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되지도 않는 이런저런 일로 마음과 몸이 무겁더니 드디어 오늘 아침에 속이 뒤집어졌다. 토사곽란이란 단어를 몸소 실천했다. 아직도 목이 컬컬하다. 신물까지 쏟았으니.
걱정하고 고민해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면 모를까 그렇지않다면 그냥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걱정거리와는 거리를 둔 그런 마음으로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그 문제가 가족일 경우에는 이런 거리두기가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불가항력이랄까.
한바탕 속을 다 비우고, 오후 들어서야 겨우 책을 집어들었다.
몽골병에 걸린 소설가가 쓴 책이다. 몽골에 대한 애정이 물씬물씬 드러나서 나도 덩달아 몽골에 빠져든 기분이 들었다. 거리에서 몽골 사람만 만나도 반갑다는 작가, 나 역시 거리에서 인도사람만 봐도 반갑던 때가 있었다.
몽골에 다녀온 친구들이 하는 얘기로 몽골에는 볼 게 없단다. 저 푸른 초원만이 펼쳐졌노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가기 위해 몽골에 간다고 한다.
p.27....사방 300킬로미터 반경의 불모지를 지나게 된다. 풀 한 포기, 양 한 마리, 게르 한 채 없이 막막하니 펼쳐진 붉은 황야에 서면 비로소 세상에 혼자 선다는 가슴 먹먹한 느낌과 만나게 된다. 떼를 써서라도 차를 버리고 그 불모지를 걸어 보기 바란다. 여태껏 가족과 친구와 직장 상사와 싸가지 없는 인간들 틈에 끼어 헐떡거리던 자신을 건져내어 자신의 본연과 만나게 될 것이다. 고비는 막막하니 비어 있으면서도 오감을 충만하게 한다. 텅 빈 충만감. 그것이 고비를 걷는 나그네의 보법이다.
'텅 빈 충만감'...나는 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지. 인도 라다크에서 아주 조금 맛을 봤다. 허허벌판,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높디 높은 산자락이 내뿜는 허허로움과 지구 태초의 모습, 사면팔방이 뻥 뚫린 광막한 고원지대, 아슬아슬한 천길 낭떠러지 위의 도로를 달리는 긴장감...몽골에 대해서 읽고 있었지만 나는 히말라야를 걷고 있었다.
몽골. 언젠가는 가보게 되겠지. 특히 고비사막. 고비고비 노래를 부르다보면 가게 되겠지. 몽골에 가게 되면 꼭 이 책을 다시 읽고 가리. '몽골로 가는 39가지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기왕이면 다양한 몽골을 경험해야지. 말도 지치도록 타보고.
p.177 몽골에는 말에 관한 말이 많다. 말은 타 봐야 알고, 사람은 사귀어 봐야 안다. 종에게는 주인이 많고, 지친 말에게는 채찍이 많다. 밥 먹으러 갈 때는 준마처럼 날쌔더니, 일하러 갈 때는 가로놓인 돌처럼 무겁다. 좋은 말은 보조를 맞추고, 된 사람은 말(言)을 지킨다. 우는 말이 있으면 차는 말도 있다.
여행 대신 그냥 읽어도 매우 재밌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