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밤, 잠들기 전에 틀어놓은 백창우의 cd는 16곡 중 겨우 첫번 째 곡을 듣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새벽에 깨어보니 전원이 그대로 켜져 있었다. 나머지 15곡은 전혀 기억에 없고...

 

그 첫번 째로 나오는 시가 바로 김용택의 <해가 지면>으로 시작하는 시였는데 ' ~~~걸어간다'를 자장가 삼아 들었나보다.

 

중2...아, 힘들다. 쓰러질 것 같다. 무례함에 화로 맞서기도 하지만 도를 닦듯 참고 또 참는다. 내가 왜 이 길에 들어섰던가, 를 되새김질할 뿐이다. 그래도 집에 걸어갈 수 있어 좋다. 집에나 가자. 지금 걷기 시작해도 집에 가면 어두워지니 서둘러야겠다.

 

 

 

                  연애 1

                                                       김용택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나무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강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산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질 때, 나무와 산과 강에게로 걸어가는 일은

아름답다 해가 질 때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산그늘처럼

  걸어가는

  일만큼

  아름다운

  일은

  세상에

  없다


*****위 시에 딱 맞는 길이 나의 퇴근길이다. 흙길을 따라 오른쪽엔 소나무, 왼쪽엔 해당화가 도열해 있고, 17도 각도로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봉우리가 다섯 개라서 오봉산이라 불리는 산이 있고, 바닷물이 들고 나는 어귀가 가늘고 길게 흙길을 벗삼아 뻗어 있다. 이 흙길을 따라 한 시간을 산그늘처럼 걸어가면 드디어 우리집에 도착한다. 분명, 나는 이 길로 퇴근하기 위해 내일도 출근하게 될 것이다. 길이, 걷는 일이 나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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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또 얻어 먹는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깍두기.

올케로 부터, 강원도 양양의 지인으로 부터.

충남 유구의 배추, 양양의 배추, 홍천 고춧가루

충남 김치는 새언니의 남동생 배추.

양양 김치는 동해 바닷물로 절인 것.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이 다음에 딸아이 김장은 어떻게 하나.

에이, 얻어 먹는 김에 딸에게서도 얻어 먹어야지.

딸, 너는 김치를 제대로 담가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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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665248.html

 

'어떤 유행에도 눈 돌리지 않고, 평생 집에 틀어박혀 건축물 같은 정물만 그렸다'는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꼭 가서 봐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보게 되었다.

 

동료 결혼식을 빙자해서 영등포-남대문시장-덕수궁-조계사까지 한바퀴 돌고 왔는데, 오늘 제일 잘 한 일은 역시 모란디의 그림을 본 것이다. 기대이상이었다, 내게는.

 

뭐랄까. 처음 인상은 그림으로 빚은 정성 가득한 도자기 같았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도자기와는 다른 깊이가 묵직하게 전해져왔다.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에 화가의 집념, 고뇌, 고독 같은 게 느껴졌다. 정물화의 매력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 그간 수없이 보아왔던 정물화는 뭐였지? 이제야 비로소 정물화에 대한 안목이 생긴 느낌이 들었다.

 

전시관에 비치된 화가 소개 브로셔에 실린 모란디의 말.

"가시적인 세계에서 내가 유일하게 흥미를 느끼는 것은 공간, 빛, 색, 형태다."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

 

'하늘 아래 가을의 작은 나뭇잎 이상 위대한 것은 없다.'라고 했다는 장자의 말씀이 모란디의 그림을 보며 떠올랐다. 정물화 속의 병 하나에 우주가 들어 있고 이 이상 위대한 것은 찾을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이 심한가? 그림에 빠지면 그렇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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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1-22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내일 여기 갈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보면 김수근 그림 느낌이 나지 않나요? 무채색, 두터운 질감, 복잡하지 않은 구조...

nama 2014-11-23 10:03   좋아요 0 | URL
그다지 두텁지는 않구요. 원조 같은 느낌?
하나의 행성을 발견한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요. 그림 그리고 싶다는 한숨 섞인 그리움도 생기고요...

hnine 2014-11-23 20:03   좋아요 0 | URL
제가 ˝박수근˝이라고 쓴다는게 ˝김수근˝이라고 썼네요 ㅠㅠ
김수근도 워낙 유명한 사람이다보니...
저 오늘 모란디 전시회 잘 다녀왔습니다 ^^

nama 2014-11-23 20:47   좋아요 0 | URL
전시회..어떠셨는지요.
허참...저도 당연 박수근으로 읽었는데요.

sabina 2014-11-2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실, 가시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것들은 공간을 차지하고 색과 형태가
빛으로 반사되어우리눈에 들어오는 것이므로, 그분은 유일이 아니라 전부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흥미를 느끼는 세상 전부를 화가 개인적 고찰(?)에의해, 단순화시킨 공간, 비슷한
톤의 색체, 나름의 의미를 담은 병들이라는 형태로 표현한 그림인것 같아요.
세상, 인생, 혹은 나마님 말대로 우주...이런 어떤 것의 전부에서, 쓸데없는 군더더
기를 배제시킨 본연의 바탕를 표현한 느낌입니다.(아마추어의 미숙한 추측)
인간으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잘 알 수 없어서 아슴프레한 색체와 뭔지
모를 것이 담겨져 있는 병들로 그려놓고,화가는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답해보라고
하는게 아닐까요? ^^
...저 병들 속을 들여다 보면 뭐가 보일까요...인생이, 세상이 뭔지 알 수 있을 까요
..........

