 

***결과를 말해야겠다. 위 글을 프린트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뒷면에다 쓰고 싶은 말을 쓰게 했더니, 다른 친구에게 미안했던 일, 괴롭힘 당한 일, 수업 방해하는 친구들 얘기, 싸운 얘기 등등 하소연도 다양했다. 이것을 개인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하고 더불어 해당 학생에게 프린트를 해서 주었다. 요즘 아이들은 교사가 하는 말 쯤은 그저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받아들여도 동급생인 친구들이 하는 자신에 대한 평가는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아주 꼼꼼하게 읽으며 화를 내기도 하고 시인하기도 한다. 친구들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라고 생각할 기회를 주고는 그 여백에 해명의 글이나 억울함 혹은 변명 혹은 반성의 글을 쓰게 했다. 이 쪽지를 받은 열서너 명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신이 나서(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열심히 읽고 열심히 글을 썼다. 이 진지한 모습이라니...교실 분위기가 펄펄 살아났다.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아이도 있었다. 눈빛을 반짝이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모습을 드러내는 눈부신 아이도 있었다. 대부분의 일방적인 반성문 보다는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서 자주 하기는 힘들 것 같다.(201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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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 Guzaarish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지난번 수능이 있던 날(11월 10일), 모처럼 학교가 쉬는 날, 나는 이 영화를 보러갔다, 혼자서. 주위에서 쉽게 갈 수 있는 cgv(멀지 않은 곳에 세군데나 있다!)에서는 상영하지 않아서 인터넷검색을 거쳐 낯선 동네를 돌고돌아서 찾아갔다. 아직도 이런 열정이 남아있다니, 스스로 대견해함은 쓸쓸함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으나, 평일 대낮에(오후 12시대와 오후 2시대가 전부) 그것도 인도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물론 찾아보지도 않았다. 

텅텅 빈 객석의 관객이라고는 나를 포함해서 3명이었으나 나중에 몇 명이 더 들어와서 10명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줄거리는 생략하고 싶다. 나는 긴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재주가 원래 없다. 글로 옮기는 건 그래도 말로 하는 것 보다는 조금 낫지만 그게 그거다. 굳이 한 문장으로 이 영화를 말한다면, 안락사를 둘러싼 사랑 얘기쯤 된다고나 할까. 지나치게 여주인공이 이쁜 점이 역시 인도 영화답다고 생각했을뿐 줄거리 자체는 그렇게 흥미롭지 않았다. 다만 몇 장면이 색채면에서 감각이 매우 돋보였을 뿐. 사실 나는 노래와 춤이 흥청대는 맛살라 볼리우드를 더 좋아한다. 이런 심각한 인도 영화는 신파조로 흐르기 십상이다. 흠, 그것도 싫지는 않지만.(어쨌건 나는 인도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아무리 인도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의 질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그저 그렇다고 생각되는 이 영화가 그래도 계속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뭔가 짚고 넘어가주기를 바란다고나 할까. 

일주일 전, 매일 1시간씩 걷는 것으로는 운동이 약하다 싶어 중간에 몇 차례에 걸쳐 달리기를 시도했다. 달리기라고 해봤자 기껏 몇 백 미터에 불과했는데 그게 무리가 갔는지 왼발 엄지발톱에 통증이 오더니 새까맣게 변색이 되고 오른쪽 다리의 오금부분이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는 한술 더떠 걸어서 (50여분 걸림) 출근하는데 중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었다. 뛰는 방법 밖에 없었다.  

결국 퇴근길은 병원행이었는데, 인대가 늘어났다고 한다. 인대가 늘어나기는 난생 처음이다. '별 일 없이 산다'는 장기하의 노래처럼 나는 늘 별 일 없이 살아왔나 싶다.  

병원에서 나와서는 어둠이 내린 거리를 또 걸어서 퇴근했다. 평소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절뚝거리며 걷자니 우울한 기분도 들었다. 그때 이 <청원>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14년간 전신불수로 살아온 전직 유명 마술사인 주인공이 삶의 마지막 날을 택하여 친구들과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었다. 돌잔치 같은 분위기의 생의 이별 파티를 상상해보시라. 법원에 안락사를 허락해달라는 '청원'을 넣었으나 매번 패소당하는 데 결국에는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 날을 결정하고야만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이별 파티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벌어진다. 사랑하는 친구들이 둘러싼 채. 

