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지금도 밤에 자다가 무섭거나 하면 이불과 베개를 들고 내 곁에 와서 잔다. 간밤에도 그랬다. 이유가 이랬다.

 

딸: " 어떤 사람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귀신을 봤는데 사진에도 찍혔대. 근데 알고보니 그게 진짜 사람이래. 상의는 벗은 채 담 같은 데 엎어져 있었대....주절주절....."

 

나: "거봐, 쓸데없이 인터넷으로 그런 걸 보고 있으니 그런데 신경 쓰게 되지. 하지마."

 

잠시 후.

 

딸: "어제 학교에서 자판기가 내 돈만 먹어서 담당 선생님과 아줌마한테 말하고 20분이나 기다렸는데 해결되지 않았어."

 

나: "얼만데?"

 

딸: "1,000원인데 그냥 잊어버릴까?"

 

나: "그게 낫겠다.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아 먹는 것도 하지 말지 그래."

 

딸: (찡그리며)"왜 모든 걸 하지말라고 그래?"

 

나:(속으로 생각한다.)'나야말로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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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를 뵌 게 지난 추석날이었으니 또 무심히 한 달을 보냈다. 남편은 남편대로 딸은 딸대로 바쁜 날들이어서 좀처럼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것도 거짓이다. 지난 주말엔 친구와 어울려 영화를 봤으니까. 지지난 주말엔 친구들과 남대문 일대를 싸질러 돌아다녔으니까.

 

한 달만에 뵌 엄마는 전보다 더욱 얼굴이 굳어 있었고 말씀도 거의 없으셨다. 전신 중 손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엄마는 정신만은 예전 그대로인데, 또렷또렷한 정신력이라는 게 몸이 따라줘야 의미있는 것이지,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정신은 그대로 있는 것이 오히려 더 괴로운 일이 아닐까 싶다.

 

별 말씀도 없는 엄마는 오른쪽 허벅지가 가려운지 연신 손을 뻗어 가려운 곳을 긁으려고 하시기에 내가 대신 긁어드렸다. 15센티미터 남짓되는 허벅지를 살살 긁기를 30여 분, 종아리까지 가볍게 주무르는데 무릎 부근에서는 우두둑 우두둑 뼈소리가 나고 뼈가 덜커덩거려서 흠짓 놀라기도 했다.

 

허벅지를 긁어드리면서 이 나이가 되도록 엄마 몸에 이렇게 오래 손을 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여름 목욕할 때 등허리 때를 밀어드린 건 언제였던가, 까마득할 뿐이다. 그것도 엄마가 열댓 번 내 이름을 불러야 마지못해 밀어드렸던 기억 뿐이다.

 

어렸을 때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서 징징거리면 엄마는 아무 망설임없이 내 눈을 엄마의 혓바닥으로 핥아주시곤 했다. 여름에 비가 몹시 오던 어느 날은 초등학교 3학년이나 되는 나를 학교까지 업고 데려다주신 적이 있다. 엄마 등에 업히면서 내내 창피했었는데 엄마는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연세가 드셔서 제대로 걷기가 힘들어졌을 때에도 무거운 짐을 절대로 나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엄마와 함께 걸으면서 내가 엄마보다 무거운 짐을 들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젊었을 때는 쌀 한 가마니 정도는 머리에 이고 다니실 정도로 근력이 좋아서 아버지를 종종 놀라게 하셨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당시 나는 완행열차로 통학했는데, 밤 10시 쯤 기차에서 내리면 대합실에서 기다리시던 엄마가 내 가방을 받아들고 집으로 향하셨다. 가방이 무거워 고생한다면서. 주위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버스에서 학생들에게 자리 양보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해요. 애들이 가방이 무거워서 고생이 심해요."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7년 동안 완행열차로 통학한다는 구실로 나는 내 속옷 한 번 빨아 입은 적이 없다. 교복 세탁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한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아들 보다 딸 키우키가 더 힘들었을 엄마는 대신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아들 보다 딸이 돈이 더 많이 들어가요."

 

30여 분 동안 허벅지를 벅벅 긁어드리면서 이 순간마저 머지않아 사라져버리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울컥했다. 살이 다 빠져나간 엄마의 살갗는 아무리 긁어도 빨갛게 되지 않았다. 긁다가 문지르다가 다시 긁다가 다시 방향을 바꿔 주무르면서 손 끝으로 기억하려고 애썼다.

 

아직도 나는 엄마의 전혀 낯선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깡 마른 몸, 침 흘리는 입, 찡그린 얼굴 표정. 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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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0-1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께서 지금보다 더 건강해지셔야 할텐데요. 주위에 보면 요양병원이 눈에 띄게 늘어나더라고요. 그냥 예사로 보이지 않아요. 정신이 또렷또렷하시다니 그래도 다행이긴 한데...
전 여기 뭐라고 더 덧말 달기도 부끄러운 딸이기 때문에 그냥 공감 드리고 갑니다.

nama 2014-10-14 20:24   좋아요 0 | URL
온갖 정성으로 자식을 키워주는 부모이건만 노후에 병이 들면 요양원에서 타인의 수발을 받는다는 게, 생각해보면 서럽고 서글픈 일이지요.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구요.
 

오마이뉴스의 대표이사인 오연호의 책에서, '얀테의 법칙'을 읽고는 무릎을 쳤다. 그래 바로 이거다. 교실에 프린트해서 붙여 놓고, 가정통신문에도 몇 줄 인용하고 싶다.

 

책에는 1,4,8,9,10 만 나와 있어서 검색해보니 이미 널리 알려진 법칙이라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얀테의 법칙

1.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 말라.