nama 2014-11-23 20:49   좋아요 0 | URL
전시회장에는 모란디에 관한 동영상을 상영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면 이 화가는 세상사에 그리 관심이 많지 않았던 듯 싶어요. 자기방에 틀어박혀 병들을 모아놓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거나 병들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세밀하게 관찰했다고 해요. 병이라는 소품에서 자기만의 세계, 즉 우주를 느겼다고 생각돼요. 그런데 그게 왜 하필 병이었을까, 병을 통해서 세계를 본 것인지 세계를 병이라는 물체로 압축시킨 것인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지 그 과정이 궁금하긴 했어요. 여기에는 서양미술사에 대한 지식도 필요해요.
인상 깊은 그림인 것만은 분명해요.

sabina 2014-11-2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렇군요.
이 화가에 대해 아는바 없이 그림 한 장 보고 나만의 감상에 빠져 봤네요.
나만의 감상으로 한 발 더 나가 보면, 맨 앞에 오른쪽 병이 내인생 모습과 닮
은 듯. ㅎㅎ
그러고 보니 박수근 그림 느낌이 많이 풍깁니다.
 

오히려 잘 되었다.

 

1. 도서관을 최대한 이용한다. 부지런을 떨면 주변에서 세 군데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2. 그동안 구입하고 읽지 않은 책을 읽는다. 많다.

3. 동네 서점을 자주 기웃거린다, 예전처럼.

4. 헌책방과 친해진다.

5. 대형서점에 가서 서너시간 죽치고 책을 읽어댄다.

6. 꼭 필요한 책만 선별 또 선별해서 구매한다. 그간 싼 값에 너무나 쉽게 책을 구입했다.

 

들리는가, 거품이 빠지는 소리를...

아날로그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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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1-21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었던 책을 한번 더 들춰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처음 읽을 때와 분명 다른 느낌일거라 생각해요.

nama 2014-11-21 16:19   좋아요 0 | URL
역시...그 방법이 있었네요.
그런데 제 성격상 그건 쉽지 않을 듯해요.
일단 헤어지면 그냥 Goodbye가 제 성향이거든요.
그간 다시 읽은 책은 손으로 꼽을 정도예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소설 정도..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한테 다녀왔다. 오고 가는 차 안에서는 연신 차창에 머리를 부딪쳐가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달콤한 선잠 사이로 문득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올라 마음을 붉혔다.

 

엄마는 남들 앞에서 딸자랑을 무척 많이 하셨다. 초등학교 때 6년간 우등상 탄 것 부터 시작해서 중학교 때 어떻고,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고, 대학은 어디 나왔고, 지금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까지 자랑으로 시작해서 자랑으로 끝났다. 옆에서 듣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나는 그런 엄마의 자랑을 먹고 컸으나 나는 결코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다. 엄마의 헌신적인 보살핌 덕분에 겨우 내 앞가림하면서 밥벌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어쩌면 이제껏 엄마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걸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지 모른다, 는 생각이 오늘 갑자기 들었다. 엄마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반면에 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한 적이 있었던가를 떠올려 보았다. 있었던가?

 

엄마가 병실을 옮기게 되어 자연히 간병도우미분들도 바뀌었는데, 오늘 처음 뵌 간병도우미분이 엄마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왔다. 손이 고우신 걸 보니 농사 지은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일을 하셨느냐고 물어왔다.

 

엄마의 손은 원래 마디가 짧고 뭉툭하고 일을 많이 해서 손톱이 거칠고 지문이 거의 닳아 있었다. 엄마 손은 원래 이런 모양인 줄 알고 있었는데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후 온몸의 살이 다 빠지고 뼈마디만 앙상하게 남게 되자 손의 본모습이 돌아왔는데, 엄마의 손이 아주 예쁘고 손톱도 맑은 색채를 띠고 있었다. 엄마의 손이 이런 예쁜 모습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본 순간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었다.

 

엄마가 과거에 하신 일을 묻는 간병인의 물음에 나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40대에 조기퇴직하신 아버지 대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억척스럽게 하셨던 일수놀이를 나는 한번도 자랑스럽게 남들에게 떳떳하게 말한 적이 없었다. 일수놀이는 온 힘과 온 정성을 다바쳐서 하신 일이건만 자식들로서는 결코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 못되었다. 일수놀이...'놀이'라는 말이 붙었지만 이 일은 결코 놀이가 될 수 없는 일이었다.

 

30여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밤마다 엄마가 걸어다녀야 했던 길은 아마도 지구 몇 바퀴에 해당하는 거리였으리라. 온 몸을 다 바쳐서 하신 일이어서 엄마의 몸은 이제 성한 곳이 없다. 왼쪽 다리는 90도 각도로 휘어진 상태로 굳어져버렸고 오른쪽 엄지발가락은 휠대로 휘어서 등나무처럼 둘째 발가락을 휘감고 있다.

 

한번도 자식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직업이 아니었지만 엄마의 삶은 결코 부끄럽지 않았다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웠다는 것을 남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 끝내 부끄럽다.

 

자식 자랑하는 부모와 부모 자랑에 인색한 자식, 이것도 내리 사랑의 일종인가. 그래도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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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나쁜 애다.
    from I'm in ORDER. 2014-11-17 14:47 
    나는 정말 나쁜 애다.(먼 댓글로 이런 글을 쓰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과 내가 요 며칠 느끼는 감정이 같다고 생각한다.)지난 주부터 자꾸 치아를 뽑히는 꿈을 꿨다. 벌써 세 번째. 혐오스럽거나 섬뜩하거나 고통스러운 꿈은 아니지만, 그런 꿈은 대체로 흉몽으로 분류되기에 꿈을 꾸고 나서도 마음이 아주 복잡했다.개인적으로 내가 인지하는 가족의 범위는 할머니까지이고 - 나머지는 혈연관계...? - 근 1년 사이에는 엄마에게 무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