이 영화,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운이 길게 남아있는 걸 보면 나도 조금씩 늙어가고 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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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 계신 우리 엄마, 82세. 

겨우 한글을 읽을 줄은 아나 쓸 줄은 모르시기에 종이에 기록하는 대신 모든 걸 기억에 담아두신다. 엄마의 지적 능력은 곧 기억력 그 자체이다. 그래서인지 정신력이 그대로이시다. 병실의 다른 노인들처럼 그냥 침대에 누워 계시기에는 너무나 총명한 정신력을 가지고 계신데 몸은 손놀림조차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움직임이 성치 못하니 화장실 한 번 혼자서 다녀오시는 게 유일한 소망이신데... 

같은 병실의 치매에 걸린 어떤 할머니를 보며 한말씀 하신다. "차라리 치매에 걸리면 좋겠다." 

"정신과 육체가 함께 망가지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된 요즘 생각이 많다." 내 친구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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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던라이츠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알래스카하면 호시노 미치오, 호시노 미치오하면 알래스카, 를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는 책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다른 사람의 알래스카 기행문을 읽어보니 모두 짝퉁으로 보였다. 알래스카의 어느 지역을 '촌동네' 운운하는 데서는 더 이상 그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짝퉁 두어 권을 미련없이 서가에 다시 꽂으며(도서관에서)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에 다시 젖어본다. 

p.172 ...기온은 영하 40도. 일출은 10시 32분, 일몰은 15시 28분. 태양은 지평선 저편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아침에 떠오른 태양은 더 이상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그대로 석양이 된다. 세상은 또 그렇게 어두운 밤이 되고, 밤은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태양이 가라앉지 않는 여름의 백야도 인상적이지만, 이곳이 극북임을 실감할 때는 역시나 겨울이다. 겨울의 짧은 해는 알래스카의 상징이다. 지평선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덧 내 마음도 애처로움에 물들어간다. 이곳에서 새로운 겨울을 맞이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쌓이는 것 같다. 그 쌓인 만큼의 무게 때문에 나는 이 땅을 떠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98) 내가 알래스카의 겨울을 사랑하는 까닭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태양에 대한 추억들을 되살리기 때문은 아닐까.

p.194...그때 나는 '머나먼 자연'이라는 말을 되씹고 있었다....그러나 나는 머나먼 자연의 소중함을 믿는다. 알래스카는 머나먼 자연이다. 이곳에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자연이 숨 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단 한 번도 알래스카 땅을 밟아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알래스카는 그들에게도 소중한 땅이다. 그들이 지켜야 하는 땅이다. 지구 어딘가에 태초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알래스카다. 알래스카는 눈으로 보는 자연이 아니다. 인간이 영혼으로 찾아가는 머나먼 자연이다. 

p. 224..."알래스카는 언제나 발견되고, 언제나 잊혀진다." 알래스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p. 237...베트남 전쟁에서 5만 8,132명의 미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에서 살아 돌아온 귀환병 중 약 15만 명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은 이에 관해서는 무관심했다. 윌리도 그 15만 명 중 한 명이 될 뻔한 시기가 있었다. 공황장애를 겪던 윌리는 목을 메려고 했다. 당시 그의 아들은 고작 일곱 살이었다. 일곱 살 먹은 그 아들이 자기 앞에서 목을 맨 아버지의 허리를 붙들고 필사적으로 떠받쳤던 것이다.  

 

윌리라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이 책에는 알래스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다. 대부분 잔잔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 혹은 절절한 우정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이다. 읽다보면 마음이 뭉클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알래스카에서 일생을 보내는 지니와 셀리아라는 미국 여성비행사들, 툰드라 지역의 허허벌판에 오두막짓고 살아가는 어느 백인의 가족사, 알래스카에서 태고적부터 살아온 원주민과 인디언들의 삶...등등은 오랜동안 알래스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글이다. 

그 어떤 소설보다도 감동을 주는 이 책을 읽다보면, 알래스카를 잠깐 다녀온 사람들이 쓴 기행문들이 왜 허접스럽고 경망스럽고 수다스럽고 부질없어보이는 지를 알게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책을 내던지게 된다.  

