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말레이시아는 스콜이라는 소낙비가 간간히 혹은 새벽부터 쏟아져 내리고, 한나절은 더위에 쩔어 절절매며 돌아다닌다. 덥다. 더워서, 습한 더위 때문에 두번 다시 말레이시아에 오고 싶은 생각을 스스로 접게 만든다.

 

더위 속을 8일간 헤매다가 드디어 홍콩에 오니 여긴 초가을 날씨다. 조금은 센티멘탈해지는 기온이다. 여행이라는 게 이런 묘한 기분을 만끽하는 맛이긴한데, 흠, 쇼핑 천국에서 쇼핑에는 젬병인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

 

이렇게 한국을 떠나있으면 생각이 단순해지는 게 좋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그런데 이제 서서히 뒤돌아볼 일 아니 앞을 향한 일만 남아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갈 때다.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홍콩거리가 너무나 아름답다. 줄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처진 어깨마저 아름답게 보인다.

 

즐거움을 만끽하기에는 사실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 미안하다. 죄송스럽다. 내가 여행을 잘하는 것이 그 미안함을 잊지 않는 방법임을 참 염치없이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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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iver (Mass Market Paperback)
로이스 로리 지음 / Dell Laurel-Leaf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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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제시된 소설 배경은 이렇다. 슬픔, 기쁨, 사랑, 분노 등의 보통의 인간 감정이 거세된 동일화된 세계에서 모든 일은 예측 가능하고 갈등이나 다툼도 없이 안정된 삶을 이어나간다. 열한 살이 되면 진로가 결정되어서 그 사회를 이루고 유지해나가는데 필요한 각자의 역할이 주어진다. 애 낳는 사람이 되거나,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거나, 노동자로 살거나 하는데, 만약 더이상 그 사회에서 필요하지 않을 상황이 될 경우에는 추방의식을 거쳐 그 구성원을 추방시켜버린다. 추방(release)이 무엇인지는 후반부에 가서야 정확하게 나오는데 한마디로 죽임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쌍둥이가 태어나면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기는 살리고 그렇지 못한 아기는 약물주사로 간단히 생을 마치게 하는 것이다.

 

감정이 없는 세계에 살다보니 어떠한 죄의식도 없고 심각한 고민 같은 것도 없다. 주어진 스케줄에 따라 주어진 역할에 따라 주는 대로 먹고 주는 대로 입고 때가 되면 간단하게 생을 마치는 것이다. 불필요한 모든 감정은 한 사람-지식 전달자-이 떠맡으면 된다. 그래서 제목의 The Giver는 그 감정을 아랫 세대에게 전달해주는 사람이고, 대를 이어 그 역할을 떠맡는 사람은 The Receiver가 되는 것이다.

 

11살 짜리 주인공 Jonas는 The Receiver로 결정되어 그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다. The Giver로부터 인간의 희노애락을 전수 받는 이야기가 말하자면 이 책의 줄거리이다.

 

우선 재미있다. 그냥 집중하게 되는 책이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알라딘에서 제공되는 단어장이 있어서 골치아프게 일일이 사전을 찾지 않아도 된다. 페이퍼백이라 글씨가 작은 게 약간 고문이었지만 읽다보면 그 고통도 잊어버릴 만큼 재미있다. 딸아이의 의향을 묻고 구입했건만 딸아이는 손도 대지않고 대신 내가 재미있게 읽었다.

 

좋은 것은, 의미있는 것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야 알 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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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 We Bought a Zo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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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상영


나는 가족영화라서 좋았는데,10대인 딸은 가족영화는 질색이라나. 잔잔한 감동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 값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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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영어이야기
고종석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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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세상사가 그렇듯 책에도 '때'가 있는것 같다. 특히 좋은 책일수록 때를 잘 골라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 내게는 그런 책이다. 갓 대학에 입학하고 첫 여름방학을 맞았을 때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결과적으로 때가 너무 일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제대로 된 소화는 커녕 멀미만 초래했으니...

