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벗게 된 검사: (변호사 개업을 알리는 명함을 주며) ..우리는 국가를 위해 '희생'을 하거나, '봉사'를 하는데, 자네는 (국가를 위해) 하는 게 뭔가?

윤진원(윤계상):.....(명함을 던진다...쓰레기처럼)

 

 

***조조상영을 2명이 10,500원에 봄. 매우 볼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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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권을 읽으며, 청소년 소설도 읽을 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판타지류의 소설을 거의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도 그리 자랑거리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늘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아이들 세계를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자각도.

 

사실, 소설 앞에 '청소년'이 붙는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기껏 영문판 'The Giver' 나 'Holes' 정도, 아니면 영어동화로 분류되는 아동물 정도.

 

어렸을 때는 읽을 책이 썩 드물었다. 책이라고 해야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가 갖고 계시던 온갖 정부간행물 뿐이었다. 그것마저도 독서용이 아닌 불쏘시개용으로 조만간 사라져버리고 말았지만. 동화책도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학급문고로 개인당 한 권 씩 사서 서로 돌려본 것 외에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 전에는 언젠가 당시 서울의 작은 집에서 학교에 다니던 언니가 여름방학 때 집에 내려왔을 때 몰래 가방에서 훔쳐보았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이 내 유년의 유일한 동화책이었다. 아무도 없는 아랫방에서 언니 가방을 몰래 열어보는 일도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책 내용마저 심장을 떨리게 했다.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는데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다 읽고 읽고나서도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세계가 있구나, 하는 놀라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책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를 놀라게 한 부류의 책이 또 있었다. 우리집에 세들어 살았던 군인가족이 있었는데, 아저씨는 육사출신의 장교였고 아주머니는 이대영문과 출신으로 미군방송을 즐겨보았고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었다. 이분들이 이사를 가면서 몇 푸대자루의 책을 잠시 맡겨두고 간 적이 있는데 뒤란 한 구석에 방치되었던 이 책꾸러미가 우리 삼남매에게는 장난감 역할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꾸러미 속에 한글로 된 책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온통 영어로 된 책뿐이었고 게중에는 색채도 선명한 총천연색 포르노그라피류의 잡지도 적잖이 있었는데...포르노라는 말조차도 몰랐던 어린 시절에 접한 이런 책들은 그저 놀라움 자체였다. 게다가 미끈미끈한 몸매의 백인과 흑인의 적나라한 성기들.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에 정신적인 성장이 조금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더하기 대학 시절.

 

동화책에서 곧바로 세계명작소설로 넘어갔던 우리 세대에 비해서 요즘은 읽을거리도 참 다양하다. 다양함이 오히려 피곤함이 되는 걸 우려해야 할 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읽을거리가 다양하다는 게 부럽긴 하다.

 

위의 책. 약간은 모호하고 설득력이 약한 <기억을 파는 가게>보다 <괴물 사냥꾼>이 훨씩 가독성이 좋다. 반전이랄까, 복선도 재미있다. 아이들 특히 중학교 남학생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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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버스, 업무 시작 전, 퇴근 시간 후에 책을 읽으려면 일단 책이 흡입력이 있어야 한다. 끝까지 읽지 못하는 내 인내력 부족을 탓하지 않을 만큼 재밌는 책이, 사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들었다 놨다 하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도서실에서 근무하니 이 몹쓸 행태가 점점 도를 더해간다고나 할까. 내 돈을 주고 산 책도 가차없이 팽개치는데 도서실에 있는 책쯤이야. 고마움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런데 이 책. 끝까지 잘 읽힌다. 진중권이 여러 예술가들과 나눈 대담집으로 여러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다만 진중권이 주도하다보니 때로 진중권이 주인공처럼 보일 때가 있어 좀 거슬리긴 하지만, 공부를 많이 한 걸 감추기도 쉽지 않을 터.

 

인상적인 말들을 베껴본다.

공공미술의 열두가지 원칙
1. 공공미술처럼 보일 필요 없다.
2. 작품은 영원하지 않다.
3. 계획되지 않은 것을 위한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라.
4. 공동체를 위해 공공예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라.
5. 문화적 군비경쟁에서 물러나라.
6. 화려한 불꽃놀이보다 더 나아가라.
7. 장식하지 말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라.
8. 소유권은 자유롭게, 저작권은 슬기롭게 공유하라.
9. 외부인을 환영하라.
10. 작품을 정의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11. 당신의 불신을 접어두어라.
12. 길을 잃어라.

진중권: 참 재밌는 게, 한국의 이른바 모더니즘이 서구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단 말이죠. 서구의 모더니즘은 `예술을 위한 예술`의 관념을 깨뜨리면서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매우 진보적이며 급진적인 성격을 띠었는데, 한국에서는 모더니즘이라고 하면 정치와 무관한 형식주의, 즉 예술을 위한 예술을 떠올리게 되죠. 우리가 비판했던 것은 바로 이런 유형의 모더니즘이었지요.