만약 내가 알래스카를 여행하게 된다면, 또 그게 가능하다면, 호시노 미치오의 궤적을 더듬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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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라서 그런가. 메일함에서 삭제하지 못한 편지를 다시 읽어본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 책의 지은이, 손동인씨와의 사적인 편지를 공개할까 한다. 안부인사에 불과한 내용이지만 혼자 읽기에는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게 안타까워 마음이 애잔해진다. 그는 매력적이고 낭만적인 영원한 문학청년이었다. 

 

 

 

편지 1. (2007.02.15)

'느닷없는' 편지, 너무 반가웠습니다.
새해 인사도 드리지 못했군요.
음력 절기를 오소독스로 삼아 정식으로 인사드리지요.
새해 복 맣이 받으십시오.

그런데 무심코 첨부파일을 읽어나가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남편과 딸, 앗! 결혼을.....
뒤늦었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미 많은 복을 받으셨더군요.
따지고 보면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직
혼자여서 그런지 만혼에 성공하신 분들을 보면 놀랍다는 반응이 먼저 작동하더군요.
물론 그 속내에는 부러움이 깔려있지요.

제가 몹시 부러워 할 만큼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구가하고 계시더군요.
삶의 여유와 관조, 애면글면 속 끓이지 않는 넉넉한 마음, 부부이자 친구이지 동지같은
배우자, 이만한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언제쯤 그런 지복의 순간을 맞을 수 있을까요.
제게 외로움과 고독은 이제 익숙한 친구가 된 듯 하지만 가끔은 못된 인플루엔자처럼
난폭하게 뼛속깊이 파고들 때가 있습니다.

법수치 계곡은 들어는 봤지만 가본 적은 없습니다.
인근 지역을 검색해 봤더니 무척 근사한 곳이더군요.
'이 땅에도 이런 곳이?' 정도랄까요.
다소 멀긴 하지만 이따금 그 곳에서 고요한 휴식과 상서로운 기운을 받는다면
더 할 나위없는 에너지 충전소가 되겠지요.
멀다고 하지만 시베리아나 미 대륙을 떠올려 보면 족탈불급이지요.
그런 곳에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생각을 떠오리기만 해도 힘이 불끈 솟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열망하시는 대로 좋은 글도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스멀스멀' 욕망이 생성될 때, 그것을 방기하는 것도 죄라면 죄겠지요.
열망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면 자연스럽게 터져나올 것을 믿습니다.

계제에 제 근황을 짤막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3월 중순경 경남 하동의 악양이라는 곳에 한 일년 남짓 머무를 계획입니다.
그 근처에 살고 계시는 선생님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 분은 저를 보시는 순간 피폐했던 제 삶의 궤적과 제가 시난고난 통과했던 힘든 시간들을
다 꿰뚫고 계셨지요.
그 분께 한 시절 저를 의탁하고 몸과 마음을 바로 곧추세우는 시간을 갖기 위해 그 곳으로 가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개인적인 작업들을 작파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일 보다는 심신의 리모델링에 무게중심을 더 둘 생각입니다.
조그만 폐교의 관사를 구해 놓았는데 그곳은 자연농업을 실천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이 연수원으로 사용하고 있어
비록 폐교지만 싱싱한 생명력으로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사실 비어 있는 폐교라면 무서워서라도 엄두를 못 냈을 텐데 그런 활발한 환경이어서 선뜻 용기를 내었습니다.
조금 막막한 느낌도 있지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의식과 사고의 지평을 열어볼 생각으로 설레기도 합니다.
제 삶에서는 중요한 한 시절이 될 것 같습니다.

법수치 계곡은 꼭 한번 가보고 싶군요.
그리고 일정 시간 그런 공간이 절실히 필요한 글쓰는 이에게 개방할 수 있다는 말씀은 참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게 위와 같은 계획이 없었다면 저라도 부탁드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드릴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삶의 행로라는 것이 좋은 인연을 바탕으로 열려야 한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많이 듭니다.
 
인천 어디에 사시는지 모르겠으나,
저도 어머님이 큰누님 댁에 살고 계시는데 바로 인천의 석남동입니다.
하여,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따금 찾아뵙고 있지요.
언제 기회가 되면 부군과 함께 식사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 전화번호는********입니다.
문자로 *** 씨 전화번호를 남겨 주시겠습니까.
연락을 한번 드리지요. 

다시 한번 축하와 축복을 드립니다.
삶의 광휘와 축복이 너무 버거울 정도면
제게도 조금 나눠주시지요.
항상 허기집니다.

