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권을 읽으며, 청소년 소설도 읽을 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판타지류의 소설을 거의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도 그리 자랑거리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늘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아이들 세계를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자각도.

 

사실, 소설 앞에 '청소년'이 붙는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기껏 영문판 'The Giver' 나 'Holes' 정도, 아니면 영어동화로 분류되는 아동물 정도.

 

어렸을 때는 읽을 책이 썩 드물었다. 책이라고 해야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가 갖고 계시던 온갖 정부간행물 뿐이었다. 그것마저도 독서용이 아닌 불쏘시개용으로 조만간 사라져버리고 말았지만. 동화책도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학급문고로 개인당 한 권 씩 사서 서로 돌려본 것 외에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 전에는 언젠가 당시 서울의 작은 집에서 학교에 다니던 언니가 여름방학 때 집에 내려왔을 때 몰래 가방에서 훔쳐보았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이 내 유년의 유일한 동화책이었다. 아무도 없는 아랫방에서 언니 가방을 몰래 열어보는 일도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책 내용마저 심장을 떨리게 했다.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는데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다 읽고 읽고나서도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세계가 있구나, 하는 놀라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책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를 놀라게 한 부류의 책이 또 있었다. 우리집에 세들어 살았던 군인가족이 있었는데, 아저씨는 육사출신의 장교였고 아주머니는 이대영문과 출신으로 미군방송을 즐겨보았고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었다. 이분들이 이사를 가면서 몇 푸대자루의 책을 잠시 맡겨두고 간 적이 있는데 뒤란 한 구석에 방치되었던 이 책꾸러미가 우리 삼남매에게는 장난감 역할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꾸러미 속에 한글로 된 책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온통 영어로 된 책뿐이었고 게중에는 색채도 선명한 총천연색 포르노그라피류의 잡지도 적잖이 있었는데...포르노라는 말조차도 몰랐던 어린 시절에 접한 이런 책들은 그저 놀라움 자체였다. 게다가 미끈미끈한 몸매의 백인과 흑인의 적나라한 성기들.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에 정신적인 성장이 조금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더하기 대학 시절.

 

동화책에서 곧바로 세계명작소설로 넘어갔던 우리 세대에 비해서 요즘은 읽을거리도 참 다양하다. 다양함이 오히려 피곤함이 되는 걸 우려해야 할 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읽을거리가 다양하다는 게 부럽긴 하다.

 

위의 책. 약간은 모호하고 설득력이 약한 <기억을 파는 가게>보다 <괴물 사냥꾼>이 훨씩 가독성이 좋다. 반전이랄까, 복선도 재미있다. 아이들 특히 중학교 남학생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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