2. 자신이 다른 사람처럼 착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3.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똑똑할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

4.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착각하지 말라.

5.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 말라.

6.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 말라.

7. 자신이 뭐든지 잘할 것이라고 생각 말라.

8.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라.

9. 누가 혹시라도 네게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 말라.

10.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 말라.

 

p. 96..얀테의 법칙은 한마디로 잘난 척하지 말라는 것인데,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사람이 특별하고 소중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은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나 소중하다.'

 

'우리는 모두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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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 실린 글이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658978.html

 

'1954년 시코쿠 에히메현에서 태어난 나카무라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영화 <철완아톰>의 오차노미즈 박사(코주부 박사)를 동경하는 과학에 관심 많은 소년이었다. 그를 기억하는 고등학교 동급생 니시다 데쓰는 “나는 내 방식으로 공부할 거야”라며 공식을 쓰지 않고 수학·물리의 어려운 문제를 풀던 그를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대학 시절 스승이었던 다다 오사무 도쿠시마대학 명예교수도 그에게 “책을 읽지 마라. 책을 읽으면 고정관념에 빠질 수 있으니 스스로 생각하라”며 그를 격려했다.'

 

 

 

책을 읽지 마라....하루종일 입에서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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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ina 2014-10-10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nama님처럼 다양한 책을 읽으면 고정관념에 빠질 염려는 없지 않을 까요?
고정관념에 빠진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현대인들이 기를쓰고 기존의 지식을
학습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지요.
책을 읽지 않고 내방식으로 문제해결을 한 노벨 물리학수상자, 일정 부분 천재성에
대한 보상같아 보이네요. 물론 열정과 노력의 결과이겠지만...
...갑자기 고등학교때 공포의 물리시간이 생각나서 무서웠던 물리 선생님이 지금
옆에 서계시는것 같아요 . ㅋㅋ

nama 2014-10-12 15:50   좋아요 0 | URL
배우는 즐거움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는 종종 그 무능함을 학생 위에 군림하는 무서움이나 엄격함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중고등 시절, 그런 몇 분의 선생님이 생각나네요. 특히 군 출신의 교련선생님. 교사도 뭣도 아닌 뒷골목 꼬마대장 같았던 분. 그런 분에게서는 교사로서의 고민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지요. 지겨웠던 고등학교 시절....
 

해결되지도 않는 이런저런 일로 마음과 몸이 무겁더니 드디어 오늘 아침에 속이 뒤집어졌다. 토사곽란이란 단어를 몸소 실천했다. 아직도 목이 컬컬하다. 신물까지 쏟았으니.

 

걱정하고 고민해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면 모를까 그렇지않다면 그냥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걱정거리와는 거리를 둔 그런 마음으로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그 문제가 가족일 경우에는 이런 거리두기가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불가항력이랄까.

 

한바탕 속을 다 비우고, 오후 들어서야 겨우 책을 집어들었다.

 

 

 

 

 

 

 

 

 

 

 

 

 

 

몽골병에 걸린 소설가가 쓴 책이다. 몽골에 대한 애정이 물씬물씬 드러나서 나도 덩달아 몽골에 빠져든 기분이 들었다. 거리에서 몽골 사람만 만나도 반갑다는 작가, 나 역시 거리에서 인도사람만 봐도 반갑던 때가 있었다.

 

몽골에 다녀온 친구들이 하는 얘기로 몽골에는 볼 게 없단다. 저 푸른 초원만이 펼쳐졌노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가기 위해 몽골에 간다고 한다.

 

p.27....사방 300킬로미터 반경의 불모지를 지나게 된다. 풀 한 포기, 양 한 마리, 게르 한 채 없이 막막하니 펼쳐진 붉은 황야에 서면 비로소 세상에 혼자 선다는 가슴 먹먹한 느낌과 만나게 된다. 떼를 써서라도 차를 버리고 그 불모지를 걸어 보기 바란다. 여태껏 가족과 친구와 직장 상사와 싸가지 없는 인간들 틈에 끼어 헐떡거리던 자신을 건져내어 자신의 본연과 만나게 될 것이다. 고비는 막막하니 비어 있으면서도 오감을 충만하게 한다. 텅 빈 충만감. 그것이 고비를 걷는 나그네의 보법이다.

 

'텅 빈 충만감'...나는 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지. 인도 라다크에서 아주 조금 맛을 봤다. 허허벌판,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높디 높은 산자락이 내뿜는 허허로움과 지구 태초의 모습, 사면팔방이 뻥 뚫린 광막한 고원지대, 아슬아슬한 천길 낭떠러지 위의 도로를 달리는 긴장감...몽골에 대해서 읽고 있었지만 나는 히말라야를 걷고 있었다.

 

몽골. 언젠가는 가보게 되겠지. 특히 고비사막. 고비고비 노래를 부르다보면 가게 되겠지. 몽골에 가게 되면 꼭 이 책을 다시 읽고 가리. '몽골로 가는 39가지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기왕이면 다양한 몽골을 경험해야지. 말도 지치도록 타보고.

 

p.177 몽골에는 말에 관한 말이 많다.  말은 타 봐야 알고, 사람은 사귀어 봐야 안다. 종에게는 주인이 많고, 지친 말에게는 채찍이 많다. 밥 먹으러 갈 때는 준마처럼 날쌔더니, 일하러 갈 때는 가로놓인 돌처럼 무겁다. 좋은 말은 보조를 맞추고, 된 사람은 말(言)을 지킨다. 우는 말이 있으면 차는 말도 있다.

 

여행 대신 그냥 읽어도 매우 재밌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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