그럼 이만.
 

편지2. (2007.02.16)

서울에서 볼일이 늦게 끝나 새벽 2시 반경에나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곤비해진 육신과는 달리 쉬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켰습니다.
반가운 답장...

그런데 첫 단락의 뉘앙스로 보건대 작년 4월 달에 *** 씨 편지를 받자마자 곧바로 답장을 보냈는데
그 편지를 받아보시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로소 놀라신 대목에 대해 분명히 그 때 언급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못 보신 것으로 간주하고 예전의 그 편지를 다시 띄워드립니다.
마침 보낸편지함에 보니 아직 활자가 살아 있더군요.
아래와 같습니다.

 .................................................................................................................... 
*** 씨께.

참으로 오랫만에 불러보는 이름입니다.
어쭙잖은 책이랍시고 내고 나니 뜻밖의 반가운 소식들이 찾아드는군요.
추억에도 속도가 있다고 하지요.
그 속도를 속수무책으로 감당하며 살아오고 말았군요.
봄날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잎처럼 마음조각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물론 궁금하시겠지만,
그리고 *** 씨께는 충분히 말씀드릴 만 하겠습니다만,
결국 가정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저의 업장이고 죄일 것 입니다.
평생 업장소멸을 위해 선근공덕을 쌓아야겠지요.
가슴에서 화석이 되어버린 그리움은 이제 건드리지 않으렵니다.

교편을 잡고 계시는군요.
잘 어울리는, 그리고 아주 합당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직장을 접고 둔재나마 애써 일깨워 앞으로도 글을 계속 써볼 생각입니다.
그 첫출발로 나름대로 비장한 테마를 잡아본 것입니다.
계속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교사, 훌륭한 스승으로 시종여일한 모습으로
살아가실 것을 믿고 기원하겠습니다.
고요하고 평온한 나날 되십시오. 

손동인 올림.
......................................................................................................................................
 
위와 같은 편지를 작년 4월 21일에 띄운 것으로 되어 있군요.
아마도 제가 우표를 부치지 않아 우주공간으로 사라져 버렸던 모양이군요.^^  

그리고 그 때 말씀을 드리지 못한 부분인데,
현재 저는 안성 대림동산에 둥지를 틀고 산지 이태가 넘어갑니다.
왜 또 안성인가, 스스로 자문하기도 했습니다.
쳐다 보기만 해도 아파서 다시는 못올 곳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여건을 핑계삼아 걸음이 이쪽으로 놓이더군요.
오랫만에 가본 학교나 내리 풍경이 너무나 상전벽해여서 마음이 아릿할 여지도 없습디다.
그저 낯선 곳으로 치부하면 그렇게 넘어갈 정도로 아주 다른 곳이 되어버렸어요. 

대림동산은 입구와 가까운 쪽은 많이 변했지만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예전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집니다.
생각보다 어지럽지는 않았고 오히려 평화로운 분위기와 맑은 공기, 상서로운 기운이 서울생활에서 쌓였던
마음의 독을 씻어주는 듯하여 예전처럼 마음에 살을 베이는 일은 없어진 것 같습니다. 
워낙 적요한 곳이라 그동안 아무도 사귄 사람이 없고 대림동산 안에서 저하고 가장 친한 '생명'은 바로 고은 선생님네 두 마리
강아지입니다. 산책을 할 때마다 어루만져 주었더니 이제는 이 녀석들이 멀리서부터 제 발자국소리를 듣고는 마당 끝에서 꼬리를
흔들며 기다리고 있을 정도지요.  

난무하던 요령부득의 숱한 기호와 이미지들에서 해방된, 참으로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늘 저를 염려해주고 마음을 써주는 동문 친구들 두 명이 근처에 살고 있어 치명적인 외로움은 피할 수 있게 해줍니다.
81학번의 *** 씨. 82 학번의 *** 씨.
두 사람인데 둘 다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 씨는 아마 모르실 겁니다.
그들은 물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같이 살고 있지요.  

소래포구는 20대 끝무렵에 지금은 사라진 협궤열차를 타고 가보고는
작년에 우연히 가보았습니다.
역시 '딴 곳'이 되어 있더군요.
풍경은 사라지고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겠죠. 

일간 인천에 갈 때 연락 한번 드리겠습니다.
소래포구에서 식사 한번 하시지요.
맑고 평온한 나날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손동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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