박찬경: 현대 과학기술의 반대편에 종교가 있다면, 종교의 반대편에는 미신이 있다. 나는 현대 과학기술도 싫고 제도종교도 싫다. 그렇다고 `미신`을 따를 수도 없다. 유물론자의 차가운 머리도 내 몫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현대 과학기술의 위험을 경고할 때의 종교는 좋다. 종교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미신은 좋다. 미신을 거부할 때의 합리적 사고는 좋다.

문성근: 모스끄바에 관광을 가서 연극을 봤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인 열여덟살 소녀의 역을 예순 먹은 할머니가 연기하는 거예요. 예순이 다 된 할머니가 열여덟살 소녀를 연기한다니 황당하죠. 사연인즉, 그분이 그 역을 스무살부터 40년째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관광상품이 된 거죠.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싶었어요.

예술은 가시적인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 파울 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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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책이 살살 녹는다. 그러나, 끝까지 읽지 아니한다. 너무 달콤해서. 단음식 대신 쌉싸름한 맛을 즐기는 내 식성 탓인지 단것엔 입이 짧다. 책도 그런 것 같다. 일단 내물렸는데 내내 이 한 구절이 남는다. 역시 쌉싸름한 맛 때문이다.

 

 

 

 

 

 

 

 

 

 

 

"병원이 건강의 장애가 되고 정당이 민주정치의 장애물이 되고 언론기관이 의사소통의 장애물이 되는 것처럼 학교는 진정한 교육의 장애가 되고 있다." 이반 일리히는 이렇게 말했다. 일리히의 주요개념 중 하나는 반생산성이다. 산업사회 스스로가 자신의 원래 목적을 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자동차 구입비, 기름값, 교통체증을 포함하여 자동차에서 보낸 시간 등을 모두 합해 계산하면, 사람들은 1만 킬로미터를 이동하기 위해 한 해 평균 1,600시간을 썼다. 그럼 자동차의 진짜 스피드는 지금 속도계에 찍히는 바로 그 속도가 아니라 겨우 시속 6km밖에 안 된다는 것. 우리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바치는 대부분의 노동이 사실 진정한 생산성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살아 있는 인간을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현대사회의 구조를 평생 분석하고 해체하여 마침내 뛰어넘으려 했다.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얻기 위해 어디까지 자신의 삶을 해체할 수 있는가. 그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자유라 믿는 모든  '안정감'이 실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가짜 자유임을, 아프게 깨닫게 된다. 

 

'안정감'. 그 누가, 권력이나 재벌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는 것을 메르스사태로 확인 또 확인하는 나날들이다. 이젠 지겹다. '삼성이 망해야 한다.'는 말도.

 

영화 <최종병기 활>......생존은 개인 몫이라는 마지막 멘트가 여운을 남겼었는데, 2011년이었다.

http://blog.aladin.co.kr/nama/499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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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둥지를 튼 지 올해로 만 15년이 되어간다. 아파트로 돈을 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지라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그럭저럭 내 고향이려니 여기고 살고 있다.

 

얼마전 바로 앞집이 이사갔다. 족히 6~7년은 얼굴 마주치며 살았다. 특히 여행 때문에 장기간 집을 비울 경우 온갖 우편물 수거를 부탁하곤 했었고, 마침 그 집 둘째딸과 우리 딸아이가 같은 학교에 다녔기에  수험생 부모의 심정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다고 한바탕 수다를 떤다거나 서로 오고간 것은 아니었다. 내가 늘 바빴으니까.

 

앞집이 이사가던 날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새벽에 출근하기 때문에 이사가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사가고 이사오는 아파트 풍경이지만 바로 앞집이 이사가는 모습은 차마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또 우리 라인에 살던 민경이네가 이사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경이와 딸아이는 같은 유치원, 같은 초등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었다. 민경이네는 이 아파트에 입주한 초창기 멤버였다. 특히 민경이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명절 무렵이면 늘 민경이 할머니께서 식혜를 한 냄비씩 주셔서 넙적넙적 얻어 먹곤 했다.

 

앞집이 이사가던 날, 딸아이와 나는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다들 이사가고 우리는 이제 완전히 원주민이 되었어."

"원주민 정도가 아니야. 영주권의 영자를 써서 영주민이 되었어."

 

퇴근하면서 혹시나 해서 들러본 민경이네. 벌써 이삿짐이 들어오고 있었다. 민경이 할머니께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씀도 못드렸는데 이를 어쩌나. 몹시 서운하다.

 

아는 얼굴들이 떠나간 아파트는 허전하기만 하다. 이젠 진짜 영주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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