 

며칠 전 고종석의 이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했을때 울컥 반가운 감정이 일어났다. (<오래된 새책>이라는 책에 이 책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안 보고는 지나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학 신입생 시절의 절망감이 떠올랐다. 고종석은 를 무척이나 좋아했다는데 아마도 그분이 <고종석의 ....>를 쓰게 된 것도 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 대한 소개는 일단 이곳 알라딘의 소개글을 인용하면, '일주일의 7일을 각각 한 과씩으로 구성하고, 단어의 어원에서 시작하여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단어들을 소개하면서, 신화, 역사, 문화, 과학, 종교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더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을 읽고 예전의 절망감과 멀미를 잊을 수 있었으며, 내게는 그 대망과 원망의 대상이었던 를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일었다는 점이다.

단숨에 이 책을 읽었다는 점도 내게는 용기백배의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단 하나. 이 책의 끝부분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그 어지러운 족보가 좀 지나치게 나열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안 든다. 쓰기에도 괴로웠을 것 같다. 재미있게 쓴 글이 역시 읽기에도 재미있는데 저자의 학구열이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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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을 보내주세요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쓰인 미셸 투르니에의 방법을 흉내내어 리뷰에 대한 소박한 생각을 해본다.

 

'호평과 혹평'. 많은 사람이 읽고 공감을 하는 좋은 책과 반대로 별 인기도 없고 공감도 끌어내지 못해 나오자마자 사장되고마는 책이 있다. 어떤 책이 리뷰하기 좋을까를 종종 생각해보는데 나에게는 단연 후자쪽이 수월할 때가 많다. 좋은 책은 그 내용이 워낙 훌륭하다보니 내 생각을 보태기는 커녕 고개만 주억거리다가 그만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러나 책이 좀 부실하다고 생각될 때는 내 생각을 보태거나 혹은 단점을 짚어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호평은 짧게 끝나고 혹평은 길게 이어진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냐면 이 책이 처음에는 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 사랑과 우정, 웃음과 눈물, 황소와 말, 목욕과 샤워-샤워를 선호하는 사람은 깨끗함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고 목욕하는 사람은 깨끗함 따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샤워는 좌파 쪽, 목욕은 우파 쪽에 있다 -에 대한 얘기라든가, 유목민과 정착민, 소금과 설탕, 환경과 유전, 말과 글, 오른쪽과 왼쪽... 등 친숙한 '짝패'들이어서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심지어는 위에서 '호평과 혹평'을 거론한 것처럼 나도 독서 틈틈히 미셸 투르니에의 작업을 마음 속으로 흉내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도서관과 독서실, 학교와 학원, 배낭여행과 단체여행, 의사와 환자, 끝과 시작, 그리고 고전적인 예로써 모짜르트와 베토벤 등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미 이 책에서 모두 말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여기에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서서히 꺼져가기 시작했다. 뒤로 갈수록 미셸 투르니에의 작업이 섬세해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본업인 철학적인 관념이 내 얄팍한 사고력을 죄어오는 것이었다. 알듯 모를듯, 안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고 모른다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까. 어떤 부분에서는 번역자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부분을 이겨냈을까, 하는.

 

<재능과 천재성>이라는 글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p.146  천재성

         재능

         솜씨

         잔재주

         인간은 누구나-그가 어떤 사람이든-이 네 가지 능력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문제는 어떤 능력이 얼마만큼의 비율로 섞여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작가는 인용하길, '재능을 가지고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천재성을 가지고는 자기가 할 수 잇는 것을 한다.'고 하고, 손재주(솜씨)에 대해서는 '젊은 나이에 스승의 회초리를 맞아가면서 배우는 예술의 기본기'이며, 잔재주는 '격이 뚝 떨어지는 만만한 능력으로 자신의 무능력과 무지와 모자라는 창의력을 숨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비로소 알 게 된 사실 하나. 이런 리뷰는 커녕, 이 책을 읽어내는 데도 내 능력은 잔재주에도 미치지 못하는구나, 하는 탄식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 호평이니 혹평이니 하는 발언조차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

 

긴 겨울 밤. 새벽에 잠에서 깨어 미셸 투르니에의'짝패'를 떠올리며 짝패 놀이를 해본다. 여름과 겨울, 신발과 맨발, 연필과 타자기, 동양과 서양,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금과 은, 계단과 엘리베이터, 교사와 학생, 가해자와 피해자, 채무자와 채권자...미셸 투르니에는 존재를 논하는 자리에서 끝맺음을 하고 있는데, 난 역시 당장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잔재주를 부리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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